태평천하 太平天下
(채만식,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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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천하 太平天下
1. 尹直員[윤직원] 영감 歸宅之圖[귀택지도]
추석을 지나 이윽고 짙어가는 가을해가 저물기 쉬운 어느날 석양.
저 계동(桂洞)의 이름난 장자(富者[부자]) 윤직원(尹直員) 영감이 마침 어
디 출입을 했다가 방금 인력거를 처억 잡숫고 돌아와 마악 댁의 대문 앞에
서 내리는 참입니다.
간밤에 꿈을 잘못 꾸었던지, 오늘 아침에 마누라하고 다툼질을 하고 나왔
던지, 아뭏든 엔간히 일수 좋지 못한 인력거꾼입니다.
여느 평탄한 길로 끌고오기도 무던히 힘이 들었는데 골목쟁이로 들어서서
는 빗밋이 경사가 진 20여 칸을 끌어올리기야, 엄살이 아니라 정말 혀가 나
올 뻔했읍니다.
28관, 하고도 6백 몸메!……
윤직원 영감의 이 체중은, 그저께 춘심이년을 데리고 진고개로 산보를 갔
다가 경성우편국 바로 뒷문 맞은편, 아따 무어라더냐 그 양약국 앞에 놓아
둔 앉은뱅이저울에 올라서본 결과, 춘심이년이 발견을 했던 것입니다.
이 28관 6백 몸메를, 그런데, 좁쌀계급인 인력거꾼은 그래도 직업적 단련
이란 위대한 것이어서, 젖먹던 힘까지 아끼잖고 겨우겨우 끌어올려 마침내
남대문보다 조금만 작은 솟을대문 앞에 채장을 내려놓곤, 무릎에 들였던 담
요를 걷기까지에 성공을 했읍니다.
윤직원 영감은 옹색한 좌판에서 가까스로 뒤를 쳐들고, 자칫하면 넘어 박
힐 듯싶게 휘뚝휘뚝하는 인력거에서 내려오자니 여간만 옹색하고 조심이 되
는 게 아닙니다.
“야, 이 사람아……!”
윤직원 영감은 혼자서 내리다 못해 필경 인력거꾼더러 걱정을 합니다.
“……좀 부축을 히여 줄 것이지. 그냥 그러구 뻐언하니 섰어야 옳담말잉
가?”
실상인즉 뻔히 섰던 것이 아니라, 가쁜 숨을 돌리면서 땀을 씻고 있었던
것이나, 인력거꾼은 책망을 듣고 보니 미상불 일이 좀 죄송하게 되어, 그래
얼핏 팔을 붙들어 부축을 해 드립니다.
내려선 것을 보니, 진실로 거판진 체집입니다.
허리를 안아본다면, 아마 모르면 몰라도 한아름하고도 반은 실히 될까 봅
니다. 그런데다가 키도 알맞게 다섯 자 아홉 치는 넉넉합니다. 얼핏 알아듣
기 쉽게 빗대면 지금 , 그가 타고 온 인력거가 장난감 같고, 그 큰 대문간이
들어서기도 전에 사뭇 그들먹합니다.
얼굴도 좋습니다.
거금 30여 년 전에, 몇해를 두고 부안(扶安)ㆍ변산(邊山)을 드나들면서 많
이먹은 용(茸)이며 저혈(猪血)ㆍ장혈(獐血)이며, 또 요새도 장복을 하는 인
삼 등속의 약효로 해서 얼굴은 불콰하니 동안(童顔)이요, 게다가 많지도 적
지도 않게 꼬옥 알맞은 수염은 눈같이 희어, 과시 홍안백발의 좋은 풍신입
니다.
초리가 길게 째져 올라간 봉의 눈, 준수하니 복이 들어보이는 코, 뿌리가
추욱 처진 귀와 큼직한 입모, 다아 수부귀다남자(壽富貴多男子)의 상입니
다.
나이?…… 올해 일흔두 살입니다. 그러나 시삐 여기진 마시오. 심장 비대
증으로 천식(喘息)기가 좀 있어망정이지, 정정한 품이 서른 살 먹은 장정
여대친답니다. 무얼 가지고 겨루든지 말이지요.
