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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류(濁流)
채만식
1937 

탁류(濁流) (채만식, 1937) 전문 줄거리 PDF 파일 다운로드 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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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및 작품소개

 

탁류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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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채만식 - 나무위키

평소 육식을 즐겨서, 집안 살림이 어려워도[15] 밥상에는 꼭 고기 반찬을 올렸다고 한다. 하루는 지인이 채만식의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다가 밥상을 보고 이토록 고기를 즐기니 채(菜)만 식(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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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류(濁流)

 1 인간 기념물

 금강( 錦江)…….
 이 강은 지도를 펴놓고 앉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물줄기가 중동께서 남북으로 납작하니 째져 가지고는―---한강(漢江)이나 영산강(榮山江)도 그렇기는 하지만―---그것이 아주 재미있게 벌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번 비행기라도 타고 강줄기를 따라가면서 내려다보면 또한 그럼 직할 것이다.
 저 준험한 소백산맥(小白山脈)이 제주도(濟州島)를 건너보고 뜀을 뛸듯이, 전라도의 뒷덜미를 급하게 달리다가 우뚝…… 또 한번 우뚝…… 높이 솟구친 갈재〔蘆嶺〕와 지리산(智異山) 두 산의 산협 물을 받아 가지고 장수(長水)로 진안(鎭安)으로 무주(茂朱)로 이렇게 역류하는 게 금강의 남쪽 줄기다. 그놈이 영동(永同) 근처에서는 다시 추풍령(秋風嶺)과 속리산(俗離山)의 물까지 받으면서 서북(西北)으로 좌향을 돌려 충청좌우도(忠淸左右道)의 접경을 흘러간다.
 그리고 북쪽 줄기는, 좀 단순해서, 차령산맥(車嶺山脈)이 꼬리를 감추려고 하는 경기(京畿) 충청( 忠淸) 의 접경 진천(鎭川) 근처에서 청주(淸州)를 바라보고 가느다랗게 흘러내려오다가 조치원( 鳥致院)을 지나면 거기서 비로소 오래 두고 서로 찾던 남쪽 줄기와 마주 만난다.
 이렇게 어렵사리 서로 만나 한데 합수진 한 줄기 물은 게서부터 고개를 서남으로 돌려 공주( 公州) 를 끼고 계룡산(鷄龍山)을 바라보면서 우줄거리고 부여(扶餘)로…… 부여를 한 바퀴 휘 돌려다가는 급히 남으로 꺾여 단숨에 논메〔論山〕, 강경이〔江景〕까지 들이닫는다.
 여기까지가 백마강(白馬江)이라고, 이를테면 금강의 색동이다. 여자로 치면 흐린 세태에 찌들지 않은 처녀 적이라고 하겠다.
 백마강은 공주 곰나루〔熊津〕에서부터 시작하여 백제(百濟) 흥망의 꿈자취를 더듬어 흐른다.
 풍월도 좋거니와 물도 맑다.
 그러나 그것도 부여 전후가 한창이지, 강경에 다다르면 장꾼들의 흥정하는 소리와 생선 비린내에 고요하던 수면의 꿈은 깨어진다. 물은 탁하다.
 예서부터가 옳게 금강이다. 향은 서서남(西西南)으로, 빗밋이 충청·전라 양도의 접경을 골 타고 흐른다.
 이로부터서 물은 조수(潮水)까지 섭쓸려 더욱 흐리나 그득하니 벅차고, 강 넓이가 훨씬 퍼진 게 제법 양양하다.
 이름난 강경벌은 이 물로 해서 아무 때고 갈증을 잊고 촉촉하다.
 낙동강이니 한강이니 하는 다른 강들처럼 해마다 무서운 물난리를 휘몰아 때리지 않아서 좋다.
 하기야 가끔 홍수가 나기도 하지만.
 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黃海)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大處 : 市街地)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群山)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그러나 항구라서 하룻밤 맺은 정을 떼치고 간다는 마도로스의 정담이나, 정든 사람을 태우고 멀리 떠나는 배 꽁무니에 물결만 남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갈매기로 더불어 운다는 여인네의 그런 슬퍼도 달코롬한 이야기는 못 된다.
 벗어붙이고 농사면 농사, 노동이면 노동을 해먹고 사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오늘’이 아득하기는 일반이로되, 그러나 그런 사람들과도 또 달라 '명일(明日)’이 없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어디고 수두룩해서 이곳에도 많이 있다.
 정주사(丁主事)도 갈 데 없이 그런 사람이다.
 정주사는 시방 미두장(米豆場 : 米穀取引所, 期米市場) 앞 큰길 한복판에서, 다 같은 ' 하바꾼( 절 치기꾼)’ 이로되 나이 배젊은 애송이한테, 멱살을 당시랗게 따잡혀 가지고는 죽을 봉욕을 당하는 참이다.
 시간은 오후 두시 반, 후장(後場)의 대판시세 이절(大阪時勢二節)이 들어오고 나서요, 절기는 바로 오월 초생.
 싸움은 퍽 단출하다. 안면 있는 사람들이 없는 바는 아니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말리지도 않는다.
 지나가던 상점의 심부름꾼 아이 하나가 자전거를 반만 내려서 오도카니 바라보고 섰는 것이 그림의 첨경(添景) 같아 더욱 호젓하다.
 휘둘리는 정주사의 머리에서, 필경 낡은 맥고모자가 건뜻 떨어져 마침 부는 바람에 길바닥을 대그르르 굴러간다. 미두장 정문 앞 사람 무더기 속에서 웃음 소리가 와아 하고 터져 나온다.
 미두장은 군산의 심장이요, 전주통(全州通)이니 본정통(本町通)이니 해안통(海岸通)이니 하는 폭넓은 길들은 대동맥이다. 이 대동맥 군데군데는 심장 가까이, 여러 은행들이 서로 호응하듯 옹위하고 있고 심장 바로 전후 좌우에는 중매점(仲買店)들이 전화줄로 거미줄을 쳐놓고 앉아 있다
 .
 정주사는 자리하고도 이런 자리에서 봉변을 당하는 참이다.
 그러나 미두장 앞에서 일어난 싸움이란 빤히 속을 알조다. 그런 싸움은 하루에도 으레 한두 패씩  은 얼려 붙는다.
 소위 '총을 놓았다’는 것인데, 밑천 없이 안면만 여겨 돈을 걸지 않고 '하바’를 하다가 지고서 돈을 못 내게 되면, 그래 내라거니 없다거니 하느라고 시비가 되어, 툭탁 치고 받고 한다. 촌 이 라면 앞뒷집 수탉끼리 암컷 샘에 후두둑후두둑하는 닭싸움만치나 예삿일이다.
 해서 아무리 이런 큰길바닥에서 의관깨나 한 사람들끼리 멱살을 움켜잡고 얼러붙은 싸움이라도 그리 할 일이 없어서 심심한 사람이 아니면 별반 구경하는 사람도 없다.
 다 알고 지내는 같은 '하바꾼’들은 싸움을 뜯어말리기커녕, 중매점 처마 밑으로 미두장 정문 앞으로, 넌지시 비켜 서서, 흰머리가 희끗희끗 장근 오십의 중늙은이 정주사가 자식뻘밖에 안 되는 애송이한테 그런 해거를 당하는 것을 되레 고소하다고 빈정거리기만 한다.
 ―---밑천도 없어 가지고 구성없이 덤벼들어, 남 골탕 멕이기 일쑤더니, 그저 잘꾸사니야!
 ―---정주산지 고무래주산지 인제는 제발 시장 근처에 오지 말래요.
 ―---저 영감님 저러다가는 생죽음하겠어!
 ―---어쩔라구들 저래!
 ―---두어 두게. 제 일들 제가 알아서 할 테지. 때애가면 둘 다 콩밥인걸.
 정주사는, 멱살을 잡은 애송이의 팔목에 가 대룽대룽 매달려 발돋움을 친다. 목을 졸려서 얼굴빛은 검푸르게 죽고, 숨이 막혀 캑캑 기침을 배앝는다.
 낡은 맥고모자는 아까 벌써 길바닥에 굴러 떨어졌고, 당목 홑두루마기는 안팎 옷고름이 뜯어져서 잡아 낚는 대로 주정뱅이처럼 펄럭거린다.
 "여보게 이 사람, 여보게!"
 "보긴 무얼 보라구 그래? 보아야 그 상판이 그 상판이지 별것 있나?…… 잔말 말구 돈이나 내요
 ."
 "글쎄 여보게, 이건 너무 창피하지 않은가! 이걸 놓고 조용조용 이야기를 하세그려, 응? 이건 놓게."
 "흥! 놓아 주면 뺑소니를 칠 양으루? 어림없어…… 돈 내요. 안 내면 깝대기를 벳겨 놀 테니……."
 "글쎄 이 사람아! 이런다구 없는 돈이 어디서 솟아나나?"
 "요―런 얌체 빠진 작자 같으니라구! 왜, 그럼 돈두 없으면서 덤볐어? 덤비기를…… 그랬다가 요행 바루 맞으면 올개미 없는 개장수를 할 양으루?…… 그리구 고 꼴에 허욕은 담뿍 나서, 머? 오십 전이야 차마 하겠나? 일 원은 해야지?…… 고런 어디서…… 아이구! 그저 요걸 그젓……."
 애송이는 뺨을 한 대 갈길 듯이, 멱살 잡지 않은 바른편 팔을 번쩍 쳐들어 넓죽한 손바닥을 들이 대면서 얼러 멘다. 정주사는 그것을 피하려고 고개를 오므라뜨리면서 엉겁결에 손을 내민다. 그 꼴이 하도 궁상스럽대서 하하하 웃음 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온다.
 그때 마침 ××은행 군산지점(群山支店)의 당좌계(當座係)에 있는 고태수(高泰洙)가, 잠깐 다니러 나왔는지 맨머리로 귀 위에 철필대를 꽂고 슬리퍼를 끌고 미두장 앞을 지나다가 싸움 열린 것을 보더니 멈칫 발길을 멈춘다. 그러자 또, 미두장 안에서는 중매점 '마루강(丸江)’의 ' 바다지( 場立)’ 로 있는 곱사 장형보(張亨甫)가 끼웃이 밖을 내다보다가, 태수가 온 것을 보고 메기같이 째진 입으로 히죽히죽 웃는다.
 "자네 장랫장인 방금 죽네, 방금 죽어, 어여 쫓아가서 말리게. 괜히 소복 입구 장가들게 되리
 !…… 어여 가서 뜯어말리라니깐 그래!"
 모여 섰던 사람들은, 태수를 아는 사람이고 모르는 사람이고, 모두 돌려다보면서 빙긋빙긋 웃는다.
 태수는 형보더러 눈을 흘기면서도 함께 웃는다. 그는 형보 말대로 싸움을 말려 주고는 싶어도 형 보가 방정맞게 여럿이 듣는 데서 그런 말을 씨월거려 놔서 차마 열적어 선뜻 내닫지 못하는 눈치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요, 형보한테 빙긋 한번 더 웃어 보이고는 싸움 열린 길 가운데로 슬리퍼를 직직 끌고 건너간다.
 "이건 무얼 이래요!…… 점잔찮게스리. 이거 노시오."
 태수는 정주사의 멱살을 잡은 애송이의 팔목을, 말하는 말조보다는 우악스럽게 훑으려 쥔다.
 정주사는 점직해서, 안 돌아가는 고개를 억지로 돌리고, 애송이는 좀 머쓱하기는 하면서도 멱살은 놓지 않는다.
 "아―니, 이런 경우가 어디 있어요?…… 나이깨나 좋이 먹어 가지구는……."
 "노라면 놔요!"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태수는 쥐었던 애송이의 팔목을 잡아 낚는다.
 "……잘잘못은 누게 있던지, 그래 댁은 부모도 없수? 젊은 친구가 나이 자신 분한테 이런 행패를 하게."
 몰아 대면서 거듭떠보는 태수의 눈살은 졸연찮게 팽팽하다.
 애송이는 할 수 없이 멱살을 놓고 물러선다.
