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x250
반응형

아내 (안해)
김유정
1936 

아내 (안해) (김유정, 1936)


원문 PDF   파일 다운로드 받기

OT-김유정-안해-사해공론.pdf
0.28MB
김유정-안해-사해공론.pdf
1.84MB

 

 


줄거리 및 작품소개

 

아내(소설) - 한성대학교 미디어위키

제목 개요 김유정이 1935년 12월에 발표한 단편소설. 농촌의 한 부부가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들병이로 나서겠다는 아내와 이를 교육 하는 남편 사이의 이야기이다. 줄거리 '나'는 밭농사와 나무

hwiki.eumstory.co.kr

 

저자소개

 

김유정(소설가) - 나무위키

김유정은 늘 어머니의 사진을 품에 지니고 다닐 정도로 유년기의 상처로 인한 애정결핍이 심했고 연상의 여성에 대한 맹목적인 환상과 집착증세가 있어 유독 여성에게 집착했다. 특히 연희전문

namu.wiki

 

안해


 우리 마누라는 누가 보든지 뭐 이쁘다고는 안 할 것이다. 바로 계집에 환
장된 놈이 있다면 모르거니와, 나도 일상 같이 지내긴 하나 아무리 잘 고쳐
보아도 요만치도 이쁘지 않다. 하지만 계집이 낯짝이 이뻐 맛이냐. 제기할
황소 같은 아들만 줄대 잘 빠쳐놓으면 고만이지. 사실 우리 같은 놈은 늙어
서 자식까지 없다면 꼭 굶어 죽을 밖에 별도리 없다. 가진 땅 없어, 몸 못
써 일 못하여, 이걸 누가 열쳤다고 그냥 먹여줄 테냐. 하니까 내 말이 이왕
젊어서 되는대로 자꾸 자식이나 쌓아두자 하는 것이지.
 그리고 에미가 낯짝 글렀다고 그 자식까지 더러운 법은 없으렷다. 아 바로
우리 똘똘이를 보아도 알겠지만 즈 에미년은 쥐었다 놓은 개떡 같아도 좀
똑똑하고 낄끗이 생겼느냐. 비록 먹고도 대구 또 달라고 불아귀처럼 덤비기
는 할망정. 참 이놈이야말로 나에게는 아버지보담도 할아버지보담도 아주
말할 수 없이 끔찍한 보물이다.
 년이 나에게 되지 않은 큰 체를 하게 된 것도 결국 이 자식을 낳았기 때문
이다. 전에야 그 상판때길 가지고 어딜 끽소리나 제법 했으랴. 흔히 말하길
계집의 얼굴이란 눈이 안경이라 한다. 마는 제 아무리 물커진 눈깔이라도
이 얼굴만은 어째볼 도리 없을게다.
 이마가 훌떡 까지고 양미간이 벌면 소견이 탁 틔었다지 않냐. 그럼 좋기는
하다마는 아기자기한 맛이 없고 이 조로 둥글넓적이 내려온 하관에 멋없이
쑥 내민 것이 입이다. 두툼은 하나 건순입술, 말 좀 하려면 그리 정하지 못
한 운이가 분질없이 뻔찔 드러난다. 설혹 그렇다 치고 한복판에 달린 코나
좀 똑똑히 생겼다면 얼마 낫겠다. 첫때 눈에 띄는 것이 그 코인데, 이렇게
말하면 년의 숭을 보는 것 같지만, 썩 잘 보자 해도 먼 산 바라보는 도야지
의 코가 자꾸만 생각이 난다.
 꼴이 이러니까 밤이면 내 눈치만 스을슬 살피는 것이 아니냐. 오늘은 구박
