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로 (歷路)
(채만식,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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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로 (歷路) (채만식, 1946)
歷 路[역로]
차 떠날 시각을 세 시간이나 앞두고 서울역으로 나온 것이 오후 두시. 차는
다섯시에 부산으로 가는 급행이었다.
차표 사기에 드는 시간은 말고 단지 일렬에 가 늘어서기에만 엉뚱한 시간을
여유 두고 서둘지 아니하면 좀처럼 앉아 갈 좌석의 천신 같은 것은 생의도
못하는 것이 이즈음의 기차여행이었다.
그런데다 본이 사람이 부질없이 다심한 탓에 차 한 번 타는 데도 남처럼 유
유히 볼 일 골고루 다 보고 돌아댕기느라고 시간 바싹 임박하여 허둥지둥 정
거장으로 달려나가고 기적이 울고 바퀴가 구르기 시작하는 차를 아슬아슬하
게 붙잡아 타고는 조금도 아슬아슬해함이 없이 동지섣달에도 땀이나 뻑뻑 씻
고 하는 신경 굵은 짓은 감히 부리지 못하는 담보가 되어 가뜩이나 남보다
많은 시간을 낭비하여야 하였다. 나보다도 더 성미가 급한 사람들이라고 할
까 한가한 사람들이라고 할까 두 줄로 백여 명씩이나가 벌써 늘어서 가지고
있었다.
인간의 수효보다 보따리의 수효가 서너 갑절은 되는 그리고 부피로도 인간
의 부피보다 보따리의 부피가 갑절은 되는 그래서 인간의 열이기보다는 보따
리의 열에 더 가까운 그 괴상한 열에 가 하여커나 꼬리 참례를 하고 섰다.
내가 맨 꼬리인 것은 그러나 순간이요 꼬리는 연해연방 뒤로 뒤로 뻗어나간
다.
편성이요 무단한 결벽임에는 갈 곳 없되 도대체 나는 거리에서나 정거장이
며 찻간에서나 모르는 남에게 담뱃불을 청하기를 즐겨 아니하는 성질이다.
몹시 즐겨하는 담배였지만 성냥이 떨어졌으면 못 피우고 말았지 생면부지의
남더러 굽실하면서
“불 좀……”
하고 그 침 묻은 담배 토막을 받아다 불을 붙이고 싶은 생각은 아예 나지가
않는다.
내가 남에게 담뱃불을 청하여 붙이기를 유쾌히 여기지 아니함과 일반으로
모르는 남이 나에게 담뱃불을 청하는 것도 나는 유쾌히 여기지를 않는다. 더
우기 새파랗게 젊은 계집이나 열칠팔구세의 젖내나는 어린아이들이 아무 거
리낌없이 담배를 들이밀면서
“불 좀 붙입시다.”
하고 대드는 데는 차마 뇌꼴스러 못하는 것이다.
되도록이면 그래서 잡인이 모이는 처소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아니함으로써
그러한 불쾌할 기회를 자초하지 말도록 나는 유의를 한다.
그런 명심이 오늘은 어떡하다 잠깐 해망을 부렸던지 무심코 한 대를 피워
물고 마악 두 모금도 미처 빨기 전인데
“불 좀 붙입세다.”
하는 여청(女聲)의 영남 사투리가 바로 귀 옆에서 들린다.
배젊은 계집이다. 하되 남루한 옷 주제꼴이랑 표정 가짐이랑 논다니 계집은
아니어 보인다. 부부인 듯 한짐 크게 해 짊어지고 같이 섰는 일본 병정 복장
짜리의 촌퉁이로 보아 역시 그러하였다.
한참이나 치어다보다 담배를 코앞에다 내밀어 주었다.
받아가려고 손이 온다.
그대로 대고 붙이라는 뜻으로 내민 담배를 내어줬더니 알아채고 고개를 숙
여 신문지에 침 흥건히 묻혀서 만 것을 가져다 대고 쭉쭉 빤다.
그러느라니 나의 낯색이랑 태도가 조옴 오만하여 보였을까마는 계집은 아무
그런 것을 느껴 하는 내색이 없이 태연무심한 얼굴이면서 담배를 붙이고, 붙
이고 나서는
“고맙습네다.”
하고 돌아서고 한다.
어느결에 왔는지 김군이 옆에서 보고 있었던 모양
“남 담뱃불 좀 대어주기가 그렇게두 쓴 약 먹기 같드람?”
하면서 그 커다란 얼굴로 히죽이 웃는다. 젊은 계집이나 어린아이놈이 맞담
배질하자고 대드는 것 발칙해 못 보겠더라고 김군이랑 여럿이 있는 자리에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어데 가는구?”
“광주…… 자넨?”
“고향.”
“이리(裡里)꺼정 동행인가?”
“자네 같은 되놈허구 동행 그대지 반갑지두 않으이.”
우리 그룹에서는 김군을 굼뜨고 배포 유하고 하대서 병자호종(丙子胡種) 혹
은 왕서방 혹은 되놈으로 별명하여 불렀다.
이번에는 웬 영감이 골통대를 가지고 와서 한동안을 힘들여 불을 붙여 간
다.
김군은 구경다웁다고 껄껄 웃더니
“자네두 인전 살두 좀 찌구 수두 좀 하고 싶거들랑 그 결벽 그 편성 교정
을 해보는 게 어때?”
그래서 되놈처럼 무신경해가지구 “ 살이 뒤룩뒤룩 쪄설랑 보기 싫은 세상
한 오백 년 살란 말인가?”
“해방이 되구 독립이 머지 않구 자유가 눈앞에 알찐거리는데 보기 싫은 세
상야?”
이 말은 김군도 물론 반의적(反意的)으로 하는 말이었다.
“대관절 차표나 사놓구서 시방 이 넉장인가?”
“지끔버틈 가 사예지.”
“겨우?”
“그럼 자네처럼 한 사흘 전버틈 호둑호둑 튀구 댕길까?”
“제아무리 왕서방이라두 차표 사긴 글렀구 덕분에 성가신 동행 면하게 되
니 내가 다행일세.”
“차표보담두…… 즘심 어떻게 했나?”
“먹었어.”
