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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의 소녀
김명순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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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김명순-의심의_소녀-청춘.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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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및 작품소개

김명순의 단편소설 의심의 소녀는 평양 근처의 새마을이라는 동리를 배경으로, 정체불명의 소녀 범네와 그녀를 둘러싼 미스터리한 이야기로 전개됩니다. 범네는 아름답고 순수한 소녀로 묘사되며, 그녀는 외조부인 황진사와 어떤 여인과 함께 이 동리에 살고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들의 배경과 사연에 대해 궁금해하지만 깊이 알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이야기는 범네가 이웃 소녀 특실이와 처음으로 교류하며, 외로움을 느끼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독자에게 그녀의 내면을 드러냅니다. 한편, 범네와 그녀의 가족은 평소 동네 사람들과 교류가 거의 없었지만, 추석을 맞아 성묘를 다녀온 뒤 이사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한 신사가 망원경으로 범네를 바라보는 장면이 나오며, 그녀의 정체에 대한 의문이 고조됩니다.

결국, 이야기는 범네가 평양의 유명한 미인이자 불행한 삶을 살았던 조국장 부인의 딸 가희임이 밝혀집니다. 가희의 어머니는 조국장의 부인이었으나, 남편의 외도와 학대로 인해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외조부 황진사는 손녀 가희를 데리고 타향에서 살아가며 그녀를 보호하려 했던 것입니다.

소설은 가희와 그녀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통해 당시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과 억압을 그리며, 그녀의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깊은 상처를 보여줍니다. 가희의 삶은 가족의 비극과 사회적 억압 속에서 고립된 여성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저자소개

김명순(1896~1951 추정)은 한국 근대 문학사에서 최초의 여성 소설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그는 소설뿐만 아니라 시, 수필, 번역 등 여러 장르에서 활동하며 한국 근대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김명순은 자신의 문학을 통해 당시 한국 여성들이 겪던 사회적 억압, 불평등, 고립감을 생생하게 드러냈습니다.


1. 생애

김명순은 1896년(추정)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적 부모를 모두 여의고 고아로 성장했습니다. 불우한 유년기를 겪으며 친척집에서 어렵게 자랐고, 후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근대 문학과 서구 문물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김명순은 일본 유학 중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김명순은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 여성으로서의 고난을 직접적으로 경험하며 이를 작품 속에 반영했으며, 당시의 남성 중심 사회와 여성에 대한 억압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러나 그의 대담한 태도와 작품 세계는 종종 보수적인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았습니다.

말년에는 정신적 고통과 사회적 편견 속에서 불우한 삶을 보냈고, 1951년께 요절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김명순의 사망 원인은 불명확하지만, 그가 고립과 빈곤 속에서 생을 마감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2. 문학 활동

김명순은 1917년 잡지 청춘에 단편소설 「의심의 소녀」를 발표하며 등단하였습니다. 이후 활발히 활동하며 여성의 삶과 현실을 사실적으로 다룬 작품들을 통해 여성 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김명순의 작품은 여성의 내적 갈등, 억압받는 현실, 사랑과 배신, 고독 등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이는 당대 여성들이 직면한 문제들을 반영한 것입니다.

대표작으로는 다음과 같은 작품들이 있습니다:

  • 단편소설: 「탄실이와 주영이」, 「침실의 노래」, 「경희」, 「파초의 꿈」
  • : 「겨울은 가고」, 「여자」 등
  • 번역작품: 영어와 일본어로 된 서양 문학 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소개

3. 작품의 특징

김명순의 문학은 주로 여성의 삶과 내면 세계를 깊이 있게 탐구합니다. 그의 작품은 당시의 엄격한 유교적 가치관과 남성 중심 사회 구조 속에서 억압받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특히, 김명순의 문학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집니다:

