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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하루 10분, 나를 찾는 짧고 깊은 생각

학창 시절엔 학교에서의 경쟁, 사회에 나와 직장에서의 경쟁, 결혼 후에는 아이를 낳고 내 아이를 남보다 잘 키워보겠다는 욕심에 경쟁, 자식이 결혼 후에는 자신의 손주들과 타인의 손주들을 비교하며 경쟁, 사람들의 경쟁은 정말 징그러울 정도로 끝이 없는 것 같다. 이렇게 타인과 비교하며 경쟁하면서 힘들어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나를 바라보며 나를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과 나의 마음을 보살피는 시간인 고독은 자신을 위한 최고의 사치이자 가장 귀한 선물이라는 말은 너무나도 멋진 말이다.

 

1부 직시, 감추고 싶은 나를 마주하는 시간

익숙한 것에 편해지고 시간이 지나면 지루하다고 불평한다고 한다. 나 자신이주도적으로 목적을 세워 열정적으로 수련해야 실망하지 않는다고 한다.

호라티우스의 시 <지금 내가 말하는 동안에도 남을 부러워하다 보낸 세월이 저만큼 도망갑니다. 바로 이 순간을 낚아채십시오,>에서 남을 부러워하다 보낸 세월바로 이 순간으로 시간이 두 가지로 구분된다. 부러움은 시간이라는 괴물을 만나 질투가 된다. 비범에는 다른 사람에 대한 부러움이나 질투가 없다.

 

우리는 종종 남을 부러워하고 질투하느라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을 등한시한다. 나에게 가장 알맞은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나를 위한 삶이 되어야 하는데 왜 이리도 타인이 궁금한 것인지 모르겠다. SNS속의 사진들을 보며 부러워하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일지 모른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하고 아름다움 속에 눈을 빼앗겨 내면의 모습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남의 삶이 아니라 나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나를 가장 아끼고 사랑해야 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선 저자는 수련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수련은 일상적으로 흘러가버리는 양적인 시간으로부터 탈출하는 연습이라고 말한다. 그러한 수련을 위해 구별된 장소에서 가만히 앉아있기 즉 좌정을 행할 것을 권하고 있다. 좌정을 하면서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것을 수련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좌정을 통해 나의 목적지를 찾고, 나 자신을 들여다봄으로써 불필요한 말과 행동을 제어한다. 저자는 공부방 한가운데 방석을 깔아놓고 좌정하면서 자신을 점검한다고 한다. 나도 나만의 공간을 확보하여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스마트폰과 tv를 통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아무것도 보지 않고 머리를 비워내고 나 자신만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마음이 심란해서 잠이 안올때 명상 앱을 틀어 놓고 물소리를 들으며 명상의 시간을 가져본 적이 있었다. 명상과 동시에 세상 시름과는 단절되고 꿈나라로 떠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다. 나만을 위한 명상을 주기적으로 가져봐야 겠다.

 

<신념>이라는 파트에선 인간은 자신이 한 말을 완수할 때 비로소 완전해지기 때문에 자신의 말을 반드시 지키기 위해 침묵을 수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수행해야 할 임무를 깨달았을 때는 거침없이 말해야 하므로 자신의 임무를 미루거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침묵을 수련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다. 해서 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 친구들 또는 지인들과의 모임 후 항상 집에 돌아오면 오늘 내가 말실수한 것이 없나 나를 돌아보느라 그날 밤이 너무 힘들다. 차라리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을 걸이라는 생각으로 잠들기 힘든 날도 많다. 침묵의 훈련이 너무 어렵다. 너무 이야기를 안해도 분위기가 어색해지고, 너무 말을 많이 해도 말실수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괴로워했다, 나 자신이 지킬 수 있는 말만 하면서 불필요한 말은 절제하자.

