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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일생 
(채만식, 1933) 

여자의 일생 채만식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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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및 작품소개

 

여자의 일생

작품소개 1947년 조선타임즈사에서 간행한 『조선 대표작가 전집』 제8권에 실린 작품으로, 1943년 《조광》에 연재하다가 중단되었던 「어머니」의 뒷부분에 연재 분량의 절반 정도를 더 추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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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채만식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채만식(한국 한자: 蔡萬植, 1902년 7월 21일 ~ 1950년 6월 11일)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소설가, 극작가, 문학평론가, 수필가이다. 본관은 평강(平康)이며 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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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치면 후회! 애플 세일

 



女子[여자]의 一生[일생]

1. 시집難[난] 시집難[난]

 내일 모레가 추석 ── 열사흘달이 천심 높다랗게 솟아 있다. 일 년 열두
달 그중 달이 좋다는 추석달이다. 거진 다 둥그렀고 거울같이 맑다. 밤은
이윽히 깊어 울던 벌레도 잠자고 괴괴하고…… 촉촉한 이슬기를 머금고 달
빛만 빈 뜰에 가득 괴어 꿈속이고 싶은 황홀한 밤이었다.
 새댁 진주는 우물에 두레박을 드리운 채 자아올릴 생각을 잊고 서서 하도
좋은 달밤에 잠깐 정신이 팔린다. 무엇인지 저절로 마음이 흥그러워지려고
하고 이런 좋은 달밤을 두어두고 이내 도로 들어가기가 아까운 것 같았다.
언제까지고 내처 이대로 있었으면 싶었다. 그러나, 또 혼자서 이렇게는 더
아까운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 아까운 것이 가만히 또 재미가 있기도 하였
다. 한 어리고 처녀답게 순진스런 감성일 것이다. 시집을 오고 머리쪽을 지
어서 이름이 각시니 새댁이니지 아직껏 그는 열두살박이 새서방 준호의 도
련님 시중이나 들고 이야기 동무나 하여 주고 하는 곱다시 처녀요 갓 열여
덟의 어린 나이였다.
 철은 비록 나진 않고 애기새서방이더라도 진주에게 가장 가까운 그리고 유
일한 이성은 당연히 준호였다. 일상에 즐거운 일이 있을 때나 언짢은 일이
있을 때나 매양 준호가 먼저 생각이 나고 하였다. 일부러 그러자고 하여서
하는 노릇이 아니라 제풀에 마음이 그렇게 가지는 것이었었다. 곧 정(情)이
었다.
 지금도 진주는 좋은 달밤이 혼자서는 미흡하던 끝에 저절로 생각나는 것이
역시 준호였다. 마침 이런 때 준호가 돌아와서 좀 같이 놀기도 하고 하였으
면 하였다. 논다고 하여도 물론 어려운 시어머니가 계시고 하인이랑 머슴이
랑 있고 한데 나이 어린 새서방을 데리고 점잖지 못하게 큰 소리로 지껄이
고 웃어대고 뛰어다니고, 달아달아 밝은 달아 창가 부르고 아이들처럼 이럴
수는 없었다. 또 한만히 오래도록 놀고 있을 수도 없었다. 잠깐 그저 나란
히 뜰을 거닐면서 달 이야기, 글방에 갔던 이야기, 추석 이야기 같은 것이
나 소곤소곤 서로 이야기하다가 웬만큼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걸로써 족하였다.
 준호는 항용 열한시가 지나서 어떤 때에는 자정에 더러는 자정이 넘어서
돌아오고 하였다. 글방에는 시계가 없고 두꺼비라는 선생의 짐작으로 대중
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 일정하지가 못하였다. 방금 안방에서 열한시가 거진
되는 것을 보고 나온 생각을 하고 진주는 혹시 오늘은 내일이 파접이고 하
니 일찍 돌아오는지도 모를까보다면서 갸웃이 귀를 기울인다. 마악 그러자
쉬었다 다시 시작인지 건넌마을의 글방으로부터 여럿이 어울려 읽는 글소리
가 감감하니 손에 잡힐 듯 분명히 좌악 들려왔다. 지금부터 참을 다시 시작
하였다면 여느날보다 이르기는새로에 더 늦었던 것이었다. 좀 섭섭하였으나
내일도 날이요 모레도 날이었다. 더구나 내일부터 한동안 글방에는 가지 않
고 하니 얼마든지 계제가 있을 터이었다. 그런 내일날을 기다리는 마음도
차라리 한 즐거움이었다.
 진주는 천천히 두레박을 자아올려 우물 빈지 위에 놓았던 하얀 분원사기
(分院白磁) 대접에다 넘치지 않도록 팔홉은 되게 부은 후 남은 물도 버리지
않고 세수확으로 가지고 가 따른다. 그러고는 두레박을 줄을 고쳐 사려서
두레박 실겅에다 잘 얹어놓는다. 무엇 한 가지 얌전스럽지 아니함이 없다.
 구름 한 조각 지나가는 자취 없고 달은 한결같이 밝다. 우물 저편쪽 한편
을 울타리한 동청(冬靑)나무 잎사귀가 달빛을 받아 수없이 매끄럽게 반뜩인
다. 우물 두던의 돌틈에서리라. 귀뚜리가 꼭 한 마리 생각난 것처럼 가르르
스러질 듯 울음을 낸다. 그 스러질 듯 가늘게 우는 소리가 조금도 이 밤의
적요함을 헤뜨리지 아니한다.
 글소리는 꾸준히 들을 건너 가암감 들려온다. 어쩌면 처음보다 한결 가까
이 혹은 높이 들리는 것도 같았다. 진주는 문득 여럿이 어울려 읽는 소리에
서 준호의 목소리가 따로이 들리기나 하나 하고 물대접을 집으러 오다 말고
서서 가만히 또 귀를 기울인다. 귀에다 온 총력을 모아가지고 이윽고 듣는
다. 그러나 목소리는 졸연하여 분간을 할 수가 없고 그 대신 여럿 틈에 끼
여 글을 읽고 있는 모양이 서언히 머릿속에 떠올랐다. 늘 듣는 이야기라 그
래도 상상이 되어지던 것이다. 한 무릎 꿇고 한 무릎 세우고 세운 무릎을
깍지손하여 끼고 앉아서 끄덱끄덱
  “오묘지택(五畝之宅)에 수지이상(樹之以桑)이면 오십자 가이의백의(五十
者 可以衣帛矣)요……”
하고 『맹자』양혜왕장의 한 대문을 읽고 있다. 오늘 이 대문을 배우는 줄
을 진주는 알고 있다.
