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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돼지 
(김우진, 1926) 

 

산돼지 (김우진, 1926) 전문 줄거리 PDF 파일 다운로드 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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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산돼지-조선지광.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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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및 작품소개

https://ko.wikipedia.org/wiki/산돼지_(희곡) 

 

산돼지 (희곡)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산돼지 (희곡)저자김우진 (1897년)주제식민지 지식인의 새로운 삶의 방향 모색과 좌절장르장막극, 표현주의극출판사《조선지광》(1926) 《산돼지》는 극작가 김우진 (1897년)이 쓴 대표적인 희곡이

ko.wikipedia.org


저자소개

https://ko.wikipedia.org/wiki/김우진_(1897년) 

 

김우진 (1897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ko.wikipedia.org

 

 

 

산돼지(김우진)
<등장인물>
최원봉(29세) 차혁(28세) 최영순(20세) 최 주사댁(58세) 정숙(25세)
장소
서울 가까운 어떤 군 읍내
제1막
주사댁 집 앞마당을 중심으로 오른편으로 건넌방, 그 앞에 뒷마루. 왼편으로 큰 대청, 또
그 왼 편으로 안방 영창문이 있고, 그 앞으로 부엌간이 내밀고 있다. 중류 계급의 견실 순
박한 기풍의 세간살이, 장독대, 뒤주, 찬장, 심지어 걸레질 잘 해 놓은 마룻바닥, 잘 쓸어 놓
은 마루 밑까지 나타나 있다. 여름날 석양. 바람 한 점 없는 뜨거움이 서늘하게 열어 젖힌
대청 안에서 도사리고 있다.
막이 열리면 대청 중앙에 원봉이와 혁이가 바둑판을 마주 놓고 앉아 있다. 세 번째 승패의
끝판이다.
차 혁 : (기가 난 듯이 다리를 세우며) 흥, 끝판에 탁 대들어 본다. 오냐, 대들어 봐 라.(바둑
을 놓는다.)
최원봉 : (냉연하게) 네가 말 안 해도 벌써 이렇게 대들지 않았니?(놓는다.) 이리로 막아 버
리면 네 살길이 어디냐?
차 혁 : (놓으며) 또 이리로 막아 버리면 네 길은 어디고.
최원봉 : (웃으며) 이 넒은 세상에 길이 없을까 봐. (놓는다.)
차 혁 : 아, 이놈 보게. (생각한 뒤에 놓는다.)
최원봉 : 넒은 세상에 길 없을까 봐, 넒은 세상에 길 없을까 봐. (놓는다.) 넓은 세 상에……
차 혁 : (웃으며) 길만 찾지만 하는 수가 있니. 다 죽어 가는 놈이……. (놓는다.)
최원봉 : 죽더라도 죽을 때까지……. (놓는다.)
