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정조의 문예부흥기부터 순조 연간 초기에 활동한 조선시대의 화가인 김홍도의 작품이 아닌 것은 무엇인가요?
서당
씨름
미인도
김홍도는 1745년(영조 21)에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 강세황의 천거로 도화서 화원이 되었고, 29세 때 영조와 왕세자의 어진을 그렸으며, 그로 인해 벼슬길에 올라 여러 관직을 거쳤습니다.
김홍도는 산수화, 인물화, 풍속화 등 모든 장르에 능하였지만, 특히 풍속화에서 그의 천재적인 역량을 발휘하였습니다. 그의 풍속화는 서민들의 생활상을 해학적으로 표현하여 조선 후기 서민문화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으며, 대표작으로는 '서당', '씨름', '무동' 등이 있습니다.
김홍도는 또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화가 중 한 명으로, 그의 작품은 국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그의 작품은 조선시대 회화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김홍도는 1806년(순조 6)에 사망하였으며, 그의 아들인 김양기도 아버지를 이어 화가로 활동하였습니다.
신윤복(申潤福, 1758년 ~ 1814년경)은 조선 후기의 화가로,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입부(笠父)·덕여(德如), 아명은 가권(可權)이며, 첨사 신한평의 아들입니다.
신윤복은 김홍도, 김득신과 더불어 조선 3대 풍속화가로 불리며, 특히 기녀와 한량을 중심으로 한 남녀 간의 애정을 그린 풍속화로 유명합니다. 그의 작품은 섬세하고 유려한 필선과 아름다운 채색을 사용하여 세련된 감각과 분위기를 자아내며, 조선시대의 사회상과 인간의 감정을 잘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미인도', '단오도', '선유도' 등이 있으며, 국보 제135호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은 신윤복의 풍속화를 모은 화첩으로, 조선시대 회화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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