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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이광수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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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는 한국의 소설가, 시인, 독립운동가로, 한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하나입니다. 그는 1892년에 태어나 1950년에 사망했으며, 한국 근대 문학의 형성과 발전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주로 일제 강점기와 그로 인한 사회적 변화, 민족의 고통과 갈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광수의 대표적인 작품과 그의 삶에 대한 간략한 개요를 소개합니다.

이광수의 생애

  • 출생과 초기 생애: 이광수는 189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 부모를 잃고 힘든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 유학과 활동: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메이지 학원에서 공부했고, 이 시기에 많은 일본 문학과 서구 문학을 접했습니다. 귀국 후에는 언론 활동과 독립운동에 참여했습니다.
  • 문학 활동: 한국 최초의 근대 소설인 "무정"을 1917년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외에도 "흙", "단종애사" 등의 작품을 통해 한국 문학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 말년: 일제 강점기 동안 친일 행적으로 논란이 되었으며, 광복 이후에도 이로 인해 비판을 받았습니다. 1950년 한국 전쟁 중에 납북되어 그 후의 행적은 불분명합니다.

대표작

  • 무정 (1917): 한국 최초의 근대 소설로 간주되며, 일제 강점기 조선의 청년들의 사랑과 고뇌를 다룬 작품입니다.
  • 흙 (1932): 농촌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로, 농촌 사회의 문제와 이상을 그렸습니다.
  • 단종애사 (1928): 조선 단종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룬 역사 소설로, 단종의 비운을 통해 민족의 슬픔을 묘사했습니다.

이광수는 한국 문학의 선구자로서 많은 공헌을 했지만, 그의 친일 행적은 여전히 논란의 대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학적 업적과 한국 문학에 끼친 영향은 부정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이광수가 쓴 "이순신"은 1931년에 발표된 전기 소설로, 임진왜란 당시의 이순신 장군의 활약과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깊이 있게 그린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이순신의 영웅적 면모뿐만 아니라 그의 인간적인 고뇌와 민족을 위한 헌신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작품의 주요 내용

  • 어린 시절과 성장: 이순신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 그가 어떻게 장군이 되었는지를 서술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의 인품과 리더십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 임진왜란과 해전: 임진왜란 동안의 주요 전투와 이순신의 전술적 천재성을 묘사합니다. 특히 한산도 대첩, 명량 해전 등 역사적인 전투에서 이순신의 전략과 용맹함을 상세히 그립니다.
  • 인간 이순신: 영웅으로서의 이순신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고뇌와 가족에 대한 사랑, 그리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이순신이 겪은 고난과 그의 결단력, 민족적 사명을 다하는 모습을 통해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줍니다.

이광수의 "이순신"의 의의

이광수는 이순신의 이야기를 통해 당대의 독자들에게 민족적 자긍심과 애국심을 고취시키려 했습니다. 일제 강점기라는 어려운 시기에 이순신의 영웅적 서사를 통해 조선 민족의 저항 의지를 북돋우고자 한 것입니다. 이 작품은 역사 소설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중요한 문학적 기여를 했습니다.

이광수의 "이순신"은 단순한 역사 전기가 아니라,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통해 당대의 사회적, 정치적 맥락에서 민족적 정체성과 저항 정신을 재확립하려는 의도가 담긴 작품입니다. 이로 인해 이순신 장군은 한국인들에게 더욱 중요한 역사적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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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이광수

1931

 

거북선

1

아무리 전라 좌수영이 남쪽 끝이라 하여도 이월이면 아직도 춥다.

굴강(병선을 들여 매는 선창) 안에 있는 물은 잔잔해서 마치 봄빛을 보이는 것 같지마는 굴강 밖에만 나서면 파란 바닷물이 사물거리는 물결에서는 찬 기운이 돌았다.