차 혁 : 이 애가 왜 이 모양이야. (놓는다.) 세 집 다 결딴났는데.
최원봉 : 죽더라도 죽을 때까지. 죽더라도 죽을 때까지. (생각한 뒤에 놓는다.)
차 혁 : (놓으며) 이러면 이 집도 날아갔다.
최원봉 : 날아가는 것은 날아가거라. (놓는다.)
차 혁 : (승리의 환희) 그리고 남는 것은 목 베인 항우(項羽)만…….
최원봉 : 목 베여도 살 수 있으니까 항우란다. 이놈! (놓는다.)
차 혁 : (더 큰 환희) 이러면 영영 죽었지. (놓으며) 자 인제 그만두자. 다 되었는 데 내기 한
것이나 얼른 내놔라.
최원봉 : 이거 왜 이래. 세기나 다 하고 난 뒤에 조르렴. (센다.)
차 혁 : 죽는 놈 마지막 청이구나. 제 송장 꼴 보려고 예순, 일흔, 아흔, 스무집이 나 달리지
않았니? (영순이가 꿀물과 복숭아와 칼이 놓인 쟁반을 가지고 와서 옆 에 놓는다.)
최영순 : (혁에게 말하듯이) 오빠, 너무 골리지 말아요. 백주에 일년생을 가지고.
차 혁 : 자, 인제 마지막 백기를 들어야지.
최원봉 : 이것 영영 졌구나. (물러앉으며) 하는 수 없이 또 당하는 수로군.
차 혁 : (또한 물러앉으며) 아까 네가 욕심부리다가 여기 있는 것을 거두었기 때문 에 탈이
었다. 아, 패전한 배상이 겨우 이건가?
최원봉 : (바둑을 치우며) 얘, 이래 보여도 이 복숭아가 15전씩이란다. 천진 수밀도 (天津
水蜜桃)야, 알기나 아니?
최영순 : 일부러 오시라고 해 갖고 무얼 대접할 게 있어야지요.
차 혁 : (웃으며) 영순 씨는 어찌도 그리 잘 아세요. 오라버니 패전할 것을. 세어 보기도 전
에 이런 것을 갖다 놓으니.
최영순 : 그러니까 오라버니 동생간이지요. (복숭아를 깎는다.)
차 혁 : 이리 줍시오. (받아서 깎으며) 나도 참 영순 씨만한 누이만 있었으면 하지 만 패전
예보만은 쏙 빼놓고 말이지요.
최원봉 : (웃으며) 패전이라도 알아주니 그만큼 고맙지 않나? 동시에 자네에게는 승전 예
보의 천사가 된 셈일세.
차 혁 : 잔 다르크란 말인가?
최영순 : (잠깐 얼굴을 붉히며) 저는 싸우지도 않았는데 잔 다르크예요? 그리고 잔 다르크
에게 가르쳐 준 것은 천사 미카엘이었더래요.
차 혁 : 하하, 이것 또 무식이 탄로되었군. 하지만 오라버니가 미리 질 줄을 알고 있는 것만
은 천사 될 자격이 넉넉히 있습니다.
최원봉 : 즉 자네 승전을 미리 알고 있는 천사란 말이지. 똑똑하게 안다.
차 혁 : 그 말도 더 똑똑하게 안 말이다. (웃는다.)
최영순 : 잡수세요. (바둑판을 치우고 쟁반을 가운데 놓는다.)
최원봉 : 이기기는 자네가 이겼어도 결국은 다 내 덕인 줄 알게, 이런 좋은 복숭아 는 물론
이고, 영순이가 자네 천사인가 무엇인가 된 것까지.
최영순 : 에그, 오빠도.
차 혁 : 지고 나서는 그게 변명인가?
최원봉 : 자네나 너나 다 내 앞에 절해야 한다. 위대한 개선 장군 앞에 가서 두 애 인이 손
잡고 축복을 받으려는 것과 같이……
차 혁 : 그런 히니꾸는 빼놓고 해라. 비위 상한다.
최원봉 : 비위가 상해? (얼굴이 침울하게 변해지며) 개선 장군이란 실상은 패전 장 군이란
말뜻을 모르니? 게다가 목숨 붙은 장군이 아니라 죽어 자빠진 석상(石像) 이란 말이야.
차 혁 : 이따금 자네 왜 그런 소리는 자꾸 내놓나?
