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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생기 (終生記)


 이상 ( 1910-08-20 ~ 1937-04-17 )

공표일자(년도) 1937.5

창작일자(년도) 1937.5

공표국가 대한민국

분류(장르) 중.단편소설,소설,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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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경-종생기-조광.pdf


작품해설과 줄거리 Clikc Here




종생기 (終生記)

극유산호(○遺珊瑚)ㅡ요 다섯자(字) 동안에 나는 두자(字) 이상(以上)의 오자(誤字)를 범(犯)했

는가 싶다. 이것은 나 스스로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워할 일이겠으나 인지(人智)가 발달해가는

면목(面目)이 실로 약여(躍如)하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산호(珊瑚) 채찍을랑 꽉 쥐고 죽으리라. 네 폐포파립(廢袍破笠) 위에

퇴색(褪色)한 망해(亡骸) 위에 봉황(鳳凰)이 와 앉으리라.

나는 내「종생기(終生記)」가 천하(天下) 눈 있는 선비들의 간담(肝膽)을 서늘하게 해 놓기를

애틋이 바라는 일념(一念) 아래 이만큼 인색(吝嗇)한 내 맵시의 절약법(節約法)을 피력(披瀝)

하여 보인다.

일발포성(一發砲聲)에 부득이 영웅(英雄)이 되고 만 희대(稀代)의 군인(軍人) 모(某)는 아흔에

귀를 단 황송한 일생(一生)을 끝막던 날 이렇다는 유언(遺言) 한 마디를 지껄이지 않고 그 임

종(臨終)의 장면(場面)을 곧잘(무사[無事]히 후ㅡ 한숨이 나올 만큼) 넘겼다.

그런데 우리들의 레우오치카ㅡ애칭(愛稱) 톨스토이ㅡ는 괴나리봇짐을 짊어지고 나선 데까지

는 기껏 그럴 성싶게 꾸며 가지고 마지막 오분(五分)에 가서 그만 잡았다. 자자레한 유언(遺言

) 나부랑이로 말미암아 칠십(七十)년 공든 탑(塔)을 무너뜨렸고 허울 좋은 일생(一生)에 가신

수 없는 홈집을 하나 내어 놓고 말았다.

나는 일개(一個) 교활(狡猾)한 옵써버ㅡ의 자격으로 그런 우매(愚昧)한 성인(聖人)들의 생애(

生涯)를 방청(傍聽)하여 있으니 내가 그런 따위 실수를 알고도 재범(再犯)할 리(理)가 없는 것

이다.

거울을 향하여 면도질을 한다. 잘못해서 나는 상채기를 내인다. 나는 골을 벌컥 내인다.

그러나 와글와글 들끊는 여러「나」와 나는 정면(正面)으로 충돌(衝突)하기 때문에 그들은 제

각기 베스트를 다하여 제 자신만을 변호(辯護)하는 때문에 나는 좀처럼 범인(犯人)을 찾아 내

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대저(大抵) 어리석은 민중(民衆)들은「원숭이가 사람 흉내를 내이네」하고 마음을

놓고 지내는 모양이지만 사실 사람이 원숭이 흉내를 내이고 지내는 바 짜 지당(至當)한 전고(

典故)를 이해(理解)하지 못하는 탓이리라.

오호(嗚呼)라 일거수(一擧手) 일투족(一投足)이 이미 아담 이브의 그런 충동적(衝動的) 습관(

習慣)에서는 탈각(脫却)한지 오래다. 반사운동(反射運動)과 반사운동(反射運動)의 틈사구니에

끼여서 잠시 실로 전광석화(電光石火)만큼 손가락이 자의식(自意識)의 포로(捕虜)가 되었을

때 나는 모처럼 내 허무(虛無)한 세월(歲月) 가운데 한각(閑却) 되어 있는 기암(奇岩) 네 콧잔

등이를 좀 만지작만지작했다거나, 고귀(高貴)한 대화(對話)와 대화(對話) 늘어선 쇠사슬 사이

에도 정(正)히 간발(間髮)을 허용(許容)하는 들창이 있나니 그 서슬 퍼런 날(인[刃])이 자의식(

自意識)을 걷잡을 사이도 없이 양단(兩斷)하는 순간(瞬間) 나는 내 명경(明鏡)같이 맑아야 할

지보(至寶) 두 눈에 혹(或)시 눈곱이 끼지나 않았나 하는 듯이 적절(適切)하게 주름살 잡힌 손

수건을 꺼내어서는 그 두 눈의 만지작 만지작 했다거나ㅡ

내 혼백(魂魄)과 사대(四大)의 점잖은 태만성(怠慢性)이 그런 사소(些小)한 연화(煙火)들을 일

일이 따라다니면서 (보고 와서) 내 총괄(銃括)되는 처소(處所)에다 일러바쳐야만 하는 그런 압

도적(壓倒的) 망살(忙殺)을 나는 이루 감당(堪當)해 내이는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내 지중(至重)한 산호편(珊瑚鞭)을 자랑하고 싶다.

「쓰레기」「우거지」

이 구지레한 단자(單字)의 분위기(雰圍氣)를 족하(足下)는 족(足)히 이해(理解)하십니까.

족하(足下)는 족하(足下)가 기감교식(基監敎式)으로 결혼(結婚)하던 날 내이브 · 앤드 · 아일에

서 이「쓰레기」「우거지」에 근이(近邇)한 감흥(感興)을 맛보았으리라고 생각이 되는데 과

연(果然) 그렇지는 않으십니까.

나는 그런「쓰레기」나「우거지」같은 테잎을ㅡ내 종생기(終生記) 처처(處處)에다 가련(可憐

)히 심어 놓은 자자레한 치례를 위하여ㅡ뿌려 보려는 것인데ㅡ

다행(多幸)히 박수(拍手)하다. 이(以) 상(上)

X X X

「치사(侈奢)한 소녀(小女)는」,「해동기(解凍期)의 시냇가에 서서」,「입술이 낙화(落花)지

듯 좀 파래지면서」,「박빙(薄氷) 밑으로는 무엇이 저리도 움직이는가 고」,「고개를 갸웃거

리는 듯이 숙이고 있는데」,「봄 운기를 품은 훈풍(薰風)이 불어와서」,「스커어트」, 아니

아니,「너무나」, 아니, 아니,「좀」「슬퍼 보이는 홍발(紅髮)을 건드리면」그만. 더 아니다.

나는 한 마디 가련(可憐)한 어휘(語彙)를 첨가(添加)할 성의(誠意)를 보이자.

「나붓 나붓.」

이만하면 완비(完備)된 장치(裝置)에 틀림없으리라. 나는 내 종생기(終生期)의 서장(序章)을

꾸밀 그 소문 높은 산호편(珊瑚鞭)을 더 여실(如實)히 하기 위하여 위와 같은 실(實)로 나로서

는 너무나 과감(過監)히 치사(侈奢)스럽고 어마어마한 세간사리를 작만한 것이다.

그런데ㅡ

혹(或) 지나치지나 않았나. 천하(天下)에 형안(炯眼)이 없지 않으니까 너무 금(金)칠을 아니했

다가는 서툴리 들킬 염려가 있다. 하나ㅡ

그냥 어디 이대로 써(용[用]) 보기로 하자.

나는 지금 가을바람이 자못 소혜(簫彗)한 내 구중중한 방에 홀로 누워 종생(終生)하고 있다.

어머니 아버지의 충고(忠告)에 의하면 나는 추호(秋豪)의 틀림도 없는 만이십오세(滿二十五歲

)와 십일개월(十一個月)의「홍안미소년(紅顔美少年)」이라는 것이다. 그렇건만 나는 확실(確

實)히 노옹(老翁)이다. 그날 하루하루가「인생(人生)은 짧고 예술(藝術)은 기다랗다」하는 엄

청난 평생(平生)이다.

