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꿈
방정환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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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환의 나비의 꿈은 그가 어린이들을 위해 지은 동화 중 하나입니다.
- 1923년 <어린이> 7월 호에 처음 발표되었고, 이후 1925년 <동아일보>, 1927년 <조선일보>에도 실려 총 세 번 발표된 동화입니다.
-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린이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쓰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내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으며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저자소개
방정환(方定煥, 1899년 11월 9일 - 1931년 7월 23일)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아동문화운동가, 어린이 교육인, 사회운동가이며 어린이날의 창시자입니다.
대한제국의 한성부 서부 적선방 아주현계에서 태어나, 본관은 온양(溫陽), 호는 소파(小波)입니다.
보성전문학교를 거쳐 일본 도요대학에서 아동예술과 아동심리학을 공부했습니다.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독립선언문을 배포하다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기도 했으며 1920년에는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하여 어린이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는 일에 힘썼습니다.
1923년에는 한국 최초의 아동 잡지인 '어린이'를 창간하고, 어린이날을 제정하여 어린이 인권 향상과 보호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한국 근대사에서 아동 및 청소년의 인권을 연구 · 진흥한 선구자격 인물인 동시에, 한국 아동교육학 및 아동문학의 상징이 되는 작가들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980년 건국포장, 1978년 금관문화훈장을 추서 받았으며, 그가 어린이의 인격 및 행복 추구를 위해 1923년부터 기념하기 시작한 어린이날은 오늘날에도 한국의 대표적인 국가 공휴일로 남아 있습니다.
나비의 꿈
어느 들에 어여쁜 나비가 한 마리 살고 있었습니다. 나비는 날마다 아침
때 부터 꽃밭에서 동산으로, 동산에서 꽃밭으로 따뜻한 봄볕을 쪼이고 날아
다니면서 온종일 춤을 추어, 여러 가지 꽃들을 위로해 주며 지내었습니다.
하루는 어느 포근한 잔디밭에 앉아서 따뜻한 볕을 쪼이면서,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여신께서는 나를 보시고,
‘즐겁게 춤을 추어 많은 꽃들을 기껍게 해 주는 것이 너의 직책이다!’
하셨습니다.
‘나는 오늘 지금까지 모든 꽃들을 모두 기껍게 해 주기 위하여, 내 힘껏
하여 왔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지 좀더 좋은 일을 했으면 좋겠다.’
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후부터는 날마다 그 ‘더 좋은 일’만 생각하고 있
었습니다.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나비는 그 날도 온종일 재미롭게 춤을 추었기 때문
에, 저녁때가 되니까 몹시 고단하여서, 일찍이 배추밭 노오란 꽃가지에 누
워서, 콜콜 가늘게 코를 골면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꿈을 꾸었습니다.
나비는 전과 같이 이리저리 펄펄 날아다니노라니까, 어느 틈에 전에 보지
못하던 모르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거기는 시골같이 쓸쓸스런 곳인데, 나직
한 언덕 위에 조그마한 집이 한 채 있었습니다.
“에그? 어떻게 이런 곳으로 왔을까!”
하고, 나비는 이상해 했습니다. 그리고, 언뜻 보니까, 그 조그마한 집 뒤뜰
에는 동백나무가 서 있고, 나무에는 빨간 동백꽃이 많이 피어 있으므로, 나
비는 그 꽃 위에 앉아서 날개를 쉬고 있었습니다.
따뜻하게 볕만 퍼지고 동네도 조용하고, 이 조그만 집도 사람 없는 집같
이 조용하였습니다.
그러더니, 이 빈 집같이 조용하던 집에서 나직하고 조심스런 소녀의 소리가
들리었습니다.
“이애 민수야, 얼른 나아야 약을 먹고 얼른 나아야 아니하니? 네가 이렇
게 앓아 누웠기만 하면, 누나가 쓸쓸하지 않으냐?”
분명히 병든 동생의 머리맡에 앉아서 근심하는 소리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병든 동생이 기운 없는 말로 대답하는 것이 들렸습니다.
“누나, 나는 약 먹기 싫어요! 써서 어떻게 먹우. 약보다도 나는 동산에가고 싶어요. 살구꽃하고 복사꽃이 피었겠지요. 응? 누나야, 작년처럼 동산
에 올라가서 새 우는 소리도 듣고,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 싶어요.
아아, 어서 동산에를 가 보았으면!”
나비는 이 가느다란 불쌍한 소리를 듣고, 퍽 마음이 슬펐습니다.
잠이 깨어 눈이 뜨였습니다. 벌써 날이 밝아서 세상이 훤하였습니다. 나비
는 지난 밤에 꾼 꿈을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히 생각하였습니다. 생각할수
록 어디인지 분명히 그런 불쌍한 어린 남매가 있는 것같이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비는 가끔가끔 놀러 오는 동무 꾀꼬리에게 찾아가서, 그 꿈 이
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마음 착한 꾀꼬리도 그 말을 듣고,
“그럼 분명히 그런 불쌍한 남매가 어딘지 있는 모양일세.”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 앓는 동생이 새 소리를 듣고 싶고, 나비를 보고 싶드라고 하더라니,
우리가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둘이 찾아가 보세그려.”
하였습니다.