  “계돈구체지축(鷄豚狗彘之畜)을 무실기시(無失其時)하면……”
 끄덱끄덱 몸을 끄덕이는 대로 그 가느다란 목 위에서 커다란 상투가 무긋
무긋이 따라 흔들린다.(이 볼성없고 손질 성가시고 남의 조롱거리요한 상투
를 어머니가 두려워 차마 깎아버리지는 못하고 안타까와만 하는 준호를 위
해 진주는 또 얼마나 안타까왔던고. 하기야 안타깝기로 말하면 상투 외에도
이루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십상 졸 텐데…… 졸다가 그 사정없이 후린다는 선생의 매끝에 몹시 얻어
맞지나 않는지…… 이런 생각이 나면서 진주는 갑자기 아미가 흐린다. 밤이
나 낮이나 어린 준호의 그 고단하여 하는 양이며, 졸려서 졸려서 못견디어
하는 양이란 차마 애처로와 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아침 여섯시만 땡 치면 모친 박씨부인의 호령조로
  “준호야!”
부르는 소리에 일분 어기지를 못하고 안 떨어지는 눈을 비비면서 일어난다.
만약 그 즉시
  “네에.”
하는 대답과 함께 벌떡 일어나는 동정이 없어? 재우쳐
  “이놈 준호야!”
  “그래도 없어?”
 그 다음은 곧 무서운 달초였다. 그러나 두 번째 불러서 안 일어날 적은 별
반 없다.
 안방에서 잤으면 그대로 건넌방에서 잤으면 안방으로 건너와서 박씨부인
앞에 무릎을 꿇어앉아 우선 그 안날 밤 글방에서 배운 한문글을 강(講)해
바친다. 못 외바치면 물론 달초다.
 한문을 강해 바치고 나서는 한 시간 가량 그 안날 낮에 학교에서 배운 과
정 전부를 복습한다. 그러고는 일곱시에 조반을 먹고 학교로.
 마을에서 읍내의 보통학교까지 꼬바기 십 리다. 초립 쓰고 책보와 점심을
갈라 들고 십 리 걸어서 학교엘 가 온종일 여러 가지 학과를 배우고 체조랑
실습도 하고 참참이 뛰고 놀기도 하고,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서 다시 십 리
를 걸어 집으로 돌아오면 날은 다 저물고 열두살박이 소년의 몸은 지칠 대
로 지친다. 저녁 수저를 놓던 길로 쓰러져 자더라도 오히려 잠이 나쁠 판이
다. 그러나 저녁 수저를 놓던 길로 소위 참글이라는 것을 배우러 글방엘 가
야만 하였다.
 박씨부인은 학교 공부는 개글이었다. 시체는 그것도 조금 지녀야 원님(郡
守)도 하고 관찰사(觀察使 : 道長官[도장관])도 하고 한다니 마지못해 시키
기는 시키던 것이지만 글은 한문이 원글이요, 한문이라야 참글이었다. 풍월
한 수 할 줄 알고 깨끗한 글씨와 더불어 간찰 한 장 얌전히 꾸밀 줄 알고
눈 따악 감고 앉아서 사서삼경 어느 대문 서슴지 않고 좌악좍 외울 줄 알고
이래야 왈 선비요 글한 보람이 있고 양반이었다. 기집애들이나 하는 언문으
로 오정 친다 밥 먹어라, 옥히야 숭늉 다고 냉수는 차서 싫다 따위나 배우
고 왜붓(鉛筆) 꼬투리에다 침 묻혀가면서 오불탕꼬불탕한 것 그려놓고는 수
한답시고 하나에 둘 보태면 셋이요 따위나 배우고, 이런 것이야 어린애 장
난이요 개글이지 만날 학문일 턱이 없었다.

 준호는 졸면서 건넌마을의 글방으로 간다. 가서는 뜻도 모르고 재미도 없
는 한문 한 대문을 졸면서 매로 후려갈기우면서 열한시까지 자정까지 꼬바
기 앉아서 읽는다. 그러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밤참이나 먹고 하면 항용 한
시 때로는 두시가 가깝다. 이튿날 아침 여섯시까지 겨우 네 시간이나 다섯
시간 밖에는 잘 시간이 없다. 대단한 무리였다. 잠은 그리하여 소년 준호에
게 가장 핍절한 욕망이요 큰 동경이었다.
  “한 백 날만 실컷 자보았으면……”
  “좀 아프기나 허지.”
  “남의 집은 제사두 퍽 쉽게 돌아오구 허드만서두!”
 아침에 일어나면서, 저녁에 글방엘 가려면서 곧 울상으로 가끔 혼잣말 같
이 그렇게 중얼거리고 하였다. 하도 고단하여 하도 졸려 갱신을 못하고 안
타까이 그러는 정상을 볼 때마다 진주는 그만 애처로와 눈물이 핑 돌 적도
있었다. 대신하여 줄 수 있는 노릇이라면 죄다 대신하여 주고 싶었다. 잠도
대신 많이씩 자주고 글방에도 대신 가주고 달초도 대신 맞아주고 하였으면
작히나 좋으랴 싶었다.
 밤이 하 고요하여 그런지 당혜 바닥에서 징소리가 유난히 다그락거린다.
진주는 되도록 돌을 피해 디디면서 물대접을 집어 들고 마당으로 내려선다.
마당을 지나면서도 사풋사풋이 신발소리를 죽여 걷는다. 밤에 혼자라도 새
며느리란 건 본시가 걸음걸이 하나 함부로 하기를 삼가야 하는 법이지만,
남달리 엄한데다 겸해서 까다롭기까지 한 홀시어머니 밑에서 벌써부터 말
많은 시집이고 보매 일동일절 무엇 한 가지 각별히 조심되지 아니함이 없었
다.
 이 밤의 조심은 그러나 조심이 재앙이었다. 아니 재앙은 진작에 마련되어
가지고 있었고, 조심과 또 우연한 사건 하나가 들어서 그 화약 노릇을 하였
던 것이다.
 박씨부인이 퇴침을 돋우 베고 누워 『삼국지』를 보다가 잠깐 잠이 들었었
다. 그러다 어찌해서 깨어 보니 한옆으로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던 며느리
가 보이지 아니하였다. 바느질하던 것은 다 그대로 놓아둔 채…… 아마 소
피엘 갔나보다고 거기까지는 심상하였다. 그러자 우물에서 달그락 거리는
당혜 소리에 섞여 두레박 다루는 기척이 들렸다.
  “? ……”
두레박을 다룰진댄 소피에 다녀 손을 씻으러 우물로 간 것은 아니었다.
  ‘우물엔 어찌? 야밤중에! ……’
 괴이하다는 것이었다. 야밤중에 우물엘 갔기론 괴이할 것이 없을 수도 있
는 것이지만, 시어머니 따라 그때의 기분 따라 넉넉히 괴이할 수도 없지 아
니하였다. 며느리가 미우면 발뒤꿈치가 달걀같이 고와도 흉이란 말이 있거
니와 참으로 며느리가 한번 눈에 벗기로 들면 한정이 없는 것이었다.