최영순 : 그만 두세요. 다른 이야기나 하세요.
차 혁 : 자네 그러다가는 나하고 당초에 바둑 못 두네.
최원봉 : 목이 달아난 패전 장군인데 어떻게 또 두어 볼 용기가 나겠는가?
최영순 : 아이고 오빠도. (혁에게) 다른 이야기 하세요 좀.
차 혁 : 예끼, 사내답지 못한!
최영순 : 모처럼 어머니도 안 계신데 오셨으니, 서로 웃어가며 이야기하세요.
최원봉 : (먹던 복숭아를 내버리고 길게 호흡한다.) 시끄럽다.
최영순 : (꿀물을 주며) 이것 잡수세요. 속 시원하게.
최원봉 : (받아 마시고) 너 왜 그 치마는 또 입고 있니?
최영순 : 이것밖에는 없는 걸 어떻게 해요. 새로 장만하려면 또 돈 들지 않아요?
있는 것 먼저 입어버려야지요. 고운 것 아낀다고 발가벗고 있을 수 있어요?
최원봉 : 흰 모시 치마에다가 집에 있을 때는 행주치마 두르고 있으라니까. 그 치마 아니면
연애 못하니?
최영순 : 에그, 오빠도?
최원봉 : 얼른 들어가 바꿔 입고 와! 그 동안 혁이가 실컷 보았으니까 괜찮아.
최영순 : 어제 잉크 엎질러서 죄다 버렸어요.
최원봉 : 방정! 공부할 때에도 행주치마 입고 있을 것이 뭐야.
최영순 : 행주치마였기 때문에 괜찮았지요. 흰 모시 치마도 안 아까운 것은 아니지 만
최원봉 : 그래 오늘 혁이 보는 데 입을려고 잉크 엎질렀구나.
차 혁 : 여보게. 나가 산보나 하세. 집안에 들어앉아서 공연히 이리 뒤척 저리 뒤 척 하지만
말고.
최영순 : 저녁때 다 되었는데 잡숫고 나가시지요.
차 혁 : (일어서며) 회관에나 가 보세. 상무 간사가 되면 일요일이라도 한 번씩은 휙 둘러봐
야 하는 법이야.
최원봉 : 법은 무슨 법이야. 저희들이 욕을 하든 말든 내 양심대로만 해 나가면 그 만이지.
차 혁 : 또 그따위 소리 내놓는구나. 그러니까 못써.
최원봉 : (마루 끝으로 나와 앉으며) 못쓰면 하다 못해 끈이라도 달아 쓰려무나.
최영순 : (혁이와 눈이 마주치고 나서는) 왜 또 무슨 말썽이 일어났어요.?
차 혁 : 자포 자기는 또 무슨 자포자기야. (원봉이 가만히 앉았다. 영순에게) 일전 총회 때
불신임안이 제출되었더랍니다.
최영순 : 누구 불신임안?
차 혁 : 아직 못 들으셨소? 상무 간사 불신임안이래요.
최영순 : 왜? 이번에는 또 무슨 까닭으로요?
차 혁 : 까닭은 무슨 까닭이 있겠수. 청년회 간사 욕했다고 그 여독이 안 풀어 진 게지요.
원봉이가 접때 바자 수입금에서 돈 썼다고 탈을 잡는답니다.
최영순 : 이제 와서는 별 죄명을 다 붙이는군요. 회계 검사해 보면 알 일 아니예요?
차 혁 : 회계에 명백하게 기입이 되어 있는 이상 어떻게 할 수 있나요? (말을 그 친다.)
최영순 : (말뜻을 호의로 오해하고) 그런데 왜들 그런답니까? 오빠 하나 못 잡아먹 어서.
바자는 뉘 덕에 열리게 되었는데. 괜히 남의 충동에만 놀고 있는 자기네들이 부끄러운 줄
은 모르고. (혁 침묵) 그것도 저희들이 나쁜 짓을 하니까 누가 되든지간에 말해야 옳은 일
아니예요? 왜 이광은이 따위가 떠나는 데 송별연이니 무엇이니 그리 야단을 칠 필요가 어
디 있어요. 남의 여자 꾀어 가지고 일본 좀 간다고 그것이 그리 영광이 되고 명예될 게 무
엇 있어요. 그런 데다가 백여 원씩쓰는 돈은 하늘서 떨어진 돈이랍니까? (다 침묵) 글쎄 왜