이나 안 할까, 하고 은근히 애를 태우는 맥이렷다. 이게 가여워서 피곤한
몸을 무릅쓰고 대개 내가 먼저 말을 걸게 된다. 온종일 뭘 했느냐는 둥, 싸
리문을 좀 고쳐놓으라 했더니 어떻게 했느냐는 둥, 혹은 오늘 밤에는 웬일
인지 코가 훨씬 좋아 보인다는 둥, 하고. 그러면 년이 금세 헤에 벌어지고
힝하게 내 곁에 와 앉아서는 어깨를 비겨대고 슬근슬근 비빈다. 그리고 코
가 좋아 보인다니 정말 그러냐고 몸이 달아서 묻고 또 묻고 한다. 저로도
믿지 못할 그 사실을 한때의 위안이나마 또 한 번 들어보자는 심정이렷다.
그 속을 알고 짜정 콧날이 서나 보다고 하면 년의 대답이 뒷간엘 갈 적마다
잡아당기고 했더니 혹 나왔을지 모른다나, 그러고 아주 좋아한다.
 그러나 어느 때에는 한나절 밭고랑에서 시달린 몸이 고만 축 늘어지는구
나. 물론 말 한마디 붙일 새 없이 방바닥에 그대로 누워버리지. 허면 년이
제 얼굴 때문에 그런 줄 알고 한구석에 가 시무룩해서 앉았다. 얼굴을 모로
돌려 턱을 뻐쭉 쳐들고 있는 걸 보면 필연 제깐엔 옆얼굴이나 한번 봐달라
는 속이겠지. 경칠 년. 옆얼굴이라고 뭐 깨묵셍이나 좀 난 줄 알구 ─.
 이러던 년이 똘똘이를 내놓고는 갑자기 세도가 댕댕해졌다. 내가 들어가도
네놈 언제 봤냔 듯이 좀체 들떠보는 법 없지. 눈을 스르르 내려깔고는 잠자
코 아이에게 젖만 먹이겠다. 내가 좀 아이의 머리라도 쓰다듬으며
  “이자식, 밤낮 잠만 자나?”
  “가만둬, 왜 깨놓고 싶은감” 하고 사정없이 내 손등을 주먹으로 갈긴다.
나는 처음에 어떻게 되는 셈인지 몰라서 멀거니 천정만 한참 쳐다보았다.
내 자식 내가 만지는데 주먹으로 때리는 건 무슨 경우야. 허지만 잘 따져보
니까 조금도 내가 억울할 것은 없다. 년이 나에게 큰 체를 해야 될 권리가
있는 것을 차차 알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내가 이년, 하면 저는 이놈, 하고
대들기로 무언중 계약되었지.
 동리에서는 남의 속은 모르고 우리를 각다귀들이라고 별명을 지었다. 훅하
면 서루 대들려고 노리고만 있으니까 말이지. 하긴 요즘에 하루라도 조용한
날이 있을까 봐서 만나기만 하면 이놈, 저년, 하고 먼저 대들기로 위주다.
다른 사람들은 밤에 만나면.
  “마누라 밥 먹었수?”
  “아니요, 당신 오면 같이 먹을랴구 ─” 하고 일어나 반색을 하겠지만 우
리는 안 그러기다. 누가 그렇게 괭이 소리로 달라붙느냐. 방에 떡 들어서는
길로 우선 넓적한 년의 궁둥이를 발길로 퍽 들이지른다.
  “이년아! 일어나서 밥 차려 ─”
  “이눔이 왜 이래, 대릴 꺾어놀라.” 하고 년이 고개를 겨우 돌리면
  “나무 판 돈 뭐 했어, 또 술 처먹었지?”
 이렇게 제법 탕탕 호령하였다. 사실이지 우리는 이래야 정이 보째 쏟아지
고 또한 계집을 데리고 사는 멋이 있다. 손자새끼 낯을 해가지고 마누라 어
쩌구 하고 어리광으로 덤비는 건 보기만 해도 눈허리가 시질 않겠니. 계집
좋다는 건 욕하고 치고 차고, 다 이러는 멋에 그렇게 치고 보면 혹 궁한 살