 "그렇지만 경우가 그렇잖거던요!"
 "경우가 무슨 빌어먹을 경우람? 누구는 그 속 모르는 줄 아우? 하바하다가 총 놨다구 그러지
 ?…… 여보, 그렇게 경우가 밝구 하거던 애여 경찰서루 가서 받아 달래구려!"
 "허어 참!"
 애송이는 더 성구지 못하고 돌아서서 미두장 정문께로 가면서, 혼자 무어라고 두런두런 두 런거 린다.
 정주사는 검다 희단 말이 없이 모자를 집어 들고 건너편의 중매점 앞으로 간다. 중매점 문 앞 에두 엇 이나 모여 섰던 하바꾼들은, 정주사의 기색이 하도 암담한 것을 보고, 입때까지 조롱하던 낯  꽃을 얼핏 고쳐 갖는다.
 "담배 있거들랑 한 개 주게!"
 정주사는 누구한테라 없이 손을 내밀면서 한데를 바라보고 우두커니 한숨을 내쉰다.
 여느때 같으면,
 "담배 맽겼수?"
 하고 조롱을 하지 단박에는 안 줄 것이지만, 그 중 하나가 아무 말도 없이 마코 한 개를 꺼내 준다.
 정주사는 담배를 받아 붙여 물고 연기째 길게 한숨을 내뿜으면서 넋을 놓고 먼 하늘을 바라본다.
 광대뼈가 툭 불거지고, 훌쭉 빠진 볼은 배가 불러도 시장만 해보인다. 기름기 없는 얼굴에는 오월의 맑은 날에도 그늘이 진다. 분명찮은 눈을 노상 두고 깜작거리는 것은 괜한 버릇이요, 그것이 마침감으로 꼴이 더 궁상스럽다.
 못생긴 노랑수염이 몇 낱 안 되게 시늉만 자랐다. 그거나마 정주사는 잊지 않고 자주 쓰다듬는다
 .
 정주사가 낙명이 되어 한숨만 거듭 쉬고 서서 있는 것이 그래도 보기에 딱했던지 마코를 선심 쓰던 하바꾼이 부드러운 말로 위로를 하는 것이다.
 "어서 댁으루 가시오. 다아 이런 데 발을 딜여 놓자면 그런 창피 저런 창피 보기도 예사지요. 옷고름이랑 저렇게 뜯어져서 못쓰겠소. 어서 댁으루 가시오."
 정주사는 대답은 안 하나 비로소 정신이 들어, 모양 창피하게 된 두루마기 꼴을 내려다본다. 옆으로 위로하던 하바꾼이 한번 더 선심을 내어 중매점 안으로 들어가더니 핀을 얻어 가지고 나와서, 두루마기 고름 뜯어진 것을 제 손으로 찍어매 준다.
 미두장 정문 옆으로 비켜서서 형보와 무슨 이야기를 하느라고 고개를 맞대고 있던 태수가, 정주 사가 서 있는 앞을 지나면서 일부러 외면을 해준다. 정주사도 외면을 한다.
 태수가 저만치 멀리 갔을 때 정주사는 비로소,
 "으 흠."
 가래 끓는 목 가다듬을 한번 하더니 ××은행이 있는 데께로 천천히 걸어간다. 다섯 자가 될락말락한 키에 가슴을 딱 버티고 한 팔만 뒷짐을 지고, 그리고 짝 바라진 여덟 팔자 걸음으로 아장아장 걸어가는 맵시란 누구더러 보라고 해도 시장스런 꼴이다.
 푸른 지붕을 이고 섰는 ××은행 앞까지 가면 거기서 길은 네거리가 된다. 이 네거리에서 정주 사는 바른편으로 꺾이어 동녕고개 쪽으로 해서 자기 집 '둔뱀이’로 가야 할 것이지만, 그러지를 않고 왼편으로 돌아 선창께로 가고 있다.
 뒤에서 보고 있던 하바꾼이, 빈정거리는 말인지 걱정하는 말인지 혼자말로, 저 영감 자살하구 싶은가 봐? 그러길래 집으루 안 가고 선창으루 나가지, 하고 웃으면서 돌아선다.
 앞뒷동이 뚝 잘려서 도무지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게 정주사네다. 그러나마 식구가 자그마치 여섯.
 스물한 살 먹은 맏딸 초봉(初鳳)이를 우두머리로, 열일곱 살 먹은 작은딸 계봉(桂鳳)이, 그 아래로 큰아들 형주(炯柱) 이 애가 열네 살이요, 훨씬 떨어져서 여섯 살 먹은 병주(炳柱), 이렇게 사 남매에, 정주사 자기네 내외 해서 옹근 여섯 식구다.
 이 여섯 식구가, 아이들까지도, 입은 자랄 대로 다 자라, 누구 할 것 없이 한 그릇 밥을 내놓지 않는다.
 그러니, 한 달에 쌀 오통 한 가마로는 모자라고 소불하 엿 말은 들어야 한다.
 또, 나무도 사 때야 하지, 아무리 가난하기로 등짐장수처럼 길가에서 솥단지밥을 해먹는 바 아니니 소금만 해서 먹을 수는 없고, 하다못해 콩나물 일 전 어치나 새우젓 꽁댕이라도 사먹어야지, 옷감도 더러는 끊어야지, 집세도 치러야지.
 그런데다가 정주사의 부인 유씨(兪氏)라는 이가 자녀들에 대한 승벽이 유난스러, 머리를 싸매가면서 공부를 시키는 판이다. 그래서 맏딸 초봉이는 보통학교를 마친 뒤에 사립으로 된 삼 년 제의 S여학교를 다녀 작년 봄에 졸업을 했고, 계봉이는 그 S여학교 삼학년에 다니는 중이고, 형주가 명년 봄이면 보통학교를 마치는데, 저는 인제 서울로 올라가서 어느 상급학교엘 다니겠노라고 지금부터 조르고 있고 한데, 그러고도 유씨는 막내동이 병주를 지난 사월에 유치원에 들여 보내지 못한 게 못내 원통해서, 요새로도 생각만 나면 남편한테 그것을 뇌사리곤 한다.
 이러한 적지 않은 세간살이건만, 정주사는 명색 가장이랍시고 벌어들인다는 것이 가용의 십분지 일도 대지를 못한다.
 일찍이 정주사는, 겨우 굶지나 않는 부모의 덕에, 선비네 집안의 가도대로, 하늘천 따지의 천자를 비롯하여 사서니 삼경이니를 다 읽었다. 그러고 나서 세태가 바뀌니 '신학문’도 해야 한다고 보통학교도 졸업은 했다.
 정주사의 선친은 이만큼 '남부끄럽지 않게’ 아들을 공부를 시켰다. 그러나 조업은 짙은 것이 없었다. 그것도 있기만 있었다면야 달리 찢길 데가 없으니 고스란히 정주사에게로 물려 내려왔겠지만 별로 우난 것이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열두 해 전, 정주사가 강 건너 서천(舒川) 땅에서 이곳 군산으로 이사를 해 올 때, 그의 선대의 유산이라고는 선산(先山) 한 필에, 논 사천 평과 집 한 채 그것뿐이었었다. 그때에 정주 사는 그것을 선산까지, 일광지지만 남기고, 모조리 팔아서 빚을 뚜드려 갚고 나니, 겨우 이 곳 군산으로 와서 팔백 원짜리 집 한 채를 장만할 밑천과 돈이나 한 이삼백 원 수중에 떨어진 것 뿐이었었다.
 정주사의 선친은 그래도 생전시에 생각하기를, 아들을 그만큼이나 흡족하게 '신구 학문’을 겸 해 가르쳤으니 선비의 집 자손으로 어디 내놓아도 낯 깎일 일이 없으리라고 안심을 했고, 돌아갈 때 에도 편안히 눈을 감았다.
 미상불 이십사오 년 전, 일한합방 바로 그 뒤만 해도 한문장이나 읽었으면, 사 년짜리 보통학교만 마치고도 '군서기〔郡雇員〕’ 노릇은 넉넉히 해먹을 때다.
 그래서 정주사도 그렇게 했었다. 스물세 살에 그곳 군청에 들어가서 서른다섯까지 옹근 열세 해를 군서기를 다녔다. 그러나 열세 해 만에 도태를 당하던 그날까지 별수없는 고원이었었다.
 아무리 연조가 오래서 사무에 능해도, 이력 없는 한낱 고원이 본관이 되고, 무슨 계(係)의 주임이 되고, 마지막 서무주임을 거쳐 군수가 되고, 이렇게 승차를 하기는 용이찮은 노릇이다. 더구나 정주사쯤의 주변으로는 거의 절대로 가망 없을 일이다.
 정주사는, 청춘을 그렇게 늙힌 덕에 노후(老朽)라는 반갑잖은 이름으로 도태를 당하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처진 것은, 누구 없이 월급쟁이에게는 두억시니같이 붙어 다니는 빚 〔負債〕 뿐이었었다.
 그 통에, 정주사는 화도 나고 해서 생화도 구할 겸 얼마 안 되는 전장을 팔아 빚을 가리고 이 군산으로 떠나 왔던 것이요, 그것이 꼭 열두 해 전의 일이다.
 군산으로 건너와서는, 은행을 시초로 미두중매점이며 회사 같은 데를 칠 년 동안 두고 서너 군데나 드나들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정말 노후물의 처접을 타고 영영 월급 세민층에서나마 굴러 떨어지고 만 것이 지금으로부터 다섯 해 전이다.
 그런 뒤로는 미두꾼으로, 미두꾼에서 다시 하바꾼으로.
 오월의 하늘은 티끌도 없다.
 오후 한나절이 겨웠건만 햇볕은 늙지 않을 듯이 유장하다.
 훤하게 터진 강심에서는 싫지 않게 바람이 불어온다. 오월의 바람이라도 강바람이 되어서 훈훈하기보다 선선하다.
 날이 한가한 것과는 딴판으로, 선창은 분주하다.
 크고 작은 목선들이 저마다 높고 낮은 돛대를 웅긋중긋 떠받고 물이 안 보이게 선창가로 빡빡이들이 밀렸다.
 칠산바다에서 잡아 가지고 들어온 젖조기가 한창이다. 은빛인 듯 싱싱하게 번적이는 준치도 푼다.
 배마다 셈 세는 소리가 아니면 닻 감는 소리로 사공들이 아우성을 친다. 지게 진 짐꾼들과 광주리를 인 아낙네들이 장속같이 분주하다.
 강안(江岸)으로 뻗친 찻길에서는 꽁지 빠진 참새같이 방정맞게 생긴 기관차가, 경망스럽게 달려다니면서 빽빽 성급한 소리를 지른다. 그럴라치면 멀찍이 강심에서는 커다랗게 드러누운 기선이, 가끔가다가 우웅하고 내숭스럽게 대답을 한다.
 준설선이 저보다도 큰 크레인을 무겁게 들먹거리면서 시커먼 개흙을 파올린다.
 마도로스의 정취는 없어도 항구는 분주하다.
 정주사는 이런 번잡도 잊은 듯이 강가로 다가서서 초라한 수염을 바람에 날리고 있다.
 강심으로 똑딱선이 통통거리면서 떠온다. 강 건너로 아물거리는 고향을 바라보고 섰던 정주 사는 눈이 똑딱선을 따른다.
 그는 열두 해 전 용댕이〔龍塘〕에서 가권을 거느리고 저렇게 똑딱선으로 건너오던 일이 우연히 생각났다. 곰곰이 생각은 잦아지다가, 그래도 그때는 지금보다는 나았느니라 하면, 옛날이 그리워진다. 이윽고 기름기 없는 눈시울로 눈물이 괸다.
 정주사가 미두의 속을 알기는, 중매점의 사무를 보아 주던 때부터지만 그것에 손을 대기는 훨씬뒤엣일이다.
 그가 처음 군산으로 올 때만 해도, 집은 내 것이겠다, 아이들이라야 셋이라지만 모두 어리고, 또 그런대로 월급도 받거니와 집을 사고 남은 돈이 이삼백 원이나 수중에 있어, 그다지 군졸하게 지내지는 않았었다.