 흔히 중년과부란 그 생활 조건과 심리 관계로 인하여 성질이 다소간 편협
괴벽하기 쉬운 법이요, 이윽고 그가 단산기(斷産期)를 당하여 히스테리증이
생기게 되고 보면 그 경향이 일단 더 짙어진다. 물론 병이다. 그러나 가벼
우면 사람이 좀 까다로운 정도에 그치고 말지만 병이 심한 경우면 신경이
몹시 예민 쇠약하여져 가지고 성격과 생활에 큰 어지러운 변화를 일으킨다.
변덕이 죽끓듯하고 억지가 엿가래 같은 것쯤 차라리 초기적인 현상이다. 환
상적인 엉뚱스런 독단을 하여 놓고는 남은 웃을 일을 울고 남이 울 일을 웃
는다. 한번 무엇이 이렇다 하고 생각을 하면 꼭 그 곬으로만 그 곬으로만
무섭게 심각코 날카론 천착을 일삼는다. 그러나 필경 얼토당토 아니한 결론
에 빠져가지고 과대망상증이니 피해망상증이니 하는 데까지 이르는 수가 왕
왕 있다. 보아야 겉으로는 신수 멀쩡하다. 그러나 그는 이미 구할 수 없는
병인이다. 박씨부인이 불행 그러한 병이 골수에까지 깊은 병인이었었다. 그
리고 그 병독이 똘똘 몰아 죄다 와서 떨어지는 곳이 어느 곳이냐 하면 며느
리 진주였다. 잘하는 일이거나 잘못하는 일이거나 간에(별로 잘못하는 일도
없지만) 며느리가 하는 일이면 덮어놓고 마음에 맞지 않고 새김질하여 보아
지고 하였다. 발뒤꿈치가 계란같이 맵시 있어도 흉인 것처럼 말이었다. 그
래서 야밤중에 우물에 간 것도 예사롭지가 않고 괴이하던 것이었다.
 남이 박씨부인을 일러 여장부라고 한다. 혹은 여걸이라고도 한다. 언변 좋
고 감대 괄괄하고 한문이 웬만한 선비 뺨쳐 먹을 만큼 도저하고 체집 크막
하고 기운 세고 진시 여장부였다. 삼백여 호나 되는 이 향교골(校洞[교동])
온 마을을 쥐락펴락한다. 마을은커녕 한번인가는 세미(稅米 : 納稅[납세])
로 갈등이 나 가지고 동헌(東軒 : 郡廳[군청])엘 쫓아들어가서 원님을 다
혼을 내준 여인이었다. 서른한 살 때 갓 제 돐 잡힌 외아들(준호) 하나를
데리고 과부가 되어 이래 십 년 남짓한 동안에 적수로 백여석거리 성세를
장만하였으니 그 또한 장한 일이었다. 그러나 여장부는 여장부요 병든 홀시
어머니는 따로이 또 병든 홀시어머니였다.
  ‘자리끼 숭늉이 있는데 하필 냉수며…… 정히 냉수를 먹을 양이면 부엌
물독에도 있을 터요, 또 하인이 그 옆에서 저렇게 자고 있으니 깨서 시킬
일이지 바느질은 몰렸으면서 굳이 제가 우물엘 가야 할 일이 무어란 말인
고?’
  ‘으응! ……’
 단박이었다. 삽시간에 눈과 얼굴은 험하여진다.
  ‘맘이 달떠서! 달밤에 맘이 잔뜩 달떠서!’
 무어 영락없었다.
  ‘나이는 찼겠다, 서방은 어리겠다, 으음 오두가 나서! 발광증이 나서!’
 커다랗게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인다.
  ‘그러면 그렇지! 누가 아니랬어!’
 박씨부인은 며느리를 대하여 저것이 외양으로는 제법 얌전을 부리고 끔찍
다 흠선히 하는 체하지만 서방 명색이 나이 어려 아무 흥도 없고 한데 속도
저렇듯 태연 심상할까? 태연 심상할까? 이런 의혹을 한동안 품어왔었다. 하
다가 그것이 어느 겨를에 그렇거니 하는 인정으로 변하였다. 분명 속은 딴
속이지. 미흡해서 만사에 뜻이 없고 저 혼자 있을 때면 호올홀 한숨이나 쉬
고 하지. 팔자 자탄을 하지. 이렇게…… 했던 것이 아니나다를까 오늘 밤에
보니 짐작은 외수없이 들어맞은 것이었었다.
  ‘내가 무슨 탁에 남의 어린 자식 데려다 애먼 혐의를 두어? 다아 번연한
노릇이길래 그런 것이지. 내 눈이 어떤 눈이라고!’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더니 옛말이 하나 그른 말이
없어! 제마다 얌전하다는 칭찬이요, 생김새도 밉지 않고 무던하길래 혼인을
했더니 아뿔싸 그만!’
  ‘아무렴. 나도 홀에미로 자식을 길렀지만 에미 애비 없이 할멈 할아범 손
에서 함부로 자란 자식이란 어디가 표가 나도 나거든! 할 수 없어!’
  ‘저 저 숭포스런 것이! …… 시방 누가 알세라 들을세라 사풋사풋 신발
소리 안 내고 걷느라고 앨 쓰는 거동 보래도! 에잉 천하 요사스런 것!’
 벌떡 일어나 앉는다. 그러면서 동시에 사뭇 동네방네 떠나가게 그 우렁찬
목청을 질러
  “삼월아!”
불러댄다. 하인년 삼월이가 죄 있을까마는 여느때대로
  ‘새악아?’
하고 직접 부를 계제도 아니요 겸하여 고함을 지르잔 노릇이라 만만한 삼월
이던 것이다.
 잠이 들어놓으면 묶어가도 모르는 삼월이가 한번에 냉큼 대답이 있을리 없
었고, 또 부르는 편에서도 고함지르며 들레기가 주장이지 대답은 문제 밖이
었다.
 장죽을 집어 놋재털이가 깨어지도록 땅따앙 두드리면서 연거퍼
  “이년 삼월아!”
불러 외치는 소리를 받아
  “네에.”
하는 며느리의 연삽한 대답이 대뜰 바로서 들린다.
  ‘얌사한 것!’
 눈을 그쪽으로 잔뜩 흘기다가 문득
  ‘진작 좀 내다보들랑 아니하고……’
하면서 얼른 영창 앞으로 다가앉는다. 영창에는 유리가 한칸 붙여 있어 그
리로 달 휘영청 밝은 바깥이 환히 내어다보인다. 그 유리쪽에다 바싹 얼굴
을 대고 앉던 박씨부인은 그러다 다음 순간 거진 소리를 내어
  “응?”