그 차림새가 또한 혼란스럽습니다. 옷은 안팎으로 윤이 지르르 흐르는 모
시 진솔 것이요, 머리에는 탕건에 받쳐 죽영(竹纓) 달린 통영갓(統營笠[통
영립])이 날아갈 듯 올라앉았읍니다.
발에는 크막하니 솜을 한 근씩은 두었음직한 흰 버선에, 운두 새까만 마른
신을 조그맣게 신고, 바른손에는 은으로 개대가리를 만들어 붙인 화류 개화
장이요, 왼손에는 서른네살박이 묵직한 합죽선입니다.
이 풍신이야말로 아까울사, 옛날 세상이었더면 일도의 방백(一道方伯)일시
분명합니다. 그런 것을 간혹 입이 비뚤어진 친구는 광대로 인식 착오를 일
으키고, 동경ㆍ대판의 사탕장수들은 캬라멜 대장 감으로 침을 삼키니 통탄
할 일입니다.
인력거에서 내려선 윤직원 영감은, 저절로 떠억 벌어지는 두루마기 앞섶을
여미려고 하다가 도로 걷어젖히고서, 간드러지게 허리띠에 가 매달린 새파
란 염낭끈을 풉니다.
“인력거 쌕이(삯이) 멫푼이당가?”
이 이야기를 쓰고 있는 당자 역시 전라도 태생이기는 하지만, 그 전라도
말이라는게 좀 경망스럽습니다.
“그저 처분해 줍사요!”
인력거꾼은 담요로 팔짱 낀 허리를 굽신합니다. 좀 점잖다는 손님한테는
항투로 쓰는 말이지만, 이 풍신 좋은 어른께는 진심으로 하는 소립니다. 후
히 생각해 달란 뜻이지요.
“으응! 그리여잉? 그럼, 그냥 가소!”
윤직원 영감은, 인력거꾼을 짯짯이 바라다보다가 고개를 돌리더니, 풀었던
염낭끈을 도로 비끄러맵니다.
인력거꾼은 어쩐 영문인지를 몰라, 두릿두릿하다가 혹시 외상인가 하고 뒤
통수를 긁적긁적하면서……
“그럼, 내일 오랍쇼니까?”
“내일? 내일 무엇허러 올랑가?”
윤직원 영감은 지금 심정이 약간 좋지 못한 일이 있는데, 가뜩이나 긴찮이
잔말을 씹힌대서 저으기 안색이 변합니다.
그러나 이편 인력거꾼으로 당하고 보면, 무엇하러 오다니, 외상 준 인력거
삯 받으러 오지요라는 것이지만, 어디 무엄스럽게 그런 말을 똑바로 대고
하는 수야 있나요. 그러니 말은 바른 대로 하지 못하고, 그래 자못 난처한
판인데, 남의 그런 속도 몰라주고, 윤직원 영감은 인제는 내 할 말 다아 했
다는 듯이 천천히 돌아서 버리자고 합니다.
인력거꾼은, 이러다가는 여느때도 아니요, 허파가 터질 뻔한 오늘 벌이가,
눈 멀뚱멀뚱 뜨고 그만 허사가 되지 싶어, 대체 이 어른이 어째서 이러는지
는 모르겠어도, 그건 어찌 되었든지간에 좌우간 이렇게 병신스럽게 우물쭈
물하고만 있을 일이 아니라고 크게 과단을 내지 않을 수가 없읍니다.
“저어, 삯 말씀이올습니다. 헤……”
크게 과단을 낸다는 게 결국은 크게 조심을 하는 것뿐입니다.
“싹?”
“네에!”
“아니 여보소, 이 사람……”
윤직원 영감은 더러 역정을 내어, 하마 삿대질이라도 할 듯이 한 걸음 나
섭니다.
“……자네가 아까 날더러, 처분대루 허라구 허잖있넝가?”
“네에!”
“그렇지?…… 그런디 거, 처분대루 허람 말은 맘대루 허람 말이 아닝
가?”
인력거꾼은 비로소 속을 알았읍니다.