나는 날마다 운명(殞命)하였다. 나는 자던 잠ㅡ이 잠이야말로 언제 시작한 잠이더냐ㅡ을 깨이

면 내 통절(痛切)한 생애(生涯)가 개시(開始)되는데 청춘(靑春)이 여지없이 탕진(蕩盡)되는 것

은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누웠지만 역력(歷歷)히 목도(目睹)한다.

나는 노래(老來)에 빈한(貧寒)한 식사(食事)를 한다. 십이시간(十二時間) 이내(以內)에 종생(

終生)을 맞이하고 그리고 할 수 없이 이리 궁리 저리 궁리 유언(遺言)다운 어디 유실(遺失)되

어 있지 않나 하고 찾고, 찾아서는 그중(中) 의젓스러운 놈으로 몇 추린다.

그러나 고독(孤獨)한 만년(晩年) 가운데 한 구(句)의 에피그람을 얻지 못하고 그대로 처참(凄

慘)히 나는 물고(物故)하고 만다.

일생(一生)의 하루ㅡ

하루의 일생(一生)은 대체(大體)(위선) 이렇게 해서 끝나고 끝나고 하는 것이었다.

자ㅡ보아라.

이런 내 분장(粉裝)은 좀 과(過)하게 치사스럽다는 느낌은 없을까 없지 않다.

그러나 위풍당당(威風堂堂) 일세(一世)를 풍미(風靡)할 만한 참신무비(斬新無比)한 함렛(망언

다사[妄言多謝])을 하나 출세(出世)시키기 위하여는 이만한 출자(出資)는 아끼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도 없지 않다.

나는 가을. 소녀(少女)는 해동기(解凍期).

어느제나 이 두 사람이 만나서 즐거운 소꿉장난을 한 번 해보리까.

나는 그해 봄에도ㅡ

부질없은 세상이 스스러워서 상설(霜雪)갈은 위엄(威嚴)을 갖춘 몸으로 한심(寒心)한 불우(不

遇)의 일월(日月)을 맞고 보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미문(美文), 미문(美文), 애하(曖牙)! 미문(美文).

미문(美文)이라는 것은 저으기 조처(措處)하기 위험(危險)한 수작이니라.

나는 내 감상(感傷)의 꿀방구리 속에 청산(靑山) 가던 나비처럼 마취혼사(痲醉昏死)하기 자칫

쉬운 것이다. 조심 조심 나는 내 맵시를 고쳐야 할 것을 안다.

나는 그날 아침에 무슨 생각에서 그랬던지 이를 닦으면서 내 작성중(作成中)에 있는 유서(遺

書) 때문에 끙 끙 앓았다.

열세벌의 유서(遺書)가 거의 완성(完成)해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어느 것을 집어 내 보아

도 다같이 서른 여섯살에 자살(自殺)한 어느「천재(天才)」가 머리맡에 놓고 간 개세(蓋世)의

일품(逸品)의 아류(亞流)에서 일보(一步)를 나서지 못했다. 내게 요만 재주 밖에는 없느냐는

것이 다시 없이 분하고 억울한 사정(事情)이었고 또 초조(焦燥)의 근원(根元)이었다. 미간(眉

間)을 찌푸리되 가장 고매(高邁)한 얼굴은 지속(持續)해야 할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그리고 계

속하여 끙 끙 앓고 있노라니까 (나는 일시[一時] 일각[一刻]을 허송[虛送]하지는 않는다. 나

는 없는 지혜[智慧]를 끊지지 않고 쥐어 짠다) 속달(速達)편지가 왔다. 소녀(少女)에게서다.

선생(先生)님! 어젯저녁 꿈에도 저는 선생(先生)님을 만나 뵈었읍니다. 꿈 가운데 선생(先生)

님은 참 다정(多情)하십니다. 저를 어린애처럼 귀여해 주십니다.

그러나 백일(白日) 아래 표표(飄飄)하신 선생님은 저를 부르시지 않습니다.

비굴(卑屈)이라는 것이 무슨 빛으로 되어 있나 보시려거든 선생(先生)님은 거울을 한 번 보아

보십시오. 거기 비치는 선생(先生)님의 얼굴빛이 바로 비굴(卑屈)이라는 것의 빛입니다.

헤어진 부인(夫人)과 삼년(三年)을 동거(同居)하시는 동안에 너 가거라 소리를 한 마디도 하신

일이 없다는 것이 선생(先生)님의 유일(唯一)의 자만(自慢)이십니다 그려! 그렇게까지 선생(先

生)님은 인정(人情)에 구구(苟苟)하신가요.

R과도 깨끗이 헤어졌읍니다. S와도 절연(絶緣)한 지 벌써 다섯 달이나 된다는 것은 선생(先生

)님께서도 믿어 주시는 바지요? 다섯달 동안 저에게는 아무것도 없읍니다. 저의 청절(淸節)을

인정(認定)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의 최후(最後)까지 더럽히지 않은 것을 선생(先生)님께 드리겠읍니다. 저의 희멀건 살의 매

력(魅力)이 이렇게 다섯달 동안이나 놀고 없는 것은 참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이 아깝습니다.

저의 잔털 나스르르한 목 영한 온도가 선생(先生)님을 기다리고 있읍니다. 선생(先生)님이어!

저를 부르십시오. 저더러 영영 오라는 말을 안하시는 것은 그것 역시(亦是) 가신적 경우와 똑

같은 이론(理論)에서 나온 구구(苟苟)한 인생변호(人生辯護)의 치사스러운 수법(手法)이신가

요?

영원(永遠)히 선생(先生)님「한 분」만을 사랑하지요. 어서 어서 저를 전적(全的)으로 선생(先

生)님만의 것을 만들어 주십시오. 선생(先生)님의「전용(專用)」이 되게 하십시오.

제가 아주 어수룩한 줄 오산(誤算)하고 계신 모양인데 오산(誤算) 치고는 좀 어림없는 큰 오산

(誤算)이리다.

네딴은 제법 든든한 줄만 믿고 있는 네 그 안전지대(安全地帶)라는 것을 너는 아마 하나 가진

모양인데 그까짓 것쯤 내 말 한 마디에 사태(沙汰)가 나고 말리라, 이렇게 일러드리고 싶습니

다. 또ㅡ

예끼! 구역질나는 인생(人生) 같으니 이러고도 싶습니다.

삼월삼일(三月三日)날 오후(午後) 두 시에 동소문(東小門) 뻐스정류장(停留場) 앞으로 꼭 와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큰일나요 내 징벌(懲罰)을 안받지 못하리다.

만십구세(滿十九歲) 이개월(二個月)을 맞이하는

정(貞) 희(姬) 올림

이(李) 상(箱) 선생(先生)님께

물론(勿論) 이것은 죄다 거짓뿌렁이다. 그러나 그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아슬아슬한 용십법(

用心法)이 특(特)히 그중(中)에도 결미(結尾)의 비견할 데 없는 청초(淸楚)함이 장(壯)히 질풍

신뢰(疾風迅雷)를 품은 듯한 명문(名文)이다.

나는 까무러칠 뻔하면서 혀를 내어둘렀다. 나는 깜빡 속기로 한다. 속고 만다.

여기 이 이상선생(李箱先生)님이라는 허수아비 같은 나는 지난밤 사이에 내 평생(平生)을 경

력(經歷)했다. 나는 드디어 쭈굴쭈굴하게 노쇠(老衰)해 버렸던 차에 아침(이 온 것)을 보고 이

키! 남들이 보는 데서는 나는 가급적(可及的) 어쭙지 않게 (잠을) 자야 되는 것이어늘, 하고 늘

이를 닦고 그리고는 도로 얼른 자버릇 하는 것이었다. 오늘도 또 그럴 세음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짐짓 기이(奇異)하기도 해서 그러는지 경천동지(驚天動地)의 육중한 경륜

(經綸)을 품은 사람인가보다고들 속는다. 그러니까 고렇게 하는 것이 내 시시한 자세(姿勢)나

마 유지(維持)시킬 수 있는 유일무이(唯一無二)의 비결(秘訣)이었다. 즉 나는 남들 좀 보라고

낮에 잔다.