굴강 안에는 대맹선(大猛船) 두 척, 중맹선 육척, 소맹선(小猛船) 이척, 무군 소 맹선( 小猛船) 칠척, 도 한 십 칠척이 배가 매여 있다. 그러나 명색은 갖추었어도 배들은 반 넘어 썩고 이름 모를 조개들만 제 세상인 듯이 배들의 가슴과 옆구리를 파먹느라고 다닥다닥 붙어 있다. 법으로 말하면 병선은 새 로지은 지 팔년 만에 한 번 중수해야 하고 그로부터 육년 만에 개조해야 하고 또 그 로부터 육년만에는 낡은 배는 내어 버리고 새 배를 지어야 하건마는 차차 법이 해이하여 일년 이차 뱃바닥을 굽는 것(배를 매여달고 그 밑에 불을 피워 뱃 바닥 창널을 그슬리는 것)조차 벌제 위명(伐齊爲名)이 되고 말았다.

금년 (신묘년) 정월, 새 수사(水使) 이 순신(李舜臣)이 도임함으로부터 배와 군사는 전부 엄중한 점고를 받아서 쓸 것 못 쓸 것을 가리어 놓게 되었다.

수군 오백 팔십인 중에 정말 쓸 만한 것은 삼백인도 못되고 그 나머지 이백팔십여 명 중에 백여 명은 나이 육십이 넘어 군사 노릇 못할 늙은이들이요, 그밖에 일백 팔십여 명은 이름뿐이요 사람은 없었다. 사람이 이러하니 병기는 말 할것도 없다.

지금 저 굴강 안에 있는 썩은 배에 들러붙은 사람들은 신관 사또 도임 후에 배를 고치는 목수들이다. 쓱쓱...하는 톱질 소리, 떵 떵 떵떵......하는 못 박는 소리, 뱃바닥 굽는 화롯불 연기.

그리고 저 바로 복 파정(伏波亭앞 넓은 마당에 가로놓인 괴물이야말로 새 수 사이 순신이 몸소 도편수가 되어서 짓는 맨 처음 거북선이다.

선조 신묘 이월(宣祖辛卯二月)!

이것은 세계 최초의 장갑선(배를 윗집으로 덮어서 사람이 밖에 드러나지아니하고 윗집 밑에서 활동하게 만든배)인 조선 거북선이 처음으로 지어진 심히 영광 스럽고 기념할 만한 달이다.

땅 땅 땅땅......복 파정 앞에는 까뀌 소리, 끌 소리, 톱 소리, 못 박는 소리...... 실로 기운차고 바쁘다. 청홍동달이 소매 좁은 군복에 홍 전복을 입 고옥 로. 금패. 패 영단 전립을 쓴 아랫수염 길고 키는 중키요. 얼굴 희고 눈초리 약간 위로 올라가고 콧마루 서고 귀 크고 두터운 사십 오륙 세의 장관. 그는 물어 볼 것 없이 정읍 현감(井邑懸監)으로 있다가 우의정(右議政) 유성룡( 柳成龍) 의 천으로 전라 좌도 수군 절도사(全羅左道水軍節度使)가 되어 지난달에 도임한 이 순신이다.

이 수사는 뒷짐을 지고 지어지는 중에 있는 거북선 가으로 돌아다니면서 이 리보고 저리보고 친히 지휘를 하고 있다. 배는 거의 다 완성이 되어 앞으로 십여 일 이면 손을 뗄 예정이다. 그래서 아무리 늦더라도 삼월 십오일에는 요 샛 말로 이르면 진수식을 할 작정이었다.

벌써 배는 거북의 모양을 거의 이루었다. 아직 눈알은 박지 아니 하였으나 길이가 사척 삼촌. 넓이가 삼척이라는 알아듣기 쉽게 말하면. 키 적은 사람 둘을가로 놓은 듯한 거북의 머리도 이제는 완성이 되고 그등의 귀갑 무늬도 반 이나 그려졌다.