 

<기도>파트에서 인류의 진화과정에 등장하는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차이를 다루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자신의 삶의 의미와 쾌락을 경쟁을 통해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삶의 최우선으로 삼는다. 그에 반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정신적 유전자는 자신을 심오하게 관찰하고, 자신을 혁신하는데 관심이 많고, 항상 자신의 임무를 찾아 노력하는 것이다. 안타까운 건 오늘날 인류의 대부분은 호모 사피엔스로 남아 있다고 본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로 진화하려면 남과 경쟁하지 않으면서 나를 돌아봐야 한다. 저자는 기도는 습관적으로 해오던 생각과 말,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에서 출발한다고 말하고 있다. 나 자신도 종교적인 기도 시간에 내가 원하고 바라는 기도가 아닌 나 자신을 다스리는 기도를 하려고 노력 중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에 모든 일에서 내 욕심을 내려놓고 기도하려고 한다. 그리고 미움과 욕심을 절제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특히 누군가를 미워하는 생각과 말이 있다면 이것 또한 절제하도록 노력해야겠다.

 

 

2부 유기 : 삶의 군더더기를 버리는 연습

저자는 근본적인 비겁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비출 거울을 소유하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끊임없이 타인의 이미지에 탐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은 부러움은 무식이고 흉내를 내는 것은 자살행위다라고 외쳤다.

단순은 오랜 수련을 거쳐 도달한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거의 완벽한 상태이며, 혁명의 핵심은 꼭 필요한 몇 개만 남기고 나머지를 모두 제거하는 단순함이라고 말한다. 비워내는 삶, 즉 요새 유행하는 미니멀리즘이다. 현대미술에서도 추상화에서 진화하여 가장 마지막 단계에선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고 있다. 비워내는 것이 점점 목표화되는 것 같다.

 

<욕심>파트에선 성공의 방해꾼의 두 가지 요소로 부러움과 흉내를 이야기하고 있다. 남을 부러워하고 흉내 내다 보면 본인의 고유성을 잃어 결국은 자살행위와 같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을 욕심이라고 말하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이 욕심은 무시무시한 괴물이라 표현했다. 나를 위한 최선의 경주는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경쟁이라고 말한다. 물론 욕심을 부려 다른 사람을 이기기 위해 경쟁을 하는 것은 별로지만, 타인의 삶이 간혹 나에게 자극이 되기도 한다. 타인을 무조건 부러워하고 흉내 내는 것이 아닌 본받을 만한 습관이나 삶의 태도가 보인다면 그건 따라 해 보려고 노력해도 좋지 않을까?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흉내가 아닌 나 자신을 개선해보려고 타인을 흉내 내는 것은 좀 괜찮지 않을까 싶다.

 

<자만><분노>역시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고 말한다.

<시기>는 자신에게 몰입하지 못하는 병이라고 말했다. 선진 개인은 자신을 관찰하는 사람이며 선진사회는 그런 개인들의 집합이다. 하지만 후진 개인은 시선을 남에게 고정해 부러워하고 시기한다. 그러고는 타인의 잘못을 찾아내려하는 이런 개인의 합이 후진사회이자 후진 국가이다. 자신에게 몰입하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타인에게 시선을 고정하는 파괴적인 감정이 바로 선망과 시기이다.

소크라테스, 붓다, 예수, 아우구스티누스, 단테, 갈릴레오, 미켈란젤로, 베토벤, 모차르트, 나체, 아인슈타인, 베트겐슈타인과 같은 위인들은 남들과 비교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의 선망의 대상은 오늘 저녁에 완성될 더 위대한 나-자신이기 때문에 아무도 시기 질투하지 않고 내적 고독을 유지했다.