알고 보니 참 기가 막힙니다. 농도 할 사람이 따로 있지요. 웬만하면, 허
허! 하고 한바탕 웃어젖힐 노릇이겠지만, 점잖은 어른 앞에서 그럴 수는 없
고 그래 히죽이 웃기만 합니다.
“……그리서 나넌 그렇기 처분대루, 응?…… 맘대루 말이네. 맘대루 허라
구 허길래 아 인력거삯 , 안 주어도 갱기찮언 종 알구서, 그냥 가라구 히였
지!”
인력거꾼은 이 어른이 끝끝내 농을 하느라고 이러는가 했지만, 윤직원 영
감의 안색이며 말씨며 조금도 그런 내색이 보이지 않습니다.
“……거참!…… 나는 벨 신통헌 인력거꾼도 다아 있다구, 퍽 얌전허게 부
았지! 늙은 사람이 욕본다구, 공으루 인력거 태다 주구 허넝 게 쟁히 기특
허다구. 이 사람아, 사내대장부가 그렇기 그짓말을 식은 죽 먹듯 헌담 말잉
가? 일구이언은 이부지자(一口二言二父之子)라네. 암만히여두 자네 어매(어
머니)가 행실이 좀 궂었덩개비네!”
인력거꾼쯤이니 일구이언은 이부지자라는 공자님식(孔子式[공자식])이 욕
이야 알아듣지 못했겠지만, 자네 어매가 행실이 궂었덩개비네 하는 데는 슬
며시 비위가 상하지 않을 수가 없읍니다. 실상 그렇지 않아도 인력거삯을
주지 않으려고 농인지 진상인지는 모르겠으되, 쓸데없는 승강을 하려 드는
게 심정이 좋지 않은 참인데, 게다가 한술 더 떠서, 이건 한다는 소리가 거
짓말을 한다는 둥, 또 죽은 부모를 편삿놈이 널(棺[관])머리 들먹거리듯 들
먹거리는 데야 누군들 좋아할 이치가 있다구요.
사실 웬만한 내기가 인력거를 타고 와설랑, 납작한 초가집 앞에서 그 따위
수작을 했다가는 인력거꾼한테 되잡혀 가지곤 뺨따구니나 한대 넙죽하니 얻
어맞기가 십상이지요.
“점잖은 어른께서 괜히 쇤네 같은 걸 데리구 그리십니다!…… 어서 돈장
이나 주어 보냅사요! 헤……”
인력거꾼은 상하는 심정을 눅이고 종시 공순합니다. 그러나 그 돈장이란
말이 윤직원 영감한테는 저 히틀러라든지 하는 덕국 파락호(破落戶)의 폭탄
선언이라는 것만큼이나 놀라운 말입니다.
“머어? 돈장?…… 돈장이 무어당가? 대체……”
“일환 한 장 말씀입죠! 헤……”
남은 기가 막혀서 하는 말을, 속없는 인력거꾼은 고지식하게 언해(諺解)를
달고 있읍니다.
“헤헤, 나 참, 세상으 났다가 벨 일 다아 보겄네!…… 아니 글씨, 안받어
두 졸 드키 처분대루 허라던 사람이, 인제넌 마구 그냥 일 원을 달래여? 참
기가 맥히서 죽겠네…… 그만두소. 용천배기 콧구녕으서 마널씨를 뽑아먹구
말지, 내가 칙살시럽게 인력거 공짜루 타겄넝가!…… 을매(얼마) 받을랑가?
바른 대루 말허소!"
인력거꾼은 괜히 돈 몇십전 더 얻어먹으려다가 짜장 얻어먹지도 못하고 다
른 데 벌이까지 놓치지 싶어, 할 수 없이 50전을 불렀읍니다. 그러나, 윤직
원 영감은 여전합니다.
“아니, 이 사람이 시방 나허구 실갱이(승강이)를 허자구 이러넝가? 권연
시리(괜시리) 자꾸 쓸디읎넌 소리를 허구 있어!…… 아 이 사람아, 돈 50전
이 뉘 애기 이름인 종 아넝가?”
“많이 여쭙잖읍니다. 부민관서 예꺼정 모시구 왔는뎁쇼!”