그러나 그 편지를 받고 흔희작약(欣喜雀躍), 나는 개세(蓋世)의 경륜(經綸)과 유서(遺書)의 고

민(苦憫)을 깨끗이 씻어버리기 위하여 바로 이발소(理髮所)로 갔다. 나는 여간아니 호걸(豪傑)

답게 입술에다 치분(齒粉)을 허옇게 묻혀가지고는 그 현란한 거울 앞에 가 앉아 이제 호화장려

(豪華壯麗)하게 개막(開幕)하려 드는 내 종생(終生)을 유유(悠悠)히 즐기기로 거기 해당(該當)

하게 내 맵시를 수습(收拾)하는 것이었다.

위선 그 작소(鵲巢)라는 뇌명(雷名)까지 있는 봉발(蓬髮)을 썰어서 상고머리라는 것을 만들었

다. 오각수(五角鬚)는 깨끗이 도태(淘汰)해 버렸다. 귀를 후비고 코털을 다듬었다. 안마(按摩)

도 했다. 그리고 비누세수를 한 다음 문득 거울을 들여다보니 품(品)있는 데라고는 한 구통이

도 없어 보이는 듯하면서 또한 태생(胎生)을 어찌 어기리요, 좋도록 말해서 라파엘전파(前派)

일원(一員)같이 그렇게 청초(淸楚)한 백면서생(白面書生)이라고도 보아줄 수 있지 하고 실없

이 제 얼굴을 미남자(美男子)거니 고집(固執)하고 싶어하는 구지레한 욕심을 내심(內心) 탄식(

嘆息)하였다.

아차! 나에게도 모자(帽子)가 있다. 겨울내(乃) 꾸겨박질러 두었던 것을 부득부득 끄집어 내었

다. 십오분간세탁소(十五分間洗濯所)로 가지고 가서 멀쩡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흰 바지저고

리에 고동색(古銅色) 다님을 다 치고 차림차림이 제법 이색(異色)이있다. 공단은 못되나마 능

직(綾織)두루마기에 이만하면 고왕금래(古往今來) 모모(某某)한 천재(天才)의 풍모(風貌)에 비

겨도 조곰도 손색(遜色)이 없으리라. 나는 내 그런 여간 이만저만하지 않은 풍모(風貌)를 더욱

더욱 이만저만하지 않게 모디파이어하기 위하여 가늘지도 굵지도 않은 고다지 알맞은 단장을

하나 내 손에 쥐어 주어야 할 것도 때마침 잊어버리지는 않았다.

별수 없이ㅡ

오늘이 즉 삼월삼일(三月三日)인 것이다.

나는 점잖게 한 삼십분(三十分)쯤 지각(遲刻)해서 동소문(東小門) 지정받은 자리에 도착(到着)

하였다. 정희(貞姬)는 또 정희(貞姬)대로 아주 정희(貞姬)다웁게 한 삼십분(三十分)쯤 일찍 와

서 있다.

정희(貞姬)의 입상(立像)은 제정로서아(帝政露西亞) 쩍 우표(郵票)딱지처럼 적잖이 슬프다. 이

것은 아직도 얼음을 품은 바람이 해토(解土)머리답게 싸늘해서 말하자면 정희(貞姬)의 모양을

얼마간 침통(沈痛)하게 해 보일 탓이렷다.

나는 이런 경우(境遇)에 천만(千萬) 뜻밖에도 눈물이 핑 눈에 그뜩 돌아야 하는 것이 꼭 맞는

원칙(原則)으로서의 의표(意表)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저벅저벅 정희(貞姬) 앞으로 다

가갔다.

우리 둘은 이땅을 처음 찾아 온 제비 한 쌍처럼 잘 앙증스럽게 만보(漫步)하기 시작했다. 걸어

가면서도 나는 내 두루마기에 잡히는 주름살 하나에도 단장을 한 번 휘저었는 곡절(曲折)에도

세세(細細)히 조심한다. 나는 말하자면 내 우연(偶然)한 종생(終生)을 감쪽스럽도록 찬란하게

허식(虛飾)하기 위하여 내 박빙(薄氷)을 밟는 듯한 포ㅡ즈를 아차 실수로 무너뜨리거나 해서

는 절대(絶對)로 안된다는 것을 굳게 굳게 명(銘)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면 맨 처음 발언(發言)으로는 나는 어떤 기절참절(奇絶慘絶)한 경구(警句)를 내어 놓아야

할 것인가, 이것 때문에 또 잠깐 머뭇머뭇하지 않을 수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바로 대이고 거

어쩌면 그렇게 똑 제정로서아(帝政露西亞) 적 우표(郵票)딱지같이 초초(楚楚)하니 어쩌니 하

는 수는 차마 없다.

나는 선뜻

「설마가 사람을 죽이느니」

하는 소리를 저 뱃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듯한 그런 갈아앉은 목소리에 꽤 명료(明瞭)한 발음(

發音)을 얹어서 정희(貞姬) 귀 가까이다 대이고 지껄여버렸다. 이만하면 아마 그 경우(境遇)의

최초(最初)의 발성(發聲)으로는 무던히 성공(成功)한 편이리라. 뜻인즉, 네가 오라고 그랬다고

그렇게 내가 불쑥 올 줄은 너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으리라는 꼼꼼한 의도(意圖)다.

나는 아침반찬으로 콩나물을 삼전(三錢)어치는 안팔겠다는 것을 교묘(巧妙)히 무사(無事)히

삼전(三錢)어치만 살 수 있는 것과 같은 미끈한 쾌감(快感)을 맛본다. 내 딴은 다행(多幸)히 노

랑돈 한푼도 참 용하게 낭비(浪費)하지는 않은 듯싶었다.

그러나 그런 내 청천(晴天)에 벽력(霹靂)이 떨어진 것 같은 인사(人事)에 대하여 정희(貞姬)는

실(實)로 대답이 없다. 이것은 참 큰일이다.

아이들이 고추 먹고 맴맴 담배 먹고 맴맴 하고 노는 그런 암팡진 수단(手段)으로 그냥 단번에

나를 어지러뜨려서는 넘어뜨려버릴 작정인 모양이다.

정말 그렇다면!

이 상쾌(爽快)한 정희(貞姬)의 확호(確乎) 부동자세(不動姿勢)야말로 엔간치 않은 출품(出品)

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내어놓은 바 살인촌철(殺人寸鐵)은 그만 즉석(卽席)에서 분쇄(粉碎)되

어 가엾은 부작(不作)으로 나려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하고 나는 느꼈다.

나는 나로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규모(規模)의 손짓 발짓을 한번 해 보이고 이윽고 낙담(落膽)

하였다는 것을 표시(表示)하였다. 일이 여기 이른바에는 내 포ㅡ즈 여부(與否)가 문제(問題)

아니다. 표정(表情)도 인제 더 써먹을 것이 남아 있을 성싶지도 않고 해서 나는 겸연쩍게 안색

(顔色)을 좀 고쳐가지고 그리고 정희(貞姬)! 그럼 나는 가겠소, 하고 깍듯이 인사(人事)하고 그

리고?

나는 발길을 돌쳐서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내 파란만장(波瀾萬丈)의 생애(生涯)가 자자레

한 말 한 마디로 하여 그만 회신(灰燼)으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나는 세상에도 참혹(慘酷)한

풍채(風采) 아래서 내 종생(終生)을 치른 것이다고 생각하면서 그렇다면 그럼 그럴 성싶기도

하게 단장도 한두 번 휘두르고 입도 좀 일그적 일그적해 보기도 하고 하면서 행차(行次)하는

체해 보인다.