하면서 가볍게 놀란다.
  ‘용길이가? ……’
 머슴 겸해 와서 의탁하고 있는 용길이었다. 며느리는 물대접을 들고 마악
대뜰로 올라서는 참이고 용길이가 뚝배기를 들고 성큼성큼 우물 두던으로
올라가고 하고 있었다.
  ‘마침 물을 뜨러 들어오던 길인지?’
 아니어야 할 것 같았다.
  ‘두 것이 여지껏 같이 우물에서 있었지?’
 그런 것 같고 속이 후련하였다.
  ‘그렇지만 용길이놈은 지금 마악 들어오고 있는데?’
 이 번연한 사실이 어떤 심술꾸러기처럼 밉광스러웠다. 잠시 혼란이 있은
뒤에
  ‘아니, 그건 달리 무슨 까닭이 있었고…… 분명 두 것이 같이 있었어!’
  ‘정녕? 그럼 정녕!’
  ‘하! 이런 변괴가? ……’
 당장 벼락치듯 영창을 열어젖히면서
  ‘이 죽일 년놈들!’
하고 호통을 하겠는데 용길이를 꺼려 참는다. 머슴은 며느리처럼 만만한 것
이 아니었다. 또 친정 사촌형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데려다 이내 자식 다음
가게 길러오던 아이라 어디로 치나 싸고 돌아야 할 의리였었다. 그도 증거
가 역력하다면 모르거니와 기연가미연가 한 생각만 가지고 일을 지레 떠벌
려놓기는 제아무리 좀 주저롭지 아니치 못하였다. 장차 형세를 두고 보는밖
에 없는데, 그러나 이 자리를 이대로 참고 넘길 수는 없었다. 어쨌든 간 한
바탕 화풀이는 하여야만 하였다.
 진주는 마당 한가운데쯤서 시어머니의 고함 소리를 들었다. 소스라치게 놀
라 하마터면 물대접을 놓칠 뻔하였다.
 정신이 황망하고 그런데다 연다른 고함소리와 재털이 뚜드리는 소리에 막
히어 등 뒤에서 차면 안으로부터 나는 밭은기침 소리도 성큼거리고 우물로
걸어가는 발자죽 소리도 통히 들리지 아니하였다. 따라서 용길이가 들어온
줄도 까맣게 끝까지 그는 몰랐었다.
  ‘주무시다 별안간 웬 일이실까? 잠드실 때까지도 아무 다른 기색 없이 책
보시다 이야기하시다 하시던 어른이. 하기야 느닷없이 잘 역정을 내시는 어
른은 어른이시지만…… 혹시 바느질하다 말고 나왔다고 그러시나. 그럼 잘
못 했게? 좀 참을걸 괜히 나왔지…… 그래도 잠깐 우물에 나왔다고 저다지
역정이 나실까? 그렇지만 또 누가 알아?’
 어찌해서 났던지 큰소리가 난 것만은 사실이요, 큰소리가 난 이상 책망은
당해 둔 것이었다. 그 사정없은 책망…… 아뜩 겁이 질렸다. 마루로 올라섰
다. 가슴이 맞방망이치듯 두근거리면서 문고리를 쥐려는 손끝이 바르르 떨
렸다. 그때였다.
  ‘어려운 일을 당하거든 마음을 먼저 갈앉혀라. 당황하지 말고 태연해라.
네가 눈 큰 값을 하느라고 겁이 많아. 부디 어려운 일을 당하거든 마음을
먼저 갈앉혀라. 당황하지 말고 태연해라.’
 이 말이 방금 할머니가 거기 계신 것처럼 또렷이 귀에 울렸다. 시집오던
그 안날 밤 할머니가 마지막 앞에 앉히고
  “첫째 분수를 지키고…… 세상 만사가 제가끔 다 분수가 있는 법이니라.
작은일이나 큰일이나 꼬옥 제 분수에 맞추어 분별을 하고 아야 억지를 하질
랑은 마라! 애들 신발을 어룬이 신자고 드는 것도 분수에 어긋나는 일이요,
창칼로 정자나무를 자르자고 드는 것도 분수에 벗는 일이니라. 그러고 어려
운 일을 당하거든……”
하시면서 타이르시던 두 가지의 신칙이었다. 시집 온 지 반 년 그동안 분수
에 대한 것은 이렇다고 할 겪음이 없었으나 어려운 일은 (주장 시어머니의
책망 듣기였지만) 많이 당하였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의 그 말씀이 생각나
고 그러면서 마치 배 아플 때 할머니가 손으로 쓸어주시면 시원하고 아픈
기가 가시듯이 이상히 마음 당황하던 것이 갈앉고 태연하여지고는 하였었
다. 오늘밤도 곧 그러하였다.
  ‘그럼! 이왕 당하는 일이니 더 잘못이나 않도록 잘이나 당해야지! 정신을
차려가지고 조심해서……’
 배운 바를 일에 임하여 능히 행할 줄 아는 지각이었다. 열여덟 살, 물론
어리었다. 아직 소녀요 한 안해로서는 어리었다. 그러나 한 며느리로서는
훨씬 철이 나고 어른스러웠다.
 조용히 윗문을 여닫고 들어서 그대로 소곳하고 문치에 가 선다. 문치에 가
소곳하고…… 우선 대죄(待罪)였다.
 아랫목으로부터는 깜박 아무 동정이 없다.
 이내 아무 동정이 없다고 언제까지든 그러고만 또 서 있어서는
  ‘자, 어서 죄를 내리시오.’
하는 것 같아서 이짐스럽고 도리어 어른의 성정을 돕는 것이 되는 것이다.
 적당히 잠시 후 진주는 가만히 걸음을 옮기어 뒤 곁으로 건너가 손의 물대
접을 넌지시 한옆에다 치우듯 비껴서 내려놓고 그러고는 자리에 앉아 바느
질을 집어 든다. 바느질은 추석날 새서방 준호가 칠 모시행전이었다.
  “무어냐? 명색이……”
 마악 한코 뜨려고 할 즈음 비로소 박씨부인은 한소리 모질게 지른다. 밑도
끝도 없이 첫마디가 그렇게 나오는 말투도 말투려니와 더욱 그 음성은 방금
삼월이를 불러대더니와는 자못 달라 곧 살기가 뎅겅뎅겅 듣는 듯하였다. 그
것은 며느리의 뺨에 가 못질한 듯 박혀 있는 독한 눈매와 더불어 어른으로
아랫사람을 질책하는 음성이요 눈매요 하다기에는 너무도 노골히 어떤 독특
한 반감과 증오를 머금은 음성이요 눈매요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비밀이었
다. 어리고 아직 감정이 정갈한 진주는 말할 것도 없는 것이지만 당자 박씨
부인 자신으로도 그런 줄을 모르는 맹랑한 비밀이었다. 동시에 이미 쩔어져
만성 된 비밀이기도 하였다.