림에 쪼들리어 악에 받친 놈의 말일지는 모른다. 마는 누구나 다 일반이겠
지. 가다가 속이 맥맥하고 부하가 끓어오를 적이 있지 않냐. 농사는 지어도
남는 것이 없고 빚에는 몰리고, 게다가 집에 들어서면 자식놈 킹킹거려, 년
은 옷이 없으니 떨고 있어 이러한 때 그냥 배길 수야 있느냐. 트죽태죽 꼬
집어가지고 년의 비녀쪽을 턱 잡고는 한바탕 홀 두들겨대는구나. 한참 그
지랄을 하고 나면 등줄기에 땀이 뿍 흐르고 한숨까지 후, 돈다면 웬만치 속
이 가라앉을 때였다. 담에는 년을 도로 밀쳐버리고 담배 한 대만 피어 물면
된다.
 이 멋에 계집이 고마운 물건이라 하는 것이고 내가 또 년을 못 잊어하는
까닭이 거기 있지 않냐. 그렇지 않다면야 저를 계집이라고 등을 뚜덕여주고
그 못난 코를 좋아 보인다고 가끔 추어줄 맛이 뭐야. 하지만 년이 훌쩍거리
고 앉어서 우는 걸 보면 이건 좀 재미 적다. 제가 주먹심으로든 입심으로든
나에게 덤비려면 어림도 없다. 쌈의 시초는 누가 먼저 걸었던 간 언제든지
경을 팟다발 같이 치고 나앉는 것은 년의 차지렷다.
  “이리와, 자빠져 자 ─”
  “곤두어. 너나 자빠져 자렴 ─”
하고 년이 독이 올라서 돌아다도 안 보고 비쌘다. 마는 한 서너 번 내려오
라고 권하면 나중에는 저절로 내 옆으로 스르르 기어들게 된다. 그리고 눈
물 흐르는 장반을 벙긋이 흘겨 보이는 것이 아니냐. 하니까 년으로 보면 두
들겨맞고 비쌔는 멋에 나하고 사는지도 모르지.
 그러나 우리가 원수같이 늘 싸운다고 정이 없느냐 하면 그건 잘못이다. 말
이 났으니 말이지 정분치고 우리 것만치 찰떡처럼 끈끈한 놈은 다시 없으리
라. 미우면 미울수록 싸울수록 잠시를 떨어지기가 아깝도록 정이 착착 붙는
다. 부부의 정이란 이런 겐지 모르나 하여튼 영문 모를 찰거머리 정이다.
나뿐 아니라 년도 매를 한참 뚜들겨맞고 나서 같이 자리에 누우면
  “내 얼굴이 그래두 그렇게 숭업진 않지?”
하고 정말 잘난 듯이 바짝바짝 대든다. 그러면 나는 이때 뭐라고 대답해야
옳겠느냐. 하 기가 막혀서 천정을 쳐다보고 피익 내어버린다.
  “이년아! 그게 얼굴이야?”
  “얼굴 아니면 가주다닐까 ─”
  “내니깐 이년아! 데리구 살지 누가 근디리니 그 낯짝을?”
  “뭐, 네 얼굴은 얼굴인 줄 아니? 불밤송이 같은 거, 참, 내니깐 데리구
살지.”
 이러면 또 일어나서 땀을 한번 흘리고 다시 드러누울 수밖에 없다. 내 얼
굴이 불밤송이 같다니 이래도 우리 어머니가 나를 낳고서 나중 땅마지기나
만져볼 놈이라고 좋아하던 이 얼굴인데. 하지만 다시 일어나고 손짓 발짓을
하고 하는 게 성이 가셔서 대개는 그대로 눙쳐둔다.
  “그래, 내 너 이뻐할게 자식이나 대구 내놔라”
  “먹이지도 못할 걸 자꾸 나 뭘 하게, 굶겨 죽일랴구?”
  “아 이년아! 꿔다 먹이진 못하니?” 하고 소리는 뻑 지르나 딴은 뒤가 켕
긴다. 더끔더끔 모아두었다가 먹이지나 못하면 그걸 어떻게 하냐. 줴다 버