들 그래요. 한 단체로 앉아서 아무 관계없는 이광은이 따위를 위해 돈을 쓴단 말이오. 남의
여자를 빼돌려 가지고 달아나는 그런 더러운 인격자를 무슨 명예가 된다고 그리 찬송을 한
답니까. 그렇게 공격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면 정정당당하게 싸워 보지 왜 인신
공격은 해요. 접때도 순희가 와서 이야기하는데 오빠 화상을 게시판에다가 그려 가지고…
…. (혁이 눈짓을 한다.) 그게 무슨 되지 못한 야만의 짓들이예요. 글쎄 왜들 그래요?
차 혁 : 그만둡시다. 우리끼리만 분하게 여기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최원봉 : (획 돌아앉으며) 그래 내 화상을 그려 놓고 어쨌더란 말이냐?
최영순 : 오빠 화상을 게시판에다 그려 가지고 ‘산돼지 토벌'이라고 써 놓고 야단들 이었드
래요. 그 앞에 서서 모두 손뼉을 쳐 가면서……. 〈후략〉
제2막
원봉이집 건넌방. 정면은 누(樓)마루 위 영창이 앞마당에 향해 있다. 왼편으로 대청을 거쳐
서 안방으로 가는 영창, 오른편으로 골방 둑겁창 책상, 책, 약병, 화로 등.
가을밤.
원봉이가 이불 덮고 누운 옆에 영순이가 앉아 있다. 병인은 잠들고 그 처녀는 잡지를 들고
앉아서 책장을 뒤적뒤적하고 있다. 병인이 움직일 때마다 이불을 손보아 준다.
최 주사댁 : (들어오며) 너 저녁 먹어라. 그렇게 안 먹기로만 하면 어떡하니? 병인 보다도
간병(看病)하는 이가 더 정신채려야 하지 않니? 어서 가서 먹고 오너라. 잠깨기 전에 어서
가 먹고 와, 찌개도 다 졸아진다.
최영순 : (정신 없이) 당초에 생각이 없어요. 구미가 돌아야지요.
최 주사댁 : 억지로라도 먹어야 한다니까 그러는군. 너까지 드러누워 봐라, 나 혼 자 감당
을 해낼 것 같나.
최영순 : (일어나 가며 혼자 말하듯이) 어디 조용한 산중으로나 들어가 버렸으면.
최 주사댁 : (머리를 짚어 보고) 아이구, 이 머리 뛰는 것 좀 봐. (대야에 있는 수건 을 적시
어서 머리 위에 올려 놓는다.)
최원봉 : (눈을 떠 보고) 몇 점이예요?
최 주사댁 : 인제 곧 아홉 점 쳤다. 정신 좀 났니? (무답) 조용히 자야 한다.
최원봉 : (감았던 눈을 다시 뜨고) 영순이 어디 갔어요? (머리 위 수건을 떼어 버린 다.)
최 주사댁 : 안방에 있다. 밥 먹으러 갔다.
최원봉 : 걔 밥 잘 먹게 해 주어요. 반찬도 좀 낫게 해 주고요. 얼골이 쑥 빠졌더군 요. 아마
내 얼골보다 더 빠졌을걸요.
최 주사댁 : 빠지기는 뭘 빠져, 밥도 잘 먹는단다.
최원봉 : 왜 어머니는 빤히 보이는 거짓말을 자꾸 허시요. 대여섯 살 된 어린애로 밖에 안
뵈이슈.
최 주사댁 : 거짓말은 내가 무슨 거짓말을 한다고 그러니?
최원봉 : 그러구 잠도 잘 잔단 말이지요? (돌아 누우며) 걔 얼굴 쳐다보고 누웠으 면 내가
안 볼 때 허는 짓까지 환히 뵈이는데.
최 주사댁 : 또 그런 소리 하는구나. 그 애한테 물어보려무나, 내 말이 곧이 안 듣 기거던.
최원봉 : (한참 있다가) 어제 저녁에 어디 갔다 오셨소? 혁이한테 갔다 왔지요?
최 주사댁 : (깜짝 놀라며) 아니, 그것도 내 얼골에 그렇게 쓰여 있니?
최원봉 : 쓰여 있기는 고사하고 판으로 박혀 있어요.