오초(五秒)ㅡ십초(十秒)ㅡ이십초(二十秒)ㅡ삼십초(三十秒)ㅡ일분(一分)ㅡ

결(決)코 뒤를 돌아다보거나 해서는 못쓴다. 어디까지든지 사심(私心)없이 패배(敗北)한 체하

고 걷는 체한다. 실심(失心)한 체한다.

나는 사실(事實)은 좀 어지럽다. 내 쇠약(衰弱)한 심장(心臟)으로는 이런 자약(自若)한 체조(體

操)를 그렇게 장시간(長時間) 계속(繼續)하기가 썩 어려운 것이다.

묘지명(廟地銘)이라. 일세(一世)의 귀재(鬼才) 이상(李箱)은 그 통생(通生)의 대작(大作)「종

생기(終生期)」일편(一篇)을 남기고 서력기원후(西曆紀元後) 일천구백삼십칠년(一千九百三十

漆年) 정축(丁丑) 삼월삼일(三月三日) 미시(未時) 여기 백일(白日) 아래서 그 파란만장(波瀾萬

丈)(?)의 생애(生涯)를 끝막고 문득 졸(卒)하다. 향년(享年) 만이십오세(滿二十五歲)와 십일개

월(十一個月). 명호(鳴乎)라! 상심(傷心)커다. 허탈(虛脫)이야 잔존(殘存)하는 또 하나의 이상(

李箱) 구천(九天)을 우러러 호곡(號哭)하고 이 한산일편석(寒山一片石)을 세우노라. 애인(愛人

) 정희(貞姬)는 그대의 몰후(歿後) 수삼인(數三人)의 비첩(秘妾)된 바 있고 오히려 장수(長壽)

하니 지하(地下)의 이상(李箱) 아! 바라건댄 명목(暝目)하라.

그리 칠칠치는 못하나마 이만큼 해 가지고 이꼴 저꼴 구지레한 흠집을 살짝 도회(韜晦)하기로

하자. 고만 실수(失手)는 여상(如上)의 묘기(妙技)로 겸(兼)사겸(兼)사 메꾸고 다시 나는 내 반

생(半生)의 진용(陳容) 후일(後日)에 관해 차근차근 고려(考慮)하기로 한다. 이상(以上)

역대(歷代)의 에피그람과 경국(傾國)의 철칙(鐵則)이 다 내에 있어서는 내 위선(僞善)을 암장(

暗葬)하는 한 스무드한 구실(口實)에 지나지 않는다. 실(實)로 나는 내 낙명(落命)의 자리에서

도 임종(臨終)의 합리화(合理化)를 위하여 코로ㅡ처럼 도색(桃色)의 팔렛을 볼 수도 없거니와

톨스토이처럼 탄식(嘆息)해 주고 싶은 쥐꼬리만한 금언(金言)의 추억(追億)도 가지지 않고 그

냥 난데없이 다리를 삐어 넘어지듯이 스르르 죽어가리라.

거룩하다는 칭호(稱號)를 휴대(携帶)하고 나를 찾아오는「연애(戀愛)」라는 것을 응수(應酬)

하는데 있어서도 어디서 어떤 노소간(老少間)의 의뭉스러운 선인(先人)들이 발라먹고 내어버

린 그런 유훈(遺訓)을 나는 헐값에 걷어 들여다가 제련(製鍊) 재탕(再湯) 다시 써먹는다.

는 줄로만 알았다가도 또 내게 혼나는 경우가 있으리라.

나는 찬밥 한 술 냉수(冷水) 한 모금을 먹고도 넉넉히 일세(一世)를 위압(威壓)할 만한「고언(

苦言)」을 적적(摘摘)할 수 있는 그런 지혜(智慧)의 실력(實力)을 가졌다.

그러나 자의식(自意識)의 절정(絶頂) 위에 발돋움을 하고 올라선 단말마(斷末魔)의 비결(秘訣)

을 보통 야시(夜市) 국수버섯을 팔러오신 시골 아주먼네에게 서너푼에 그냥 넘겨주고 그만두

는 그렇게까지 자신(自身)의 에티겟을 미화(美化)시키는 겸허(謙虛)의 방식(方式)도 또한 나는

무루(無漏)히 터득하고 있는 것이다. 당목(堂目)할지어다. 이상(以上)

난마(亂麻)와 같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얼마간 비극적(悲劇的)인 자기탐구(自己探求).

이런 흑발 같은 남루(襤樓)한 주제는 문벌(門閥)이 버젓한 나로서 채택(採擇)할 신세(身勢)가

아니거니와 나는 태서(泰西)의 에티켓으로 차(茶) 한 잔을 마실 적의 포ㅡ즈에 대하여도 세심(

細心)하고 세심(細心)한 용의(用意)가 필요(必要)하다.

휘파람 한 번을 분다 치더라도 네 극비리(極秘裏)에 정선(精選) 은닉(隱匿)된 절차(節次)를 온

고(溫古) 하여야만 한다. 그런 다음이 아니고는 나는 희망(希望) 잃은 황혼(黃昏)에서도 휘파

람 한 마디를 마음대로 불 수는 없는 것이다.

동물(動物)에 대(對)한 고결(高潔)한 지식(知識)?

사슴, 물오리, 이 밖의 어떤 종류(種類)의 동물(動物)도 내 애니멀킹돔에서는 낙탈(落脫)되어

있어야 한다. 나는 이 수렵용(狩獵用)으로 귀여히 가여히 되어먹어 있는 동물(動物) 외(外)에

동물(動物)에 언제든지 무가내하(無可奈何)로 무지(無智)하다.

또ㅡ

그럼 풍경(風景)에 대(對)한 방만(倣慢)한 처신법(處身法)?

어떤 풍경을 묻지 않고 풍경(風景)의 근원(根源), 중심(中心), 초점(焦點)이 말하자면 나 하나

「도련님」다운 소행(素行)에 있어야 할 것을 방약무인(傍若無人)으로 강조(强調)한다. 나는

이 맹목적(盲目的) 신조(信條)를 두 눈을 그대로 딱 부르감고 믿어야 된다.

자진(自進)한「우매(愚昧)」,「몰각(歿覺)」이 참 어렵다.

보아라. 이 자득(自得)하는 우매(愚昧)의 절기(絶技)를! 몰각(歿覺)의 절기(絶技)를,

백구(白鷗)는 의백사(宜白沙)하니 막부춘초벽(莫赴春草碧)하라.

이태백(李太白). 이 전후만고(前後萬古)의 으리의리한「화족(華族)」. 나는 이태백(李太白)을

닮기도 해야 한다. 그렇기 위하여 오언절구(五言絶句) 한 줄에서도 한 자(字)가량의 태연자약(

泰然自若)한 실수(失手)를 범(犯)해야만 한다. 현란(絢亂)한 문벌(門閥)이 풍기는 가(可)히 범(

犯)할 수 없는 기품(氣品)과 세도(勢道)가 넉넉히 고시(古詩) 한 절(節)쯤 서슴지 않고 상채기

를 내어 놓아도 다들 어수룩한 체들 하고 속느니 하는 교만한 미신(迷信)이다.

곱게 빨아서 곱게 다리미질을 해 놓은 한 벌 슈미ㅡ즈의 꼽박 속는 청절(淸節)처럼 그렇게 아

담(雅淡)하게 나는 어떠한 질차(跌蹉)에서도 거뜬하게 얄미운 미소(微笑)와 함께 일어나야만

하는 것이니까ㅡ

오늘날 내 한 씨족(氏族)이 분명(分明)치 못한 소녀(少女)에게 섣불리 딴죽을 걸려 넘어진다기

로서니 이대로 내 숙망(宿望)의 호화유려(豪華流麗)한 종생(終生)을 한 방울 하잘 것 없는 오

점(汚點)을 내이는 채 투시(投匙)해서야 어찌 초지(初志)의 만일(萬一)의 응답(應答)할 수 있는

면목(面目)이 족(足)히 서겠는가, 하는 허울좋은 구실(口實)이 영일(永日) 밤보다도 오히려 한

뼘 짧은 내 전정(前程)에 대두(擡頭)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완만(漫) 착실(着實)한 서술(敍述)!