“그러닝개 말이네. 고까짓것 엎어지먼 코 달 년의 디를 태다주구서 50전
씩이나 달라구 허닝개 말이여!”
“과하게 여쭙잖었읍니다. 그리구 점잖은 어른께서 막걸리값이나 나우주서
야 허잖겠사와요?”
윤직원 영감은 못 들은 체하고, 모로 비스듬히 돌아서서, 아까 풀렀다가
도로 비끄러맨 염낭끈을 다시 풀더니, 이윽고 십전박이 두푼을 꺼내가지고,
그것을 손톱으로 싸악싹 갓을 긁어봅니다. 노상 사람이란 실수를 하지 말란
법이 없는 법이라, 좀 일은 되더라도 이렇게 다시 한번 손질을 해보면, 가
사 10전짜린 줄 알고 50전짜리를 잘못 꺼냈더라도, 톱날이 있고 없는 것으
로, 아주 적실하게 분별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니까요.
“옜네…… 꼭 15전만 줄 것이지만, 자네가 하두 그리싸닝개 20전을 주넝
것이니, 5전을랑 자네 말대루 막걸리를 받어먹든지, 탁배기를 사먹든지 맘
대루 허소. 나넌 모르네!”
“건 너무 적습니다!”
“즉다니? 돈 20전이 즉담 말인가? 이 사람아 촌으 가먼 땅이 열 평이네,
땅이 열 평이여!”
인력거꾼은, 그렇거들랑 그거 20전 가지고 촌으로 가서 땅 열 평 사놓고서
3대 4대 빌어먹으라고 쏘아 던지고서 홱 돌아서고 싶은 것을, 그러나 겨우
참습니다.
“10전 한푼만 더 줍사요. 그리구 체두 퍽 무거우시구 허셨으니깐, 헤
……”
“아니, 이 사람이 인재넌 벨 트집을 다아 잡을라구 허네! 이 사람아, 그
럴 티먼 나넌 이 큰 몸집으루 자네 그 쬐외깐헌 인력거 타니라구 더 욕을
부았다네. 자동차나 기차나, 몸 무겁다구 돈 더 받넌 디 부았넝가?”
“헤헤, 그렇지만……”
“어쩔 티여? 이것 받어갈랑가? 안 받어갈랑가? 안 받어간다먼 나 이놈으
루 괴기 사다가 야긋야긋 다져서 저녁 반찬이나 히여 먹을라네.”
“거저 10전 한푼만 더 쓰시면 허실걸, 점잖어신 터에 그리십니다!"
즘잔 이 사람아 “ ? 그렇기 즘잖을라다가넌 논 팔어 먹겄네!…… 에잉 그거
참! 그런 인력거꾼 두 번만 만났다가넌 마구 감수(減壽)허겄다!……”
이 말에 인력거꾼이 바른 대로 대답을 하자면, 그런 손님 두 번만 만났다
가는 기절하겠다고 하겠지요.
윤직원 영감은 맸던 염낭끈을 또 도로 풀더니, 5전박이 한푼을 더 꺼냅니
다. 이 5전은 무단스레 더 주는 것이거니 생각하면 다시금 역정이 나고 돈
이 아까왔지만, 인력거꾼이 부둥부둥 떼를 쓰는 데는 배겨낼 수가 없다고,
진실로 단념을 한 것입니다.
“……거참!…… 옜네! 도통 25전이네. 이제넌 자네가 내 허리띠에다가 목
을 매달어두, 쇠천 한푼 막무가낼세!”
인려거꾼은 윤직원 영감이 말도 다 하기 전에 딸그랑하는 대소 백통화 서
푼을 그 육중한 손바닥에다가 받아 쥐고는, 고맙다고 하는지 무어라고 하는
지 분명찮게 입안의 소리로 두런거리면서, 놓았던 인력거 채장을 집어들고
씽하니 가버립니다.