리지도 못하고 죽이지도 못하고 떼송장이 난다면 연히 이런 걸 보면 년이
나보담 훨씬 소견이 된 것을 알 수 있겠다. 물론 십 리만큼 벌어진 양미간
을 보아도 나와는 턱이 다르지만.
 우리가 요즘 먹는 것은 내가 나무장사를 해서 벌어들인다. 여름 같으면 품
이나 판다 하지만 눈이 척척 쌓였으니 얼음을 꺼먹느냐. 하기야 산골에서
어느 놈 치고 별수 있겠냐마는 하루는 산에 가서 나무를 해들이고 그담 날
엔 읍에 갖다가 판다. 나니깐 참 쌍지게질도 할 근력이 되겠지만. 잔뜩 나
무 두 지게를 혼자서 번차례로 이놈 져다놓고 쉬고 저놈 져다놓고 쉬고 이
렇게 해서 장찬 삼십 리 길을 한나절에 들어가는구나. 그렇지 않으면 언제
한 지게 한 지게씩 팔아서 목구녕을 축일 수 있겠느냐. 잘 받으면 두 지게
에 팔십 전 운이 나쁘면 육십 전 육십오 전 그걸로 좁쌀, 콩, 멱, 무엇 사
들고 찾아오겠다. 죽을 쑤었으면 좀 느루가겠지만 우리는 더럽게 그런 짓은
안 한다. 먹다 못 먹어서 뱃가죽을 움켜쥐고 나설지언정 으레 밥이지. 똘똘
이는 네 살짜리 어린애니깐 한 보시기. 나는 저의 아버지니까 한 사발에다
또 반 사발을 더 먹고 그런데 년은 유독 두 사발을 처먹지 않나. 그러고도
나보다 먼저 홀딱 집어세고는 내 사발의 밥을 한 귀퉁이 더 떠먹는 버릇이
있다. 계집이 좋다 했더니 이게 밥버러지가 아닌가 하고 한때는 가슴이 선
듯할 만치 겁이 났다. 없는 놈이 양이나 좀 적어야지 이렇게 대구 처먹으면
너 웬 밥을 이렇게 처먹니 하고 눈을 크게 뜨니까 년의 대답이 애 난 배가
그렇지 그럼, 저도 앨 나보지 하고 샐쭉이 토라진다. 아따 그래, 대구 처먹
어라. 낭종 밥값은 그 배때기에 다 게 있고 게 있는 거니까. 어떤 때에는
내가 좀 덜 먹고라도 그대로 내주고 말겠다. 경을 칠 년, 하지만 참 너무
처먹는다.
 그러나 년이 떡국이 농간을 해서 나보담 한결 의뭉스럽다. 이깐 농사를 지
어 뭘 하느냐. 우리 들병이로 나가자, 고. 딴은 내 주변으로 생각도 못했던
일이지만 참 훌륭한 생각이다. 밑지는 농사보다는 이밥에, 고기에, 옷 마음
대로 입고 좀 호강이냐. 마는 년의 얼굴을 이윽히 뜯어보다간 고만 풀이 죽
는구나. 들병이에게 술 먹으러 오는 건 계집의 얼굴 보자 하는걸 어떤 밸
없는 놈이 저 낯짝엔 몸살 날 것 같지 않다. 알고 보니 참 분하다. 년이 좀
만 똑똑히 나왔더면 수가 나는걸. 멀뚱이 쳐다보고 쓴 입맛난 다시니까 년
이 그 눈치를 채었는지
  “들병이가 얼굴만 이뻐서 되는 게 아니라던데, 얼굴은 박색이라도 수단이
있어야지 ─”
  “그래 너는 그거 할 수단 있겠니?”
  “그럼 하면 하지 못할 게 뭐야.”
 년이 이렇게 아주 번죽 좋게 장담을 하는 것이 아니냐. 들병이로 나가서
식성대로 밥 좀 한바탕 먹어보자는 속이겠지. 몇 번 다져 물어도 제가 꼭
될 수 있다니까 아따 그러면 한번 해보자꾸나 밑천이 뭐 드는 것도 아니고
소리나 몇 마디 반반히 가르쳐서 데리고 나서면 고만이니까.
 내가 밤에 집에 돌아오면 년을 앞에 앉히고 소리를 가르치겠다. 우선 내가