“난 여태 즘심 전인데…… 가서 차래두 허세나.”
“여긴 어떡허구.”
“요 졸장부야!”
핀잔을 먹고 팔목을 잡아 끌려 정거장 앞의 다방으로 갔다.
한 시간 넘겨 붙잡혀 있다 세시반이나 되어 열로 돌아오니 섰던 곳의 앞뒤
엣 사람이 두말 아니하고 비켜준다.
“인전 가 차표 마련해 볼까.”
그러면서 김군은 어슬렁어슬렁 가더니 오 분이 못하여 차표와 급행권을 어
엇이 쥐고 온다.
“단단히 무관한 양반이 차표 파는 데 계신 모양일세나? 그러면서두 내가
차표 때문에 그렇게두 앨 쓰구 댕기는 걸 보구두 모른 척했단 말인가?”
“무관은 말구 애비자식 새라두 요샌 철도경찰이란 따끔 나으리가 지키구
있어서 어림없다네.”
“그럼 그 차푠?”
“차표, 야미 몰라?”
“………”
“급행권 껴서 백 원이면 헐지 않아?”
“………”
“자네 차표허구 급행권허구 사기에 며칠 걸렸지?”
“꼬박 이틀.”
“애는 애대루 쓰고 이틀이겠다?”
“………”
“그 이틀 동안 시간 손해허구 나 이거 제 값보담 한 팔십 원 더 내구 산
심인데 그래 이틀 동안 시간 손해가 돈이나 팔십 원 손해에다 댈 거야?”
“그런 줄 몰랐더니 자네답지두 않게 타산속은 밝으이그려.”
“일을 순리루 해야 순리루 된다 그 말야.”
“야미루 차표 사는 게 순리야?”
“허허 경제교란인가 그럼? …… 하여튼 야미차표 사구 말지 자네처럼 호두
둑거리면서 이틀 전버틈 초조해 납뛰구 댕기는 건 추앙할 수 없는 일야.”
고향에서 집안에 병인이 있어 위독하다는 전보를 친 것이 나흘 전. 그 전보
를 받은 것이 이틀 전. 떠날 예정은 오늘로 하여놓고 그날부터 서둘러 차표
와 급행권을 도득하기에 오늘 아침까지 꼬바기 이틀. 그러느라고 살이 내리
는 초조를 느꼈음은 물론이었다.
김군의 구박이 아니라도 대륙사람 본으로 만사를 그 만만디, 메이파스로 처
리하는 것이 초조하고 근심하고 하느니보다는 차라리 나은 줄을 모르는 바야
아니면서도 사람이 안다는 것과 아는 것을 행한다는 것과는 스스로 다른 것
이었었다.
나와 김군이 섰는 열 옆에서 부자 아니면 형제인 듯싶은 양복신사와 열댓살
박이 중학생이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였다.
“거스름돈을 안 줘요.”
“어째서?”
“거스름돈 안 주느냐구 하니깐 차표 도로 끌어들여 갈 영으루 하면서 잔돈
으루 가지구 와, 그리겠죠.”
“쯧 야미차표 산 심 잡지.”
“그래두 그런 법이 어딨어요?”
“아따 그 돈이 국가수입으루 될 테니 건국에 성금 바친 요량만 대면 그만
아니냐?”
“저이가 먹지 웬걸 남는다구 다 그대루 철도국에다 내놓나요?”
“그렇지야 않겠지.”
“저이가 먹을 영으로 위정 거스름돈을 내주지 않는다구 거기서 다른 사람
들두 수군거리던데요 머.”
“아뭏든 사람들이 질(質)이 전보담 되려 떨어졌어. 걱정야.”
둘이는 천천히 열 꼬리를 찾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 다음 이야기는 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들의 가는 뒤를 무연히 바라보았다. 김군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어린 학생이 “ 그런 불의(不義)를 끝끝내 불의로 여기는 강경한 것이 지
탱이 된다면 모르거니와 일상생활에서 여러 방면으루 늘 그것을 보아나는 동
안 필경 가서 정의감이 마비가 된다면? 송구한 노릇 아닌가?”
“그 양복신사가 있으니깐 염려할 건 없으이.”
“그만침이라두 어진 부형을 둔 가정이 그리 쉬어서?”
“가정이 나쁘면 막나니가 될 것이구.”
“난 저런 어린 사람들이 새삼스럽게 불쌍해.”
“독립이 되구 전도가 양양하구 한 이판에 건 무슨 청승맞인……”
“저애들한테야 무슨 나랄 망한 책임이 있나? 저이들 조부대(祖父代)의 불
찰루 억울하게 망국의 슬픈 자손 노릇을 했지. 또 망한 나랄 가지구 그 다음
민족까지 팔아먹은 책임으루 말을 해두 저애들 바루 전대(前代) 그러니깐 지
끔의 부형들한테 있지. ‘저애들이야 부형들이 일본제국주의에 복종하는 대
루 허릴없이 따라서 한 것뿐 아냐?”
“그 소위 망한 나랄 가지구 그 다음 또 민족까지 팔아먹은 부형들 가운데
자네두 역적놈의 한몫을 했겠다?”
“했지.”
“강연 몇 번 갔었지?”
“몇 번을 따질 필욘 없어. 세 번 해먹었다구 목잘를 데 한번 해먹었다구
목 아니 잘르랄 법은 없으니깐.”
“그럼 자네 목두 자네 몸뗑이에 붙었을 날이 많지 못허이그려?”
“요행 그랬으면 고맙겠는데 그렇지가 못할 모양이니 슬프이.”
“어째서? 죄가 경하다구 용설 받을까 바서? 어림없다.”
“죄가 경하대서가 아니라 존재가 하두 미미하니깐 죄인값에두 쳐주지 않는
단 말일세.”
“인간이 성명 없는 인간이라구 진 죄까지 가벼워지란 법두 있나?”
“그리게 말야.”
“그럼 자살을 하지?”
“한 방도는 방도겠지.”
“하여간 철두철미 귀족취미야! 도저히 구제할 길이 없는 인간야.”