“에잉! 권연시리 그년의 디를 갔다가 그놈의 인력거꾼을 잘못 만나서 실
갱이를 허구, 애맨 돈 5전을 더 쓰구 히였구나! 고년 춘심이년이 방정맞게
와서넌 명창대횐(名唱大會)지 급살인지 헌다구, 쏘사악쏘삭허기때미 그년의
디를 갔다가……”
윤직원 영감은 역정 끝에 춘심이더러 귀먹은 욕을 하던 것이나, 그렇지만
그건 애먼 탓입니다. 왜, 부민관의 명창대회를 무슨 춘심이가 가자고 해서
갔나요? 춘심이는 그저 부민관에서 명창대회를 하는데, 제 형 운심이도 연
주에 나간다고 자랑삼아 재잘거리는 것을, 윤직원 영감 자기가 깜짝 반겨
선, 되레 춘심이더러 가자가자 해서 꾀어가지고 갔으면서……
사실 말이지, 춘심이가 그런 귀띔을 안 해주었으면 윤직원 영감은 오늘 명
창대회는 영영 못 가고 말았을 것이고, 그래서 다음날이라도 그걸 알았으면
냅다 발을 굴렀을 것입니다.
---- 중략
일찌기 윤직원 영감은 그의 소시적 윤두꺼비 시절에 자기 부친 말대가리
윤용규가 화적의 손에 무참히 맞아 죽은 시체 옆에 서서, 노적이 불타느라
고 화광이 충천한 하늘을 우러러
“이놈의 세상, 언제나 망하려느냐?”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
하고 부르짖은 적이 있겠다요.
이미 반 세기(半世紀) 전, 그리고 그것은 당시의 나한테 불리한 세상에 대
한 격분된 저주요 겸하여 웅장한 투쟁의 선언이었읍니다.
해서 윤직원 영감은 과연 승리를 했겠다요. 그런데……
식구들은 시아버지 윤직원 영감이 보기가 싫은 건넌방 고씨만 빼놓고, 서
울아씨, 태식이, 뒤채의 두 동서, 모두 안방에 모여 종수를 맞이하는 예를
표하고, 그들의 옹위 아래 윤직원 영감과 종수는 각기 아랫목과 뒷벽 앞으
로 갈라앉았읍니다. 방금 점심 밥상을 받을 참입니다.
“너 경손애비, 부디 정신채리라!……”
윤직원 영감이 종수더러 곰곰이 훈계를 하던 것입니다. 안식구가 있는데라
점잖게 경손애비지요.
“…… 정신을 채리야 헐 것이 늬가 암만히여두 네 아우 종학이만 못히여!
종학이는 그놈이 재주두 있고, 착실히여서, 너치름 허랑허지두 않고 그럴뿐
더러 내년 내후년이머넌 대학교를 졸업허잖냐 ? 내후년이지?”
“네.”
“그렇지? 응, 그래, 내후년이먼 대학교 졸업을 허구 나와서, 3년이나 다
직 4년만 찌들어나머넌 그놈은 지가 목적헌, 요새 그 목적이란 소리 잘 쓰
더구나 응? 목적…… 목적헌 경부가 되야각구서, 경찰서장이 된담 말이다!
응 ? 알겄어.”
“네.”
“그러닝개루 너두 정신을 바싹 채리각구서, 어서어서 군수가 되야야 않겄
냐?…… 아, 동생놈은 버젓한 경찰서장인디, 형놈은 게우 군서기를 댕기구
있담! 남부끄러서 어쩔 티여? 응?…… 아 글씨, 군수 되구 경찰서장 되구
허머넌, 느덜 좋구 느덜 호강이지 머, 그 호강 날 주냐? 내가 이렇기 아등
아등 잔소리를 허넌 것두 다 느덜 위히여서 그러지, 나는 파리 족통만치두
상관읎어야! 알어듣냐?”
“네.”
“그놈 종학이는 참말루 쓰겄어! 그놈이 어려서버텀두 워너니 나를 자별허
게 따르구, 재주두 있구 착실허구, 커서두 내 말을 잘 듣구…… 내가 그놈
하나넌 꼭 믿넌다 꼭 믿어. 작년 올루 들어서 그놈이 돈을 어찌 좀 히피 쓰
기는 허넝가부더라마는, 그것두 허기사 네게다 대머는 안쓰는 심이지. 사내
자식이 너처럼 허랑허지만 말구서, 제 줏대만 실헐 양이면 돈을 좀 써두 괜
찮언 법이여 …… 그리서 지난달에두 5백 원 꼭 쓸 디가 있다구 핀지히였길
래 두말 않고 보내주었다!”
