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x250
반응형

일본 독립영화 <해피 아워(ハッピーアワー)>는 러닝타임만 무려 317분, 약 5시간 17분에 달하는 이례적인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주목받은 이유가 단순히 영화가 길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5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네 여성의 우정과 결혼, 이혼, 외도, 배신과 침묵을 따라가면서 우리가 평소 영화에서 생략해 버리는 일상의 순간들을 집요할 정도로 오래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해피 아워>는 <드라이브 마이 카>와 <아사코>로 잘 알려진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초기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이후 그의 영화에서 반복되는 '대화', '관계', '연기와 현실의 경계'를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작품입니다.

기본 정보

  • 원제: ハッピーアワー (Happy Hour)
  • 개봉: 2015년 일본 / 2021년 12월 9일 한국
  •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 각본: 하마구치 류스케, 노하라 타다시, 다카하시 토모유키
  • 러닝타임: 317분
  • 주요 출연: 다나카 사치에, 기쿠치 하즈키, 미하라 마이코, 가와무라 리라
  • 배경: 일본 고베
  • 출발점: 고베의 창작 공간 KIITO에서 진행된 하마구치 류스케의 연기 워크숍
  • 주요 수상: 제68회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네 주연 배우가 공동 여우주연상을 수상

특히 이 작품의 탄생 과정은 독특합니다. 주요 배우들은 전통적인 의미의 전문 배우들이 아니라 하마구치 감독의 워크숍에 참여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감독은 참가자들과 장기간에 걸쳐 신체 훈련과 대화를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관계와 경험을 영화의 중요한 바탕으로 삼았습니다.

등장인물

영화의 중심에는 고베에 사는 네 명의 여성 친구가 있습니다.

  • 아카리: 간호사. 이혼 후 혼자 생활하고 있습니다.
  • 사쿠라코: 전업주부. 시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아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 후미: 예술 관련 공간인 'PROTO'를 운영합니다. 출판사 편집자인 남편 타쿠야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 준: 네 사람의 친구. 남편 코헤이와 이혼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이들은 오랫동안 친구로 지냈기 때문에 서로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관객은 오히려 '가까운 관계일수록 상대방을 완전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줄거리 — 스포일러 포함

네 친구는 후미가 기획한 워크숍에 참가합니다.

워크숍에서는 서로 등을 맞대고 균형을 찾는 신체 활동부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과정까지 진행됩니다.

특히 신체의 균형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경험은 영화 전체를 이해하는 중요한 장면 가운데 하나입니다.

타인의 몸에 기대어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것처럼, 인간관계 역시 혼자만의 힘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기대고 반응하면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워크숍을 계기로 네 친구가 서로에게 숨겨 왔던 문제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준은 남편 코헤이와 이혼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털어놓습니다.

하지만 준의 이혼 과정은 순탄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과거 외도 사실이 문제로 제기되고, 남편 역시 이혼에 쉽게 동의하지 않습니다.

준은 이혼을 성립시키기 위해 남편이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도록 유도하는 행동까지 보입니다. 그러나 상황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결국 준은 혼자 생활할 공간을 마련하고 남편과 떨어져 지내게 됩니다.

그러던 중 코헤이는 준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알립니다.

영화의 중반부에서 네 친구는 오랫동안 계획해 왔던 1박 2일 온천 여행을 떠납니다.

이 여행은 네 사람이 오랜 우정을 확인하는 시간이 될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관계가 완전히 달라지는 전환점이 됩니다.

준은 여행 마지막에 다른 세 사람에게 먼저 돌아가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떠나는 세 친구와 홀로 남은 준의 모습이 교차됩니다.

이후 준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사라집니다.

그녀는 이혼을 위해 필요한 별거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여성 보호시설에 머물게 됩니다.

준의 잠적은 남은 세 친구의 삶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옵니다.

사쿠라코

사쿠라코의 결혼생활은 이미 오래전부터 균열이 생겨 있었습니다.

아들의 연애와 임신 문제까지 겹치면서 그녀의 가족관계는 더욱 복잡해집니다.

그런 가운데 사쿠라코는 다른 남성과 관계를 맺게 되고, 여행에서 돌아온 뒤 남편에게 자신의 외도를 이야기합니다.

남편은 겉으로는 크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후 길에서 혼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두 사람의 결혼생활이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후미

후미 역시 자신의 결혼생활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남편 타쿠야가 담당하는 신인 작가 노세 코즈에와의 관계가 단순한 업무 관계만은 아닌 듯한 분위기를 후미는 감지합니다.

하지만 후미는 이를 즉각적으로 추궁하지 않습니다.

노세의 낭독회와 그 이후의 식사 장면에서 인물들 사이의 미묘한 긴장이 서서히 드러납니다.

특히 이 장면들은 큰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데도 이상할 정도로 불편하고 긴장감이 높습니다.

아카리

아카리는 준의 잠적을 통해 자신이 가장 가까운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조차 모든 것을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준에게 느끼는 배신감은 단순히 친구가 사라졌다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관계 자체에 대한 의문이 생긴 것입니다.

결말이 특별한 이유

<해피 아워>에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극적인 해결이 거의 없습니다.

준의 문제도, 사쿠라코의 결혼생활도, 후미가 느끼는 의심도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모든 관계가 회복되는 장면도 없습니다.

오히려 인물들은 각자의 문제를 그대로 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바로 이 지점이 <해피 아워>의 가장 독특한 부분입니다.