 그러던 것이, 한 해 두 해 지나노라니까, 아이들은 자라고 학비까지 해서 용은 더 드는데, 직업을 바꿀 때마다 월급은 줄고, 그러는 동안에 오늘이 어제보다 못한 줄은 모르겠어도, 금년이 작년만 못하고, 작년이 재작년만 못한 것은 완구히 눈에 띄어, 살림은 차차 꿀려 들어가기 시작 했다. 하다가 마침내 푸달진 월급자리나마 영영 떨어지고 나니, 손에 기름은 말랐는데, 식구는 우그르하고, 칠팔 년 월급장사로 다시금 빚밖에 남은 것이 없었다.
 정주사는 두루두루 생각했으나 별수가 없고, 그때는 벌써 은행에 저당 들어간 집을 팔아 은행 빚을 추린 후에, 나머지 한 삼백 원이나를 손에 쥐었다. 이때부터 정주사는 미두를 하기 시작 했었다.
 미두를 시작하고 보니, 바로 맞는 때도 있고 빗맞는 때도 있으나, 바로 맞아 이문을 보는 돈은 먹고 사느라고 없어지고 빗맞을 때에는 살 돈이 떨어져 나가곤 하기 때문에 차차로 밑천이 졸아 들었다.
 그래서, 제주말〔濟州馬〕이 제 갈기를 뜯어먹는다는 푼수로, 이태 동안에 정주사의 본전 삼백원은 스실사실 다 밭아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삼백 원 밑천을 가지고 이태 동안이나 갉아먹고 살아온 것은 헤펐다느니보다도, 오히려 정주사의 담보 작고 큰돈 탐내지 못하는 규모 덕이라 할것이었었겠다.
 밑천이 없어진 뒤로는 전날 미두장에서 사귄 친구라든지, 혹은 고향에서 미두를 하러 온 친구가 소위 미두장 인심이라는 것으로, 쌀이나 한 백 석, 오십 원 증금(證金)으로 붙여 주면, 그놈을 가지고 약삭빨리 요리조리 돌려 놓아 가면서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매일 돈 원씩, 이삼 원씩 따먹다가 급기야는 밑천을 떼고 물러서고, 이렇게 하기를 한 일년이나 그렁저렁 지내 왔다.
 그러다가 다시, 오늘 이날까지 꼬박 이태 동안은, 그것도 사람이 궁기가 드니까 그렇겠지만 어느  누구 인사엣말로라도 쌀 한번 붙여 주마고 하는 친구 없고, 해서 마치 무능한 고관 퇴물이 ×× 원으로 몰려가듯이, 밑천 없는 정주사는, 그들의 숙명적 코스대로 하릴없이 하바꾼으로 굴러 떨어져, 미두장이의 하염없는 여운(餘韻)을 읊고 지내는 판이다.
 그러나 많고 적고 간에 그것도 노름인데, 그러니 하는 족족 먹으란 법은 없다. 가령 부인 유씨의 바느질 삯 들어온 것을 한 일 원이고 옭아 내든지, 미두장에서 어릿어릿하다가 안면 있는 친구한테 개평으로 일이 원이고 떼든지 하면, 좀이 쑤셔서도 하바를 하기는 하는데, 그놈이 운수가 좋아도 세 번에 한 번쯤은 빗맞아서 액색한 그 밑천을 홀랑 불어먹고라야 만다. 노름이라는 것은 잃는 것이 밑천이요, 그러므로 잃을 줄 알면서도 하는 것이 미두꾼의 담보란다.
 하바를 할 밑천이 없으면 혹은 개평이라도 뜯어 밑천을 할까 하고, 미두장엘 간다. 그렇지 않더라도 먹고 싶은 담배나 아편의 인에 몰리듯이 미두장에를 가보기라도 않고서는 궁금해 못 배긴다.
 정주사도 어제 오늘은 달랑 돈 십 전이 없으면서 그래도 요행수를 바라고 아침부터 부옇게 달려나와 비잉빙 돌고 있었다.
 그러나 수가 있을 턱이 없고, 그럭저럭 장은 파하게 되어 오고, 초조한 끝에,
 "에라 살판이다."
 고 전에 하던 버릇을 다시 내어, 그야말로 올가미 없는 개장수를 한번 하쟀던 것이 계란에도 뼈가 있더라고 고놈 꼭 생하게만 된 후장이절(後場二節)의 대판시세가, 옜다 보아란 듯이 달칵 떨어져서, 필경은 그 흉악한 봉욕을 다 보게까지 되었던 것이다.
 정주사는 마침 만조가 되어 축제 밑에서 늠실거리는 강물을 내려다본다.
 그는, 죽지만 않을 테라면은 시방 그대로 두루마기를 둘러쓰고 풍덩 물로 뛰어들어 자살이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젊은 녀석한테 대로상에서 멱살을 따잡혀, 들을 소리, 못 들을 소리 다 듣고 망신을 한 것이야 물론 창피다. 그러나 그러한 창피까지 보게 된 이 지경이니 장차 어떻게 해야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창피고 체면이고 다 접어 놓고, 앞을 서는 걱정이다.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어떻게 살어가나?"
 이것은 아무리 되씹어도 별 뾰족한 수가 없고, 죽어 없어져서, 만사를 보지 않고, 듣지 않고, 생각지 않고 하는 도리뿐이다.
 미상불 그래서 정주사는 막막한 때면,
 "죽고 싶다."
 "죽어 버리자."
 이렇게 벼른다. 그러나 막상 죽자고 들면 죽을 수가 없고, 다만 죽자고 든 것만이 마치 염불이나 기도처럼 위안과 단념을 시켜 준다. 이러한 묘리를 체득한 정주사는 그래서 이제는 죽고 싶어하는 것이 하나의 행티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정주사는 흥분했던 것이 사그라지니 그제야 내가 왜 청승맞게 강변에 나와서 이러고 섰을꼬 하는 싱거운 생각에, 슬며시 발길을 돌이킨다. 그러나 언제 갈 데라야 좋으나 궂으나 집뿐인데, 집안일을 생각하면 다시 걸음이 내키지를 않는다.
 어제 저녁에 싸라기 한 되로 콩나물죽을 쑤어 먹고는 오늘 아침은 판판 굶었다. 시방 집으로 간 댔자, 처자들의 시장한 얼굴들이 그래도 행여 하고, 가장이요 부친인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판이다. 다만 십칠 전짜리 현미싸라기 한 되라도 사가지고 갔으면, 들어가는 사람이나 기다리는 식구들이나 기운이 나련만 그것조차 마련할 도리가 없다.
 정주사는 ××은행 모퉁이까지 나와 미두장께를 무심코 돌려다보다가 얼른 외면을 하면서,
 "내가 네깐놈의 데를 다시는 발걸음인들 허나 보아라!"
 누가 굳이 오라고를 할세 말이지, 그러나 이렇게 혼자서라도 옹심을 먹어 두어야 조금은 속이 후련해진다.
 그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저 가끔 밑천 없이 하바를 하다가 도화를 부르고는 젊은 사람들한테 여지없이 핀잔을 먹고, 그런 끝에 그 잘난 수염도 잡아 끄들리고 그 밖에도 별별 창피가 비일비재다.
 그래서 작년 가을에는, 내가 이럴 일이 아니라 차라리 벗어붙이고 노동을 해먹는 게 옳겠다고, 크게 용단을 내어 선창으로 나와서 짐을 져본 일이 있었다.
 그러나 체면이라는 것 때문에 일껏 용기를 내어 가지고 덤벼든 막벌이 노동도 반나절을 못 하고 작 파해 버렸다. 힘이 당해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반나절 동안 배에서 선창으로 퍼 올리는 짐을 지다가 거진 죽어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그 길로 탈이 난 것이, 십여 일이나 갱신 못 하고 앓았다. 집안에서들은, 여느 그저 몸살이거니 하고 걱정은 했어도, 그날 그러한 기막힌 내 평이 있었다는 것은 종시 알지 못했다.
 그런 뒤로부터 막벌이 노동을 해먹을 생심은 다시는 내지도 못했다. 못 하고 그저 창피하나 따나, 벌이야 있으나 없으나, 종시 미두장의 방퉁이꾼으로 지냈고, 양식을 구하지 못하는 날은 처 자식들을 데리고 앉아 굶고, 이렇게를 사는 참이다.
 입만 가졌지 손발이 없는 사람…… 이것이 정주사다.
 진도라고 하는 섬에서 나는 개〔珍島犬〕하며, 금강산의 만물상이며, 삼청동 숲속에서 울고 노는 새들이며, 이런 산수고 생물이고 간에 천연으로 묘하게 생긴 것이면 ' 천연기념물( 天然紀念物)’이라고 한다.
 그럴 바이면 입만 가졌지 수족이 없는 사람, 정주사도 기념물 속에 들기는 드는데, 그러나 사람은 사람이니까 '천연기념물’은 못 되고 그러면 '인간기념물(人間紀念物)’이겠다.
 
 정주사는 내키지 않는 걸음을 천천히 걸어 전주통(全州通)이라고 부르는 동녕고개를 지나 경찰서 앞 네거리에 이르렀다. 거기서 그는 잠깐 망설인다. 탑삭부리 한참봉(韓參奉)네 집 싸전 가게를 피하자면, 좀 돌더라도 신흥동(新興洞)으로 둘러 가야 한다.
 그러나 묵은 쌀값을 졸릴까 봐서 길을 피해 가고 싶던 그는 도리어, 약차하면 졸릴 셈을 하고라도 눈치를 보아 외상쌀이나 더 달래 볼까 하는 억지가 나던 것이다.
 정주사는 요새 정거장으로부터 시작하여 새로 난 소화통이라는 큰길을 동쪽으로 한참 내려가다가 바른손편으로 꺾이어 개복동(開福洞) 복판으로 들어섰다.
 예서부터가 조선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지금은 개복동과 연접된 구복동(九福洞)을 한데 버무려 가지고, 산상정(山上町)이니 개운 정( 開運町) 이니 하는 하이칼라 이름을 지었지만, 예나 시방이나 동네의 모양다리는 그냥 그 대중이고 조금도 개운(開運)은 되질 않았다. 그저 복판에 포도장치(鋪道粧置)도 안 한 십오 간짜리 토막 길이 있고, 길 좌우로 연달아 평지가 있는 둥 마는 둥하다가 그대로 사뭇 언덕비탈이다.
 그러나 언덕비탈의 언덕은 눈으로는 보이지를 않는다. 급하게 경사진 언덕비탈에 게딱지 같은 초가집이며 낡은 생철집 오막살이들이, 손바닥만한 빈틈도 남기지 않고 콩나물 길듯 다닥다닥 주어 박혀, 언덕이거니 짐작이나 할 뿐인 것이다. 그 집들이 콩나물 길 듯 주어 박힌 동네 모양새에서 생긴 이름인지, 이 개복동서 그 너머 둔뱀이〔屯栗里〕로 넘어가는 고개를 콩나물 고개라고 하는데, 실없이 제격에 맞는 이름이다.
 개복동, 구복동, 둔뱀이 그리고 이편으로 뚝 떨어져 정거장 뒤에 있는 '스래〔京浦里〕’, 이러한 몇 곳이 군산의 인구 칠만 명 가운데 육만도 넘는 조선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이 어깨를 비비면서 옴 닥옴닥 모여 사는 곳이다. 면적으로 치면 군산부의 몇십분지 일도 못 되는 땅이다.
 그뿐 아니라 정리된 시구(市區)라든지, 근대식 건물로든지, 사회시설이나 위생시설로든지, 제법 문화 도시의 모습을 차리고 있는 본정통이나, 전주통이나, 공원 밑 일대나, 또 넌지시 월명 산( 月明山) 아래로 자리를 잡고 있는 주택지대나, 이런 데다가 빗대면 개복동이니 둔뱀이니 하는 곳 은한 세기나 뒤떨어져 보인다. 한 세기라니, 인제 한 세기가 지난 뒤라도 이 사람들이 제법 고만큼이나 문화다운 살림을 하게 되리라 싶질 않다.