무릎장단을 치며 아리랑 타령을 한번 부르는구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춘천아 봉의산아 잘 있거라, 신연강 배 타면 하직이라. 산골의 계집이면 강
원도 아리랑쯤은 곧잘 하련만 년은 그것도 못 배웠다. 그러니 쉬운 아리랑
부터 시작할 밖에. 그러면 년은 도사리고 앉아서 두 손으로 엉덩이를 치며
흉내를 낸다. 목구멍에서 질그릇 물러앉는 소리가 나니까 나중에 목이 트이
면 노래는 잘 할 게다마는 가락이 딱딱 들어맞어야 할 텐데 이게 세상에 돼
먹어야지. 나는 노래를 가르치는데 이 망할 년은 소설책을 읽고 앉았으니
어떡허냐. 이걸 데리고 앉으면 흔히 닭이 울고 때로는 날도 밝는다. 년이
하도 못하니까 본보기로 나만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그러니 저를 들병이를
아르친다는 게 결국 내가 배우는 폭이 되지 않나. 망할 년 저도 손으로 가
리고 하품을 줄대 하며 졸려 죽겠지. 하지만 내가 먼저 자자 하기 전에는
제가 참아 졸리다진 못할라. 애초에 들병이로 나가자, 말을 낸 것이 누군데
그래. 이렇게 생각하면 울화가 불컥 올라서 주먹이 가끔 들어간다.
  “이년아? 정신을 좀 채려, 나만 밤낮 하래니?”
  “이놈이 ─ 팔때길 꺾어놀라.”
  “이거 잘 배면 너 잘되지 이년아! 날 주는 거냐 큰 체게?”
 이번엔 손가락으로 이마빼기를 꾹 찍어서 뒤로 떠넘긴다. 여느 때 같으면
년이 독살이 나서 저리로 내뺄 게다. 제가 한 죄가 있으니까 다시 일어나서
소리 아르쳐주기만 기다리는 게 아니냐. 하니 딱한 일이다. 될지 안 될지도
의문이거니와 서로 하품은 뻔질 터지고 이왕 내친걸음이니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고 예라 빌어먹을 거, 너나 내나 얼른 팔자를 고쳐야지 늘 이러다
말 테냐. 이렇게 기를 한번 쓰는구나. 그리고 밤의 산천이 울리도록 소리를
뻑뻑 질러가며 년하고 또다시 흥타령을 부르겠다.
 그래도 하나 기특한 것은 년이 성의는 있단 말이지. 하기는 그나마도 없다
면이야 들병이커녕 깨묵도 그르지만. 날이라도 틈만 있으면 저 혼자서 노래
를 연습하는구나. 빨래를 할 적이면 빨래방추로 가락을 맞추어 가며 이팔청
춘을 부른다. 혹은 방 한구석에 죽치고 앉아서 어깻짓으로 버선을 꿰매며
노랫가락도 부른다. 노래 한 장단에 바늘 한 뀌엄씩이니 버선 한 짝 기우려
면 열 나절은 걸리지. 하지만 아따 버선으로 먹고 사느냐, 노래만 잘 배워
라. 년도 나만치나 이밥에 고기가 얼뜬 먹고 싶어서 몸살도 나는지 어떤 때
에는 바깥 밭둑을 지나려면 뒷간 속에서 콧노래가 흥이거릴 적도 있겠다.
그러나 인제 노랫가락에 흥타령쯤 겨우 배웠으니 그담 건 어느 하가에 배우
느냐, 망할 년두 참.
 게다가 년이 시큰둥해서 날더러 신식 창가를 아르쳐달라구. 들병이는 구식
소리도 잘 해야 하겠지만 첫때 시체 창가를 알아야 불려먹는다, 한다. 말은