“아까 그 말 계속인데 망국의 책임두 없구 민족을 팔아먹은 책임두 없구
한 어린 사람들이 망국자손, 매국자제의 굴욕, 비애 그런 것만 지질히 부담
을 해오다가 명색이 해방이라구 되구 나서는 이번엔 망국인종의 추하구 천한
행습머리를 해서 흔건히 퍼지구 있는 해독(害毒)…… 이걸 또 입어야 하다니
불쌍한 건 어린 사람들 아냐?”
마당 터지는데 솔뿌리 “ 걱정 할라 말구서 자네두 어서 속죄나 할 도릴 해
요. 아 남들은 팔일오 때에 팔월 십오일 오전 열한시 오십구분까지두 흡혈귀
미영을 쳐부셔라. 조선의 자제들아 부형과 농민들아 어서 빨리 이 성전(聖
戰)을 승리하두룩 지원병에 학병에 증병에 다투어 나가거라. 총후의 협력을
게을리하지 마라. 증용을 기쁘게 나가거라. 그리함으로써 조국 일본의 영광
이 그대들의 머리에 빛날지니라. 국어를 상용해라. 생활 전부를 내지뻔으로
해라. 그리함으로써 한시바삐 내선일체를 체현해라. 곤란을 참아라. 불평을
토하지 마라. 승리는 눈앞에 박두하였느니라. 이렇게 목이 터지두룩 연단에
서 웨치구 붓이 닳두룩 써내구 하다가 팔월 십오일 오전 열한시 오십구분까
지 말야. 그러다가 오정이 땅 치면서 일본이 항복을 하구 조선은 해방이 되
었다 이 소리가 들리니깐, 이번엔 그 입 그 붓을 그대루 가지구 동포여 왜적
은 물러갔다. 동근동조를 꾸며대구 내선일체를 강제하면서 우리의 자질을 끌
어다 불의한 침략전쟁에 희생시키구 우리의 쌀을 빼앗어다 저이만 배불리면
서 우리를 굶주리게 하던 포학 왜적은 연합군의 정의의 칼날 앞에 무릎을 꿇
고 말었다. 우리는 우리의 독자한 문화와 전통 아래 사천 년 빛나는 역사를
기록하면서 살아온 배달민족이다. 왜적이 언감히 이를 말살할 수가 있을까
보냐. 자 건국이다. 친일파를 없애여라. 민족반역자를 버히라. 이렇게 들입
다 목이 터지두룩 웨치구 붓이 닳두룩 쓰구 하질 않는가? 그렇게 날쌔게 땅
재줄 들 넘는 바람에 제마다 피끓는 애국지사로 건국의 역군으루 환신을 해
가지군 과거의 죄상은 어물어물 씻겨 넘어가질 않았나? 죄가 씻기구만 만 게
아니라 장차에 무어나 벼슬이라두 제각기 한 자리씩 꿈들을 꾸구 있질 않는
가? 자네두 이목구비가 저만치나 번뜻한 위인이 어째 남이 부리는 재준 한바
탕 부려보질 못하구서 밤낮 그…… 내 말 듣구서 말야 지끔부터라두 늦진 아
니허니 허다못해 북이라두 한 개 사서 구세군매니루 둥둥 치구 댕기면서 한
바탕 해봐요.”
“그렇게 해서 정말 죄가 씻겨질 테라면야 좋겠네만서두.”
“죄가 당장에 씻겨질 이치야 물론 없겠지. 허지만 그렇게 나서서 납뛰느라
면 다소간 건국에 조력한 공로는 생길 게 아닌가? 그 공로허구 전날에 진 죄
허굴 맞비겨 때린단 말야. 마이너스 풀러스 이콜 제로 아냐?”
“문제는 소위 군소급(群小級)의 죄인들인데…… 원체 괴수들야 덩치가 크
막허구 색채가 유난하니깐 자네 말짝으루 그런 재주를 부려보자구 백성의 면
전에 나설 생심을 못하구서 죽은 듯이 꿇어엎드렸거나 뒷줄루 대구 실금실금
이면공작을 하구 댕기는 모양이니깐 문제 밖이구. 문제는 군소급인데 그래
자네 같은 둔한 신경이 보기에두 서방님네들이 그 요란을 떨어대는 것이 정
말 건국의 진정한 정열 같아 보이던가?”
허허허허 자네 그 “ . 다음 할려는 말을 내가 지레 하지. 그건 건국의 열정
이 아니라 제각기 제가 나서서 하는 구명운동(救命運動)이니라구.”
“그래서?”
“그렇지만 말야. 동기는 가사 그렇게 진심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하자는 것
이 아니라 단지 제자신의 구명운동이라는 불순하구 앙뚱스런 것이라구 하드
래두 결과는? 결과는 그래두 즉접간접으루 많고 적고 간에 건국과정에 도음
되는 것이 있다는 걸 즉 객관적 가치만은 일면 부인두 무시두 할 수가 없는
게 아닌가?”
“내가 보기엔 공로보담두 오히려 해독이 은근히 클 상싶으이.”
“어째서?”
“남편이 없는 새 장성한 딸자식이 보는 데서 실컷 못된 짓을 하구 댕기던
계집이 있다구 하세. 그래 그 계집이 남편이 돌아오니까는 그 딸자식 앞에서
남편과 마조 앉어 정절(貞節)을 말하구 주장하구 한다면? 첫째 왈 그 딸자식
이 에미를 신용을 하며, 정절을 배우기보다는 부정(不貞)하고도 숨기기만 하
면 고만이라는 것을 배우구 할 것이 아니겠나? 금새 미국 영국을 악당으루
몰구 황국신민이 되라구 소리지르구 써대구 하던 그 입 그 붓으루다 방금 또
왜놈이 죽일 놈이요 조선 사람은 애국심을 분발해야 한다구 소리지르구 써대
구 하는 걸 백성들이나 특별히 어린 사람들이 보구 무어라구 하겠나?
‘대관절 아까 하던 말허구 지끔 하는 말허구 어는 게 정말인구?’
‘미친놈야 미친놈.’
‘아냐. 뻔뻔스러 그래.’
‘아냐. 사람이란 나처럼 이렇게 변절을 잘 해야 하느니라. 그걸 시방 우리
한테 배워주는 거야.’