 개복동 복판으로 들어서서 콩나물고개까지 거진 당도한 정주사는 길 옆 왼편으로 있는 탑삭 부리 한참 봉네 싸전가게를 넘싯 들여다본다. 실상은 눈치를 보자는 생각뿐이요, 정작 쌀 외상을 더 달라고 하리라는 다부진 배짱은 못 먹었기 때문에, 사리기부터 하던 것이다.
 "정주사 안녕하시우?"
 탑삭부리 한참봉은 마침 쌀을 사러 온 아이한테 봉지쌀 한 납대기를 되어 주느라고 꾸부리고 있다가 힐끔 돌아다보고 인사를 한다는 것이 탑삭부리 수염에 푹 파묻힌 입에서 말이 한 개씩 한 개씩 따로따로 떨어져 나온다.
 "네에, 재미 좋시우? 한참봉……."
 정주사는 기왕 눈에 뜨인 길이라 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정주사는 이 싸전과 주인을 볼 때마다 샘이 나고 심정이 상한다.
 정주사가 처음 군산으로 와서 '큰샘거리〔大井洞〕’서 살 때에 탑삭부리네는 바로 건너편에다가 쌀, 보리, 잡곡 같은 것을 동냥해 온 것처럼 조금씩 벌여 놓고, 오도카니 앉아 낱되질을 하고 있었다. 거래는 그때부터 생겼다.
 그런데 그러던 것이, 소리도 없이 바스락바스락 일어나더니, 작년 봄에는 지금 이 자리에다가 가게와 살림집을 안팎으로 덩시렇게 지어 놓고, 겸해서 전화까지 때르릉때르릉 매어 놓고, 아주 한다 하는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제 말로도 한 일이만 원 잡았다고 하니까, 내숭꾸러기라 삼사만원 좋이 잡았으리라고 정주사는 생각한다.
 털보 한서방 혹은 탑삭부리 한서방이 '한참봉’으로 승차한 것도 돈을 그렇게 잡은 덕에 부지중 남이 올려 앉혀 준 첩지 없는 참봉이다.
 이렇게 겨우 십여 년간에 남은 팔자를 고치리만큼 잘 되었는데 자기의 몰락된 것을 생각하면 나도 차라리 그때부터 천여 원의 그 밑천으로 장사나 했더라면 하는 후회가 들어, 그래 샘이 나고 심정이 상하던 것이다.
 정주사는 나도 장사를 했더면 꼭 수를 잡았으리라고 믿지, 어려서부터 상고판으로 돌아다닌 사람과, 걸상을 타고 앉아 붓대만 놀리던 '서방님’이 판이 다르다는 것은 생각하려고도 않는다.
 "시장에서 나오시는군?…… 그래 오늘은……."
 탑삭부리 한참봉은 방금 되어 준 쌀값 받은 돈을 가게 방문턱 안에 있는 나무궤짝 구멍으로 딸그랑 집어넣고, 손바닥을 탁탁 털면서 돌아선다. 이 사람은 돈은 모았어도, 손금고 한 개 사는 법 없고, 처음 장사 시작할 때에 쓰던 나무궤짝을 손때가 새까맣게 오른 채 그대로 쓰고 있다. 그 놈을 가지고 돈을 모았대서 복궤라고 되레 자랑을 한다.
 "……오늘은 재수가 좋아서, 우리집 묵은 셈이나 좀 해주게 되셨수?"
 "재순지 무언지, 말두 마시우!…… 거 원 기가 맥혀!"
 정주사는 눈을 연신 깜짝깜짝하면서 아까 당한 일을 무심코 탄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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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탁류_濁流-조선일보.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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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거진 죽어 가는 초봉이는 그러므로 생명이란 건 한갓 무서운 고통일 뿐이지 아무것도 아니었다. 따라서 해방과 안식이 약속된 죽음이나 동경하지 않질 못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차라리 죽음을 자취하자던 초봉인데, 그런데 막상 죽자고를 하고서 본즉은, 그것 역시형 보로 인해 또한 뜻대로 할 수가 없게끔 억색한 사정이 앞을 막았다. 송희며 계봉이며의 위협 이 뒤에 처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초봉이가 절박하게 필요한 제 자신의 자살에 방해가 되는 형보를 처치하는 것은, 자살을 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한 개의 수단, 진실로 수단이요, 이 수단에 의한 자살이라야만 가장 완전하고 의의 있는 자살일 수가 있던 것이다.
 이것이 일시 절망되던 자살이 서광을 발견한 경위다. 독단이요, 운산(運算)은 맞았는데 답( 答) 은안 맞는 산술이다. 아마 식(式)이 틀린 모양이었었다.
 계집의 좁은 소견이라 하겠으나, 그건 남이 옆에서 보고 하는 소리요, 당자는 맞았는지 틀렸는지 알 턱도 없고 상관도 없이 그 답을 가지고서 곧장 제이단으로 넘어 들어간 지 이미 오래다. 오늘아침에 산술을 풀었는데 시방은 저녁이요, 벌써 사약으로 ×××까지 샀으니 말이다.
 물론 이 ×××이라는 약품이 형보의 목숨을 (초봉이 제 자신이 자살하는 데 쓰일 긴한 도구인 형보의 그 목숨을) 처치하기에는 그리 적당치 못한 것인 줄이야 초봉이도 잘 안다. 형보를 굳히자면 사실 분량이 극히 적어서 저 몰래 먹이기가 편해야 하고, 그러하고도 효과는 적실하고 빨리 나타나 주는 걸로, 그러니까 저 '××가리’ 같은 맹렬한 극약이라야만 할 터였었다.
 초봉이는 그래서 '××가리’를 구하려고, 오늘 종일토록 실상은 그 궁리에 골몰했었다. 그러나 결국 시원칠 못했다.
 무서운 극약이라, 간대도 사진 못할 것이고 한즉 S의사의 병원에서든지, 또 하다못해 박제 호에게 어름어름 접근을 해서든지 몰래 훔쳐 내는 수밖에 없는데, 그러자니 그게 조만이 없는 노릇 이었었다. 그래서 아무려나 우선 허허실수로, 일변 또 마음만이라도 듬직하라고 이 ××× 이나 마사다가 두어 보자던 것이다.
 ×××이라면, 재작년 송희를 잉태했을 적에 ××를 시키려고 먹어본 경험이 있는 약이라, 얼마 큼 효과를 믿기는 한다.
 그때에 교갑으로 열 개를 먹고서 거진 다 죽었으니까, 듬뿍 서른 개면 족하리라 했다.
 초봉이 저는 그러므로 그놈이면 좋고, 또 그뿐 아니라 다급하면 양잿물이 없나, 대들보에 밧줄이 없나, 하니 아무거라도 다 좋았다.
 하고, 도시 문제는 형보다.
 교갑으로 서른 개라면 한 주먹이 넘는다. 너댓 번에 저질러야 다 삼켜질지 말지 하다. 그런 걸 제법 형보게다가 저 몰래 먹인다는 게 도저히 안 될 말이다.
 혹시 좋은 약이라고 사알살 돌라서나 먹인다지만 구렁이가 다 된 형본 것을 그리 문문하게 속아 떨어질 이치가 없다. 반년이고 일년이고 두고 고분고분해서 방심을 시킨 뒤에 거사를 한다면 그럴 법은 하지만, 대체 그 짓을 어떻게 하고 견디며, 또 하루 한시가 꿈만한 걸 잔뜩 청 처짐하고 있기도 못 할 노릇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해도 이 ×××은 정작이 아니요 여벌감이다. 여벌감이고, 정작은 앞으로 달리서 둘러서 '××가리’나 그게 아니면 '×××’이라도 구해 볼 것, 그러나 만약 그도저도 안 되거드면 할 수 있나, 뭐 부엌에 날카로운 식칼이 있겠다 하니 그놈으로, 잠든 틈에…… 몸을 떨면서도 이렇게 안심은 해두던 것이다.
 외보살 내야차(外菩薩內夜叉)라고 하거니와 곡절은 어떠했든 저렇듯 애련한 계집이, 왈 남편이라는 인간 하나를 굳히려 사약을 사서 들고 만인에 섞여 장안의 한복판을 어엿이 걷는 줄이야 당자 저도 실상은 잊었거든, 하물며 남이 어찌 짐작인들 할 것인고.
 초봉이는 볼일을 보았으니 이내 돌아갔을 테로되, 이십 분 안에 들어오라던 소리가 미워서 어겨 서라도 더 충그릴 판이다. 충그려도 송희가 한 시간이나 그 안에는 깨지 않을 터여서 안심이다.
 그런데 마침 또, 오월의 밤이 좋으니 이대로 돌아다니고 싶기도 하고.
 가벼운 옷으로 스며드는 야기(夜氣)가 무어라고 형용할 수 없이 홑입맛이 당기게 살을 건드려 주어 자꾸자꾸 훠얼훨 걸어다녀야만 배길 것 같다. 자주 바깥바람을 쐬는 사람한테도 매력 있는 밤인 걸, 반 감금살이를 하는 초봉이게야 반갑지 않을 리가 없던 것이다.
 불빛 은은한 포도 위로 사람의 떼가 마치 한가한 물줄기처럼 밀려오고 이짝에서도 밀려가고 수없이 엇갈리는 사이를 초봉이는 호젓하게 종로 네거리로 향해 천천히 걷고 있다.
 가도록 황홀한 밤임에는 다름없었다. 그러나 오가는 사람들을 무심코 유심히 보면서 지나치는 동안 초봉이의 마음은 좋은 밤의 매력도 잊어버리고 차차로 어두워 오기 시작했다.
 보이느니 매양 즐거운 얼굴들이지 저처럼 액색하게 목숨이 밭아 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성 불렀다.
 하다가 필경 공원 앞까지 겨우 와서다.
 송희보다 조금 더 클까 한 아기 하나를 양편으로 손을 붙들어 배착배착 걸려 가지고 오면서 서로가 들여다보고는 웃고 좋아하고 하는 한 쌍의 젊은 부부와 쭈쩍 마주쳤다.
 어떻게도 그 거동이 탐탁하고 부럽던지, 초봉이는 그대로 땅바닥에 가 펄씬 주저앉아 울고 싶은것을, 겨우 지나쳐 보내고 돌아서서 다시 우두커니 바라다본다. 보고 섰는 동안에 생시가 꿈으로 바뀐다. 남자는 승재요, 여자는 초봉이 저요, 둘 사이에 매달려 배틀거리면서 간지게 걸음 마를하고 가는 아기는 송희요…….
 번연한 생시건만, 초봉이는 제가 남이 되어 남이 저인 양 넋을 잃고 서서 눈은 환영을 쫓는다.
 초봉이는 집에서도 늘 이러한 꿈 아닌 꿈을 먹고 산다. 송희를 사이에 두고 승재와 즐기는 단란한 가정.
 
 물론 그것은 꿈이었지, 산 희망은 감히 없다. 마치 외로운 과부가 결혼사진을 꺼내 놓고 보는 정상과 같아, 추억의 세계로 물러갈 수는 있어도 추억을 여기에다 살려 놓을 능력은 없음과 일반인 것이다.
 일찍이 초봉이는 제호와 살 적만 해도 승재에게 대한 여망을 통히 버리진 않았었다. 흠집난 몸 이 거니 하면 민망은 했어도 그래도 승재가 거두어 주기를 은연중 바랐고, 인제 어쩌면 그게 오려니싶어 저도 모르게 기다렸고, 하던 것이 필경 형보한테 덮치어 심신이 다 같이 시들어 버린 후로야 그런 생심을 할 기력을 잃는 동시에, 일변 승재는 저를 다 잊고 이 세상 사람으로 치지도 않겠거니 하여 아주 단념을 했었다. 그리고서 임의로운 그 꿈을 가졌다.
 계봉이가 그때그때의 소식은 들려주었다. 의사면허를 탄 줄도, 오래잖아 서울다가 개업을 하는줄도 알았다. 그런 것이 모두 꿈을 윤기 있게 해주는 양식이었었다.