 박씨부인은 실상 며느리가 방으로 들어서기가 멀다하고 잔뜩 벼르고 있었
다. 무릎을 도사리고 장죽은 재털이를 두드리던 채 그대로 느직이 올려들고
윗문께를 부릅떠보고 앉아서 마침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서는 즉시 한통
  ‘그래 너는 어디를 갔다 오느냐?’
하고든 무어라고든 하여간 추상같이 ── 하되 우선 준절히 ── 꾸짖어 잡
도려댈 참이었었다. 그러나 막상 며느리가 들어서 호흡을 다스리느라 잠깐
그를 노려보아 하는 동안 문득 한 맹렬한 적의(敵意)가 무럭무럭 잡도리고
호통이고는 한옆으로 밀어젖히고 따로이 가슴 저 밑으로부터 치달아올랐다.
 고운 살쩍 아래로 도독이 살진 연한 뺨! 가서 박박 할퀴어놓고 싶게 그 앳
되고 화사함의 시기스럽기더라니…… 치렁치렁 뽀얀 버선등 위를 치렁거리
는 남갑사 치맛자락! 박박 가서 뜯어발기고 싶게 그 칠보족도리 갓 벗은 듯
새각시태 면면함의 시기스럽기더라니……
 들였던 병아리를 이윽고 쪼아쌓고 독살 부리는 암탉이라면 모르되, 이른바
만물의 영장(靈長)된 체면이 무색할 일이었다. 그러나 인류가 나이는 비록
몇백만 살 더 먹어 어른 뻘이랄값에 좀처럼 프로이드라더냐의 해괴한 저술
(著述)을 서재로부터 용감히 끌어내어 불사르지 못하는 약점이 무릇 거기에
있는 것일진댄 속절없은 노릇이었다.
 눈이 뒤집힌다, 혹은 무엇이 바뀐다 하거니와 박절한 대로 박씨부인이 시
방 그러하였다. 그렇더라도 방금 아까도 보던 번연히 그 며느리요 그 차림
차리였건만 며느리가 무단히 그렇게 젊고 어여쁘고 새각시태 면면하고 한
것처럼 금시로 비위가 더욱 거슬리면서 밉새웁고 울화가 나고 하는 것이니,
도저히 신경 건전한 사람에게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위험스런 환자가 아
닐 수 없었다.
  “으응? 무엇허는 명색이냐?”
 눈도 깜짝 않고 여전히 며느리의 뺨을 지질 듯 노리고 앉았다. 이번엔 손
의 장죽이 상앗대질까지 쑥 나가면서 또 한번 고함청을 지른다. 그러고는
곧 같은 소리를 다시
  “무엇허는 명색이야? 명색이……”
 소리는 같은 소리라도 노기는 무섭게 더하여 거의 머리끝이 곤두설 지경이
었다.
 숨도 쉬는 듯 마는 듯 진주는 소곳하고 앉아 한코 한코 바느질만 뜨고 있
다. 또옥또옥 바늘코 소리조차 그는 조심되고 민망스럽다. 항차 말대답이리
요. 그러나 참새는 찍하여도 죽이고 짹하여도 죽이고 찍짹하여도 죽이듯이
며느리란 사람은 시원시원 대답을 하면 말대답한다고 흉이요 아니하면 아니
한다고 탓이었다.
  “아니, 별안간 꿀먹은 벙어리가 됐단 말이냐아 으응? ……”
  “………”
  “내 말이 동네 개 짖는 소리만두 못헌가보구나?”
 이러는 데야 유구무언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얼굴을 조금 드는 듯하고
  “어머님 잘못했어요! 다신……”
  “듣기 싫구나! 누가 그런 소리 듣겠다드냐?”
  “………”
  “어디 무엇허러 갔드냐?”
  “………”
  “시에미 잠든 새 살금 나갔다 오는 데가 어디야?”
 심상치 아니한 말이었다. 진주는 가슴이 선뜩하면서
  “하두 갈증이 나서…… 시언한 우물물을……”
  “핑계는 좋구나? 냉수가 먹구 싶으면 하인이 없드냐아? 부엌 물독에 물이
없드냐?”
  “………”
  “요망스런 것 같으니로고! 누가 제 속 모르는 줄 알구?”
  “………”
  “흥! 맘두 들뜰 만허지! 오두발광두 날 만허지! 서방은 어려, 나인 찼어,
달은 휘영청 밝어…… 맘두 들뜰 만허구말구! 오두발광두 날 만허구말구.”
 진주는 기가 막혔다. 시집 온 지 다섯 달, 그동안 하루가 멀다하고 큰 소
리가 나고 책망을 듣고 하였지만 이런 무정지책은 처음이었다. 김치가 너무
짰느니 너무 싱겁느니, 새서방 두루마기가 품이 너무 컸느니 깃이 너무 처
졌느니 따위의 트집과는 판이히 다른 것이었었다. 억색하여 눈물이 핑 돌았
다. 부엌 물독에는 물이 없었다. 삼월이는 깨우기가 시끄럽고 성가실뿐더러
어린 년이 곤히 자는 것을 깨워 일으키느니 내가 잠깐 수족을 놀리기만 못
하였다. 그러나마 밤중에 우물엘 내려가기가 새삼스런 일이었을새 말이
지…… 달도 무심코 나가서 보니 그렇게 밝았지, 달이 밝거니 하고 나간 것
이 아니었다. 더우기 새서방이 어리네 마음이 달떴네 소리는 하늘이 내려다
보시지만 진정 애매하였다. 일찌기 새서방이 어린 것을 미흡히 여긴 적도
없었거니와 도대체 무엇을 가르쳐 마음이 달뜬다 하며 오두발광이 난다 하
는 것인지 그것부터가 똑똑히 모를 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시어머니가 저대도록 성정이 났을 바엔 무슨 잘
못이든 잘못이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무엇일까?’
  ‘어디가 잘못되었을까?’
  ‘하시던 말씀대로 잠드신 새 나간 것이?’
  ‘물이나 냉큼 떠가지고 들어오들랑 않고 한참 충그린 것이?’
 억색하던 것은 그 순간이요 진주는 잘못을 찾아내기에, 얼른 잘못을 찾아
내지 못해 마음이 급하고 애가 쓰였다.
 박씨부인은 한호흡 깊이 들이쉬더니 호통은 고함으로 돌변하여
  “으응? 날 만두 허구말구우! ……”
하고 끝목을 길게 빼어 지른다. 그 높고 거친 품이 흡사 황소의 영각이었
다. 진주는 하마 바느질을 떨어뜨릴 뻔하였다.