그럴 법하나 내가 어디 시체 창가를 알 수 있냐, 땅이나 파먹던 놈이. 나는
그런 거 모른다, 하고 좀 무색했더니 며칠 후에는 년이 시체 창가 하나를
배가주왔다. 화로를 끼고 앉아서 그 전을 두드려대며 네 보란 듯이 자랑스
럽게 하는 것이 아닌가. 피었네 피었네 연꽃이 피었네 피었다구 하였더니
볼 동안에 옴쳤네. 대체 이걸 어서 배웠을까. 얘 이년 참 나보담 수단이 좋
구나, 하고 나는 퍽 감탄하였다. 그랬더니 나중 알고보니까 년이 어느 틈에
야학에 가서 배우질 않았겠니. 야학이란 요산 뒤에 있는 조고만 움인데 농
군 아이에게 한겨울 동안 국문을 가르친다. 창가를 할 때쯤 해서 년이 추운
줄도 모르고 거길 찾아간다. 아이를 업고 문밖에 서서 귀를 기울이고 엿듣
다가 저도 가만가만히 흉내를 내보고 내보고 하는 것이다. 그래가지고 집에
와서는 희짜를 뽑고 야단이지. 신식 창가는 며칠만 좀더 배우면 아주 능통
하겠다나.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년의 낯짝만은 걱정이다. 소리는 차차 어지간히
되어 들어가는데 이놈의 얼굴이 암만 봐도, 봐도 영 글렀구나. 경칠 년, 좀
만 얌전히 나왔다면 이 판에 돈 한몫 크게 잡는걸. 간혹 가다 제물에 화가
뻗치면 아무 소리 않고 년의 뱃기를 한 두어 번 안 줴박을 수 없다. 웬 영
문인지 몰라서 년도 눈깔을 크게 굴리고 벙벙히 쳐다보지. 땀을 낼 년. 그
낯짝을 하고 나한테로 시집을 온담 뻔뻔하게. 하나 년도 말은 안하지만 제
얼굴 때문에 가끔 성화인지 쪽 떨어진 손거울을 들고 앉아서 이리 뜯어보고
저리 뜯어보고 하지만 눈깔이야 일반이겠지 저라고 나아 뵐 리가 있겠니.
하니까 오장 썩는 한숨이 연방 터지고 한풀 죽는구나. 그러나 요행히 내가
방에 있으면 돌아다보고
  “이봐! 내 얼굴이 요즘 좀 나아가지 않아?”
  “그래, 좀 난 것 같다”
  “아니 정말 해봐 ─” 하고 이년이 팔때기를 꼬집고 바싹바싹 들어덤빈
다. 년이 능글차서 나쯤은 좋도록 대답해주려니, 하고 아주 탁 믿고 묻는
게렸다. 정말 본 대로 말할 사람이면 제가 겁이 나서 감히 묻지도 못한다.
짐짓 이뻐졌다, 하고 나도 능청을 좀 부리면 년이 좋아서 요새 분때를 자주
밀었으니까 좀 나아졌다지. 하고 들병이는 뭐 그렇게까지 이쁘지 않아도 된
다고 또 구구히 설명을 늘어놓는다. 경을 칠 년. 계집은 얼굴 밉다는 말이
칼로 찌르는 것보다도 더 무서운 모양 같다. 별 욕을 다 하고 개잡듯 막 뚜
드려도 조금 뒤에는 헤, 하고 앞으로 기어드는 이년이다. 마는 어쩌나. 제
얼굴의 흉이나 좀 본다면 사흘이고 나흘이고 년이 나를 스을슬 피하며 은근
히 골리려고 든다. 망할 년. 밉다는게 그렇게 진저리가 나면 아주 면사포를
쓰고 다니지그래. 년이 능청스러워서 조금만 이뻤더라면 나는 얼렁얼렁해
내버리고 돈있는 놈 군서방 해갔으렸다. 계집이 얼굴이 이쁘면 제값 다 하