  1. 여성의 고통과 비극 묘사: 그는 작품 속에서 여성들이 겪는 억압, 배신, 고독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며 사회적 모순을 비판합니다.
  2. 자전적 요소: 김명순의 많은 작품에는 자신의 경험과 고통이 녹아 있습니다. 특히, 여성으로서 겪었던 차별과 고립이 그의 소설에 자주 반영됩니다.
  3. 사회 비판: 당시 가부장적 사회와 남성 우위의 구조를 비판하며 여성의 권리와 자유를 주장하는 진보적인 관점을 담고 있습니다.
  4. 감각적이고 서정적인 문체: 그의 글은 정서적으로 풍부하며, 인간 심리에 대한 깊은 통찰을 드러냅니다.

4. 김명순의 중요성

김명순은 한국 근대 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는 단순히 여성 작가라는 점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학을 통해 여성의 권리와 자아를 탐구하고, 당시 사회적 문제들을 대담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선구적인 작가입니다. 그러나 그의 파격적이고 대담한 작품 세계는 당시의 보수적인 시각으로 인해 비판받기도 했습니다.

김명순은 문학적으로는 인정받으면서도, 여성으로서의 사회적 편견과 문단 내 차별 속에서 불우한 삶을 살아야 했던 작가였습니다. 그의 작품은 현대에 이르러서야 재조명되고 있으며, 여성 문제와 사회적 불평등을 다룬 문학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김명순은 단지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켜 시대를 넘어서는 메시지를 전달한 작가였습니다. 이는 그가 한국 문학사에서 독보적인 작가로 남아 있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의심의 소녀


1


 평양 대동강 동쪽 해안을 이 리쯤 들어가면 새마을이라는 동리가 있다. 그

동리는 그리 작지는 않다. 그리고 동리의 인물이든지 가옥이 결코 비루하지

도 않으며 업은 대개 농사다. 이 동리에는‘범네’라 하는 꽃인가 의심할

만하게 몹시 어여쁘고 범이라는 그 이름과는 정반대로 지극히 온순한 팔구

세의 소녀가 있다. 그 소녀가 이 동리로 온 것은 두어 해 전이니 황진사라

는 육십여 세 되는 젊지 않은 백발옹과 어디로선지 표연히 이사하여 거한

다. 그 후 몇 달을 지나서 범네의 집에는 삼십 세 가량 된 여인이 왔으나

역시 타향인이었다. 하는 일은 없으나 생활은 흡족한 듯이 보이며 내객이라

고는 일 년에 한 번도 없고 동리 사람들과 사귀지도 않는다. 그런 고로 이

동리에는 이 범네의 집안 일이 한 의심거리가 되어 하절 장마 때와 동절기

인 밤에 담뱃 때들 사이의 이야기 거리가 되었다.

 범네라는 미소녀는 그 이웃 소녀들과 사귀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같다. 혹

때를 타서 나물하는 소녀들을 바라보고 섰으면 그 이웃 소녀들은 범네의 어

여쁜 용자(容姿)에 눈이 황홀하여져 서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에 백

발옹은 반드시 언제든지

 “야 ─ 범네야 ─ 야 ─ 범네야”하고 부른다. 범네는 가엾은 모양으로

뒤를 돌아보며 도로 들어간다. 또한 의심을 일으키게 하는 것은 삼인이 각

각 타향 언어를 쓰는 것이라. 옹(翁)은 순연한 평양 사투리요 범네는 사투

리 없는 경언(京言)이며 여인은 영남 말씨라. 또 범네는 옹더러는 ‘할아버

지’, 여인더러는 ‘어멈’이라고 칭호한다. 무식한 촌 소년들은 그 여인이

범네의 모친인가 하였다. 촌사람들도 이렇게 외에는 범네의 집 내용을 구태

여 알려고도 아니하였다.


2


 그들이 이사하여온 지 만 이 년이나 지난 하절이라.