 

범인과 위인의 차이인가? 평범한 우리는 tv속 연예인의 삶, 내 친구의 삶, 결혼한 내 형제의 삶에 왜 이리도 관심이 많은 걸까?? 오히려 재벌의 삶은 아예 다른 것이라 여겨 부러워하지도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나와 형편이 비슷하게 살던 친구나 형제가 어느 순간 잘 살게 되면 그걸로 배 아파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습성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그래서 명절만 되면 형제들 간의 시기 질투로 힘들어지고, 동창회 모임 후 여자들의 질투로 힘들어지고... 정말 소모적인 감정 낭비로 우리는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래서 우리는 위인과는 거리가 멀다. 대학에서 작곡과에 재학 중인 딸아이가 요새 과제로 변주곡을 쓰느라 밤을 새우며 고생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베토벤과 모차르트는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나 자신과의 경쟁을 했다고 이야기하면서 너무 애쓰지 말라고 했다. 그랬더니 다행히도 우리딸은 누구와의 경쟁이 아닌 본인 스스로 더 아름다운 곡을 쓰기 위해 노력하는 게 즐겁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대학 중간고사 과제로 작곡한 <베토벤 비창 2악장에 의한 변주곡>은 훌륭하게 완성되어 나 역시 즐겁게 감상 중이다.. 음악의 위인까지는 아니어도 음악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우리 딸이 지금처럼 음악을 즐기면서 작업할 수 있는 음악가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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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추상, 본질을 찾아가는 훈련

3부 추상에서는 귀향, 동지, 추상, 문법, 건축, 시련, 방향이라는 소제목으로 구성되어있다.

<귀향> 파트에선. 사계절은 겨울의 죽음을 준비하고 봄의 탄생을 기원하는 추석에서 시작하고, 추석은 자신이 있어야 할 근본을 찾아가는 이주의 시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추석에 본인의 부모를 찾아가 감사드리는 의례를 행하고 자신도 머지않아 부모가 되어 흙으로 돌아갈 것이며, 귀향은 나의 근본을 반추하는 수련의 시간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추석의 의미를 나의 근본을 반추하는 수련의 시간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추석에 모여 음식 장만 하느라 그리고 형제들끼리 시기 질투하느라 이렇게 귀한 의미와는 멀어져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추석 명절에 부모님을 찾아뵈면서 나의 근본을 생각해보는 수련도 필요할 것 같다.

 

<추상>파트에서 추상이란 자신에 몰입해 나만의 개성을 찾는 훈련이며, 그 개성이 바로 고유라고 한다. 창조는 삶에서 본질적이지 않은 것들, 도덕이나 종교가 우리의 동의도 없이 돌에 새겨 넣은 것들을 과감히 잘라내고 단절하는 용기에서 시작한다. 나만의 개성 없이 트렌드를 쫓아다니는 사람들을 볼 때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유행에 뒤처지거나 트렌드 파악이 전혀 안 되는 것도 보기 좋지 않다. 전체적인 트랜드와 유행을 파악한 뒤 나 자신에게 맞는 고유함과 개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문법>파트에서 작가는 수메르어 공부를 하면서 근면과 겸손을 배웠다고 한다. 모든 외국어 공부를 하다 보면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영어, 불어, 일어, 중국어 등등 외국어는 꾸준히 근면하게 공부를 해도 모르는 것이 있기 때문에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건축> 파트에서 다음과 같은 문구들이 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각자의 멋진 집을 건축하는 건축가이며, 내가 지어야 할 집은 나의 삶을 위한 철학이다. 그 철학은 지금의 나에게도 감동적이며, 10년 후의 나에게도 여전히 감동적이어야 한다. 그 원칙이 없다면 나의 집은 곧 흉물스러워지는 철거라는 위기에 맞닥뜨릴 것이다.> 나의 삶의 철학은 이 사회에 엄청난 기여를 하는 사람이 되지는 못할지언정 내 주변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이왕이면 많이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내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이웃들 더 나아가 이 사회에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작게라도 베풀고 싶다. 그것이 물질적이든 시간적이든 정서적이든 부족하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그런 삶을 사는 것이 내 삶의 철학이다. 이 철학이 10년 후 20년 후에도 지속되길 바라며, 그렇게 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감사하길 빌어본다.