나는 과(過)히 눈에 띠울성싶지 않은 한 지점(地點)을 재재바르게 붙들어서 거기서 공중 담배

를 한 갑 사(주머니에 넣고) 피워 물고 정희(貞姬)의 뻔ㅡ한 걸음을 다시 뒤따랐다.

나는 그저 일상(日常)의 다반사(茶飯事)를 간과(看過)하듯이 범연(凡然)하게 휘파람을 불고,

내, 구두 뒤축이 아스팔트를 디디는 템포 음향(音響), 이런 것들의 귀찮은 조절(調節)에도 깔

끔히 정신차리면서 넉넉잡고 삼분(三分), 다시 돌친 걸음은 정희(貞姬)와 어깨를 나란히 걸을

수 있었다. 부질없는 세상(世上)에 제 심각(深刻)하면 침통(沈痛)하면 또 어쩌겠느냐는 듯싶은

서운한 눈의 위치(位置)를 동소문(東小門) 밖 신개지풍경(新開地風景) 어디라고 정(定)치 않은

한 점(點)에 두어 두었으니 보라는 듯한 부득부득 지근거리는 자세(姿勢)면서도 또 그렇지도

않을성싶은 내 묘기(妙技) 중(中)에도 묘기(妙技)를 더한층 허겁지겁 연마(鍊磨)하기에 골돌하

는 것이었다.

일모(日暮)청산ㅡ

날은 저물었다. 아차! 아직 저물지 않은 것으로 하는 것이 좋을까보다.

날은 아직 저물지 않았다.

그러면 아까 장만해 둔 세간기구(器具)를 내세워 어디 차근차근 살림살이를 한 번 치뤄 볼 천

우(天佑)의 호기(好機)가 내 앞으로 다달았나 보다. 자ㅡ

태생(胎生)은 어길 수 없어 비천(卑賤)한「타」를 감추지 못하는 딸ㅡ

(전기[前記] 치사[侈奢]한 소녀[少女] 운운[云云]은 어디까지든지 이 바보 이상[李箱]의 호

의[好意]에서 나온 곡해[曲解]다. 모ㅡ파쌍의「지방[脂肪] 덩어리」를 생각하자. 가족[家族]

은 미만[未滿] 십사세[十四歲]의 딸에게 매음[賣淫]시켰다. 두번째는 미만[未滿] 십구세[十

九歲]의 딸이 자진[自進]했다. 아ㅡ세번째는 그 나이 스물 두살이 되던 해 봄에 얹은낭자를

내리우고 게다 다홍댕기를 들여 늘어뜨려 편발처자[處子]를 위조[僞造]하여는 대거[大擧]하

여 강행[强行]으로 매끽[賣喫]하여 버렸다.)

비천(卑賤)한 뉘집 딸이 해빙기(解氷期)의 시냇가에 서서 입술이 낙화(落花)지듯 좀 파래지면

서 박빙(薄氷) 밑으로는 무엇이 저리도 움직이는가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듯이 숙이고 있는데

봄 방향(芳香)을 품은 훈풍(薰風)이 불어 와서 스커ㅡ트, 아니 너무나, 슬퍼 보이는, 아니, 좀

슬퍼 보이는 홍발(紅髮)을 건드리면ㅡ

좀 슬퍼 보이는 홍발(紅髮)을 나븟나븟 건드리면ㅡ

여상(如上)이다. 이 개기름 도는 가소(可笑)로운 무대(舞臺)를 앞에 두고 나는 나대로 나다웁

게 가문(家門)이라는 자자레한「투(套)」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잊어버리지 않고 채석장(採石

場) 희멀건 단층(斷層)을 건너다보면서 탄식(歎息) 비슷이

「지구(地球)를 저며내는 사람들은 광시(光是) 자연(自然) 파괴자(破壞者)리라」는 둥

「개아미집이야말로 과연(果然) 정연(整然)하구나」라는 둥

「비가 오면, 아ㅡ천하에 비가 오면」

「작년(昨年)에 났던 초목(草木)이 올해에도 또 돋으려누, 귀불귀(歸不歸)란 무엇인가」라는

둥ㅡ

치례 잘 하면 제법 의젓스러워도 보일 만한 가장 한산(閑散)한 과제(課題)로만 골라서 점잖게

방심(放心)해 보여 놓는다.

정말일까? 거짓말일까. 정희(貞姬)가 불쑥 말을 한다. 한 소리가「봄이 이렇게 왔군요」하고

웃니는 좀 사이가 벌어져서 보기 흉한 듯하니까 살짝 가리고 곱다고 자처(自處)하는 아랫니를

보이지 않으려고 했지만 부지불식(不知不識)간에 그렇게 내어다보인 것을 또 어쩝니까 하는

듯싶이 가증하게 내어 보이면서 또 여간해서 어림이 서지 않는 어중간(於中間)한 얼굴을 그 위

에 얹어 내세우는 것이었다.

좋아, 좋아, 좋아 그만하면 잘 되었어,

나는 고개 대신에 단장을 끄덕끄덕해 보이면서 창졸간에 그만 정희(貞姬) 어깨 위에다 손을 얹

고 말았다.

그랬더니 정희(貞姬)는 저으기 해괴해 하노라 는 듯이 잠시(暫時)는 묵묵(默默)하더니ㅡ

정희(貞姬)도 문벌(門閥)이라든가 혹(或)은 간단(簡單)히 말해 에티케잍이라든가 제법 배워서

짐작하노라고 속삭이는 것이 아닌가.

꿀꺽!

넘어가는 내 지지한 종생(終生), 이렇게도 실수(失手)가 허(許)해서야 물질적(物質的) 전 생애(

全生涯)를 탕진(蕩盡)해 가면서 사수(死守)하여 온 산호편(珊瑚篇)의 본의(本意)가 대체(大體)

어디 있느냐? 내내(乃乃) 울화가 복받쳐 혼도(昏倒)할 것 같다.

흥천사(興天寺) 으슥한 구석방에 내 종생(終生)의 갈력(竭力)이 정희(貞姬)를 이끌어들이기도

전에 나는 밤 쓸쓸히 거짓말깨나 해 놓았나보다.

나는 내가 그윽히 음모(陰謀)한 바 천고불역(千古不易)의 탕아(蕩兒), 이상(李箱)의 자자레한

문학(文學)의 빈민굴(貧民窟)을 교란(攪亂)시키고자 하던 가지가지 진기(珍寄)한 연장이 어느

겨를에 빼물르기 시작한 것을 여기서 깨단해야 되나보다. 사회(社會)는 어떠쿵, 도덕(道德)이

어떠쿵, 내면적(內面的) 성찰(省察) 추구(追求) 적발(摘發) 징벌(懲罰)은 어떠쿵, 자의식과잉(

自意識過剩)이 어떠쿵, 제깜냥에 번지레한 칠(漆)을 해 내어걸은 치사스러운 간판(看板)들이

미상불(未嘗不) 우스꽝스럽기가 그지없다.

「독화(毒花)」

족하(足下)는 이 꼭둑각시 같은 어휘(語彙) 한 마디를 잠시(暫時) 맡아가지고 게서보구료?