최 주사댁 : 또 꿈이나 꾼 게로군. 그렇게 헛꿈만 꾸다가는 어떡하니. 의원 말은 잠 을 못자
니까 그런다고 허드라마는.
최원봉 : 걱정마셔요. 요사이만큼 잠자면 넉넉하지요. 밤낮 잠만 자다가는 어떻게 하게. 기
면병(嗜眠病) 환자 아닌 담에야. 기면병이란 무슨 병인지 아시요? 눈 뜰 새 없이 잠만 자다
가 그대로 고만 잠들어버리는 게야요, 영구히 잠들어버리는 게 야요. 거짓말 잘 하는 어머
니 얼골도, 밤낮 우는 상(相)하는 영순이도, 교활한 혁 이 얼골도 다시는 안 보고 마는 게야
요. 엄니는 내가 이런 병으로나 죽어 버리면 속 시원할 듯 싶지요. 약 살 돈 안들이고 어머
니 괴롭게 아니 하고 이왕 죽으려 하는 놈에게 돈이나 안 써야 경제가 되지요.
최 주사댁 : (목메인 소리로) 그게 또 무슨 소리니? 왜 남의 속을 그렇게도 타게 만 드니?
최원봉 : 그뿐인가, 내가 속히 죽어 없어져야지. 내 간호하느라고 영순이 얼골 축이 안 나
지, 사위 고르는 데 수월하게.
최 주사댁 : 아이고 내 가슴이야.
최원봉 : 흥, 나 겉은 산돼지가 그런 소리밖에 더 지를라구요. 아―니, 한 마디 물어 봅시다.
나 죽으면 영순이를 어떤 데로 시집 보내시려우?
최 주사댁 : 잠들기 어렵니? 잠오는 약 맥여 주랴? 〈중략〉
최원봉 : (한참 있다가 누운 대로 상반신을 들어 주사댁 얼굴을 쳐다보면서) 어머 니, 거짓
말도 고만하고 눈치 따먹기도 고만 하기로 합시다. 모자간에 서로 숨기고 있으면 그런 서
먹서먹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최 주사댁 : 숨기기는 무엇을 숨겨?
최원봉 : 영순이와 내가 정말 친남매지간입니까?
최 주사댁 : (떨리는 소리로) 아이구, 너 미쳐 가는구나.
차 혁 : (밖의 마당에서) 계십니까? 계십니까? 영순씨 계서요?
최영순 : (안방에서 문 여는 소리나며) 네, 계십니다.
최 주사댁 : 차 선생이서요? 이리로 들어오서요. 여기 있습니다.
최원봉 : (돌아 누우며) 미친 놈, 누워 있는 방으로 데리구 오지 말어요.
최 주사댁 : 너 왜 그러니?
최원봉 : 나 그 자식 얼굴 보기 싫어요. 이리로 들어왔다가는 산돼지 어금니 맛뵈여 줄 테
니까 그리 아슈.
최 주사댁 : 영순아, 선생님 안방으로 들어가 앉으시래라.
최원봉 : 영순이는 이리 보내 줘야 해요. (나가는 주사댁에게) 어머니, 철모르는 영 순이에
게는 아직 아무 말 아니해야 합니다. 꼭 믿습니다. (주사댁이 나간다.)
최영순 : (들어오며)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고 계서요. 주무시지 않고. (원봉이 돌 아 누
워서 못들은 척하고 있다.) 벌써 주무실 때가 되었는데. 일찍이 주무서야 한 다고 의원이
그러지 않어요? 밤 한 시간의 수면은 아침 두 시간의 수면보다 더 낫다구.
최원봉 : 너 요새 잠 잘 자니?
최영순 : 잘 자구 말구요. 내 잠을 반만 오빠에게 드릴 수 있다면.
최원봉 : 너 잠잘 때 이상한 꿈 꾸지 않니?
최영순 : 꿈은 무슨 꿈예요. 오빠, 잠을 잘 주무셔야 합니다. 잠을 못 주무시니까 억 지로
잠이 들면 꿈만 꾸시는 게지요.
최원봉 : 바른대로 말해라. 내가 요새 꿈꾸는 것이 병이 아니다. 그만큼 요새 내 머 릿속에