이럴 게 아니냔 말야?”
“무섭게 괴벽스런 천착이로군! 이 사람 지끔 차타구 가다 전복이나 충돌돼
서 죽으면 어떡헐 영으루 태연히 이렇게 차탈 준빌 하구 섰나?”
“미상불 요새 그 건방지기만 하구 책임관념이라군 떨끝만치두 없는 조선
되련님들이 찰 운전하거니 하면 속으루 뜨윽하지 아니한 것두 아냐.”
“그럼 이런 건 어때? 소리 아니 나는 건국운동이랄까 간접애국운동이랄까
거 사람이 좀 얼락녹으락해서 아 성냥이 비싸구 귀한 때니 남이 담뱃불을 청
하거들랑 성냥 한 개피라두 절약시키는 걸루다 건국에 이바지한다는 생각으
루 제발 그 얼굴 잔뜩 찌푸리질 말구섬 선뜻 옜소 하구 대어주구. 어때? 자
네 같은 소심한(小心漢)한텐 꼬옥 알맞인 애국운동일걸?”
요새 난 절절히 생각인데 “ 사람이 어떤 사회적인 죄랄지 과오를 범을 했을
지면 고즈너기 일정한 형식을 통해서 공공연하게 작죄의 경위를 밝히구 죄에
상당한 증계를 받구 그래야만 떳떳하구 속두 후련한 법이지, 걸 불문(不問)
을 당하구서 남의 뒷손꾸락질만 받구 살아야 한다는 것은 견델 수 없는 불쾌
요 고통이요 슬픔이요 한 거야. 마치 몸에서 고약한 체취(體臭)가 나는 사람
이 늘 마음에 남의 앞에 나가면 남들이 돌려세워놓구 얼굴을 찡기리구 코를
쥐구 하려니 하여 우울해하구 비관하구 해야 하는 것처럼.”
“인민재판 아니하구서두 썩 효과적인 증벌 아닌가? 그러나 내 자네에게 우
정의 표시루다 그 고약한 체취라는 걸 말살시킬 방도를 훈수해 주믄세. 향수
를 흡씬 뿌려요. 향수란 다른 게 아니라 야미장수두 좋구 모리행위두 무방하
니 어쨌던 돈을 산더미만침 잡아가지굴랑 정당이란 정당은 머 깡그리 물쓰듯
기 자금을 대요. 또 신문 잡지두 매수하구 사회단체에두 들입다 기부금을 내
구. 그런다치면 그 고약하던 체취가 담박 그대루 불란서의 고급향수처럼 향
그러운 체취루 변하는 동시에 들 코를 벌씸거리면서 머릴 싸구 자네 주위루
모여들어, 아 향그러운 그대의 체취여 하구 찬미를 할 테니.”
“흥 백성들두?”
“이지음야 백성들은 무슨 소릴 하건 어디루 가구 있건 위지 왈 지도자란
귀먹구 눈멀구 한 신선들만 꺼꾸루 선 피라미트 위에 가 하나 가득히 올라앉
어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 위태한 씨소 께임을 하면서 백성 없는 정부두
조직하구 나라 없는 건국두 하구 하는 세상이길래 그 양반들만 단골삼으면
고만일까 해서 하는 말일세.”
열 앞에서 별안간 동요가 일면서 뒤로 뒤로 열이 밀려나온다. 개찰할 시간
이 가까와 역원들이 나와서 정리를 하는 것이었었다.
언제 보아도 그러는 것처럼 정통의 열 옆에는 으례 두 줄 석 줄씩 방퉁이
열이 덧붙어 있다. 그 방퉁이들과 또 편안히 결상에 가 앉았던 패들이 정리
바람에 모두들 정통의 열 속으로 끼여들고 덕분에 나와 김군은 개찰구로부터
지금까지보다 삼 배나 되는 거리의 뒤로 밀려나가야 하였다.
“이러구서야 세 시간이나 미리서 나와 다리의 피가 내리두룩 서 기다린 보
람이 무어람.”
이 말에 김군이 돌려다보고 씨익 웃으면서
“그러니깐 부지런허구 게으름허구 맞먹는대지 않어?”
“대관절 이땅 백성들은 언제나 사람이 돼서 남이 욕하구 떠다 밀구 하면서
정릴 시키구 하기 전에 제풀에 열 같은 것두 얌전히 좀 짓구 질설 지킬 줄
알게 될 텐구?”
아따 이 사람 해방이 “ , 날이 얕구 건국이 미처 아니 돼 모든 것이 혼동해
서 자연 그런 거 아닌가. 사람으루 치면 어린애여든. 국민학교 신입생. 국민
학교 신입생의 갓 모집을 해논다치면 마치 이 모양 아냐? 그러니깐 백성이
아직 어리구 철이 아니 나서 그렇거니만 해 둬요.”
“어리구 철이 아니 나서 그렇다느니보다두 나이 너무 많아 늙어빠져서 노
망 기운으루다 그러는 거 아냐? 조선민족의 나이 자그만치 사천 이백 일흔
아홉 살 아닌가? 사람이 늙으면 노망이 나서 망녕을 부리듯키 민족두 너무
늙으면 노망이 나구 망녕을 부리구 하는 모양야.”
마침내 개찰이 되어 달음질을 쳐서 겨우 차칸에다 몸을 올리기까지는 하였
다. 그러나 좌석은 이미 없었다. 대개 한 걸상에 셋씩이 앉았고 둘이 앉은
자리도 드물었다.
가까스로 둘씩만 앉은 한 복스를 찾아내었다.
“겉이 좀 앉어 갑시다.”
김군이 그리는 것을 먼저 사람이
“저 있어요. 와요.”
한다. 그 어름어름하는 것이 벌써 알 속이다.
“오면 벼주지. 자네두 거기 앉게나.”
그러면서 김군은 걸상 가로 비집고 앉고 나도 마주 앉고 하였다. 그러고 대
전까지 가도록 아무도 그 자리의 주인은 나타나지 아니하였었다. 따라서 대
전까지 가도록 있어요 와요 한 그 사람은 얼굴이 따가와야 하였다.