 계봉이와 사이가 어떠한가 하고 몇 번 눈치를 떠보았다. 그 둘이 결혼을 했으면 좋을 생각이던 것이다. 하기야 처음에 저와 그랬었고 그랬다가 제가 퇴를 했고, 시방은 꿈속의 그이로 모시고있고, 그러면서 그 사람과 동생이 결혼하기를 바라는 것이 일변 마음에 죄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었다. 그러나 그러고저러고 간에 계봉이의 태도가 범연하여 동무 이상 아무것도 아닌 성 싶었고, 해서 더욱 마음놓고 그 꿈을 즐길 수가 있었다.
 아까 계봉이가 승재더러 한 말은 이 눈치를 본 소린데, 의뭉쟁이가 저는 시치미를 떼고 형의 속만 뽑아 보았던 것이다. 물론 알다가 미처 못 안 소리지만, 아무려나 초봉이 저 혼자는 희망 없는한 조각 빈 꿈일 값에, 만약 승재가 아직까지도 저를 약시약시하고 있는 줄을 안다면 그때는 죽었던 그 희망이 소생되기가 십상일 것이었었다. 뿐 아니라 그의 시들어 빠진 인생의 정기도 기운 차게 살아날 것이었었다.
 사람의 왕래가 밴 공원 앞 행길 한복판에 가서 넋을 놓고 섰던 초봉이는 얼마 만에야 겨우 정신이 들었다. 정신이 들자 막혔던 한숨이 소스라치게 터져 오르면서 이어 기운이 차악 까라진다.
 인제는 더 거닐고 무엇 하고 할 신명도 안 나고, 일껏 좀 마음 편하게 즐기쟀던 좋은 밤이 고만 쓸데없고 말았다.
 처음 요량에는 종로 네거리까지 바람만 바람만 밟아 가서, 계봉이가 있는 ××백화점에 들러 천천히 한바퀴 돌아보고, 그러다가 시간이 되어 파하거든 계봉이를 데리고 같이 오려니, 오다가는 아무 거나 먹음직한 걸로 밤참이라도 시켜 가지고 오려니, 이랬던 것인데 공굘시 생각잖은 마가 붙어 흥이 떨어지매 이것이고 저것이고 다 내키지 않고 지옥 같아도 할 수 없는 노릇이요, 차라리 어서 집으로 가서 드러눕고 싶기만 했다.
 그래도 미망이 없진 못해 잠깐 망설였으나, 이내 호오 한숨을 한번 더 내쉬고는 돌아섰던 채, 오던 길을 맥없이 걸어간다.
 걸어가면서 생각이다.
 숲속에 섞여 선 한 그루 조그마한 나무랄까, 풀언덕에 같이 자란 한 포기 이름 없는 풀이랄까, 명색도 없거니와 아무 시비도 없는 내가 아니더냐.
 우뚝 솟을 것도 없고 번화하게 피어날 며리도 없고 다못 남과 한가지로 남의 틈에 섭쓸려 남을해 하지도 말고, 남의 해도 입지 말고, 말썽없이 바스락 소리 없이 살아갈 내가 아니더냐.
 내가 언제 우난 행복이며 두드러진 호강을 바랐더냐. 내가 잘되자고 남을 음해했더냐. 부모며 동기간이며 자식한테며 불량한 마음인들 먹었더냐.
 마음이 모진 바도 아니요 신분이 유난스런 것도 아니요, 소리 없는 나무, 이름 없는 풀포기가 아니더냐. 그렇건만 그 사나운 풍파며 이 불측한 박해가 어인 것이란 말이냐.
 이 약병은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인명을 굳혀서까지 내 목숨을 자결하자는 것이 아니냐.
 내가 어쩌다 이렇듯 무서운 독부가 되었단 말이냐. 이것이 환장이 아니고 무엇이냐. 이 노릇을 어찌하 잔 말이냐. 이러한 것을 일러 운명이란다면 그도 하릴없다 하려니와, 아무리 야속한 운명 이기 로서니 너무도 악착하지 않으냐.
 운명! 운명! 그래도 이 노릇을 어찌하잔 말이냐.
 소리를 부르짖어 울고 싶은 것이, 더운 눈물만 두 볼을 촤르르 흘러내린다. 눈물에 놀라 좌우를 살피니 어둔 동관의 폭만 넓은 길이다.
 아무렇게나 소매를 들어 눈물을 씻으면서 얼마 안 남은 길을 종내 시름없이 걸어올라간다.
 희미한 가등에 비춰 보니 팔목시계가 여덟시하고 사십분이나 되었다. 그럭저럭 사십 분을 넘겨 밖에서 충그린 셈이다. 꼭 이십 분 안에 다녀오라던 시간보다 곱쟁이가 되었거니 해도 그게 그다지 속이 후련한 것도 모르겠었다.
 큰길을 다 올라와서 골목으로 들어설 때다.
 무심코 마악 들어서는데 갑자기 어린애 우는 소리가 까무러치듯 울려 나왔다.
 송희의 울음 소린 것은 갈데없고, 깜짝 놀라면서 반사적으로 움칫 멈춰 서던 것도 일순간, 꼬꾸라질 듯 대문을 향해 쫓아들어간다.
 아이가 벌써 제풀로 잠이 깰 시간도 아니요, 또 깼다고 하더라도 울면 칭얼거리고 울었지 저렇게 사뭇 기절해 울 이치도 없다. 분명코 이놈 장가놈이 내게다가 못 한 앙심풀이를 어린애한테다 하는구나!
 급한 중에도 이런 생각이 퍼뜩퍼뜩, 그러나 몸은 몸대로 바쁘다. 골목이라야 바로 몇 걸음 안 되는 상거요, 길로 난 안방의 드높은 서창이 마주보여, 한데 아이의 울음 소리가 어떻게도 다급한지 마음 같아서는 단박 창을 떠받고 뛰어들어갈 것 같았다.
 지친 대문을, 안 중문을, 마당을, 마루를, 어떻게 박차고 넘어 뛰고 해 들어왔는지 모른다.
 안방 윗미닫이를 벼락 치듯 열어 젖히는 순간 아니나다를까 두 눈이 벌컥 뒤집어진다.
 짐작이야 못 했던 바 아니지만 너무도 분이 치받치는 장면이었었다.
 
 마치 고깃감으로 사온 닭의 새끼나 다루듯, 형보는 송희의 두 발목을 한 손으로 움켜 거꾸로 도 동동 쳐들고 섰다. 송희는 새파랗게 다 죽어, 손을 허우적거리면서 숨이 넘어가게 운다.
 형보는 초봉이가 나가고, 나간 뒤에 이십 분이 넘어 삼십 분이 지나 사십 분이 거진 되어도 들어오질 않으니까, 그놈 불안과 짜증이 차차로 더해 가고 해서 시방 어미가 들어오기만 들어오면 아까 나갈 제, 어린애를 울렸다 보아라 배지를 갈라 놀 테니, 하던 앙칼진 그 소리까지 밉 살 스럽다고 우정 보아란 듯이 새끼를 집어 동댕이를 쳐주려고 잔뜩 벼르는 판인데, 이건 또 누가 이쁘 달까 봐 제가 제풀로 발딱 깨서는 들입다 귀따갑게 울어 대지를 않느냔 말이다.
 이참저참 해서 '밤의 수캐’는 드디어 제 성깔이 나고 말았다.
 울기는 이래도 울고 저래도 울고 성화 먹기야 매일반이니, 화풀이삼아 언제까지고 이렇게 거꾸로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어미한테다 기어코 요 꼴을 보여 줄 심술이었었다. 그랬기 때문에 초봉이가 달려드는 기척을 알고서도 짐짓 그 모양을 한 채로 서서 있었던 것이다.
 악이 복받친 초봉이는 기색해 가는 아이를 구할 것도 잊어버리고 푸르르 몸을 떨면서 집어 삼킬듯 형보를 노리고 섰다.
 이윽고 형보는 초봉이게로 힐끔 눈을 흘기고는,
 "배라먹을 것! 사람 귀가 따가워……."
 씹어 뱉으면서 아이를 저 자던 자리에다가 내던져 버린다.
 "이잇 천하에!"
 초봉이는 아드득 한마디 부르짖으면서 새끼 샘에 성난 암펌같이 사납게 달려들다가 마침 돌아서는 형보를, 되는 대로 아랫배를 겨누어 꿰어지라고 발길로 내지른다.
 역시 암펌같이 모진 그리고 날쌘 일격이었으나, 실상 겨누던 배가 아니고 어디껜지 발바닥이 칵 막히는데 저편에서는 의외에도 모질게 어이쿠 소리와 연달아 두 손으로 사타구니를 우디고 뱅뱅 두어 바퀴 맴을 돌다가 그대로 나가동그라진다.
 엇나간 겨냥이 도리어 좋게 당처를 들이 찼던 것이고 당한 형보로 보면 불의의 습격이라 도시 에피 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방바닥에 나가동그라진 형보는 두 손으로 ×××께를 움킨 채 악악 소리나 아니나 무령하게 물 먹는 메기처럼 입을 딱딱 벌리면서 보깬다. 눈은 흰창이 뒤집어지고 방금 숨이 넘어가는 시늉이다.
 죽으려고 헤번득거리는 것을 본 초봉이는 가슴이 서늘하면서 몸이 떨렸다.
 겁결에 얼핏 물이라도 먹이고 주물러라도 주어야지, 아아니 의사라도 불러 대어 살려 놓아야지하면서 마음 다급해하는데 순간, 마치 뜨거운 물을 좌왁 끼얹는 듯 머릿속이 화끈하니 치달아 오르는 게 있었다.
 '옳아! 죽여야지!’
 소리는 안 냈어도 보다 더 살기스런 포효다.
 죽으려고 납뛰는 것을 보고 겁이 나서 살려 놓자던 저를 혀 한번 찰 경황도 없었다. 경황이 없기보다도 잊어버렸기가 쉬우리라.
 이 순간의 초봉이의 얼굴을 누가 보았다면 벌겋게 상기된 채 씰룩거리는 안면 근육이며 모가지의 푸른 핏대며 독기가 딩겅딩겅 듣는 눈이며, 분명코 육식류의 야수를 연상하고 몸을 떨지 않질못 했을 것이다.
 "아이구우, 사람 죽는다아!"
 형보는 그새 아픔이 신간했던지, 떠나가게 게목을 지른다.
 초봉이는 깜짝 놀라 입술을 깨물고 와락 달려들어 형보가 우디고 있는 ×××께를 겨누고 힘껏 걷어찬다. 정통이 거기라는 것은 형보 제가 처음부터 우디고 있기 때문에 안 것이요, 하니 방법은 당자 제 자신이 가르쳐 준 셈쯤 되었다.
 마음먹고 차는 것이건만 이번에는 곧잘 정통으로 들어가질 않는다. 세 번 걷어찼는데 겨우 한 번 올바로 닿기는 했어도 형보의 손이 가리어 효과가 없고 말았다. 그럴 뿐 아니라 형보는 겨냥 들어오는 데가 거긴 줄 알아채고서 두 손으로 잔뜩 가리고 다리를 꼬아붙이고 그러고도 몸을 요리조리 가눈다. 인제는 암만 걷어질러야 위로 헛나가기 아니면 애먼 볼기짝이나 차이고 말지 정통에는 빈틈이 나지 않는다.
 ­---아이구우, 이년이 날 죽이네에!
 ­---아이구 아야 아이구 아야―--­---아이구우 이년이 사람 막 죽이네에!
 ­---아이구 아이구 아이구!
 ­---아이구우 날 잡아먹어라―--형보는 초봉이가 한번씩 발길질을 하는 족족, 발길질이라야 헛나가기 아니면 아프지도 않은 것을 멀쩡하니 뒹굴면서 돼지 생멱 따는 소리로 소리소리 게목을 질러 댄다.
 ××× 차인 것도 인제는 안 아프고 번연히 흉포를 떠느라 엄살인 것이다.
 형보는 조금치라도 초봉이에게서 살의를 거니채지는 못했다. 그러나 제가 송희를 가지고 한 소행은 있겠다, 한데 초봉이가 전에 없이 미칠 듯 날뛰니까 달리 겁이 슬그머니 났었다.