 머슴 사랑에서랑 이웃에서랑은 아닌밤중에 비상한 음향에 놀라 일단 잠들
이 깨기는 깨었으나 곧 그 정체를 알고는
  ‘또야? …… 또!’
  ‘가끔 한번씩 저 짓거리를 해야만 밥이 잘 내리는감!’
하고 시들하여 하면서 도로들 잠이 들어버린다. 삼월이년만은 그나마 깨지
도 않고. 혹 산에 갔다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듣고 무서하는 꿈을
꾸는지 몰라도. ──
  “오두발광이 날 만두 하구말구우! 날 만두 허구말구! 보구 밴 것이 그뿐
이구말구우! 그뿐이구말구! 으응? ……”
 어깨를 휘저으면서 구들장이 꺼지라고 밑을 구르면서 발작은 각각으로 심
하여 가 지르는 소리도 마침내 인간이라고 하기보다는 더 많이 맹수의 성난
울음에 가까운 포효였다.
  “서방 어리다구우! 으응? 달밤에 오두발광 나서어! 으응? …… 자알 배워
먹었구나아! 자알 배워먹어! 으응? 으응? ……”
 불끈 떨치고 일어선다.
  “예라! 예라! 나는 못본다! 그런 꼴 나는 못본다아! 나는 못본다! 못보지
이, 못보지! ……”
 상인의 집안에서는 시어머니가 예사로 며느리를 두들겨패는 풍습이 없지
아니하다. 머리끄덩도 움키고 꼬집어뜯고 물어떼이기도 하고 간혹 방망이찜
도 하고. 그러나 소위 선비네 집안에서는 아무리 어떤 일이 있더라도 며느
리를 손찌검토록은 하는 법이 아닌 것으로 엄연히 법도(法度)가 되어 있다.
만일 그러한 법도의 제약이 아니었다면 이 밤에 이 자리는 무난히 수라장으
로 변하고 말았을 것이었다. 며느리의 뺨에는 흉한 손톱자죽이 여러 개 나
고, 몸은 함부로 피멍이 지고, 많은 머리칼이 뽑히고, 남갑사 치마는 발기
발기 찢어지고 하고라야 말았을 것이었다.
 그러기만 하였으면 박씨부인은 약간 좀 직성이 풀릴 수도 있는 것인데 그
러지를 못하니 사뭇 몸부림이 나는 것이었었다. 쾅쾅 두 발을 구르면서 그
큰 몸집을 뒤흔들면서
  “예라아, 썩 내 눈앞에 뵈지 마라! 당장 네 집으루 가거라! 썩 네 집으루
가구 내 눈앞에 뵈지 마라아, 당장! 당장! ……”
  “어머님! ……”
 푹 엎드러질 듯 몸을 앞으로 숙이면서 진주는 거진 울음 섞어 애절히 빈
다.
  “다신…… 다신 그러거든 죽여주시구 한번만 참아 주세요! 어머님!”
  “당장! 네 집으루 가거라! 못보지! 나는 그런 꼴 못보지이. 썩 네 집으루
가거라아 썩!”
  “어머님! 어머님!”
  “썩 못 가느냐? 썩 못 가? 으응?”
  “제발 어머님! 이 자리서 죽여주시지 어머님! 제발……”
  “못 가아? 썩 못 가아? 으응?”
 한 고함에 성큼 한 발짝 또 한 고함에 성큼 한 발짝 세 발짝만에 며느리의
바짝 앞에 이르러 그들먹히 막아선다. 그대로 원비(!)를 늘여 덤쑥 머리끄
덩을 움킨다면 정히 큰 솔개미가 병아리를 채인 형국이 도는 판이었었다.
과연 박씨부인은 팔이 움칫움칫 얼마나 거기 눈 아래로 며느리 맵시 나는
머리쪽을 와락 움켜 태질치고 싶었던고.
 숨을 허얼헐 기운을 부려댈 무엇 만만한 것이 없나 하고 둘러보면서 일변
  “으응? 으응? ……”
하고 을러메다가 마침 바느질꾸리가 눈에 뜨이자 그대로 번쩍 들어 윗문에
다 대고 동댕이를 친다. 쾅 와시르르, 문이 힘없이 삐그덕 열린다.
  “나가거라! 당장 네 집으로 가거라! 하누님이 말려두 네 꼴 못본다! 당장
어서 네 집으루 가거라!”
 진주는 그저 죽어지이다고 빌 뿐이었다. 그러나 박씨부인은 좀처럼 갈앉기
는새로에 점점 기승이 더하여만 가더니 그러다 필경엔
  “정녕 네가 이럴 테냐? 정녕 이 이퉁을 쓰고 앉았을 테냐? …… 오냐, 으
응 두구 보아라! ……”
하고 우르르 아랫목 발치의 장롱 앞으로 달려가 벼락치듯 문짝을 열어젖히
고는 주섬주섬 옷을 꺼내면서 일변 갈아 입으면서
  “내가 나가지! 내가 나가지이, 내가…… 내가 쫓겨나가지! 으응! 내가 나
가지이! ……”
 일은 졸연치 아니하였다. 단순한 역정이나 책망이 아니라 기어코 친정으로
쫓을 거조 같았다. 진소위 청천벽력이었다.
 시어머니가 한번 죽으라는 영이면 곧 그 자리에서 죽는 시늉이라도 하여야
하는 것이 며느리요, 그런 중에도 남달리 순종하는 진주였다. 그러나 진주
는 이 깊은 밤 들을 건너고 산을 타는 오십여 리 친정집을 느닷없이 간다는
것도 감히 생의치 못할 일이거니와, 가사 교군을 차려주어서든 혹은 바로
이웃간이어서든 가기가 어렵지 아니한 형편일값이라도 쫓겨서 친정으로 가
는 그 행보 그 영만은 선뜻 거행할 수가 없었다. 친정으로 쫓겨가기를 저어
함은 일반으로 며느리의 본능이라고도 할 것이었다. 친정으로 쫓겨가기처럼
며느리에게 무서운 것은 없었다. 호랑이보다도 귀신보다도 무서운 것이 그
것이었다. 하루 아침 시집을 못 살고 친정으로 쫓겨가는 날이면 그로써 여
자는 일생을 그르치는 것이었다. 죽은 목숨이나 일반이었다. 차라리 죽는
편이 나았다. 강선달네 양념이는 시집을 갔다 쫓겨오더니 어떤 활량의 첩으
로 들어가더니, 갈리고 오더니 그럭저럭 몇 손길 넘나들더니 마지막 술에미
로 떠나가고 말았다. 정자나무집 큰딸은 공방이 들어 친정으로 시집으로 오
락가락하더니 머슴과 배가 맞아 종적없이 어디로 달아나 버렸다. 인물 좋기
로 소문난 최학자네 필순이는 소박데기로 친정살이가 섧다고 들보에 목을
매고 죽어버렸다. 그야 제마다 다 그 신세가 되랄 법은 없는 것이지만, 열
에 아홉은 시집을 쫓겨나 성히 평생을 마치는 사람이 드물었다. 또 성히 평
생을 마친다 하더라도 따라진 목숨이지 좀 기구할 바 없는 것이었다. 여자
는, 며느리는 그러므로 시집 쫓기기를 죽음보다 두려워하며 한사코 그를 면
하려고 든다.