예술(藝術)이라는 허망(虛妄)한 아궁지 근처(近處)에서 송장 근처(近處)에서보다도 한결 더 썰

썰 기고 있는 그들 해반주룩한 사도(死都)의 혈족(血族)들 땟국내 나는 틈에 가 낑기워서, 나

는ㅡ

내 계집의 치마 단속곳을 갈갈이 찢어 놓았고, 버선켤레를 걸레를 만들어 놓았고, 검던 머리에

곱던 양자, 영악(獰惡)한 곰의 발자국이 질컥 디디고 지나간 것처럼 얼굴을 망가뜨려 놓았고,

지기친척(知己親戚)의 돈을 뭉청 떼어 먹었고, 좌수터 유래(由來) 깊은 상호(商號)를 쑥밭을

만들어 놓았고, 겁쟁이 취리자(取利者)는 고랑떼를 먹여 놓았고, 대금업자(貸金業者)의 수금

인(收金人)을 졸도(卒倒)시켰고, 사장(社長)과 취체역(取締役)과 사둔과 아범과 애비와 처남(

妻男)과 처제(妻弟)와 또 애비와 애비의 딸과 딸 이 허다중생(許多衆生)으로 하여금 서로 서로

이간을 부치고 부치게 하고 얼버무려져 싸움질을 하게 해 놓았고 삭월세방(貰房) 새 다다미에

잉크와 요강과 팥죽을 엎질렀고, 누구누구를 임포텐스를 만들어놓았고ㅡ

「독화(毒花)」라는 말의 콕 찌르는 맛을 그만하면 어렴풋이나마 어떻게 짐작이 서는가 싶소

이까.

잘못 빚은 증(蒸)편 같은 시(詩) 몇 줄 소설 서너편을 꾀어차고 조촐하게 등장(登場)하는 것을

아 무엇인 줄 알고 깜박 속고 섣불리 손뼉을 한두번 쳤다는 죄(罪)로 제 계집 간음당한 것보다

도 더 큰 망신을 일신(一身)에 질머지고 그리고는 앙탈 비슷이 시치미를 떼지 않으면 안되는

어디까지든지 치사스러운 예의절차(禮儀節次)ㅡ마귀(魔鬼)(터주가)의 소행(所行)(덧났다)이라

고 돌려 버리자?

「독화(毒花)」

물론(勿論) 나는 내일(來日) 새벽에 내 길들은 노상(路上)에서 무려(無慮) 내게 필적(匹敵)하는

한 숨은 탕아(蕩兒)를 해후(邂逅)할는지도 마치 모르나, 나는 신바람이 난 무(巫)당처럼 어깨

를 치켰다 젖혔다 하면서라도 풍마우세(風磨雨洗)의 고행(苦行)을 얼른 그렇게 쉽사리 그만두

지는 않는다.

아ㅡ어쩐지 전신(全身)이 몹시 가렵다. 나는 무연(無緣)한 중생(衆生)의 뭇 원한(怨恨) 탓으로

악역(惡疫)의 범(犯)함을 입나보다. 나는 은근히 속으로 앓으면서 토일렛 정한 대야에다 양(兩

)손을 정하게 씻은 다음 내 자리로 돌아와 앉아 차근차근 나 자신(自身)을 반성(反省) 회오(悔

悟)ㅡ쉬운 말로 자자레한 세음을 좀 놓아 보아야겠다.

에티케잍? 문벌(門閥)? 양식(良識)? 번신술(番身術)?

그렇다고 내가 찔끔 정희(貞姬) 어깨 위에 얹었던 손을 뚝 떼인다든지 했다가는 큰 망발이다.

일을 잡치리라. 어디까지든지 내 뺨의 홍조(紅潮)만을 조심하면서 좋아, 좋아, 좋아, 그래만

주면 된다. 그리고나서 피차(彼此) 다 알아 들었다는 듯이 어깨에 손은 얹은 채 어깨를 나란히

흥천사(興天寺) 경내(境內)로 들어갔다. 가서 길을 별안간 잃어버린 것처럼 자분참 산(山) 우

으로 올라가 버린다. 산(山)우에서 이번에는 정말 포ㅡ즈를 할일 없이 무너뜨렸다는 것처럼

정교(精巧)하게 머뭇머뭇해 준다. 그러나 기실 말짱하다.

풍경(風磬)소리가 똑 알맞다. 이런 경우에는 제법 번듯한 식자(識字)가 있는 사람이면ㅡ

아ㅡ 나는 왜 늘 항례(恒例)에서 비켜서려 드는 것일까? 잊었느냐? 비싼 월사(月謝)를 바치고

얻은 고매(高邁)한 학문(學問)과 예절(禮節)을,

현역(現役) 육군중좌(陸軍中佐)에게서 받은 추상열일(秋霜烈日)의 훈육(訓育)을 왜 나는 이 경

우에 버젓하게 내세우지를 못하느냐?

창연(愴然)한 고찰(古刹) 유루(遺漏)없는 장치(裝置)에서 나는 정신차려야 한다. 나는 내 쟁쟁(

錚錚)한 이력(履歷)을 솔직(率直)하게 써먹어야 한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담배를 한대 피워물

고 도장(屠場)에 들어가는 소, 죽기보다 싫은 서투르고 근질근질한 포ㅡ즈 체모독주(體貌獨奏

)에 어지간히 성공해야만 한다.

그랬더니 그만두잔다. 당신의 그 어림없는 몸치렐랑 그만 두세요. 저는 어지간히 식상(食傷)

이 되었읍니다 한다.

그렇다면?

내 꾸준한 노력(努力)도 일조일석(一朝一夕)에 수포(水泡)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대체(大體) 정희(貞姬)라는 가련(可憐)한「석녀(石女)」가 제 어떤 재간으로 그런 음흉(陰凶)

한 내 간계(奸計)를 요만큼까지 간파(看破)했다는 것이다.

일시(一時)에 기진(氣盡)한다. 맥(脈)은 탁 풀리고는 앞이 팽 돌다 아찔하는 것이 이러다가 까

무러치려나보다고 극력(極力) 단장을 의지하여 버텨 보노라니까 희(噫)라! 내 기사회생(起死

回生)의 종생(終生)도 이번만은 회춘(回春)하기 장히 어려울 듯싶다.

이상(李箱)! 당신은 세상(世上)을 경영(經營)할 줄 모르는 말하자면 병신이오. 그다지도「미혹

(迷惑)」하단 말씀이오? 건너다보니 절터지요? 그렇다 하더라도「카라마죠프의 형제(兄弟)」

나「사십년(四十年)」을 좀 구경삼아 들러 보시지요.

아니지! 정희(貞姬)! 그게 뭐냐하면 나도 살고 있어야 하겠으니 너도 살자는 사기(詐欺), 속임

수, 일부러 만들어 내어놓은 미신(迷信), 중(中)에도 가장 우수(優秀)한 무서운 주문(呪文)이오

.

이상(李箱)! 그러지 말고 시험(試驗)삼아 한발만 한발자국만 저 개흙밭에다 들여놓아 보시지

요.

이 악보(樂譜)같이 스무ㅡ드한 담소(談笑) 속에서 비철비철하노라면 나는 내게 필적(匹敵)하

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의 탕아(蕩兒)가 이 목첩(目睫)간에 있는 것을 느낀다. 누구나 제 내어

놓았던 헙수룩한 포ㅡ즈를 걷어치우느라고 허겁지겁들 할 것이다. 나도 그때 내 슬하(膝下)의

이렇게 유산(遺産)되는 자손(子孫)을 느끼면서 만재(萬載)에 드리우는 이 극흉(極凶) 극비(極

秘) 종가(宗家)의 부(符)작을 앞에 놓고서 저으기 불안(不安)하게 또 한편으로는 저으기 안일(

安逸)하게 운명(殞命)하는 마지막 낙백(落魄)의 이 내 종생(終生)을 애오라지 발불(髮○)히 하

는 것이었다.