 그새까지는 악이 바치면은 등감이나 한번 쥐어박지르고 욕이나 해퍼붓고 이내 그만두었지 그다지 기승스럽게 대드는 법이 없었다.
 본시 뒤가 무른 형보는, 그래서 생각에, 저년이 이번에는 아마 단단히 독이 오른 모양이니 마주 성 구거나 잘못 건드렸다가는 제 분에 못 이겨 양잿물이라도 집어삼킬는지 모른다. 아예 그렇다면 맞서지를 말고 엄살이나 해가면서 제 분이 풀리라고, 때리면 맞는 시늉, 걷어차면 차이는 시늉 해주는 게 옳겠다, 차여 준대야 맨처음의 ×××는 멋도 모르고 차인 것, 인제는 제까짓것 계  집년이 참새다리 같은 걸로 발길질을 골백번 한들 소용 있더냐! 엉덩판이나 허벅다리 좀 차였다고 골병들 리 없고, 요렇게 ×××만 잘 싸고 피하면 고만이지, 이렇대서 시방 앞뒤 요량 다 된 줄로 든든히 배짱 내밀고 구렁이 같은 의뭉을 피우던 것이다.
 초봉이는 발길질에 차차로 기운이 팡져 오는데, 형보는 일변 도로 멀쩡해지는 걸 보니 마음이 다뿍 초조해서, 이를 어찌하나 싶어 안타까워할 즈음 요행히 꾀 하나가 언뜻 들었다.
 그는 여태까지 형보가 누워 있는 몸뚱이와 길이로만 서서 샅을 겨누어 발길질을 하던 것을 고 만두는 체 슬쩍 비키다가 와락 옆으로 다가서면서 날쌔게 발꿈치를 들어 칵 내리 제긴다.
 "어이쿠, 아이구우."
 형보는 ××× 두덩을 한 손만 옮겨다가 우디면서 옳게 아파한다.
 "아이구우 사람 죽네에!"
 형보는 여전히 게목을 지르면서 몸을 요리조리 바워 내고, 초봉이는 따라가면서 옆을 잃지 않고 제 긴다.
 그러다가 한번, 정통과는 겨냥이 턱없이 빗나갔고 훨씬 위로 배꼽 밑인 듯한데, 칵 내리 제기는 발꿈치가 물씬하자 단박,
 "어억!"
 소리도 미처 못 맺고 자리를 우디려 올라오던 팔도 풀기 없이 방바닥으로 내려진다. 아까 맨 먼저 ×××를 차이고 나가동그라질 때보다 더하다. 차인 자리는 형보고 초봉이고 다 같이 생각 지도 알지도 못하는 배꼽 밑의 급처이던 것이다.
 형보는 숭업게 눈창을 뒤집어쓰고 입을 떠억 벌린 채 거진 사족이 뻐드러져서 꼼짝도 않는다. 숨도 쉬는 것 같지 않고 입가로 게거품이 피어오른다.
 "오오냐!"
 기운이 버쩍 솟은 초봉이는 이를 보드득 갈아 붙이면서 맞창이라도 나라고 형보를 아랫배를 내리 칵칵 제긴다. 하나 둘 세엣 너히, 수없이 대고 제긴다. 다아섯 여어섯 이일곱 여어덟…….
 얼마를 그랬는지 정신은 물론 없고, 펄럭거리면서 발꿈치 방아를 찧는데 어찌어찌 하다가 내려다보니 형보는 네 활개를 쭈욱 뻗고 누워 움칫도 않는다. 숨도 안 쉬고 눈도 많이 감았다.
 초봉이는 비로소 형보가 죽은 줄로 알았다. 죽은 줄을 알고 발길질을 멈추고는 허얼헐 가쁜 숨을 쉬면서, 발밑에 뻐드러진 형보의 시신을 들여다본다.
 이 초봉이의 형용은 거기 굴러져 있는 송장 그것보다도 더 숭어운 꼴이다.
 긴 머리채가 앞뒤로 흐트러져 얼굴에도 그득 드리웠다. 얼굴에 드리운 머리칼 사이로 시뻘겋게 충혈 된 눈이 무섭게 번득인다. 깨문 입술은 흐르는 피가 검붉다. 매무시가 흘러내려 흰 허리 통이 징그럽게 드러났다. 가삐 쉬는 숨길마다, 드러난 그 허리통이 쥐노는 고깃덩이같이 들먹거린다.
 초봉이는 시방 완전히 통제를 잃어버린 '생리’다.
 머리가 눈을 가리거나 매무시가 흘러 허리통이 나온 것쯤 상관도 않거니와, 실상 상관 이전이어서 알기부터 못 하고 있다. 암만 숨이 가빠야 저는 가쁜 줄을 모른다. 송희가 들이 울어도 뒹굴 어도 안 들린다. 동네가 발끈한 것도 모른다.
 다 모른다. 모르고 형보가 이렇게 발밑에 나가동그라져 죽은 것, 오로지 그것만이 눈에 보일 따름이다.
 감각만 그렇듯 외딴 것이 아니라 의식도 또한 중간의 한 토막뿐이다. 그의 의식은 과거와도 뚝 잘리고, 미래와도 뚝 끊기어 앞서 일도 뒤엣일도 죄다 잊어버렸다. 잊어버리고서 역시 형보가 시방 ―--- 당장 시방―---거기 발밑에 나가동그라져 죽은 것, 단지 그것만을 안다. 그것은 흡사 곁가지를 후리고 위아래 동강을 쳐낸 가운데 토막만 갖다가 유리단지의 알콜에 담가 놓은 실험실의 신경이라고나 할는지.
 그 끔찍한 모양을 하고 서서 형보의 시신을 끄윽 내려다보던 초봉이는 이윽고 이마와 양미간으로 불평스런 구김살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초봉이는 형보를, 원망과 증오가 사무친 형보를, 또 이미 죽이쟀던 형보를 마침내 죽여 놓았고, 그래서 시방 이렇게 죽어 뻐드러졌고, 그러니까 인제는 속이 후련하고 기쁘고 했어야 할 것인데 아직 은 그런 생각이 안 나고, 형보가 죽은 것이 도리어 안타까웠다.
 원수는 이미 목숨이 없다. 죽었으되 저는 죽은 줄을 모른다. 발길로 차고 제기고 해도 아파하지 않는다.
 내 생애를 잡쳐 주었고 갖추갖추 나를 괴롭히던 원수건만 인제는 원한을 풀 데가 없다. 원수는 저렇듯 편안하다. 저 평온! 저 무사! 저 무관심!
 초봉이는 이게 안타깝고 그래서 불평이던 것이다.
 멈추고 섰던 것은 잠깐 동안이요, 이어 곧 훨씬 더 모질게 발길질을 해댄다.
 칵칵 배가 꿰어지라고 내리 제긴다. 발을 번갈아 가면서 제긴다.
 만약 이 형보의 배가 맞창이라도 났으면, 이렇게 물씬거리지 말고 내리 구르는 발꿈치가 배창을 꿰뚫고 다시 등짝을 꿰뚫고 따악 방바닥에 가서 야멸치게 맞히기라도 했으면 그것이 대답인 양초 봉이는 속이 후련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암만 기운을 들여서 사납게 제겨야 아파하지도 않고퍼 억 퍽 바람 빠진 고무공처럼 물씬거리기만 한다. 마치 그것은 형보가 살아 있을 제 하던 짓처럼 유들 유들한 것과 같았다.
 끝끝내 반응이 없고, 그게 답답하다 못해 초봉이는 고만 눈물이 쏟아진다.
 눈물에 맥이 탁 풀려, 그대로 주저앉으려다가 말고, 문득 방 안을 휘휘 둘러본다. 아무거나 연장이 아쉬웠던 것이다.
 이때에 가령 칼이 눈에 띄었다면 칼을 집어 들고서 형보의 시신을 육회 치듯 난도질을 해놓았을것이다. 또, 몽둥이나 방망이가 있었다면 그놈을 집어 들고서 들이 짓바쉈을 것이고, 시뻘건 화  톳불이 있었다면 그놈을 들어다가 이글이글 덮어씌웠을 것이다.
 방 안에는 아무것도 만만한 것이 보이지 않으니까 열려 있는 윗미닫이로 고개를 내밀고 마루를 둘러본다. 바로 문치의 쌀뒤주 앞에 가서 시커먼 맷돌이 묵직하게 포개져 놓인 것이 선뜻 눈에 띄었다.
 서슴잖고 우르르 나가 그놈을 위아래짝 한꺼번에 불끈 안아 들고 방으로 달겨든다. 여느때는 한 짝씩만 들재도 힘이 부치는 맷돌이다.
 번쩍 턱밑까지 높이 쳐들어 올린 맷돌을, 형보의 가슴패기를 겨누어 앙칼지게 내리 부딪는다.
 "떠그럭, 퍽, 떠그럭."
 무딘 소리와 한가지로 육중한 맷돌이 등의 곱사혹에 떠받히어 빗밋이 기운 형보의 앙가슴을 으 깨고 둔하게 굴러 내린다.
 맷돌을 내려치는 바람에 초봉이는 중심을 놓치고 앞으로 형보의 시체 위에 가서 꼬꾸라질 뻔하다가 겨우 몸을 가눈다.
 몸을 고쳐 가진 초봉이는 또다시 맷돌을 안아 올리려고 허리를 꾸부리다가, 피 밴 형보의 가슴을 보고서 그대로 멈춘다.
 맷돌에 으끄러진 가슴에서 엷은 메리야스 위로 자리 넓게 피가 배어 오른다. 팔을 쭉 편 손끝 이 바르르 보일락말락하게 떨다가 만다. 초봉이가 만일 그것까지 보았다면 아직도 설죽은 것으로 알고서 옳다꾸나 다시 무슨 거조를 냈겠는데, 실상은 잡아 놓은 쇠고기에서 쥐가 노는 것과 다름없는 생명 아닌 경련이었었다.
 뒤로 고개를 발딱 젖힌 입 한쪽 귀퉁이에서 검붉은 피가 가느다랗게 한 줄기 흐른다.
 초봉이는 굽혔던 허리를 펴면서,
 "휘유."
 깊이 한숨을 내쉰다. 피의 암시로 하여 다시 한번 형보의 죽음을 알았고, 그러자 비로소 그대 도록 벅차고 조만찮아했던 거역이 아주 우연하게 이렇듯 수월히 요정이 난 것을 안심하는 한숨 이었었다.
 따로 놀던 신경이 정리가 되어 감을 따라, 그것은 완연히 초봉이 제 자신의 능력이 아니고 한 개의 기적인 것 같아 경이의 눈으로 이 결과를 내려다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닌게아니라 오늘 밤 같은 전연 돌발적인 우연한 고패가 아니고서는 아무리 ××가리나 그런 좋은 약품이 있다고 하더라도 초봉이의 맑은 정신을 가지고는 좀처럼 마음 차근차근하게 일 거조를 내지 못했을는지도 모른다.
 초봉이는 차차 온전한 제정신이 들고, 정신이 들면서 맨 처음 송희의 우는 소리를 알아들었다.
 매우 오랜 동안인 것 같으나, 실상 첫번 형보의 ×××를 걷어질러 넘어뜨리던 그 순간부터 쳐서 오 분밖에 안 된 시간이다.
 초봉이는 얼른 머리카락을 뒤로 걷어 넘기고 허리춤을 추어 올리고 그러고 나서 팔을 벌리고 안겨 드는 송희를 그러안으려고 몸을 꾸부리다가 움칫 놀라 제 손을 끌어당긴다. 이 손이 사람을 굳힌 손이거니 하는 생각이 퍼뜩 들면서 사람을 굳힌 손으로 소중스런 자식을 안기가 송구 했던것이다. 송희는 엄마가 꺼려하는 것이야 상관할 바 없고, 제풀로 안겨들어 벌써 젖꼭지를 문다.