는 모든 것이 바뀌어 오는데 너도 그런 눈치를 알아차렸으면 왜 꿈을 안 꿀 리가 있니?
최영순 : 나는 오빠 잠 못 주무시는 것이 무서울 뿐예요. 오빠 머릿속에서 무엇이 요새 뒤
끓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가 있어요?
최원봉 : 정말이니?
최영순 : 아이구, 거짓말을 왜 해요. 무슨 속시원한 일이 있겠다구, 오빠를 속인단 말예요.
설령 속시원한 일이 있다기로 오빠에게다 거짓말을 한단 말예요. 너무 생 각하십니다. 병
중에 생각만 하시면 해로워요. 병만 나으시면 무슨 생각이든지 맘 대로 하실 것 아니예요.
주무셔요. 벌써 열한 시가 가까워 가는 데요. 그리고 내 일 일찍 눈뜨시지요. 그러면 열도
빠질 게고.
최원봉 : 에잇, 듣기 싫다. (양인 침묵)
최영순 : (다시) 고만 주무서야 합니다. 이것 잡숴 보서요. (산약봉(散藥封)을 집어 오며)
오늘은 한 봉 반 드리겠습니다. 오늘 밤은 적어도 일곱 시간은 주무서야 해 요.
최원봉 : (이불을 열고 몸을 일으키려 온 그녀의 손을 내뿌리치며) 고만 둬.
최영순 : 그렇게 열이 있는데 주무시지 않으면 점점 더해지지 않어요.
최원봉 : 에잇 고만두라니까! 열 있을 때 그런 약은 위장을 나쁘게 한대도 그러는 군.
최영순 : 에그, 이 머리좀 봐! 불덩어리 겉은 머리를 해 가지고 안 주무서서 어떻게 해요.
그럼 해열제를 잡수서요. 주무시게.
최원봉 : 너 왜 그 모양이니? 해열제는 더 위장을 나쁘게 만든대도, 너나 너 어머니 나 그저
날 잠만 재우려고 애를 쓰는구나. 옆에서 무슨 짓을 해도 모르게.
최영순 : (아무 말 없이 대야에서 수건을 짜서 머리에 얹으려 한다.) 찬수건예요.
최원봉 : 고만두라니까. 거기 가만히 앉었기만 해.
최영순 : (한참 동안 외로운 얼굴로 등만 보고 앉았다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그만 흐
느끼기 시작한다.)
최원봉 : 울긴 왜 울어! 에잇 못난 것. (영순이 더 운다) 나흐다질 죄인 노래나 불러 다오.
최영순 : (얼굴을 들어) 불러드릴 테니 이것 잡수서요. 수면제는 위장 과히 상하게 만드는
것 아니래요. (산약봉을 들며) 내 말도 좀 들어 줘요. 이것만 꼭 잡숴줘요.
최원봉 : 너 왜 병인의 비위를 건드리려고 드니? 네 고집 부릴려고 내 옆에 와 앉 었니? 나
가! 나가거라! 나가라니까! 저 방으로 가! 안 갈테냐?
최영순 : (눈물 섞인 소리로) 가라면 갈 테야요. 그렇지만 그런? 뜨거운 머리를 해 가지고
주무시지도 않고.
최원봉 : (일어나려고 하며) 그래도 안 갈 테니? 얼마나 고집이 센가 해보자.
최영순 : (일어나며) 갈 테니까 가만히 누워 계서요. 갈 테야요. (나간다 그러나 안 방으로
안 가고 마루 끝에 앉은 모양이다.)
최원봉 : (혼자 누워 있다. 긴 동안의 침묵. 졸지에) 영순아! 영순아.
최영순 : (쫓아 들어 오며) 왜 그래요? 왜 그러서요?
최원봉 : (얼굴을 골방 쪽으로 돌리며) 나흐다질 노래를 들려다우. 바스로는 고만 두고 테
놀로만.
노래가 이어가는 동안 원봉이는 잠들고 무대는 어두워진다. 그리고 몽롱한 달빛 같은 창백