“우리 앞으루 한 줄에 삼백 명씩밖엔 섰지 않었지?”
김군더러 물으니 고개를 저으면서
“삼백 명은 무슨 삼백 명.”
“가령 삼백 명 잡구라두 두 줄에 육백 명…… 찰 몇간 달았지.”
“열두어 칸 달았겠지.”
“그럼 우리가 차에 오르기까진 한 칸에 오십 명 평균밖엔 타구 있지 않었
어야 할 게 아냐?”
나의 이 말에 김군편 걸상의 차창 옆으로 앉은 잠바 입은 이십 가량의 젊은
사람이
“난 세째루 섰다 나왔는데 그때 벌써 차칸마다 절반두 더 타구 있던데
요.”
“그 사람들은 둔갑하는 요술꾼인감?”
“하여커나 앉어가게 됐으니 천행이지 그대두룩 분개할라 말게. 세상이 어
즈러울 땔수룩 뇌물이라는 것허구 정실(情實)허구가 득셀 하는 법 아닌가.”
김군의 말이었다.
그럼 자네 말하던 게으름허구 “ 부지런허구가 맞먹는 게 아니라 교활허구
부지런허구가 맞먹는 심일세그려?”
“건국되면 다 제대루 들어서요.”
“언제 참 우리나라 정부가 되나요.”
내 바로 옆의 시골 사람이 묻는다. 한 육십 된 동저고리 바람에 철 지난 방
한모의 늙은 농민이었다.
김군이 대답을
“되구말구요.”
“쉬 곧 되나요? ”
“건 저 노서아 사람허구 미국 사람허구더러 물어보아야 알걸요.”
“안직두 멀었지요?”
“영감은 무엇하러 그렇게 우리 정부 되길 기다리죠?”
“우리 정부가 생겨야 두루 다 존 일이 많답디다.”
“여보 영감?”
“예?”
“조선 대통령 누가 났으면 좋겠소?”
“이승만 박사가 나야 헐 테지요.”
“어째서?”
“그이가 젤 낫다구들 그립디다.”
“어떤 놈이 그 따위 소릴 해요?”
버럭 소리를 지르고 대드는 건 김군 걸상의 차창 옆으로 앉았는 아까 그 잠
바 청년이었다.
그는 얼굴이 시뻘개 가지고 계속하여
“괜히 이승만이가 대통령이 됐단 조선은 또 망허구 말아요.”
“그래두 그이가 남이 말하는 것처럼 나뿐 인 아니랍디다?”
“거짓말예요.”
“쯧 내야 시굴 구석에서 땅이나 파먹구 사는 사람이 무얼 아우. 남들이 그
러니깐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시굴루 돌아댄기믄서 그런 소리 하는 놈들이 그게 모두 나라 망쳐놀 놈들
예요.”
“쯧 내야 사니 며칠 살며…… 나라 있을 적에두 나라 덕본 것 없이 살았구
나라가 없을 적에두 나라 그린 줄 모르구 살았구.”
미소하면서 듣고만 있다가 김군이 묻는다.
이 다음에 대통령을 “ 뽑을 때 영감더러 대통령 내구푼 사람 이름을 써 내
라구 하면 누굴 쓰시료?”
“글쎄요.”
“아뭏든 누구 하날 쓰긴 써야 할 게 아뇨?”
“쯧 이승만 박사 쓰지요.”
“그럼 여보 젊은 친구 댁은 누굴 투표하료?”
“여운형 선생님요.”
“여운형 씰…… 어째서?”
“아 여운형 선생님허구 이승만이허구 같아요?”
“이 친구 내게다 그렇게 볼먹은 소릴 할 건 없구. 댁이 여운형 씰 투표하
는 건 그만한 이유랄지 신념이 있어서 하는 게 아뇨?”
“민주주의니깐요.”
“조선서 이름난 지도자가 여운형 씨만 민주주인가?”
“민주주이라구 다 대통령 자격이 있나요? 인격이 있어예죠.”
“옳아!”
“또 공로두 있어야 허구요.”
“그럼…… 그럼 박헌영 씬?”
“더 좋죠. 그렇지만.”
“그렇지만……?”
“좀 일러요.”
“무엇이?”
“공산주이가 조선엔.”
“어째서?”
“장찬 몰라두.”
“공산당 당수가 대통령이 된다구 우리나라가 그대루 공산주이가 된단 법은
없지 않소?”
“안 되구 어떻게 해요? 당장 되구 말죠.”
“거 공산주이가 그리 존 건 아니라구들 합디다?”
내 옆의 영감이 한마디 거드는 것을 잠바 청년이 또 벌컥 성을 내어
“어째서 안 좋아요? 노동자 농민이 뿌르죠아나 지주한테 착췰 아니 당하구
꼭같이 노동하구 꼭같이 분배하구 계급 차별이 없구 평등이구 한건데 어째
나뻐요?”
“………”
영감은 잠바 청년의 외국말 같은 말을 알아들을 바이 없는 것이라 뻐언히
치어다보기만 한다.
그러는 것을 김군이
“여보 영감?”
“예?”
“농사 몇말지기나 지시우?”
“논이나 한 열 말지기하구 밭이라야 댓 말지기하구.”
“식구는?”
“우리 내외 큰아들네 내외에 손주가 둘. 둘째아들 내외 딸 그럼 모두 해
아홉인가?”
“그 아홉 식구가 논이나 열 말지기허구 밭이나 닷 말지기허구 지어가지구
심이 다요?”
“어림없는. 아 열 말지기에서 도합 서른 섬 난 걸 가지구 도지 열 섬 치렀
지요. 것두 작년버틈이니까 도지가 열 섬이지 전에는 열엿 섬 일곱 섬 그랬
드라우. 반 년 양식두 못 되는걸.”
“아홉 식구에서 농사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죠?”
“큰아들 큰손자 작은아들 다 장정이지. 또 며누리들이랑 딸년이랑 나두 거
달아 주구.”
“그럼 손이 모자라 농살 못 짓는 건 아니겠다요? 땅이 없어 못 짓지.”
“그야 일러 무얼 허우.”