<시련> - <자신이 처한 시련을 스스로 제3자가 되어 관조할 때 시련은 멋진 삶을 위한 굳건한 발판이 된다. 시련을 거치지 않고서는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없다. 시련은 인간을 완성시키는 훈련이다. 시련을 통해 자신을 수련하는 사람에게는 매력이라는 선물이 주어진다. 당신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시련을 피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인가, 아니면 미래의 자신을 위해 시련을 기꺼이 훈련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인가? 시련은 수련자의 유일한 지름길이다.> 과연 시련을 기꺼이 훈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물론 나 자신도 시련이 닥쳤을 때 그 안에서 감사함을 찾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그러나 이왕이면 아픈 시련은 겪고 싶지 않다. 시련을 겪으면서 단단해지는 어른들도 있지만, 어린아이들은 자라면서 겪는 시련으로 자존감이나 자신감 결여로 어른이 되어서도 소심한 성격을 지닐 수도 있다. 난 어릴적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성공을 보며 성장해서 그런지 롤러코스터와 같은 인생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20살 이후부터는 평탄한 삶을 살게 해 달라고 늘 기도해 왔다. 시련은 각자의 삶에 비춰봤을 때 각기 다르게 적용될 듯싶다.

 

<방향>- <자신만의 나침반을 준비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알지 못해 다른 사람의 나침반을 흘낏거리며 산을 오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여정이 자신이 원하던 길이 아님을 깨달은 그들은 이내 지친다. 위대한 개인이란 자신만의 나침반으로 가장 아름다운 산을 오르는 사람이다. 그는 하루라는 소중한 순간을 가다듬어 독자적인 영구 자석을 끊임없이 수련한다.> 나만의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나침반이 필요하다. 이 역시 나만의 고유성을 가지고 내 삶을 이끌어가는 삶의 주체가 내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타인을 보며 시기하고 흉내 내는 괴물이 아닌 오롯이 나 자신에게 더욱 집중해야겠다. 그런데 현 시대는 나 자신에게 집중하기 힘든 사회임에는 분명하다, 정보검색을 하다보면 타인의 블로그, 인스타, 유튜브 등을 접하게 된다. 온라인상의 넘치는 정보들로 인해 자신보다 타인의 삶이 어느덧 우리의 뇌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 섬뜩하다.

 

 

4부 패기 : 나를 지탱해주는 삶의 문법

자유 - 완벽한 예술을 만드는 것은 남들의 인정과 갈채가 아니야. 스스로 완벽하고자하는 투쟁이며 연습이지. “.“ 에단호크의 영화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에서는 세이모어의 가르침과 피아노 연습의 중요성 그리고 자신의 귀를 훈련시키는 모습이다. 예술가들은 재능도 중요하지만 끊임없는 노력과 연습이 더 중요하다는 말에 동의한다. 타고난 재능은 그야말로 기본이 되고 그 이후엔 완벽에 가까워지려는 연습과 노력이 훨씬 중요하다. 물론 예술가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노력과 연습이 있을 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감각 파트에서 배움이란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는 훈련이며 생각은 당연하거나 하찮게 여기는 것들을 다시 찬찬히 바라보는 정신 훈련이라는 말이 나온다. 나이가 들수록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배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외국어이든 독서든 자격증공부든 무엇이든지 배우면서 뒤처지지 않으려는 훈련이 없다면 노인이 되었을 때는 정말 이 세상과 소통하지 못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최소한 발맞추어 가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평안 <노년에 이른 그에게 얼마나 좋은 와인을 마셨는지, 얼마나 많은 학식을 연마했는지, 얼마나 훌륭한 골동품을 소유했는지는 결코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세네카는 그런 소중한 것들을 담는 여과기에 불과했던 자신을 한탄했다.> 노인이 될수록 노욕과 물욕을 버리고 언젠가는 모두 두고 가야 할 자신의 주변을 정리해야 할 것 같다. 간혹 노인들의 욕심을 보면 추해 보인다. 자신이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까지 하다. 소유욕을 버릴수록 진정한 평안을 얻는 것인데 그게 정말 어려운 일인가보다. 왜냐하면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이 노인이 된다고 한순간에 바뀌긴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젊을 때부터 비우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일치 파트에선 말과 행동의 일치 즉 언행일치를 다루고 있다. 유대인들은 말한 것을 지키지 않을 때 거짓말쟁이라고 하며, 수련은 자신의 고귀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려는 노력이라 했다.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이 일치하려면 물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꾸준히 올바른 가치관과 생각을 지니다 보면 나도 모르게 행동도 따르게 되는 것 같다. 일순간 사람의 가치관, 생각 그리고 행동이 바뀔 수는 없다, 따라서 주변에 좋은 사람이 있다면 나를 인도해 주는 길잡이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부모를 비롯한 가족 혹은 스승이나 친구들처럼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건전하고 바른 사람이라면 나 또한 그들과 똑같지는 않아도 적어도 비슷한 사람은 될 수 있다. 아니면 내가 바른 사람이 되어 그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도록 하자.