마침 이때, 마당에서 헴헴, 점잖은 밭은기침 소리가 납니다. 창식이 윤주
사가 조금 아까야 일어나서, 간밤에 동경서 온 전보 때문에 억지로 억지로
큰댁 행보를 하던 것입니다.
윤주사는 토방으로 내려서는 아들 종수더러, 언제 왔느냐고, 심상히 알은
체를 하면서, 역시 토방으로 내려서는 두 며느리의 삼가로운 무언의 인사
와, 마루까지만 나선 이복 누이동생 서울아씨의 입인사를 받으면서, 방으로
들어가서는 부친 윤직원 영감한테 절을 한자리 꾸부리고서, 아들 종수한테
한자리 절과, 이복동생 태식이한테 경례를 받은 후, 비로소 한 옆으로 꿇어
앉습니다.
“해가 서쪽으로 뜨겄구나?”
윤직원 영감은 아들의 이렇듯 부르지도 않은 걸음을, 더우기나 안방에 까
지 들어온 것을 이상타고 꼬집는 소립니다.
“…… 멋하러 오냐? 돈 달라러 오지?”
“동경서 전보가 왔는데요 ……”
지체를 바꾸어, 윤주사를 점잖고 너그러운 아버지로, 윤직원 영감을 속사
납고 경망스런 어린 아들로 둘러놓았으면 꼬옥 맞겠읍니다.
“동경서? 전보?”
“종학이놈이 경시청에 붙잽혔다구요!”
“으엉?”
외치는 소리도 컸거니와 엉덩이를 꿍 찧는 바람에, 하마 방구들이 내려앉
을 뻔했읍니다. 모여선 온 식구가 제가끔 정도에 따라 제각기 놀란 것은 물
론이구요.
윤직원 영감은 마치 묵직한 몽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양 정신이 멍해서
입을 벌리고 눈만 휘둥그랬지, 한동안 말을 못하고 꼼짝도 않습니다.
그러다가 이윽고 으르렁거리면서 잔뜩 쪼글트리고 앉습니다.
“거, 웬 소리냐? 으응? 으응?…… 거 웬 소리여? 으응? 으응?”
“그놈 동무가 친 전본가본데, 전보가 돼서 자세는 모르겠읍니다.”
윤주사는 조끼 호주머니에서 간밤의 그 전보를 꺼내어 부친한테 올립니다.
윤직원 영감은 채듯 전보를 받아 쓰윽 들여다보더니 커다랗게 읽습니다. 물
론 원문은 일문이니까 몰라보고, 윤주사네 서사 민서방이 번역한 그대로지
요.
“종학, 사상 관계로, 경시청에 피검!…… 이라니 ? 이게 무슨 소리다
냐?”
“종학이가 사상관계로 경시청에 붙잽혔다는 뜻일 테지요!”
“사상관계라니?”
“그놈이 사회주의에 참예를 ……”
“으엉?”
아까보다 더 크게 외치면서, 벌떡 뒤로 나동그라질 뻔하다가 겨우 몸을 가
눕니다.
윤직원 영감은 먼저에는 몽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같이 멍했지만, 이번
에는 앉아 있는 땅이 지함을 해서 수천 길 밑으로 꺼져 내려가는 듯 정신이
아찔했읍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단코 자기가 믿고 사랑하고 하는 종학이의 신상을 여겨서
가 아닙니다.
윤직원 영감은 시방 종학이가 사회주의를 한다는 그 한가지 사실이 진실로
옛날의 드세던 부랑당패가 백길 천길로 침노하는 그것보다도 더 분하고, 물
론 무서웠던 것입니다.
진(秦)나라를 망할 자 호(胡 : 오랑캐)라는 예언을 듣고서, 변방을 막으려
만리장성을 쌓던 진시황, 그는 진나라를 망한 자 호(胡 : 오랑캐)가 아니
요, 그의 자식 호해(胡亥)임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죽었으니, 오히려 행복
이라 하겠읍니다.