“도지 아니 무는 논으루 한 스무 말지기만 지면 질 수두 있구 그걸루다 일
년 계량을 하구 남겨진 팔아서 옷감두 끊구 신발두 사구 담배두 사 자시구
간혹 술잔두 사 자시구 이런 서울 출입두 하구 해가면서 하여간 일 년 가곌
(家計) 써나갈 수가 있겠군요?”
“그렇죠. 논 좋은 걸루 스무 말지긴다 치면 예순 섬은 날 테니깐 절반 서
른 섬 양식허구 서른 섬 팔면 아모리 백물이 비싼 이때라두 그럭저럭.”
“영감님네 식구가 꼬옥 지어낼 만치 논을 ─ 도지 없는 논을 ─ 주구 그중
에서 영감님네 식구 일 년 먹을 것 까구서 남겨질 나라에 바친다치면 나라에
선 영감님네가 일 년 입을 옷감 신발 빨랫비누 석유 그 밖에 소용되는 걸 골
고루 골고루 마련해 주거든요. 그게 위지 왈 공산주이랍니다.”
“나라에서 무슨 땅이 있어 우릴 논을 도지두 아니 밭구섬 주구 허우?”
“지주가 가진 논을 물수해서요.”
“남의 걸 뺏어서?”
“네.”
“그래서야 쓰우. 남의 가진 걸 강제루 뺏어서 준다면 그런 공평치 못할 데
가 있소?”
“그게 공평하잔 노릇인걸요.”
“에이 나는 그런 땅 싫여.”
“무어 영감님더러 손수 뺏으란 건 아니니깐 글랑 염려 마시지요.”
“글쎄 온.”
“흐뭇하긴 한 모양이죠?”
아닌 것이 아니라 영감은 싫단 소리는 겸사의 말인 것이 그의 흐물흐물 웃
는 얼굴에 선연히 드러난다.
이윽고 영감은
“거 공산주이허면 우리 조선이 이번엔 일본 대신 저기 아라사 속국 된다구
들 그립디다.”
“잘못 공산주이를 하면 그럴는지두 모르죠. 그렇지만 영감, 아라사 속국야
되거나말거나 도지 아니 무는 농사 지어 일 년 배 안 고프게 먹구 살구 옷감
야 신발야 모두 그립잖게 타서 쓰구. 그러구 순사나 면장·구장허구나 상하
귀천 아니 가리구 평등으루 지내구. 조옴 좋아요?”
“에이 그래두 나라가 있어야지. 살기가 차라리 좀 옹색하더라두.”
“아니 아까 나라야 있으나 없으나 상관 없다구. 나라 있을 적에두 나라 덕
본 일 없구 나라가 없을 적에두 나라 그린 줄 모르구 살었느니라구 아니하섰
소?”
“말이 그렇지 어디……”
“거 지끔 조선서 공산주이를 할려다간……”
지금까지 아무 소리도 없이 영감을 건너 차창 옆으로 앉아서 듣기만 하고
있던 사십 가량의 시골 신사가 비로소 말을 거들던 것이다.
“……공산주이하지두 못하구 나라만 망쳐놓기가 십상이지요. 것보담은 우
리는 미국식 민주주이를 해야 할 겝니다.”
“어째서 그런가요?”
잠바 청년이 잠자코 있을 리 없어 따들고 나서던 것이다.
“젊은 분은 아마 좌익인 모양인데 노형 삼십팔도 이북 가본 일 있소?”
“가보나마나하죠 머.”
“공업기계 말끔 뜯어가구 공출루 식량 뺏어가구 불한당두 공산당원이면 그
만이구 부녀들 겁탈하구 태극기 대신 적기 내세우구 그러는 거 다 알구나 지
끔 이러우?”
“당신은 가보았나요?”
“꼭 보아야만 허우? 듣구는 모르우?”
못 가보구서 “ 남이 하는 말만 듣구요? 그거가 모두 떼마예요.”
“흥. 떼마거니 하구서 잔뜩들 장 대구 있다 나중 가서 꼴 볼 만하겠다.”
“미국이 구세주거니 하구서 잔뜩들 장 대구 있다가 나중 가서 꼴 볼 만하
겠수.”
김군은 웃음을 참다 못해 외면을 하고 한참이나 소리없이 웃더니 나더러 영
어로
“Just a reduced drawing!”
한다.
미상불 그 억담의 우김질로 상대편을 엎어누르려는 것까지도 갈데없는 한폭
의 축도(縮圖)였다.
“김군?”
“?”
“방금 난 이런 공상 하날 해보다가 혼잣속으로 웃었는데.”
“무어야?”
“저 이란 있지 않은가?”
“그래서?”
“그게 어느 시간 후에 가서 싸베에트 이란이 됐다구 가정을 하구. 물론 약
소민족국가 이란인 건 변함이 없구.”
“그래서.”
“그래 약소민족국 싸베에트 이란이 처억 모스코바에 있는 이란 공살 시켜
스딸린 수상더러 싸베에트 노서아를 싸베에트 이란의 한 연방(聯邦)으루 편
입을 시키겠으니 생각이 어떠시뇨? 하는 교섭을 한다면 그 자리에서 스딸린
영감의 얼골이 어떨꾸?”
“울상을 하겠지.”
나는 김군과 어우러져 한참이나 웃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그럼 이번엔 이란이 아니라 불란서나 영국쯤이 싸베에트 불란서 혹은 싸
베에트 영국이 돼가지구 처억 모스크바에 있는 불란서 공사면 불란서 공사
영국 공사면 영국 공살 시켜 크레물린으루 스탈린 수상을 찾아가 싸베에트
노서아를 우리 싸베에트 불란서(혹은 싸베에트 영국)의 한 연방으루 편입을
시키겠으니 생각이 어떠시뇨 한다면?”
“원자폭탄을 자네네만 발명한 줄 아나? 우리두 있어요 그리겠지.”
“그보담은 여보 불란서(혹은 영국) 동지, 우리 두 나라가 꼭 같은 권리와
의무를 가지는 한 개 한 개의 연방이 되기루 하세나 이럴 것 같은데?”
“문제는 그러니깐 조선이 내일 바루 싸베에트 조선이 되어버리느냐, 내일
은 고구려 그리구 (高句麗) 나서 모레 싸베에트 고구려가 되느냐에 달렸겠
지.”