영화는 삶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반드시 영화적인 방식으로 해결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 우리의 삶에서도 어떤 관계는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채 계속되고, 어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합니다.

<해피 아워>는 바로 그 '다음 날'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1. 삶에는 깔끔한 결말이 없다

<해피 아워>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 가운데 하나는 '미완성'입니다.

준의 이혼, 사쿠라코의 외도, 후미의 의심, 아카리의 배신감 가운데 어느 것도 전형적인 영화처럼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영화가 끝난 뒤에도 인물들의 삶이 계속될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오히려 이것이 영화가 현실에 가까워지는 방식입니다.

현실에서는 갈등이 생겼다고 해서 반드시 화해하거나 결별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그 관계를 계속 살아가기도 합니다.

2. 준의 잠적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려는 행동'으로 볼 수 있다

준의 행동은 단순한 도피로만 보기 어렵습니다.

그녀는 법정과 남편의 결정에 자신의 삶을 완전히 맡기는 대신, 스스로 사라지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합니다.

물론 이러한 행동을 무조건 긍정적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준의 행동을 통해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개인이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질문을 던집니다.

특히 준의 과거 외도와 이혼 과정이 주변의 시선과 법적 절차 속에서 어떻게 다뤄지는지를 보면, 여성의 결혼과 이혼을 둘러싼 사회적 시선에 대한 문제의식을 읽어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것을 영화의 유일한 메시지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여러 해석 가운데 하나로 보는 편이 적절합니다.

3. 워크숍은 인간관계의 축소판처럼 기능한다

영화 초반의 워크숍은 단순한 도입부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서로의 몸에 기대어 균형을 잡고,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며, 낯선 사람과 관계를 만들어 갑니다.

그 과정은 영화 속 네 친구의 관계와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면서 살아가지만, 동시에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습니다.

가까운 친구라고 해서 상대방의 내면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워크숍에서의 '균형'은 이후 네 친구의 관계가 흔들리는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장치로 볼 수 있습니다.

4. 긴 러닝타임 자체가 영화의 중요한 표현 방식이다

317분이라는 러닝타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닙니다.

보통 영화라면 짧게 처리했을 장면들이 <해피 아워>에서는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이어집니다.

사람들이 대화를 시작하기 전의 어색한 침묵, 말을 고르는 순간, 식사 중의 미묘한 분위기 같은 것들이 쉽게 잘려 나가지 않습니다.

그 결과 관객은 사건만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인물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길게 느껴지던 시간이 어느 순간부터 인물들의 삶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듯한 느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시간'은 단순한 러닝타임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을 전달하는 하나의 연출 수단입니다.

5. 말보다 침묵과 반응이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해피 아워>에서 중요한 것은 인물들이 말하는 내용만이 아닙니다.

말을 듣고 난 뒤의 침묵, 잠깐의 표정 변화, 상대방을 바라보는 시선 등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전달합니다.

특히 사쿠라코가 자신의 외도를 고백한 뒤 남편이 보이는 반응이나, 친구들이 준의 잠적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무슨 말을 했는가'보다 '그 말을 들은 뒤 어떻게 행동하는가'가 더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이러한 연출 때문에 관객은 인물의 감정을 직접 설명받기보다 스스로 추측하게 됩니다.

6. 현실과 연기의 경계

이 작품의 제작 과정 자체가 영화의 주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주요 배우들이 전문 배우가 아닌 워크숍 참가자 출신이라는 사실과, 영화 속에서도 워크숍과 낭독회처럼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장면이 반복된다는 점은 의미심장합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설명하고, 배우들은 카메라 앞에서 인물을 연기하며, 관객은 그 모습을 바라봅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은 타인에게 자신의 진짜 모습을 얼마나 보여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생겨납니다.

이러한 특징은 이후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들에서 더욱 발전하는 '대화와 연기, 현실과 허구의 경계'라는 관심과도 연결해서 볼 수 있습니다.

5시간 17분을 투자할 가치가 있을까?

<해피 아워>는 빠른 전개와 강한 사건을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물의 감정 변화와 인간관계의 미묘한 균열을 천천히 관찰하는 영화를 좋아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특히 이 영화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보다 '사람들이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보는 작품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317분이라는 긴 시간이 오히려 작품의 핵심적인 경험이 됩니다.

짧게 줄였다면 이해하기 쉬운 영화가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과 같은 독특한 감정의 밀도는 만들어지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마무리

<해피 아워>는 화려한 사건이나 명쾌한 결말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닙니다.

대신 우정, 결혼, 이혼, 외도, 배신, 침묵처럼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하거나 주변에서 접했을 법한 문제를 아주 긴 시간 동안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가까운 관계에서도 서로의 삶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지 질문합니다.

317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은 처음에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장벽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오히려 그 긴 시간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표현 방식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해피 아워>는 삶을 압축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말을 꺼내기까지 걸리는 시간, 상대방의 말을 받아들이는 시간,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시간, 그리고 아무런 해결책이 없어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시간까지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어쩌면 네 명의 여성만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계속 변하는 인간관계'인지도 모릅니다.

빠른 전개와 명확한 결말을 원하는 관객에게는 긴 여정이 될 수 있지만, 영화가 인간의 삶을 얼마나 천천히 바라볼 수 있는지 경험해보고 싶은 관객이라면 한 번쯤 도전해볼 만한 작품입니다.

 

 

300x250
반응형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