나비와 꾀꼬리는 꿈에 본 집을 찾으러 나섰습니다. 그러나, 어디 어느 곳
에 그런 집이 있는지 아는 수가 있겠습니까. 하는 수 없이 쩔쩔매다가, 마
침 높이 떠서 날아오는 기러기를 불렀습니다.
서늘한 나라를 찾아서 북쪽으로 향하고 먼 길을 가던 기러기는 꾀꼬리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내려왔습니다.
“남쪽에서 오시는 길에 혹시 언덕 위에 조그만 집에 어린 동생이 앓아 드
러누웠고, 누이가 울고 있는 불쌍한 남매를 보지 못하였습니까? 우리는 그
집을 찾아가려고 그럽니다.”
하고, 꿈꾼 이야기를 자세히 하였습니다. 기러기는 그 말을 듣고,
“아아, 알고말고요. 착한 남매가 불쌍하게 근심을 하고 있습니다. 어서
가보십시오. 여기서 저어 남쪽으로 쭈욱 가서, 아마 십 리는 될 거요. 여기
서 곧장 가면, 그 언덕 있는 곳이 보입니다. 어서 가 보십시오.”
하고 아르켜 주고 북쪽 나라로 갈 길이 멀고 급하다고 인사하고 갔습니다.
나비와 꾀꼬리는 기꺼워서 한숨에 갈 듯이 남쪽으로 날아갔습니다. 한참이
나 가니까, 언덕이 보였습니다. 그 언덕 위에는 꿈에 보던 그 조그만 집이
있고, 뒤뜰에는 꿈에 앉았던 동백꽃도 피어 있었습니다. 어떻게도 반가운
지,
“여기다, 여기다.”
하고 나비는 꾀꼬리를 데리고 동백꽃 나무에 앉아서,
“아가씨 아가씨, 문 열어 주십시오.”
하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불러도 방 속에서도 아무 대답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꾀꼬리가,
“아무리 부른들 알아들을 리가 있나.”
하고, 이번에는 자기가 그 어여쁜 목소리로,
“꾀꼴 꾀꼴 꾀꼴꼴…….”
하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방 속에서 깜짝 놀래는 듯한 소리가 나
더니, 방문이 드르륵 열렸습니다.
꾀꼬리는 그냥 자꾸 노래를 불렀습니다.
방문을 열고 내다보는 사람은 열두 살쯤 되어 보이는 얌전한 소녀였습니
다. 꾀꼬리와 나비가 나란히 앉았는 것을 보고, 몹시도 반가워하면서, 마치
반가운 사람이나 만난 듯이 기뻐서 어찌할 줄을 모르며, 사람에게 하는 말
같이,
“아이구 고마워라, 꾀꼬리도 나비도 왔구먼……. 민수가 어떻게 너희들을
보고 싶어했는지 모른단다.”
하고는,
“에그, 민수가 보게 방에까지 들어왔으면 좋으련만…….”
하였습니다.
나비와 꾀꼬리는 후루루 날아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방이라야 좁다란 한
칸 방인데, 아홉 살쯤된 어린 사내아이가 마르고 파아란 얼굴에 눈을 감고
누워서 잠이 든 것 같기도 하고, 죽은 것 같기도 하였습니다.
“민수야, 눈을 떠 보아라. 꾀꼬리와 나비가 왔다.”
하면서, 소녀는 동생을 부드럽게 흔들어서 깨웠습니다.
꾀꼬리는 목소리를 곱게 내어 재미있고 씩씩하게,
“꾀꼴 꾀꼴 꾀꼴꼴…….”
하고, 노래를 정성껏 불렀습니다. 나비는 그 노래에 장단을 맞춰서, 재주껏
화려하게 춤을 덩싱덩실 추면서, 병든 어린이의 자리를 빙빙 돌았습니다.
그야말로 세상에서 들을 수 없는 훌륭한 음악이요, 진기한 무도이었습니
다.
거슴프레하게 떴던 병든 소년의 두 눈은 점점 크게 떠지면서 생기가 나면
서 춤추며 돌아다니는 나비를 따르고, 귀는 아름다운 꾀꼬리의 노랫소리를
정성스럽게 듣고 있었습니다.
꾀꼬리와 나비는 열심히 열심히 재주와 정성을 다하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습니다.
그러니까 병든 소년의 눈을 점점 점점 광채가 나기 시작하고, 파아란 얼굴
에는 붉은 혈기가 점점 점점 돌아오더니, 이윽고는 긴긴 겨울이 지나도록
한번도 보지 못한 웃음의 빛이, 그의 눈에도 입에도 보이기 시작하였습니
다.
그것을 보고 꾀꼬리와 나비는 기운껏 기운껏 피곤하기까지 노래와 춤을 추
었습니다.
그 날 밤에는 소년의 따뜻한 주선으로, 그 집 처마 끝 동백나무 그늘에서
자고, 그 이튿날도 방에 들어가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하였습니다.
어린이의 병은 차츰 나아지고, 기운과 정신이 나날이 새로워졌습니다.
나비와 꾀꼬리는 그 이튿날도 또 그 이튿날도 쉬지 않고 노래와 춤으로 병
든 소년을 위로하였습니다.
이렇게 이레 동안을 지나자, 소년은 아주 쾌하게 병이 나아서, 누나의 손
을 잡고, 동산에도 가고 뜰에도 가서, 꾀꼬리와 나비와 재미있게 뛰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린이》, 1923년, 《소파 전집》(박문 서관 간) 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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