 

침묵 <사람은 그 사람이 말하는 그것이다, 내가 자주 읽는 책은 나의 생각을 지배하고, 내가 자주 만나는 사람은 나와 비슷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에게 탁월함이 있다면 그것은 그의 습관이다. 내가 처한 환경은 나의 습관이 지은 집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환경과 운명을 원망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말을 살펴 매일매일 개선하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환경을 불평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개선된 삶을 살 수 없다, 환경을 탓하기 전에 스스로 바꾸려고 노력한다면 분명 다른 운명의 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매일의 습관과 삶에 대한 태도가 자신의 운명을 뒤바꾸어 놓을 것이다. 가난하고 게으른 자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을 시기 질투하며 나라 탓하고 부모 탓할 시간에 성공한 사람들의 비결을 공부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독서 혹은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이 세상에 노력해 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은 비겁한 것이다.

 

<침묵은 자기훈련이자 자기 절제다,, 자기를 광고하기 위해 안달이 난 사회에서 스스로 물 아래로 깊이 침잠하는 행위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정성스럽게 담아 압도적이면서도 감동적으로 말하기 위해 입을 다문다. 나는 오늘 어떤 감동적인 말로 입을 다물어야 할까?> 사실 요즘사회에서 자기 생각을 드러내지 않고 입을 다무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닐까 혹은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비춰지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할 수 있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어느 정도 자기 어필은 필요하지만, 최대한 리스너의 입장이 되도록 해야 할 것 같다. 특히 자기 이야기만 떠드는 사람은 그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적재적소의 타이밍에 꼭 필요한 말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만, 가족이나 친구들처럼 가까운 사이엔 사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가까울수록 예의를 지키며 침묵과 대화를 오가야 할 것 같다.

 

패기 <성공적인 혁신은 자신에게 익숙하고 편한 자리를 떠날 뿐만 아니라 진부한 과거로 회귀하려는 모든 잔재를 완벽하고 섬세하게 제거할 때 가능하다. 패기를 지닌 자는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며, 자신이 취해야 할 모습으로 적절하게 변신한다. 그리고 자신이 도달해야 할 목표를 향해 묵묵히 걸어간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가 아닌 나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기 위해 유혹과 욕심을 내려놓고 살아야겠다, 어린 시절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결혼해선 자식을 타인의 시선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양육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가 원하던 인생을 살지 못했다면 자녀들에게 만큼은 나의 욕심이 아닌 그들이 원하는 삶을 살게 해주어야 할 것 같다.

 

에필로그 <스스로에게 정직하고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 수련하는 사람은 자신의 운명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바꿀 수 있다. 나의 행동이 나를 돕는 천사이며 나의 운명을 결정하는 신이다.>

나 자신이 정직하고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한다면 나와 내 주변을 바꿀 수 있다는 말에 용기가 생긴다. 가끔은 내가 아무리 올바로 살려고 노력해도 주변과 세상은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을 때 너무 화가 나고 속상했다. 그래도 나의 행동이 나를 돕는 천사이며 나의 운명을 결정하는 신이라는 말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끝까지 노력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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