 어떤 장날 마침 옹은 오후 이 시경에 외출하여 어슬어슬한 저녁때까지 귀

가치 않았더라. 범네는 심심함을 못 이김이던지 싸리 문 안에서 문을 방긋

이 열고 내다보고 섰다. 그 때 동리 이장의 딸 특실이가 그 어머니를 찾아

방황하는 모양을 보고 살며시 문 밖으로 흰 얼굴만 나타내어 자기를 쳐다보


는 특실이를 향하여 미소하여 은근하게

 “네가 특실이냐?”

 특실이는 반가웁게 그 지방말로

 “응 너희 할아버지 어디 가셨니?”

 범네는 어여쁜 얼굴에 웃음을 띠며

 “벌써부터 성내에 가셨는데…….”

 말 마치기 전에 은행 껍질 같은 눈꺼풀이 발그레하다. 두 소녀는 잠깐 잠

잠하다.

 “너는 아버지는 안 계시니?”

 “아버지는 서모하고 큰 언니하고 서울 계시구…….”

 또다시 눈꺼풀이 붉어진다.

 “지금 같이 있는 이는 너의 누군가?”

 “외할아버지 하고 밥 짓는 어멈이다…….”

 두 소녀의 담화가 점점 정다워 갈 시에 멀리서 옹의 점잖고 화평한 모양이

보였다. 범네는 특실이를 향하여 온정하게 “내일 또 놀러오너라”하고 걸

음을 빨리 하여 옹의 옷소매를 붙들며 옹의 귀가를 무한히 기뻐한다. 옹은

범네의 손목을 끌어 싸리문으로 들어가며

 “심심하든?”한다.

 범네가 이같이 특실이와 이야기 한 것도 이 년이나 한 동리 앞 뒤 집에 살

았지만 처음이더라.


3


 혹독한 서중(暑中)에 기다리던 추절이 기별 없이 와서 맑고 시원한 바람에

오동잎이 힘없이 떨어지매 년년이 변치 않고 돌아오는 추석명절이 금년에도

돌아왔다. 도(都)에나 비(鄙)에나 성묘 가는 사람이 조조부터 끊일 새 없이

각기 조선(祖先) 부모 부처 자녀의 고혼(故魂)을 위로키 위하여 술이며 음

식을 준비하여 남녀노소를 물론하고 북촌 길로 향한다. 새마을 동리의 범네

와 옹도 누구의 묘에 가는지 기중에 끼었더라. 어느덧 해는 모란봉 서편에

기울어지고 능라도 변에 연연(涓涓)한 세파(細波)는 금색을 대(帶)하였다.

이슬아침과 주간에 그리 분요(紛擾)하던 성묘인들도 지금은 끊어져 벌써 청

류벽 아래 신작로에는 얼근히 취하여 혼자 중얼거리며 돌아오는 사람이 사

이사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대동강 건너 새마을 동리를 향하고 바삭바삭 모래를 울리는 노유(老幼) 두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다. 심히 피로하여 귀촌하는 옹과 범네라. 범네의 발