나는 내 분묘(墳墓)될 만한 조촐한 터전을 찾는 듯한 그런 서글픈 마음으로 정희(貞姬)를 재촉

하여 그 언덕을 내려 왔다. 등뒤에 들리는 풍경(風磬)소리는 진실로 내 심통(心痛)함을 도웁는

듯하다고 사자(寫字)하면 정경(情景)을 한층 더 반듯하게 매만져 놓는 한 도움이 되리라. 그럼

진실로 풍경(風磬)소리는 내 등 뒤에서 내 마지막 심통(心痛)함을 한층 더 들볶아 놓는 듯하더

라.

미문(美文)에 견줄 만큼 위태위태한 것이 절승(絶勝)에 혹사(酷似)한 풍경(風景)이다. 절승(絶

勝)에 혹사(酷似)한 풍경(風景)을 미문(美文)으로 번안(飜案) 모사(模寫)해 놓았다면 자칫 실

족(失足) 익사(溺死)하기 쉬운 웅덩이나 다름없는 것이니 첨위(僉位)는 아예 가까이 다가서서

는 안된다. 도스토예프스키ㅡ나 고리키ㅡ는 미문(美文)을 쓰는 버릇이 없는 체했고 또 황량(

荒凉), 아담(雅淡)한 경치(景致)를「취급(取扱)」하지 않았으되 이 의뭉스러운 어른들은 오직

미문(美文)은 쓸듯 쓸듯, 절승경개(絶勝景槪)는 나올듯 나올듯, 해만 보이고 끝끝내 아주 활짝

꼬랑지를 내보이지는 않고 그만둔 구렁이 같은 분들이기 때문에 그 기만술(欺瞞術)은 한층 더

진보(進步)된 것이며, 그런 만큼 효과(效果)가 또 절대(絶大)하여 천년(千年)을 두고 만년(萬年

)을 두고 내리 내리 부질없는 위무(慰撫)를 바라는 중속(衆俗)들을 잘 속일 수 있는 것이다. 그

러나ㅡ 왜 나는 미끈하게 솟아 있는 근대건축(近代建築)의 위용(偉容)을 보면서 먼저 철근철

골(鐵筋鐵骨), 시멘트와 세사(細砂), 이것부터 선뜩하니 감응(感應)하느냐는 말이다.

씻어 버릴 수 없는 숙명(宿命)의 호곡(號哭), 몽고레안푸렉게(몽고지[蒙古志]) 오뚝이처럼 쓰

러져도 일어나고 쓰러져도 일어나고 하니 쓰러지나 섰으나 마찬가지 의지할 얄팍한 벽(壁) 한

조각 없는 고독(孤獨), 고고(枯稿), 독개(獨介), 초초(楚楚).

나는 오늘 대오(大悟)한 바 있어 미문(美文)을 피(避)하고 절승(絶勝)의 풍광(風光)을 격(隔)하

여 소조(簫條)하게 왕생(往生)하는 것이며 숙명(宿命)의 슬픈 투시벽(透視癖)은 깨끗이 벗어

놓고 온아종용(溫雅慫慂), 외로우나마 따뜻한 그늘 안에서 실명(失命)하는 것이다.

의료(意料)하지 못한 이 홀홀(忽忽)한「종생(終生)」나는 요절(夭折)인가보다. 아니 중세최절(

中世崔折)인가보다, 이길 수 없는 육박(肉迫), 눈 멀은 떼까마귀의 매언(罵言) 속에서 탕아(蕩

兒) 중(中)에도 탕아(蕩兒) 술객(術客) 중(中)에도 술객(術客) 이 난공불락(難攻不落)의 관문(

關門)의 괴멸(壞滅), 구세주(救世主)의 최후연(最後然)히 방방곡곡(坊坊谷谷)이 여독(餘毒)은

삼투(渗透)하는 장식(裝飾) 중(中)에도 허식(虛飾)의 표백(表白)이다. 출색(出色)의 표백(表白)

이다.

내부(乃夫)가 있는 불의(不義). 내부(乃夫)가 없는 불의(不義), 불의(不義)는 즐겁다. 불의(不

義)의 주가락락(酒價落落)한 풍미(風味)를 족하(足下)는 아시나이까. 웃니는 좀 잇새가 벌고

아랫니만이 고운 이 한경(漢鏡)같이 결함(缺陷)의 미(美)를 갖춘 깜찍스럽게 새치미를 뗄 줄

아는 얼굴을 보라. 칠세(七歲)까지 옥잠화(玉簪花) 속에 감춰 두었던 장분(粉)만을 바르고 그

후 분(粉)을 바른 일도 세수를 한 일도 없는 것이 유일(唯一)의 자랑거리. 정희(貞姬)는 사팔뜨

기다. 이것은 무엇으로도 대항(對抗)하기 어렵다. 정희(貞姬)는 근시육도(近視六度)다. 이것은

무엇으로도 대항(對抗)할 수 없는 선천적(先天的) 훈장(勳章)이다. 좌난시우색맹(左亂視右色

盲) 아ㅡ 이는 실로 완벽(完璧)이 아니면 무엇이랴.

속은 후에 또 속았다. 또 속은 후에 또 속았다. 미만십사세(未滿十四歲)에 정희(貞姬)를 그 가

족(家族)이 강행(强行)으로 매춘(賣春)시켰다. 나는 그런 줄만 알았다. 한 방울 눈물ㅡ

그러나 가족(家族)이 강행(强行)하였을 때쯤은 정희(貞姬)는 이미 자진(自進)하여 매춘(賣春)

한 후 오래 오래 후(後)다. 다홍댕기가 늘 정희(貞姬) 등에서 나부꼈다. 가족(家族)들은 불의(

不意)에 올 재(災)앙을 막아 줄 단 하나 값 나가는 다홍댕기를 기탄(忌憚)없이 믿었건만ㅡ

그러나ㅡ

불의(不意)는 귀인(貴人)답고 참 즐겁다. 간음한 처녀(處女)ㅡ이는 불의(不義) 중(中)에도 가

장 즐겁지 않을 수 없는 영원(永遠)의 밀림(密林)이다.

그럼 정희(貞姬)는 게서 멈추나?

나는 자기소개(自己紹介)를 한다. 나는 정희(貞姬)에게 분모(分毛)를 지기 싫기 때문에 잔인(

殘忍)한 자기소개(自己紹介)를 하는 것이다.

나는 벼[도(稻)]를 본 일이 없다. 자전차(自轉車)를 탈 줄 모른다. 생년월일(生年月日)을 가끔

잊어버린다. 구십노조모(九十老祖母)가 이팔소부(二八少婦)로 어느 하늘에서 시집온 십대조(

十代祖)의 고성(古城)을 내 손으로 헐었고 녹엽천년(綠葉千年)의 호도나무 아름드리 근간(根

幹)을 내 손으로 베었다. 은행(銀杏)나무는 원통한 가문(家門)을 골수(骨髓)에 지니고 찍혀 넘

어간 뒤 장장사년(長長四年) 해마다 봄만 되면 독시(毒矢) 같은 싹이 엄돋는 것이었다.

나는 그러나 이 모든 것에 견뎠다. 한 번 석류(石榴)나무를 휘어잡고 나는 폐허(廢墟)를 나섰

다.

조숙(早熟) 난숙(爛熟) 감[시(枾)] 썩는 골머리 때리는 내. 생사(生死)의 기로(岐路)에서 완이

이소(莞爾而笑), 표한무쌍(剽悍無雙)의 요구(療軀) 음지(陰地)에 창백(蒼白)한 꽃이 피었다.