차는 사람을 태운 것이 아니라 짐차에 물건을 재듯이 재어가지고 그래도 넘
치는 것은 지붕에다 올려앉혀 가지고 씨근거리면서 달리다 어느덧 천안에 당
도하였다.
그동안 다른 역에서도 그런 것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천안은 쌀이 흔한 관
계인지 차가 포옴으로 미끄러져 들어가자 굉장한 아우성과 함께 차창으로 쌀
보퉁이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찻간 안은 물론이요 승강대까지도 짐과 사람이 꽉꽉 들이차서 내리는 사람
도 오르는 쌀보퉁이와 사람도 차창으로밖엔 도리가 없었다.
바로 다음 복스에서 바깥과 싸움이 난다.
“좀 열어 주시요.”
“꽉차서 둘올 데가 없소이다.”
“그래두 좀 열어주시오.”
“여깄는 사람두 포개서 가우.”
“여보 혼자만 갈 테요? ”
“여기만 해두 수백 명이 탔는데 혼자야?”
“옘병해라 이 자식아.”
“저런 주리땔 앵길 자식이.”
“이리 나와 이 자식아.”
“이리 둘와 이 자식아.”
“열어. 들어갈 테니.”
“너 좋라구 열어줘?”
“오랄져라 이 자식아.”
“땀을 내라 이 자식아.”
그러나 이건 선량한 편이다.
여기저기서 유리창이 깨어진다. 안에서 열어주지 아니하면 유리창을 깨뜨리
고서 쌀보퉁이를 들이밀고 기어오르고 한다.
우리 복스의 창이 거절하다 못해 열리면서 쌀보퉁이가 커다란 것이 들어오
고 이어서 양복짜리 젊은이가 끙끙 기어들어온다.
“고맙습니다.”
그는 창을 열어준 잠바의 좌익 청년더러 치하를 하면서 땀을 씻는다
“온 이럭허구서야 사람이 견데배기는 수가 있어야지.”
신객이 혼잣말로 그러는 것을 미국식 민주주의 신사가
“어데서 오섰소?”
“부산서 왔답니다.”
“부산서 여기까지?”
“어떡헙니까? 부산선 시방 대두 한 말에 팔백 원이 가는데 월급이나 일천
한 이백 원 받는 사람이 그 쌀 사먹구 살아요? 한 달 쌀값만 해두 사천 원인
데.”
“천안선 얼마 합디까?”
“이백 원씩에 두 말 샀읍니다.”
“부산선 지끔두 쌀이 일본으루 나가나요?”
“부산뿐인가요. 난 누가 피스톨을 한 자루 줬으면 직업두 내던지구 쌀 밀
수출하는 놈들만 따라댕기면서 깡그리 쏴죽이겠드구면.”
“군정이 밝히지 아니하나요?”
“밝히니 일일이 손이 미칩니까.”
“큰일야. 그게 모두 소수의 모리배놈들의 짓으루 민족이 전체가 곤란을 당
하구 건국에 방해가 되구 하니.”
“속 모르는 소리 마슈. 모리배가 한목 어데서 쌀을 사가지구 부산이면 부
산으루 여수면 여수루 가 일본에다 팔아먹구 하나요?”
“? ……”
“한 말 두 말 최고 한 가마니까지 해 짊어지구 일본 가차운 항구를 매일같
이 수천 명씩 몰려가는 게 누구들인데요?”
“야미꾼들일 테죠.”
“농민들예요. 각지에서 농민들이 등으루 져다 파는 쌀을 밀수꾼들은 가만
히 앉어서 사 긁어모아 가지구 일본으루 내는 거예요.”
“농민들야 시세가 좋니깐 내막은 모르구서.”
“이 양반이…… 이 양반두 아마 서울서 정치하는 양반인가 보군. 당신네들
은 입만 벌리면 농민은 순진하구 불쌍하구 애국적이구 하다구 떠들지만 그래
가지군 정치 못합넨다.”
“허허. 그분이 너무 과격하군!”
“번연히 이 쌀을 가지구 가 팔면 배에 실어 일본으루 가는 줄을 알면서두
그건 다 상관 없거든요. 저이 동네서 한 말 일백오십 원 받을 걸 부산 가서
육백 원이나 칠팔백 원 받으면 같은 동족이야 굶어 죽거나 나라야 열 번 곤
쳐 망하거나 다 아랑곳 없어요. 저이 배 부르구 저이 낭탁 두둑하면 고만예
요.”
“………”
한번은 글쎄 어떻게두 괘씸허구 분한지. 부산선데 칠백 원 한닷 말을 듣구
서 꼭 칠백 원을 구해가지구 나갔더니 팔백 원이라는군요. 당장 저녁거린 없
구 그래 칠백 원에치만 팔라구 하니까 아 절러루 가지고 가면 한 말 다 넘기
는데 누가 걸 두 번에 노나 파느냐구 그예 안 주는군요.”
“………”
“당신두 우리 투표 얻을려거던 그 희떠운 민주주이 소리 집어치구 쌀을 주
시우 쌀을…… 시방 조선서 젤 선량하구두 불쌍한 게 누군지 아시우? 우리네
월급장이들예요.”
“………”
“대체 이 짓이 할 짓이요? 부산서 예까지 와 이 무건 걸 가지구 차창으루
오르내리구. 이것이 모두 누구 죄요?”
“………”
“그러나마 남의 일터에서 월급에 매어 사는 놈이 한 달에두 두세 번씩 이
행보를 해야 하니 당신네들 같으면 마음이 편안하겠수?”
“………”
“당신넨 장차 대신의 자리두 천신할 욕심에 정당 싸움두 깨가 쏟아지구 머
리통이 터져두 고소오한가 봅디다만서두 그 사품에 죽어나는 건 우리예요.
팔일오 이전 일본한테는 좌익이구 우익이구 민족주이구 공산주이구 다들 합
치해서 대항하구 했다면서 어째 시방은 아니하는 거예요? 장차 완전히 독립
되구 나서 노동자허구 자본가허구 대가리가 깨지구 대리뼉다구가 부러지구
하두룩 싸움을 할값이라두 대외적으룬 노동자나 자본가나 이해가 일치하니깐
아쉰 대루 우선 합치를 시켜야 옳지, 떼여놀려구 들어야 옳아요?”