뒤꿈치에 내려드리운 검은 머리가 제 윤에 번지르하다. 대리석으로 조각한

듯이 흰 양협에 앞이마 털이 한두 올 늘어져 시시로 불어오는 청풍에 빛날

리어 그의 아름다움을 더하였다. 풋남순인 치마에 담황색 겹저고리 입고 분

홍신을 신었다. 실로 새마을 동리 소녀들과는 ‘군계중에학’이라. 옹도 무

언, 소녀도 무언. 소녀의 어여쁜 얼굴에는 어린 아해에게는 없을 비애에 지

친 빛이 보인다. 강안에는 석향을 준비하는 촌부들이 있다. 처음 보는 바가

아니로대 이날은 더욱이 호기심을 일으켜가며 주목한다. 기중 한 아이

 “어드메 살던 아해인지 곱기도 하다.” 또 한 아이

 “늘 보아도 늘 곱다. 한 번 실컷 보았으면 좋겠다.” 또 하나는 하하 웃

으며

 “범네야 어디 갔다 오니?”하고 묻는다. 범네는 촌부들을 향하여 눈만 웃

으며 입 다물은 채 옹의 뒤를 따른다. 이때에 대동강 외 우뚝 솟은 난벽(卵

壁)의 이층 양옥에서도 이편을 향하여 망원경을 눈에 대이고 바라보는 외국

인인지 조선인인지 분별키 어려운 신사가 있다. 신사는 급히 상노를 부른

다. 상노는 주인의 명을 받아 문전 녹색 소주(小舟)에 제등을 달고 속히 저

어 강안을 향하여 배 대었을 때는 옹과 범네가 새마을에 들어갔을 때이라.

 신사는 새마을 가는 길을 두고 다른 동리의 길로 향하였다. 그 신사가 낙

심한 안색으로 강안에 돌아왔을 때에는 동천에 둥근 달이 맑은 광선을 늘이

어 암흑한 곳 몇 만민에게 은혜 베푼 때이니 평양 대동강문 외에는 전등빛

이 반짝반짝 불야성이오 강 위에는 오늘이 좋은 날이라고 선유하는 소선(小

船)이 루비 홍옥 같은 등불을 밝히고 남녀 성을 합하여 수심가를 부르며 오

르락내리락한다. 신사는 실심한 듯이 강가에서 바라보고 섰다. 한참 만에

힘없이 배에 올라 도로 저어 저편에서 내리어 조국장의 별장으로 들어갔다.

신사는 그 별장 주인인 듯싶다.


4


 강안에서 신사의 모양을 본 촌부인 중에 ‘언년어멈’이라는 남의 일 참견

잘하는 사람이 있다. 보고 싶은 범네도 볼 겸 범네의 집을 찾아가 신사의

일을 고하였더라. 옹은 별로 놀라지도 않으며 천연스럽게 언년 모에게 감사

하였다. 언년 모가 돌아간 후 두 시 가량이나 지나 옹과 범네는 동리 이웃

에게 고별하려고 이장의 집을 심방하였다. 옹이 이장의 집을 심방함도 이사

왔을 시와 이번뿐이라.


 동리 머슴들이 행담(行擔) 칠팔 개와 기타 기구를 강안으로 나르고 옹과

범네의 뒤에는 그 집 여인과 인심 후한 이웃 사람들이 별로 깊이 사귀었던

정도 아니건만 전별차(餞別次)로 따라 나온다. 강가에는 마침 물아래로 가

는 배가 있다.

 잔잔한 파도는 명랑한 월야의 색채를 비치었다.

 선인(船人)이 준비 다 됨을 고한대 옹은 서서히 전별 나온 이웃 사람들에

게 고별하였다. 동리 사람들은 소리를 합하여 여중(旅中)의 안녕을 축 하였

다. 그 소리에 산천까지 소리를 합하였다. 범네의 흰 얼굴은 월광을 받아

처참히 보인다. 백설 같은 담요를 두르고 오슬오슬 떠는 모양 감기에 걸린

것 같다. 범네도 떠는 목소리도 인사를 마치고 옹의 손을 잡고 차박차박 걸

어 뱃머리에 오르다가 고개를 돌리며 둥글고 광채 있는 눈으로 동리 사람들

을 한 번 더 본다…….

 밤은 깊어 사방이 적막한데 옛적부터 기 억만 년의 비밀을 담은 대동강물

이 고금을 말하려는 듯이 가는 물결 소리를 낸다. 배 젓는 노 소리는 지긋

지긋 철썩철썩 심야의 적막을 파한다. 배가 물아래를 향하여 삼단 쯤이나

갔을 때에 특실이가 “범네야 잘 가거라 ─”하매 저편에서도 범네가 “특

실아 잘 있거라 ─”한다. 그 소리가 양금 소리같이 떨리어 들린다. 촌인들

은 배가 멀리서 희미하게 보이고 노 소리가 안 들릴 때까지 그곳에서 의논

이 분분하여 물이 밀어 그들의 발을 적시는 것도 몰랐더라. 이장은 저녁 때

일을 언년 모에게 듣고 머리를 기울여가며 생각하더니 한참 만에 언년어멈

을 향하여

 “그래 그 신사는 어디서 옵디까?”물었다. 언년어멈은 원시(遠視)를 잘

하는 양이라

 “저기 보이는 우뚝 솟은 이층집에서 시커먼 것을 눈에 대고 보더니

…….”