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년의 낯짝 더러운 것이 나에게는 불행 중 다행이라
안 할 수 없으리라.
 계집은 아마 남편을 속여먹는 맛에 깨가 쏟아지나 보다. 년이 들병이 노릇
을 할 수단이 있다고 괜히 장담한 것도 저의 이 행실을 믿고 그랬는지도 모
른다. 새벽 일찍이 뒤를 보려니까 어디서 창가를 부른다. 거적 틈으로 내다
보니 년이 밥을 끓이면서 연습을 하지 않나. 눈보라는 생생 소리를 치는데
보강지에 쪼그리고 앉어서 부지깽이로 솥뚜껑을 톡톡 두드리겠다. 그리고
거기 맞추어 신식 창가를 청승맞게 부르는구나. 그러나 밥이 우르르 끓으니
까 뙤를 빗겨놓고 다시 시작한다. 젊어서도 할미꽃 늙어서도 할미꽃 아하하
하 우습다 꼬부라진 할미꽃. 망할 년. 창가는 경치게도 좋아하지. 방아타령
좀 부지런히 공부해 두라니까 그건 안하구. 아따 아무 거라두 많이 하니 좋
다. 마는 이번엔 저고리 섶이 들먹들먹하더니 아 웬 곰방대가 나오지 않냐.
사방을 흘끔흘끔 다시 살피다 아무도 없으니까 보강지에다 들이대고 한 먹
음 뿌욱 빠는구나. 그리고 냅다 재채기를 줄대 뽑고 코를 풀고 이 지랄이
다. 그저께도 들켜서 경을 쳤더니 년이 또 내 담배를 훔쳐가지고 나온 것이
다. 돈 안 드는 소리나 배웠겠지 망할 년 아까운 담배를. 곧 뛰어나가려다
뒤도 급하거니와 요즘 똘똘이가 감기로 앓는다. 년이 밤낮 들쳐업고 야학으
로 돌아치더니 그예 그 꼴을 만들었다. 오랄질 년, 남의 아들을 중한 줄을
모르고. 들병이 하다가 이것 행실 버리겠다. 망할 년이 하는 소리가 들병이
가 되려면 소리도 소리려니와 담배도 먹을 줄 알고 술도 마실 줄 알고 사람
도 주무를 줄 알고 이래야 쓴다나. 이게 다 요전에 동리에 들어왔던 들병이
에게 들은 풍월이렷다. 그래서 저도 연습 겸 골고루 다 한 번씩 해보고 싶
어서 아주 안달이 났다. 방아타령 하나 변변히 못하는 년이 소리는 고걸로
될 듯싶은지!
 이런 기맥을 알고 년을 농락해먹은 놈이 요 아래 사는 뭉태놈이다. 놈도
더러운 놈이다. 우리 마누라의 이 낯짝에 몸이 달았다면 그만함 다 알짜지.
어디 계집이 없어서 그걸 손을 대구. 망할 자식두. 놈이 와서 섣달 대목이
니 술 얻어먹으러 가자고 년을 꼬였구나. 조금 있으면 내가 올 테니까 안
된다 해도 오기 전에 잠깐만, 하고 손을 내끌었다. 들병이로 나가려면 우선
술 파는 경험도 해봐야 하니까, 하는 바람에 년이 솔깃해서 덜렁덜렁 따라
섰겠지. 집안을 망할 년. 남편이 나무를 팔러 갔다 늦으면 밥 먹일 준비를
하고 기다려야 옳지 아느냐. 남은 밤길을 삼십 리나 허덕지덕 걸어오는데.
눈이 푹푹 쌓여서 발모가지는 떨어져나가는 듯이 저리고. 마을에 들어왔을
때에는 짜정 곧 쓰러질듯이 허기가 졌다. 얼른 가서 밥 한 그릇 때려뉘고
년을 데리고 앉아서 또 소리를 아르쳐야지. 이런 생각을 하고 술집 옆을 지
나다가 뜻밖에 깜짝 놀란 것은 그 밖 앞방에서 년의 너털웃음이 들린다. 얼
른 다가서서 문틈으로 들여다보니까 아 이 망할 년이 뭉태하고 술을 먹는구