색이 나타난다. 그러나 다만 여름철 그믐달밤의 하늘과 같이 아무것도 안 뵈인다. 노래는
다시 누구의 소린지 바스와 합장이 되어 가지고 되풀이해 나가는 동안 무대에는 무한한 공
간만 채여 있는 것 같다.
몇 번 노래가 되풀이해 가다가 제1절이 끝나기 전부터 창백색이 좀 밝아 온다. 그리고 나
타나는 것은 병실 대신에 동한(冬寒) 중의 벌판이 나타난다. 완경사의 야산이 나지막해져
온 곳 중복(中腹)에 무대가 놓인 셈이다. 왼편으로 숲, 잡목, 오른편으로 언덕, 여기저기 석
총(石叢). 회색 겨울 하늘이 낮게 걸려 있어서 전경을 금시라도 와 누를 것 같다. 지상과 언
덕 위에는 약간 흰눈이 덮여 있고 시시로 회오리 바람과 눈싸라기.
이하의 인물이 등장하기 전에 갑자년 동학당 전군 행렬의 판토마임이 지나간다. 오만 년
수운대의(五萬年受運大義) 글자를 쓴 오색의 기폭을 선두로 도중(道衆)의 어깨에는 ‘궁기
(弓己)’, 등에는 ‘동심의맹(同心義盟)'이라 박은 삼삼오오의 일대(一隊), 환희와 서계(誓戒)
와 격려와 혹은 혼란을 표시하는 판토마임. 천천히 그러나 무거운 수천 리 걸어 온 피로된
보조로 지나간다. 무대 한참 동안 공허.
병 정 : (산발한 원봉이네[원봉 생모]의 손목을 끌어 잡고 들어 온다.) 이년, 씩씩 걸어라.
너하고 같이 가다가는 얼어 죽겠다.
원봉이네 : (비틀비틀하며) 제발 살려줍시요.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더 못 나가겠습니다.
(목메인, 그나마 목세인 소리로) 제발 적선 좀 해 주시오. 저는 동학 역적놈을 남편으로 둔
죄로 이 자리에서 참형(斬刑)을 당해도 원통할 것은 없습니다마는 이 뱃속에 든 어린 애기
를 위해서 살려줍시오. 이 뱃속 애기가 불상허지 않어요?
병 정 : (따구를 붙치며) 웬 잔소리야 잔소리가. 그따윗 소리는 관찰사(觀察使)님 앞에 가서
네 멋대로 지껄이라니까 못 들었니! 썩 걸어. 걷지 않겠니?
원봉이네 : (두손으로 합장하며) 이 애기를 위해 이 뱃속에 든 어린 애기를 위해 제발 살려
줍시오. 이 애기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병 정 : 에잇, 귀찮아! 그러니까 누가 네 새끼를 찔러 죽인다니? 관가로 가기만 가잔 말이
야.
원봉이네 : 더 걸어 가다가는 정말 둘이 다 죽겠습니다. 한 발자국도 떼어 놓지 못하겠어
요. 만삭된 이 무거운 몸을 해가지고 삼십리나 걸어왔으니 아무리 몸이 튼튼한 년이기로
당할 수가 있습니까?
병 정 : 아이구, 이 경을 칠 년아! 너 왜 말을 안 듣니? 아니, 작작 잡아 찢어 버릴까 부다.
너 그러면 그 뱃속에 든 새끼는 쏙 빼 놓고 가자꾸나.
원봉이네 : 아이고, 그런 말씀 마시고 그저 이 애기 하나만을 위해 살려줍시오. 이 애기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이 애기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슨 죄가 있다고 그러시오! 오오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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