 이장은 또 한 번 머리를 기울였다.…… 한참 만에 이제야 비로소 수년래의

의심을 푼 듯이

 “알았소. 범네는 그렇게 봄에 자살한 조국장 부인의 기출인 가희 아기구

려.”

 일동은 무슨 무서운 말을 들은 듯이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장은 한숨을 지

으며

 “불쌍한 아해?”하고 부르짖는 듯이 말하였다.


5
















 이는 연전(年前) 가정의 파란으로 인하여 자살해버린 조국장 부인의 기념

으로 끼친 일녀 가희니 외양과 심지가 과히 아름다움으로 그 반대로 그 외

조부가 개명하여 범네라 한다.

 가희의 모씨는 평양성 내에 그 당시 유명한 미인이기 때문에 피서차로 왔

던 조국장의 간절한 소망에 이끌리어 그 부인이 되었었다. 부인은 재산가

황진사의 무남독녀이니 십사 세에 그 모친이 별세하매 그 부친 황진사가 재

취도 아니하고 금지옥엽 같이 기른 바이라. 누가 뜻하였으리오. 그 옥여(玉

輿)가 형극으로 얽은 것인 줄이야. 조국장은 세세로 양반이라. 농화(弄花)

에 교(巧)하고 사적(射的)에 묘(妙)하다. 저는 세 번 처를 바꾸고 첩을 갈

기도 십여 인이라. 화류에 놀고 촌백성의 계집까지 희롱하였고 그의 별업

(別業)에서는 주야를 전도하고 놀았다. 부인이 그에게 가(嫁)하여 그 딸 가

희를 낳았다. 육(肉)의 미(美)는 싫어지지 않기가 어려운 것이매 남편의 난

행은 부인의 불행과 같이 자랐다. 새로 들어온 첩은 남편의 사랑을 앗았다.

남편은 친척 간에도 끊었다. 전처의 딸은 매사에 틈을 타서 부인을 무함(誣

陷)한다. 사랑을 원하여도 얻지 못하고 자유를 원하여도 얻지 못하고 이별

을 청하여도 안 들어 의심 받고 학대 받고 갇혀 비관하던 나머지에 병든 몸

을 일으켜 평양의 별장에서 자살하였다. 길바닥에 인마의 발에 밟힌 이름

없는 작은 풀까지 꽃피는 사월 모일에 인세(人世)의 꽃일 이십사 세의 젊은

부인은 단도로써 자처(自處)하였다. 가련한 부인의 서러운 죽음이 기시에는

원근에 전파되어 모든 사람이 느끼었더라. 고어에 ‘사람은 없어진 후 더

그립다’는 것 같이 기후 조국장은 얼만큼 정신을 차려 얼마큼 서러워도 하

였다. 그러나 늦었더라. 기후 조국장은 부인 생시보다도 가희를 사랑하였

다. 그러나 그 외조부 황진사는 조국장의 첩이 그 총애를 일신에 감으려고

하는 간책이 두려워 가희와 함께 가엾은 표랑의 객이 되었다. 하시에나 표

랑객인 가련한 가희에게는 춘양려일(春陽麗日)이 돌아올는지 ─ 절기는 하

추동(夏秋冬) 삼계(三季)가 지나면 다시 양춘(陽春)이 오건만 ─ 불쌍한 어

머니의 불쌍한 아해?

                                             ─《청춘》 11호(191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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