 입때까지는 하도 우스워서 꼴들만 보고 있었지만 더는 못 참는다. 지게를
벗어던지고 방문을 홱 열어젖히자 우선 놈부터 방바닥에 메다꼰잤다. 물론
술상은 발길로 찼으니까 벽에 가 부서졌지. 담에는 년의 비녀쪽을 지르르
끌고 밖으로 나왔다. 술 취할 년은 정신이 번쩍 들도록 홈빡 경을 쳐줘야
할 터이니까 눈에다 틀어박았다. 그리고 깔고 올라앉아서 망할 년 등줄기를
주먹으로 대구 우렸다. 때리면 때릴수록 점점 눈 속으로 들어갈 뿐, 발악을
치기에는 너무 취했다. 때리는 것도 년이 대들어야 멋이 있지 이러면 아주
숭겁다. 년은 그대로 내버리고 방으로 들어가서 놈을 찾으니까 이 빌어먹을
자식이 생쥐새끼처럼 어디로 벌써 내빼지 않았나. 참말이지 이런 자식 때문
에 우리 동리는 망한다. 남의 계집을 보았으면 마땅히 남편 앞에 나와서 대
강이가 깨져야 옳지 그래 달아난담. 못생긴 자식도 다 많지. 할 수 없이 척
늘어진 이년을 등에다 업고 비척비척 집으로 올라오자니까 죽겠구나. 날은
몹시 차지, 배는 쑤시도록 고프지, 좀 노할래야 더 노할 근력이 없다. 게다
우리 집 앞 언덕을 올라가다 엎어져서 무르팍을 크게 깠지. 그리고 집엘 들
어가니까 빈 방에는 똘똘이가 혼자 에미를 부르고 울고 된통 법석이다. 망
할 잡년두. 남의 자식을 그래 이렇게 길러주면 어떡할 작정이람. 년의 꼴
봐하니 행실은 예전에 글렀다. 이년하고 들병이로 나갔다가는 넉넉히 나는
한옆에 재워놓고 딴서방 차고 달아날 년이냐. 너는 들병이로 돈 벌 생각도
말고 그저 집안에 가만히 앉았는 것이 옳겠다. 구구루 주는 밥이나 얻어먹
고 몸 성히 있다가 연해 자식이나 쏟아라. 뭐 많이도 말고 굴 때 같은 아들
로만 한 열다섯이면 족하지. 가만있자, 한 놈이 일년에 벼 열 섬씩만 번다
면 열다섯 섬이니까 일백오십 섬. 한 섬에 더도 말고 십 원 한 장씩만 받는
다면 죄다 일천오백 원이지. 일천오백 원, 일천오백 원, 사실 일천오백 원
이면 어이구 이건 참 너무 많구나. 그런 줄 몰랐더니 이년이 뱃속에 일천오
백 원을 지니고 있으니까 아무렇게 따져도 나보담은 났지 않은가.

 

 

 

김유정 단편소설 10선

COUPANG

www.coupang.com

 

 

 

[휴머니스트]김유정을 읽다

COUPANG

www.coupang.com

 

 

 

 

 

 

 

300x250
반응형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