 할 수 없는 노릇이고, 초봉이는 송희를 젖 물려 안은 채 처네를 내려다가 형보의 시신을 덮어 버린다. 이것은 송장에 대한 산 사람의 예절과 공포를 같이한 본능일 게다. 그러나 시방 초봉 이의경 우는 그렇기보다 어린 송희에게, 아무리 무심한 어린 눈이라고 하더라도 그 눈에 이 끔 찍스런 살상의 자취가 보이지 말게 하자는 어머니의 마음일 게다.
 초봉이는 이어서 뒷일 수습을 하기 시작한다. 우선 시간을 본다. 아홉시까지는 아직 십오 분이나 남았다. 계봉이가 항용 아홉시 사십분 그 어림해서 돌아오곤 하니 그 준비는 그 동안에 넉넉할것이었었다.
 한 손으로는 송희를 안고 한 손만 놀려 가면서 바지런바지런, 그러나 어디 놀러 나갈 채비라도 차리는 듯 심상하게 서둔다.
 아까 사가지고 온 ×××병과 교갑 봉지가 방바닥에 굴러져 있는 것을 집어 건넌방에다 갖다 둔다.
 그 다음, 양복장 아래 서랍에 고스란히 들어 있는 송희의 옷을 그대로 담쏙 트렁크에 옮겨 담아 건넌방으로 가져간다.
 또 그 다음, 장롱에서 위아랫막이 안팎 새옷을 한 벌 심지어 버선까지 고르게 챙겨 내다가 놓는다.
 마지막 방바닥의 너저분한 것을 대강대강 거두어 잡아 치우고는 손탯그릇의 돈지갑을 꺼내서 손에 쥔다.
 반지가 백금반진데, 시방 손에 낀 형보가 해준 놈말고 전에 박제호가 해준 놈이 또 한 개, 그리고 사파이어를 박은 금반지까지 도통 세 개다. 죄다 찾아내고 뽑고 해서 돈지갑에다가 넣는다.
 반지를 뽑고 하노라니까 문득 한숨이 소스라쳐 나온다. 지나간 날 군산서 떠나올 그 밤에 역시고 태수가 해준 반지를 뽑던 생각이 나던 것이다.
 어쩌면 한 번도 아니요 두 번째나 이 짓을 하다니, 그것이 심술 사나운 운명의 역력스러운 표적인가 싶기도 했다.
 반지 하나 때문에 추억을 자아내어 가슴 하나 가득 여러 가지 회포가 부풀어오른다.
 한참이나 넋을 놓고 우두커니 섰다가 터져 나오는 한숨 끝에 중얼거린다.
 "그래도 그때 그날 밤에는 살자고 희망을 가졌었지!"
 초봉이는 안방을 마지막으로 나오려면서 휘익 한번 둘러본다. 역시 미진한 게 있다면 얼마든지 있겠으나 시방 이 경황중에는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다.
 
 남색 제병처네를 덮어씌운 형보의 시신 위에 눈이 제풀로 멎는다. 인제는 꼼지락도 않는 송장, 송장 이 거니 해야 몸이 쭈삣하거나 무섭지도 않다.
 항용 남들처럼 사람을 해하고 난 그 뒤에 오는 것, 가령 막연한 공포라든지, 순전한 마음의 죄책이라든지, 다시 또 그 뒤에 오는 것으로 받을 법의 형벌이라든지 그런 것은 통히 생각이 나질 않는다. 단지 천행으로 이루어진 이 결과에 대한 만족과, 일변 원수의 무사태평함에 대한 시기( 嫉妬) 와 이 두 가지의 상극된 감정이 서로 번갈아 드나들 따름이다.
 이윽고 마루로 나와 미닫이를 닫고 돌아서다가 문득 얼굴을 찡그리면서,
 "원수는 외나무다리서 만난다더니! 저승을 가도 같이 가야 하나!"
 하고 쓰디쓰게 한마디, 입속말을 씹는다.
 미상불 징그럽기도 하려니와 창피스런 깐으로는 작히나 하면 이놈의 집구석에서 약을 먹고 죽을게 아니라 철도 길목이든지 한강이든지 나갔으면 싶었다.
 건넌방으로 건너와서 그 동안 잠이 든 송희를 아랫목으로 내려 뉜다. 뉘면서 송희의 얼굴을 들여다보노라니 비로소 그제야 설움이 솟으라쳐 눈물이 쏟아진다.
 설움에 맡겨 언제까지고 울고 싶은 것을 그러나 뒷일이 총총해 못한다. 흘러넘치는 눈물을 씻으며 흘리며, 계봉이의 경대를 다가 놓고 머리를 빗는다. 단장은 했으나 눈물이 자꾸만 망쳐 놓는다. 마지막 새옷을 싸악 갈아입는다. 옷까지 갈아입고 나니 그래도 조금은 기분이 산뜻한 것 같다.
 유서를 쓴다. 비회가 붓보다 앞을 서고 또 쓰기로 들면 얼마든지 장황하겠어서 아주 형식적 이요 간단하게 부친 정주사와 모친 유씨한테 각각 한 장씩 썼다.
 계봉한테는 송희를 갖추갖추 부탁하느라고 좀 자상했다. 승재와 결혼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도 했다.
 유서 석 장을 각각 봉해 가지고 다시 한 봉투에다가 넣어 겉봉을 부주전상백시라고 썼다.
 마침 아홉시 반이 되어 온다. 인제 한 십 분이면 계봉이가 오고, 오면은 선 자리에서 송희와 돈 지갑과 유서와 트렁크를 내주면서 정거장으로 쫓을 판이다.
 모친이 병이 위급하다는 전보가 왔는데, 형보가 의증을 내어 못 내려가게 하니 너 먼저 송 희를 데리고 이번 열한점 차로 내려가면, 날라컨 몸 가쁜하게 있다가 눈치 보아 가면서 오늘 밤에 못 가더라도 내일 아침이고 밤이고 몸을 빼쳐 내려가마고, 이렇게 돌릴 요량이다. 유서의 겉봉을 부친한테 한 것도 그러한 의사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리서 계획했던 것이 아니고, 당장 꾸며 댄 의견이다. 그는 계봉이를 송희와 압령 해서 그렇게 시골로 내려보내 놓고 최후의 거사를 해야 망정이지, 이 흉악한 살상의 뒤끝을 그 애들한테 다가 맡기다니 절대로 불가한 짓이었었다.
 사실 그러한 뒷근심이 아니고서야 유서나 머리맡에다 놓아 두고 진작 약그릇을 집어 들었을 것이지 우정 계봉이를 기다리고 있을 것도 없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필요’가 그러한 연유로 해서 기다린다 하지만, 사랑하는 동생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상면을 하게 되는 것이, 그것이 초봉이에게는 오히려 뜻이 있고 겸하여 커다란 기쁨이 아닐수 없었다.
 유서까지 써놓았고 하니 준비는 다 된 셈이다.
 인제는 계봉이가 돌아올 동안에 교갑에다가 약이나 재자고 ×××병을 앞으로 다가 놓다가, 먹고 죽을 사약이 쓴 걸 가리려는 저 자신이 하도 서글퍼 코웃음을 하면서 도로 밀어 놓는다.
 하고 그것보다는 나머지 십 분을 송희의 마지막 엄마 노릇을 할 것이긴 한데 잊어버렸던 것이 대단 스러웠다.
 그래 마악 책상 앞으로부터 아랫목의 송희에게로 돌아앉으려고 하는데 그때 마침 계봉이가 우당 퉁탕 황급히 언니를 불러 외치면서 달려들었던 것이다.
 달려드는 계봉이는 미처 방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마루로 난 샛문턱에 우뚝, 사라질 듯 목안엣소리로,
 "언니이!"
 부르면서 눈에는 눈물이 뚜욱뚝 형의 얼굴을, 송희를, 트렁크를, ×××병을, 이렇게 휘익 둘러보다가 다시 형을 마주본다.
 19 서곡( 序曲) 초봉이는 동생이 하도 황망히 달려들면서 겸하여 사뭇 자지러져 찾는 소리에 저 애가 일 저지른 걸 벌써 다 알고 이러지를 않나 싶어 깜짝 놀랐으나, 이어 곧 무슨 그럴 리가 있을까 보냐고, 미심은 미심대로 한옆에 젖혀 둔 채 얼굴을 천연스럽게 가지려고 했다.
 그러나 마루로 뛰어올라 문턱을 디디고 서는 계봉이의 (긴장한 거동이 종시 예사롭질 않았지만 그것보다도) 가뜩 더 간절하게, 언니이! 부르는 소리가 어떻게도 정이 넘치는지, 그런데 또 눈에서는 눈물이 글썽글썽 솟아 흐르고…… 초봉이는 제법 침착하자고 마음 도사려먹었던 것은 그만 파 그 르르 스러지고, 마주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내린다.
 그것은 사람의 육친의 동기간 사이에서만 우러날 수 있는 극진한 애정에서 초봉이는 순간 아무 것도 다 잊어버리고 아프리만큼 감격을 느꼈다. 그는 뒷일이야 어찌 되든지 설사 계봉이가 말려서 시방 최후의 요긴한 한 가지 일인 자결을 뜻대로 이루질 못하게 될 값에 그렇더라도 이렇게 다시 한번 동생을 상면하는 것이 크고, 그러므로 기다리고 있었던 게 잘한 노릇이고 하다 싶어 더욱이 기뻐해 마지않는다.
 
 계봉이는 형이 무사히 있음을 보고서 와락 반가움에 지쳐 눈물까지는 나왔어도, 그 다음 다른 것은 암만해야 머루 먹은 속같이 얼떨떨하니 가늠을 할 수가 없었다.
 가만히 한 발걸음 방 안으로 계봉이는 형의 기색과 동정을 살피면서, 또 한 걸음 떼어 놓고는 둘레둘레 하다가,
 "언니이!"
 조르듯 응석을 하듯 다뿍 성화가 난 소리다. 왜 그다지 성화에 겨웠느냐고 물으면 저도 섬뻑 대답은 못 할 테면서, 그러나 단단히 걱정스럽기는 걱정스러웠다.
 초봉이는 눈에 눈물을 담은 채 아낌없이 가만히 웃으면서,
 "지 끔 오니?"
 하고 근경 있이 대답을 해준다.
 경황중에도 계봉이는 참으로 아직껏 형의 웃는 입가는 이쁘다고 좋아했다.
 잠깐 서로 말이 없이 보고만 섰다.
 계봉이는 자꾸만 궁금해 못 견디겠는데, 그러면서도 어리뚜웅해서 무슨 소리를 무어라고 물어보고 이야기하고 할지를 몰랐다. 하다가 언뜻 승재와 같이서 온 생각이 생각났다.
 별반 이 장면의 이 공기에 긴급한 테마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생각이 난 것을 말 않고 가만히 있을 것도 없는 것이라,
 "남 서방두 왔는데……."
 "머어?"
 초봉이가 호들갑스럽게 놀라는데 마침 뚜벅뚜벅 마당으로 승재가 들어서고 있다.
 초봉이는 반사적으로 몸이 앞 미닫이께로 와락 쏠리다가 마당 가운데 쭈쩍 멈춰 서는 승재와 얼굴이 마주치자 꺾이듯 고개가 깊이 떨어진다.
 계봉이도 형의 어깨 너머로 내다보고, 그러나 불빛이 희미해서 피차에 얼굴의 변화는 세 사람이다 같이 알아보지 못했다.
 승재는 둘레둘레 망설이고 섰다가 그로서는 좀 대담하리만큼 대뜰로 해서 마루로 성큼 올라선다
 .
 건넌방의 아우 형제는 시방 승재가 그리로 들어올 줄 기다리고 있는데, 승재는 마루에서 잠깐 머뭇거리더니 쿵쿵 발소리를 내면서 안방께로 가고 있다.
 계봉이도 의아했지만, 초봉이는 숙였던 고개를 번쩍 소스라치게 놀라서,
 "아이 머니 저이가!"
 하면서 기색할 듯 목소리를 짓누른다.