나는 미만(未滿) 십사(十四)쩍에 수채화(水彩畵)를 그렸다. 수채화(水彩畵)와 파과(破瓜). 보

아라 목저(木著)같이 야윈 팔목에서는 삼동(三冬)에도 김이 무럭무럭 난다. 김 나는 팔목과 잔

털 나 스르르한 매춘(賣春)하면서 자라나는 회충(蛔蟲)같이 매혹적(魅惑的)인 살결. 사팔뜨기

와 내 흰자위 없는 짝짝이 눈. 옥잠화(玉簪花) 속에서 나오는 기술(奇術) 같은 석일(昔日)의 화

장(化粧)과 화장(化粧) 전폐(全廢), 이에 대항(對抗)하는 내 자전차(自轉車) 탈 줄 모르는 아슬

아슬한 천품(天稟). 다홍댕기에 불의(不義)와 불의(不義)를 방임(放任)하는 속수무책(束手無策

)의 나태(懶怠).

심판(審判)이여! 정희(貞姬)에 비교(比較)하여 내게 부족(不足)함이 너무나 많지 않소이까?

비등(比等) 비등(比等)? 나는 최후(最後)까지 싸워 보리라.

흥천사(興天寺) 으슥한 구석방(房) 한 간 방석 두 개 화로(火爐) 한 개. 밥상 술상ㅡ

접전(接戰) 수십합(數十合). 좌충우돌(左衝右突). 정희(貞姬)의 허전한 관문(關門)을 나는 노

사(老死)의 힘으로 들이친다. 그러나 돌아오는 반발(反撥)의 흉기(凶器)는 갈 때보다도 몇 배(

倍)나 더 큰 힘으로 나 자신(自身)의 손을 시켜 나 자신(自身)을 살상(殺傷)한다.

지느냐. 나는 그럼 지고 그만두느냐.

나는 내 마지막 무장(武裝)을 전장(戰場)에 내어세우기로 하였다. 그것은 곧 주란(酒亂)이다.

한 몸을 건사하기조차 어려웠다. 나는 게울 것만 같았다. 나는 게웠다. 정희(貞姬) 스카ㅡ트에

다. 정희(貞姬) 스턱킹에다.

그리고도 오히려 나는 부족(不足)했다. 나는 일어나 춤추었다. 그리고 그 방(房) 뒤 쌍창(雙窓)

미닫이를 열어제치고 나는 예서 떨어져 죽는다고 마지막 한 벌 힘만을 아껴 남기고는 나머지

있는 힘을 다하여 난간을 잡아 흔들었다. 정희(貞姬)는 나를 붙들고 말린다. 말리는 데 안 말

리는 것도 같았다. 나는 정희(貞姬) 스카ㅡ트를 잡아 제쳤다. 무엇인가 철썩 떨어졌다. 편지다

. 내가 집었다. 정희(貞姬)는 모른 체한다.

속달(速達)(S와도 절연[絶緣]한 지 벌써 다섯달이나 된다는 것은 선생[先生]님께서도 믿어주

시는 바지요? 하던 S에게서 다)

『정희(貞姬)! 노(怒)하였소 어젯밤 태서관별장(泰西官別莊)의 일! 그것은 결(決)코 내 본의(本

意)는 아니었소. 나는 그 요구(要求)를 하려 정희(貞姬)를 그곳까지 데리고 갔던 것은 아니오.

내 불민(不憫)을 용서하여 주기 바라오. 그러나 정희(貞姬)가 뜻밖에도 그렇게까지 다소곳한

태도(態度)를 보여주었다는 것으로 저으기 자위(自慰)를 삼겠소.

정희(貞姬)를 하루라도 바삐 나 혼자만의 것을 만들어 달라는 정희(貞姬)의 열렬(熱烈)한 말을

물론(勿論) 나는 잊어버리지는 않겠소. 그러나 지금 형편으로는「아내」라는 저 추물(醜物)을

처치(處置)하기가 정희(貞姬)가 생각하는 바와 같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오.

오늘(삼월삼일[三月三日]) 오후(午後) 여덟시 정각(定刻)에 금화장(金華莊) 주택지(住宅地) 그

때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겠소. 어제 일을 사과(謝過)도 하고 싶고 달이 밝을 듯하니 송림(

松林)을 거닙시다. 거닐면서 우리 두 사람만의 생활(生活)에 대(對)한 설계(設計)도 의논하여

봅시다.

삼월삼일(三月三日) 아침 S』

내가 속달(速達)을 띄우고 나서 곧 뒤이어 받은 속달(速達)이다.

모든 것은 끝났다. 어젯밤에 정희(貞姬)는ㅡ

그 낯으로 오늘 정희(貞姬)는 내게 이상선생(李箱先生)님께 드리는 속달(速達)을 띄우고 그 낯

으로 또 나를 만났다. 공포(恐怖)에 가까운 번신술(飜身術)이다. 이 황홀(惶惚)한 전율(戰慄)을

즐기기 위하여 정희(貞姬)는 무고(無辜)의 이상(李箱)을 징발(徵發)했다. 나는 속고 또 속고 또

또 속고 또 또 또 속았다.

나는 물론(勿論) 그 자리에 혼도(昏倒)하여 버렸다. 나는 죽었다. 나는 황천(黃泉)을 헤매었다.

명부(冥府)에는 달이 밝다. 나는 또다시 눈을 감았다. 태허(太虛)에 소리 있어 가로대 너는 몇

살이뇨? 만이십오세(滿二十五歲)와 십일개월(十一個月)이올씨다. 요사(夭死)로구나. 아니올

씨다. 노사(老死)올씨다.

눈을 다시 떴을 때는 거기 정희(貞姬)는 없다. 물론(勿論) 여덟시가 지난 뒤였다. 정희(貞姬)는

그리 갔다. 이리하여 나의 종생(終生)은 끝났으되 나의 종생기(終生記)는 끝나지 않는다. 왜?

정희(貞姬)는 지금도 어느 삘딩 걸상 위에서 듀로워즈의 끈을 푸르는 중(中)이오 지금도 어느

태서관별장(泰西官別莊) 방석을 비이고 듀로워즈의 끈을 푸르는 중(中)이오 지금도 어느 송림

(松林) 속 잔디 벗어 놓은 외투(外套) 위에서 듀로워즈의 끈을 성(盛)히 푸르는 중(中)이니까

다.

이것은 물론(勿論)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재앙(災殃)이다.

나는 이를 간다.

나는 걸핏하면 까무러친다.

나는 부글부글 끓는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 철천(徹天)의 원한(怨恨)에서 슬그머니 좀 비켜서고 싶다. 내 마음의 따

뜻한 평화(平和) 따위가 다 그리워졌다.

즉 나는 시체(屍體)다. 시체(屍體)는 생존(生存)하여 계신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을 향(向)하

여 질투(嫉妬)할 자격(資格)도 능력(能力)도 없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깨닫는다.

정희(貞姬), 간혹 정희(貞姬)의 후툿한 호흡(呼吸)이 내 묘비(墓碑)에 와 슬쩍 부딪는 수가 있

다. 그런 때 내 시체(屍體)는 홍당무처럼 확끈 달으면서 구천(九天)을 꿰뚫어 슬피 호곡(號哭)

한다.

그동안에 정희(貞姬)는 여러 번 제 (내 때꼽째기도 묻은) 이부자리를 찬란한 일광(日光) 아래

널어 말렸을 것이다. 누누(累累)한 이 내 혼수(昏睡) 덕으로 부디 이 내 시체(屍體)에서도 생전

(生前)의 슬픈 기억(記憶)이 창궁(蒼穹) 높이 훨 훨 날아가나 버렸으면ㅡ

나는, 지금 이런 불쌍한 생각도 한다. 그럼ㅡ

ㅡ만이십육세(滿二十六歲)와 삼십개월(三十個月)을 맞이하는 이상선생(李箱先生)님이여! 허

수아비여!

자네는 노옹(老翁)일세. 무릎이 귀를 넘는 해골(骸骨)일세. 아니, 아니.

자네는 자네의 먼 조상(祖上)일세. 이(以) 상(上)

십일월(十一月) 이십일(二十日) 동경(東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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