 그와 같은 원리(며느리의 본능) 말고도 진주는 따로이 또 한 가지의 위협
이 있었다. 진주가 가고 보면 단 하루를 부지할까 싶지 아니한 새서방 어린
준호를 혼자 두고 가는 것이었다. 애처로와 차마 못할 노릇이었다. 만일 불
행하여 정말로 쫓겨가고 마는 것이라면 쫓겨가서 장차 신세가 어찌 되고 할
걱정이나 그런 것보다도 준호와 함께 있어 주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더 절
박한 고통이요 슬픔이었다. 아닐말로 어린 자식을 떼어놓고 가지 못하여 하
는 어머니나 진배없는 안타까움이었다.
 어디로 보든 가지는 못하는 것이요 가서는 아니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불 같은 저 시어머니의 성화는? …… 일시 엄포가 아니라 짜장 당신이 나가
시기라도 할 채비인 걸 어떻게 가만히 보고만 있더란 말인고.
 박씨부인은 연방 그 내가 나가지, 내가 쫓겨나가지를 외치면서 고름을 매
면서 아래 영창을 크게 열고 거침없이 앞마루로 나선다.
 바느질고리 뒤엎은 것을 주워 담고 있던 진주는 윗문으로 달려나가 앞지르
듯 시어머니의 팔에 매달린다.
  “어머님! 한번만 참으세요! 절 죽여주세요 어머니!”
  “예라 비껴라! ……”
 허잘것없이 뿌리쳐버리고 도방으로 내려서면서
  “네 고집이 이기나 내 고집이 이기나 보자! 두구 보아!”
 벽에다 머리를 부딪고 쓰러진 진주는 정신이 아찔하였으나 얼른 몸을 일으
켜 천방지축 버선발로 달려내려간다. 고요한 뜰에는 아까와 다름없이 달빛
만 가득히 괴어 있다.
 진주는 시어머니의 앞으로 나서서 아랫도리를 얼싸안고 주저앉는다.
  “어머니! 그럼 지가……”
  “갈 테냐? 네 집으루 갈 테냐?”
  “네!”
  “정녕?”
  “………”
  “정녕?”
  “네!”
  “가거라! 당장 이 길루…… 뒤두 돌아볼라 말구 당장 이 자리서!”
  “어머님?”
  “어서!”
  “날이나 새거든 낼 아침에 가께요!”
  “요망스런 것! 구미호 같은 것!”
 비웃듯 그러면서 떼쳐버리고는 쿵쿵쿵 팔을 휘젓고 차면께로 걸어나간다.
 진주는 급한 대로 꾸며댄 말이었었다. 우선 가마고 하여놓고 그랬다가 날
이 밝거든 그야말로 작두를 베고 거적에 누워 빌려니…… 하면 밤 사이 역
정도 많이 삭고 하실 터인즉 웬만큼 풀어지시려니 하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재치를 낸 것도 아무 보람이 없었다.
 시어머니는 벌써 보이지 않는다. 울 안에서라면 죽으동살동 언제까지고 매
달리고 빌고 한다지만 행길까지 쫓아나가는 수는 없었다. 마당 가운데 주저
앉은 채 두 손으로 얼굴을 싸고 흐느껴 운다.
 대문 밖에서부터 시작하여 손뼉을 땅땅 목청껏 지르는 왜장 소리가 새판으
로 인다.
  “동네방네 다아들 듣소오! 엊그제 시집온 며느리한테 수절과부 시에미가
쫓겨난다네에! 동네방네 다아들 듣소오 다아들 들어! 김진사 김학선네 집에
서 며느리가 시에미 쫓아냈다네에 시에미를! 이 밤중에 시에미를 쫓아냈다
네!”
 이웃에서 젊은 양주가 또 한번 잠이 깨었다. 소곤소곤 주고받는 이야기
가……
  “오늘 저녁은 유난히 더허우?”
  “저 아씨가 올에 몇?”
  “마흔둘이라든가? 셋이라든가……”
  “아직두 멀었구면! 영감이나 하나 얻겠지? 저 병엔 신효한 약이니……”
  “그럴래믄야 여태 수절했겠어요?”
  “저럴래서야 어디 수절한 생색이 있나? 개가살이하니보다 더 망신이지!”
  “며느리가 그 어린 것이 무슨 죄다짐이람! 쯧쯧!”
  “난 애야, 사십 전에 죽는다면 이녁더러 삼년상만 치르구 나서 팔자 고치
라구 수결 한 장 써놓구 죽을 테야!”
  “숭헌! ……”

2. 사랑 있는 둥우리

 고의적삼 바람에 초립만 쓰고 읽던 『맹자』를 옆에 끼고 새서방 준호가
대문간을 지나 차면 안으로 들어선다.
 집안은 안방에만 불빛이 환하고 건넌방은 깜깜하고 두루 조용하고 하여 전
과 아무 다름이 없었다. 따라서 그 사이 큰 풍파가 일었던 것을 알 바가 없
고 소년은 오직 매일 밤의 버릇대로 이 밤이 즐거우냐 불행하냐를 가슴속에
점치면서 총총히 섬돌 아래까지 다다른다.
 섬돌로 올라서면서는 제법 어른스럽게 밭은기침과 함께
  “삼월아?”
하고 부른다. 삼월이를 찾는 것이 아니라 모친한테(모친한테보다도 장가를
든 뒤로부터는 새댁 진주한테) 제가 들어온 기척을 하는 뜻이었다.
 부르는 소리와 동시에 윗문이 가만히 열리면서 새댁이 방긋이 웃는 얼굴로
마루로 마주 나온다. 준호는 우선 마음이 놓이고 즐거웠다.
 집에 들어 졸연히 즐거움이라고는 없는 준호에게도 꼭 세 가지는 즐거움이
있을 수가 있었다. 석양에 학교로부터 돌아와서나 글방으로부터 돌아와서나
준호는 새댁이 누구보다도 먼저 그리고 방긋이 웃으면서 마주 나와주는 것
이 첫번의 즐거움이었다. 반대로 새댁이 얼른 보이지 아니하거나 보여도 기
색이 좋지 못하거나 하면 그만 마음이 언짢고 슬프다.