 그러나, 승재는 벌써 미닫이를 뒤로 닫고 들어갔고, 계봉이는 비로소 번개같이 머리에 떠오르는게 있어 눈이 휘둥그래지더니 형더러 무슨 말을 할 듯하다가 우루루 마루로 달려나간다.
 초봉이는 일순간의 격동 끝에 어깨를 추욱 처트리고 넋없이 서서 있고, 계봉이는 한걸음에 마루를 지나 안방 미닫이를 와락 열어 젖힌다.
 생각한 바와 같았는데 놀람은 놀람대로 커서,
 "악!"
 조심스러우나 무거운 부르짖음이 쏠려 오른다.
 "문 닫구 절러루 가서 있어요!"
 처네를 걷어 치우고 형보의 시신을 손목 짚어 맥을 보던 승재가 얼굴을 들지 않은 채 계봉이를 나무란다.
 계봉이는 더 오래 정신없이 섰을 것을 승재의 주의에, 기계적으로 미닫이를 닫고, 역시 기계적으로 한 걸음 두 걸음 건넌방을 향해 걸어온다.
 초봉이는 동생과 얼굴이 마주치자 힘없이 고개를 떨어트린다.
 계봉이는 형의 앞에까지 와서 조용히 선다. 말은 없고 형의 숙인 이마를 보던 눈을 책상 위의 약 병 ×××으로 돌렸다가 도로 형을 본다. 이때는 놀랐던 기색이 벌써 다 가시고 슬픔이 가득히 얼굴로 갈려들었다.
 저 사약이 말을 하는 죽음이 아니면, 법이 주는 형벌, 일순간 후에는 반드시 오고야 말 형의 절박한 운명의 아픔을 시방 계봉이는 독립한 딴 개체의 것으로가 아니요, 바로 제 살 〔內體〕 속에서 감각하고 있는 것이다.
 "언니!"
 들이 몸부림이 치일 직전의 무의식한 호흡 같고, 부르는 소리도 목이 메어 목에서 걸린다.
 초봉이는 순순히 고개를 들어 웃으려고 한다. 조용히 단념을 하는 미소, 하니 그것은 웃음 이기보다 울음에 가깝겠지만, 그거나마 동생의 너무도 슬픈 얼굴 앞에서는 이내 스러져 버리고 만다.
 하고서 방금 울음이 터져 오를 듯 입이 비죽 비죽,
 "계봉아!"
 "언니!"
 계봉이는 와락 쏠려들어 형의 아랫도리를 얼싸안고 접질리고, 초봉이는 그대로 주저앉으면서 동생의 어깨에다가 고개를 파묻는다.
 두 울음 소리가 동생은 높게 형은 가늘게 서로 뒤섞여 호젓이 떨린다.
 "죄꼼만 더 참던 않구! 죄꼼만……."
 갑자기 계봉이가 얼굴을 쳐들면서 어깨를 쌀쌀, 안타까이 부르짖는다.
 "……죄꼼만 참았으믄 남서방이 나서서 언닐 구해 내 주구, 다아 그러기루 했는데!…… 죄꼼만더 참지! 이 일을 어떻게 해애! 언니 언니!"
 계봉이는 도로 형의 무릎에 가 엎드러진다. 폭폭하다 못해 하는 소리요, 말하는 그대로지, 말 이  외에 다른 의미는 없던 것이다.
 그러나 듣는 초봉이에게는 그렇게 단순하게만 들리진 않았다.
 초봉이는 가슴속이 용솟음을 치는 채, 울던 것도 잊어버리고 벙벙하니 앉아 있다.
 승재가 나서서 나를 구해 내 주고 그리고 다 그러기로 했다구?…… 옳아! 시방도 그러니까 나를 사랑하고, 그래서 다시 거둬 주려고…….
 이렇게 생각할 때에 초봉이는 금시로 몸에 날개가 돋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 정말 그랬구나. 그래서 저렇게 찾아온 것이고…… 그런 것을 아뿔싸! 정말 죄꼼만 참았더라면, 한 시간만 참았어도…….’
 생각이 이에 미치자 그만 상성이라도 할 듯 후울훌 뛰고 싶게 안타까웠다.
 이 정당한 오해는 물론 계봉이의 고의도 아니요, 초봉이의 잘못도 아닌 것이다.
 초봉이는 동생의 등 위에 또다시 엎드려 애가 끊이게 운다.
 승재가 아직도 나를 사랑하고 있었구나 하면 이다지도 기쁜 노릇은 생후 처음이다. 그러나 시방은 일을 저지른 뒤다. 부질없이 큰 기쁨이 순간의 어긋남으로 해서 내 것이 아니고 말았으니 세상에도 이런 야속한 노릇이 있을 수가 없다.
 그래도 승재가 이제껏 나를 사랑하는 것은 반갑지 않으냐?…… 그렇지만 반가우면 무얼 하나.
 인제 죽고 말 테면서. 아니 그래도…… 글쎄…… 어떡허나! 어떻게…….
 이렇게 되풀이를 하는 동안 초봉이는 일이 기쁜지 슬픈지 마침내 분간을 하지 못하고 울기만 한다.
 이윽고 승재가 안방으로부터 건너와서 우두커니 문치에 가 선다.
 승재가 건너온 기척을 알고 초봉이가 먼저 몸을 일으켜 도사리고 앉으면서 숙인 얼굴을 두 손으로 싼다. 뒤미처 계봉이도 얼굴을 들어 옆에 섰는 승재게로 토옹통 부은 눈을 돌린다. 승재는 그 뜻을 알아차리고 도리질을 한다. 형보는 아주 치명상으로 절명이 되었던 것이다.
 승재가 몸 주체를 못 하고 섰는 것을 계봉이가 눈짓을 해서 그 자리에 편안찮이 앉고, 세 사람은 초봉이가 따암땀 가늘게 느껴 울 뿐 다 같이 말이 없이 한동안 잠잠하다.
 "언니이?"
 침착을 회복하여 곰곰이 생각을 하고 있던 계봉이는 얼마 만에야 목소리를 가다듬어 형을 부르면서 바투 더 다가앉는다. 초봉이는 대답 대신 얼굴의 손만 떼었다가 도로 가린다.
 "저어, 응? 언니이……."
 "……"
 "저어, 응?…… 저어, 경찰서루 가서 응? 자현을 허우, 응?…… 그걸 차마……."
 말을 채 못 하고서 계봉이는 한숨을 내쉰다. 초봉이는 움칫 놀라 얼굴을 들고 동생을 바라다본다
 . 무어라고 할 수 없는 착잡한 표정이 퍼뜩퍼뜩 갈려든다.
 동생의 말은 선뜻 반가운 소리였었다. 그러나 야속스런 훈수였었다.
 "자현?…… 자현을 하다니!"
 우두커니 동생의 얼굴을 건너다보고 앉았던 초봉이의 입에서, 그것은 누구더러 하는 말이라기보다도, 자탄에 겨운 넋두리가 흘러져 나온다.
 "……자현을 하믄 징역을 살라구? 사형이라믄 차라리 좋지만, 징역을 살다니…… 인전 하다 하다못해 서 징역까지 살아? 그 몹쓸 경난을 다아 겪구두 남은 고생이 있어서 징역까지 살아?…… 못 하겠다! 난 기왕 죽자구 하던 노릇이니 죽구 말겠다! 죽구 말지 징역이라니!…… 내가 무얼 잘 못 했길래? 응? 내가 무얼 잘못했어? 장형보 그까짓 파리 목숨 하나만두 못한 생명. 파리 목숨이라 믄 남한테 해나 없지. 천하에 몹쓸 악당. 그놈을 죽였다구 그게, 그게 죄란 말이냐? 어쩌니 그게 죄냐? 미친개는 때려죽이면 잘했다구 추앙하지? 미친개보담두 더한 걸 죽였는데 어째서 죄란말이냐?…… 난 억울해서 징역 못 살겠다!…… 왜, 왜 내가 징역을 사니? 인전 두 다리 쭈욱 뻗구서 편안히 죽을 것을, 왜 일부러 고생을 사서 하니? 응? 응?"
 가슴을 쥐어뜯고 몸부림을 치게 애달픈 것을 못 하고서 다시 손으로 얼굴을 싸고 운다. 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줄줄이 흘러내린다.
 승재가 눈에 눈물이 가득, 코를 벌심벌심, 황소같이 식식거리고 앉았다.
 참혹한 살상에 대한 불쾌했던 인상이 스러지는 반면 그 살상을 저지른 초봉이의 정상에 오히려 동감이 되면서, 일변 '독초’와 독초 그것을 가꾸는 '육법전서’에의 울분이 치달아오르던 것이다.
 그는 시방 가슴에 불이 치미는 깐으로는 단박 ×이라도 뽑아 들고 거리로 뛰쳐나갈 것 같은 것을, 그러고서는 막상 어디 가서 누구를 행실을 낼 바를 몰라 그것이 답답했다.
 "어떻게 해요! 응?"
 계봉이가 고개를 돌리고 조르듯 성화를 한다. 승재는 그 말은 대답을 못하고,
 "빌어먹을 놈의……!"
 볼먹은 소리로 두런두런, 주먹으로 눈물을 씻다가, 그 다음에는 이라도 갈 듯,
 "…… 어디 보자!"
 하면서 허공을 눈 부릅뜬다.
 "뚱딴지네!"
 계봉이는 승재한테 눈을 흘기면서 입안엣말로 쫑알거리다가 형을 부여잡는다.
 "언니?"
 "계봉아……!"
 초봉이는 부지를 못해 동생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엎드려서 울음 소리 섞어섞어 하소를 한다.
 "……계봉아! 이 노릇을 어떡허니? 어떡허믄 졸 거나? 응? 죽자구 해두 죽을 수두 없구…… 살 자구 해두 살 수두 없구…… 이 노릇을 어떡허믄 좋단 말이냐? 에구 계봉아!"
 
 "언니? 언니! 헐 수 있수? 정상이 정상이구, 또 자술 했으니깐 형벌이 그대지 중하던 않을 테지…… 다직 한 십 년, 아니 한 오륙 년밖엔 안 될지두 모르니, 그것만 치르구 나오믄 고만 아니우?
 그 댐엔 다아 좋잖우? 송흰 그새 동안 아무 걱정 할라 말구…… 그저 몇 해 동안만…… 그렇지만, 그렇지만 언니가 그 짓을 어떻게! 징역살이를 어떻게 허우!…… 아이구 이 일을 어째애!"
 달랜다는 것이 마지막 가서는 같이서 울고 만다.
 막혔던 봇둑을 터뜨린 듯 형제가 도로 어우러져 울고 있고, 승재는 고개를 깊이 숙이고 앉았고 하기를 한 식경이나 지나간 뒤다.
 초봉이는 불시로 눈물을 거두고 얼굴을 들어 승재게로 돌린다. 승재도 마침 울음 소리 끊긴 데 주의가 가서 고개를 들다가 초봉이와 눈이 마주친다.
 초봉이는 무엇인지 간절함이 어리어 있는 눈동자로 무엇인지를 승재의 얼굴에서 찾으려는 듯 한참이나 보고 있다가 이윽고 목멘 소리로,
 "그렇게 하까요? 하라구 허시믄 하겠어요! 징역이라두 살구 오겠어요!"
 하면서 조르듯 묻는다. 의외요, 그러나 침착한 태도였었다.
 승재는 그렇듯 어떤 새로운 긴장을 띤 초봉이의 그 눈이 무엇을 말하며, 하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 하는 것인지를 잘 알 수가 있었다.
 알고 나니 대답이 막히기는 했으나 그는 시방 이 자리에서 초봉이가 애원하는 그 '명일의 언약’을 거절하는 눈치를 보일 용기는 도저히 나질 못했다.
 "뒷일은 아무것두 염려 마시구, 다녀오십시오!"
 승재의 음성은 다정했다. 초봉이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안도의 산숨을 내쉬면서,
 "네에."
 고즈넉이 대답하고, 숙였던 얼굴을 한번 더 들어 승재를 본다. 그 얼굴이 지극히 슬프면서도 그러나 웃을 듯 빛남을 승재는 보지 않지 못했다.
 출전:조선일보(1937.10.12~1938.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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