“………”
“어떤 입으루들 민족을 사랑합네, 자주독립을 합시다, 국민이여 각성을 해
라 이 소리가 나와요? 나 같으면 입이 꽝우리 구멍 같아두 할 말이 없겠드
라.”
“………”
“우린 인전 당신네들은 하나두 신용두 아니하구 존경두 아니해요. 영영 들
그 모양일려거든 다들 죽어버리시우.”
하도 그의 음성이며 표정의 핍절함에는 압기가 되는 듯 우익신사는 물론이요
깃을 달고 나서서 한마디나 책을 잡음직한 잠바의 좌익청년도 오히려 심각한
얼굴이면서 잠잠히 듣기만 한다.
호남선으로 갈아타는 대전서 내리니 밤이 열시나 되었다.
삼월 열이레요 내일이 춘분이라는데 그 춘분 추위를 하느라곤지 하늘은 음
산히 흐리고 빗방울이 빠지면서 바람결이 몹시 찼다.
역의 대합실은 낮과 아침부터 서울과 부산과 호남선이 실어다 붙인 승객으
로 콩나물동이를 이루었다 . 보퉁이를 깔고 앉아 혹은 가마니폭을 자리삼아
앉았는 사람, 자는 사람, 그중에도 절창(絶唱)은 투전판이 벌어져 있는 것이
었다.
“저런 걸 보면 조선 사람두 제법 대륙적인 풍모가 있단 말야. 정거장 대합
실에서 지리한 찻시간을 투전을 뽑으면서 밤을 드새구.”
김군의 감상이었다.
호남선은 새벽 다섯시 반에 있었다.
나는 말할 것도 없지만 김군도 한 번의 경험이 있노라면서 그의 굵은 신경
으로도 일찌기 일제시대의 유치장 잠자리를 방불케 하는 대전 거리의 여관에
만은 생의도 아니하였다.
이튿날 새벽 다섯시.
비는 옷을 적시고도 과할 만큼 내렸다. 밤새껏 떨며 기다리던 이리행의 혼
합열차를 꾸며다 포옴에 대어놓기는 하였으나 객차 세 칸에 곳간차 열 개가
사람이 열리듯 하였다. 그러고도 태반은 타지를 못하였다.
내남없이 곳간차 꼭대기나마 타지 못한 사람들은 내리는 궂은비처럼 우울한
얼굴들이었다.
조금 있다 기관차가 무슨 생각으론지 혼자 달려가더니 난데없이 좋은 객차
를 한목 다섯 칸이나 달아가지고 온다.
처진 승객들은 희색이 얼굴에 넘치면서 다투어 그리로 돌진을 한다.
그러나 허망한지고. 찻간에는 미국 병정이 칸마다 삼사 인 혹은 사오인씩
한가로이 타고 있었다.
열려 있기로서니 거기를 침노할 용감한 사람도 없으려니와 도시에 승강대의
문들이 굳게 잠기어 감불생심이었다. 차 옆댕이의 ‘미군전용차’ 다섯 자는
누구의 서투른 분필 글씬지.
사람들은 그래도 행여 하는 생각에 이리 닫고 저리 닫고 앞뒤로 끼웃거리면
서 그 옆을 분주히 맴돌이하기를 마지않는다.
아마 구경이 하염직하여서리라. 미국 병정 하나가 닫긴 승강대의 문을 열고
서서 고요히 완상을 하고 있다.
그러자 촌 반늙은이 하나가 그 앞으로 징검거리고 가더니 예전 같으면
‘여보 영감상 우리 좀 탑시다.’
하는 쩨렸다. 손으로 자기를 가리키고 다시 찻간을 가리키고 하면서 근천스
런 미소와 굽실거리기를 거듭한다.
그에 대하여 미국 병정의 대답은 털 숭얼숭얼한 손가락을 들어 차 꼭대기를
가리키는 것이었었다.
김군과 나는 무심코 발길을 멈추고 서서 보다 문득 아니 볼 것을 본 것 같
은 회오에 얼른 얼굴을 돌렸다.
옛날 상해 공동조계의 “ 공원문앞에다 ‘지나인과 개는 들어오지 마라’ 쓴
푯말을 세운 것허구 상거가 어떨꾸?”
김군의 중얼거리는 말이고 나는 나대로 중얼거렸다.
“마마손님은 떡시루나 쪄놓구 배송을 한다지만 이 프렌드나 저 북쪽 따와
라시 치들은 어떡허면 쉽사리 배송을 시키누?”
“찰 저렇게들 타지 못해 등쌀을 댈 것이 아니라 한때 인도 사람들 뻔으로
기관차 앞으루 찻길에 가 늘비하니 드러눴어요.”
“한 파가 기관차 앞에 가 눴은다치면 한 파는 차에 가 올라앉군 할 텐
데?”
“사회진화의 노선이 적실히 유물변증법적 방향인 바엔 협조가 헤게모니의
영원한 상실을 의미하는 건 아닐 텐데. 독일의 나찌즘이 영원한 승리가 아닌
것처럼. 결국 문제는 협조하는 기간 동안 임금을 조금 덜 받아야 하구 소작
료를 조금 더 물어야 하구 한다는 문제루 귀착하는 것이니깐. 사세가 차차
더 절박해가니 돈 몇천 원이나 벼 몇 섬씩을 애끼다간 민족 천년의 대계를
그르칠 염려가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할 텐데. 새로운 역사의 주인 노릇을 할
긍지와 도량으루다 말이지.”
“사람이 없나 봐. 한 정당 한 정당의 두령 재목은 있어두 민족의 두령 재
목은 안직 없는 모양야.”
“낙심 말게. 이 김주사 어른이 기시질 않은가.”
비는 오고.
다음 차가 언제 있을지 모르는 차를 우리는 음산한 정거장에서 민망히 기다
려야 하였다. (1946. 4. 24)
〈新文學[신문학] 6월호,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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