“사회주의라니? 으응? 으응?……”
윤직원 영감은 사뭇 사람을 아무나 하나 잡아 먹을 듯, 집이 떠나게 큰소
리로 포효(咆哮)를 합니다.
“…… 으응 ? 그놈이 사회주의를 허다니! 으응? 그게, 참말이냐? 참 말이
여?”
“허긴 그놈이 작년 여름방학에 나왔을 때버틈 그런 기미가 좀 뵈긴 했어
요!”
“그러머넌 참말이구나! 그러머넌 참말이여, 으응!”
윤직원 영감은 이마로 얼굴로 땀이 방울방울 배어오릅니다.
“…… 그런 쳐죽일 놈이, 깎어죽여두 아깝잖을 놈이! 그놈이 경찰서장 허
라닝개루, 생판 사회주의허다가 뎁다 경찰서에 잽혀 ? 으응?…… 오사 육시
를 헐 놈이, 그놈이 그게 어디 당헌 것이라구 지가 사회주의를 히여? 부자
놈의 자식이 무엇이 대껴서 부랑당패에 들어?……”
아무도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섰기 아니면 앉았을
뿐, 윤직원 영감이 잠깐 말을 그치자 방안은 물을 친 듯이 조용합니다.
“……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오죽이나 ……”
윤직원 영감은 팔을 부르걷은 주먹으로 방바닥을 땅 치면서 성난 황소가
영각을 하듯 고함을 지릅니다.
“화적패가 있너냐아? 부랑당 같은 수령(守令)들이 있너냐?…… 재산이 있
대야 도적놈의 것이요, 목숨은 파리 목숨 같던 말세(末世)넌 다 지내가고오
…… 자 부아라, 거리거리 순사요, 골골마다 공명헌 정사(政事),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 남은 수십만 명 동병(動兵)을 히여서, 우리 조선놈 보
호히여 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으응 ?…… 제것 지니고 앉아서
편안허게 살 태평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구 허는 것이여 태평천하!…… 그런
디 이런 태평천하에 태어난 부자놈의 자식이, 더군다나 왜지 가 떵떵거리구
편안허게 살 것이지, 어찌서 지가 세상 망쳐놀 부랑당패에 참섭을 헌담 말
이여, 으응?”
땅 방바닥을 치면서 벌떡 일어섭니다. 그 몸짓이 어떻게도 요란스럽고 괄
괄한지, 방금 발광이 되는가 싶습니다. 아닌게아니라 모여선 가권들은 방바
닥 치는 소리에도 놀랐지만, 이 어른이 혹시 상성이 되지나 않는가하는 의
구의 빛이 눈에 나타남을 가리지 못합니다.
“…… 착착 깎어 죽일 놈!…… 그놈을 내가 핀지히여서, 백년 지녁을 살
리라구 헐걸! 백년 지녁 살리라구 헐 테여 …… 오냐, 그놈을 3천석거리는
직분(分財)하여 줄라구 히였더니, 오냐, 그놈 3천석거리를 톡톡 팔어서, 경
찰서으다가 사회주의 허는 놈 잡어 가두는 경찰서으다가 주어버릴걸! 으응,
죽일 놈!”
마지막의 으응 죽일 놈 소리는 차라리 울음소리에 가깝습니다.
“…… 이 태평천하에! 이 태평천하에 ……”
쿵쿵 발을 구르면서 마루로 나가고, 꿇어앉았던 윤주사와 종수도 따라 일
어섭니다.
“…… 그놈이 만석꾼의 집 자식이, 세상 망쳐놀 사회주의 부랑당패에 참
섭을 히여. 으응, 죽일 놈! 죽일 놈!”
연해 부르짖는 죽일 놈 소리가 차차로 사랑께로 멀리 사라집니다. 그러나
몹시 사나운 그 포효가 뒤에 처져 있는 가권들의 귀에는 어쩐지 암담한 여
운이 스며들어, 가뜩이나 어둔 얼굴들을 면면상고, 말할 바를 잊고, 몸둘
곳을 둘러보게 합니다. 마치 장수의 주검을 만난 군졸들처럼 ……(大尾[대
미])
〈同志社,[동지사] 1948.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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