2

이 수사는 흉물스럽게 딱 벌린 거북의 입을 바라보고 마음에 드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인제 저 입에다가 유황 염초 불을 피워서 그름 같이 연기를 피우 적진중으로 달려 들어가 그 입으로 불길과 포환을 뿜어.하고 수사는 자신 있는 듯이 빙그레 웃었다.

저 배도 뜰까?

사람들은 새 수사의 계획에 의심을 가졌다. 첫째는 그 배가 너무 큰 것.

둘째는. 그 배에 쓰는 널이 너무 투박한 것. 셋째는. 대관절 저런 흉물스러운 배는 해서 무엇하느냐 하여 그 용처를 모르는 것.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 그 중에도 물에 이고 배에 익다는 사람들이 뒷 구멍으로 수사의 어리석은 계획을 비웃었다. 병선이면 예로부터 대맨선도 있고 중맹선도 있고 소맹선도 있지 아니하냐 이러한 좋은 배들도 다 쓸 데가 없어서 법수에 배여서 썩는 판인데 저런 만나 역대에 보지도 못하던 배는 지어서 무엇하느냐 하는 것이 사람들의 생각 이었다. 수사의 부관이라고 할 김 우후()까지도 감히 인밖에 내어서 말은 못하나 경험 없는 수사의 철없는 장난이라고 밖에 생각하지 아니하고. 만일 새로 짓는 배가 불성공이 되면은 비밀히 자기와 척분 있는 병조 판서에게 보고 하여 한번 신 수사 이 순신이 떨어지는 양을 보리라 하였다.

그러나 이 수사는 남들이야 무엇이라고 비웃든지 공사만 끝내고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배 짓는 감독을 몸소 하였다. 다행히 도편수 한 대선은 수사가 정읍에 있을 때부터 사귀어서 여러 번 거북선 모형을 만들게 한 수사의 뜻을 잘 알 아들 엇 이를테면 수사의 유일한 동지라 할 것이요. 그 밖에 수사의 병선 신조.

수군 대혁신의 정신을 알아주는 사람으로 바로 이 수사의 부하 되는 전라좌수영 군관 송 회립(宋烯立)과 녹도 만호(鹿都萬戶)정 운(鄭運)이 있을 뿐이었다. 군관 송희힙은 본래 순천부 사람이었다. 나이 오십이 가까웁되 본래 시골 사람이서 죄수영 군관 이상에 오를 수가 없었다. 역대 수사나 우후 중에 송희립을 별로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으나 이번 수상 이 순신은 도임한 지 며칠 이아니 되어서 군관 송희립이 녹록한 사람이 아닌 것을 간파하였다. 그리고 녹도 만호 정 운도 만일 서울에 반연을 둔 사람일진댄 벌써 병사나 수사 한 자리는 할 만한 인물이요. 이 순신도 꽤 푸대접받은 사람이지마는 그래도 그에게는 유성룡과 같이 알아서 천해 주는 사람이 있었지마는 전혀 서울에서 끌어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또 천성이 개결하고 자부가 자못 높아서 남의 앞에 무릎을 굽히지 아니하기 때문에 오십 평생을 권관(權管). 만호(萬戶)로만 돌아다니고 첨 절 제사( 僉節制使). 동첨절제사(同僉節制使)한 자리 얻어 하지 못하였다.

이 녹도 만호 저 웅니 이 수사의 눈에 띄게 된 것은 이 수상가 새로 도 임하 여관하 각 진을 순회할 때에 녹도진의 병선. 군사. 군기가 가장 정제한 것을 발견한 데에 있었다. 이때에 중앙과 지방을 물온하고 위로 정승 판서 로부터 밑으로는 외방 말직에 이르기까지 모두 속속들이 부패하여 서빙 공 영사( 憑公營私) 로 일을 삼음으로 사만팔천 팔백 수순. 오천 구백 육십 조 졸( 漕卒).팔백여 병선이라고 하여도 명색뿐인 중에 정 운 같은 장수를 만난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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