 준호의 그러는 근경을 잘 알고 있는 진주는 방금 어떠한 일이 있었더라도,
가령 오늘 밤 같은 풍파를 겪고 나서도 정신을 수습하고 마음을 평화히 가
졌다. 웃는 얼굴로 그를 맞아들이기를 범연히 하지 아니한다. 밤이요 어둔
마루건만 준호는 직감적으로 새댁의 얼굴이 웃는 것인지 아닌지를 분간할
만큼 예민함이 있었다.
 그 다음이 모친이었다.
 안방으로 들어가 무릎 꿇고 앉아서
  “어머니 다녀왔읍니다!”
한다.
  “글 잘 읽었느냐?”
  “네에!”
  “………”
 박씨부인은 말없이 고개만 가볍게 끄덕이다 이윽고
  “건너가 자거라!”
하는 영을 내린다.
 준호는 비로소 가슴 조마조마하던 것이 갈앉고 살아난다. 둘쨋번의 즐거움
이었다.
 그렇지 않고 건너가 자거라 하는 대신 며느리더러
  “이부자리 가져오느라!”
하면 준호는 둘쨋번의 즐거움이 물론이요 그 다음에 올 세쨋번의 즐거움마
저 잃어버려야 한다. 실망하여 밤참도 마다하고 새댁이 모친의 옆에다 펴주
고 물러가는 자리에 꼬부리고 누워 고달픈 꿈을 맺는다.

 뜻밖에 모친이 방에 있지 아니한 것을 보고 준호는 뒤따라 들어오는 새댁
더러 눈으로 묻는다. 진주는 섬뻑 무어라고 대답할 바를 몰라 주저주저한
다. 준호는 기다리지 못해
  “어디 가싰수?”
  “저어 외삼춘댁에……”
 준호의 외가 즉 박씨부인의 친정집이었다. 한 동네요 해서 무시로 서로 오
고가고 할 뿐 아니라 화가 나서 나가는 날이면 그건 영락없이 친정집이었지
갈 곳 없었다.
  “언제?”
  “조금 아까……”
  “………”
 준호는 눈을 깜작깜작 무엇을 생각하다가
  “그럼 지무시구 오시우?”
  “아마……”
 준호는 얼굴에 안도의 빛이 서언히 떠오른다.
 부친을 일찍 여의고 없고 오직 하나의 어버이요 어머니였다. 웬만만 하여
도 그 어머니를 한시라도 못보면 아쉬워할 열두살박이 소년이 도리어 어머
니 없은 시간을 은근히 다행스러할 이치가 없는 것이었다.
  ‘홀에미 자식일수록 다잡고 엄히 길러 행신과 처세 범백이 빠짐없고 단정
해야만 남에게 후레자식 소리를 아니 들으며 가문에 욕을 아니 끼치는 법이
다.’
 이것이 박씨부인의 이른바 훈육방침의 대방이었다.
 장가까지 가고 한 어른놈이 하인을 점잖스럽게
  ‘삼월아!’
 이렇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동무나 부르듯이
  ‘삼월아? 삼월아!’
한다고 얼마나 꾸중을 들으며 종종 매도 맞았던지 모른다.
 아침 일어나기를 몇 분 더디 하였다고 글을 못 외어 바친다고 매질이 난
다. 걸음걸이가 의젓하지 못하다고, 의관을 똑바로 아니한다고 가벼워야 꾸
중이요 그렇지 않으면 역시 매질이다. 제향날 지방을 한 획만 함부로 그었
거나 축을 한 자만 잘못 읽은다치면 이튿날 반드시 볼기를 맞아야 한다. 누
구와 혹시 싸우거나 다툼질을 하였단 보아 ── 별로 싸우거나 다툼질을 하
는 아이도 아니지만 혹시 말이었다 ── 연유와 시비는 어디 가있던 반 죽
고도 남는다. 돈 같은 것은 여간하여서 피천 한푼 제 마음대로 쓰라고 손에
쥐어주지를 아니한다. 소년은 위태한 가지에 깃든 새와 같이 저무나 새나
불안코 조심이 되어 일시도 지기를 펴볼 날이 없다. 아침에 눈을 뜨면 벌써
모친이 있고, 모친의 온갖 간섭과 책망과 매질이 있고, 상투와 피곤함과 글
읽기가 있고 한 하루가 변함없이 기다리고 있다. 그만 가슴이 납덩이를 삼
킨 것처럼 무겁고 저절로 이마가 찌푸려진다. 이리하여 소년은 좀처럼 마음
이 거뜬하고 편안할 겨를이 없고서 늘 찌뿌듬하니 걱정스럽다. 들거나 나거
나 공부를 하면서나 쉬며 놀면서나 혹시 또 재미있는 일이 있을 때까지도
마음은 언제든지 한 가드락이 뜨윽 걱정스러 가지고 있고 한다.
 자식을 엄히 길러서 물론 나쁠 며리는 없었다. 그러나 박씨부인은 없는 남
편을 대신하여 그 엄격한 아버지 노릇도 하여야 하던 것이지만 일변 지극한
자애를 가지고 임하여야 하는 실로 어머니로서의 의무가 없지 아니한 몸이
었다. 그리하건만 자애란 고물도 비치는 것이 없고 그저 엄히 엄히 하면서
가혹히만 굴기로 주장이었다. 그도 남의 어머니거든 하물며 그 자식이 어떤
자식이라고 마음에까지 소중하고 사랑겨웁지 아니하다면 오히려 빈말이리
라. 사실 마음으로는 끔찍 소중하고 사랑스럽다. 그러면서도 일체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어 말 한마디 낯색 한번 상냥히 하여 주지를 아니하였다. 결
국 그리하여 박씨부인은 자식을 엄히 기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식을 학대
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는 어머니라기보다도 소년의 사지를 꽁꽁 결박짓고
머리를 내리누르고 하는 무형의 밧줄이요 무형의 바윗돌이요 할 따름이었
다. 그의 훈육방침은 활발히 뛰놀고 맘대로 웃고 소리지르고 하면서 씩씩히
자라갈 열두살박이 선머슴더러 부처님같이 얌전하고 시집 온 새각시같이 말
치 없기를 고문하는 형틀(刑具[형구]) 밖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 두렵기만한 어머니고 보매, 소년이 정을 붙이고자 한들 붙일 길이 있
으며, 따르고자 한들 따를 길이 있을 바 만무한 것이었다.

 진주와 준호 저희들끼리의 비둘기 둥우리 건넌방에서……
 진주가 삶은 밤을 벗겨 쟁반 한옆에 놓고 놓고 하는 것을 준호는 그 앞에
가 앉아서 첨사로 찍어다 입에 넣고 넣고 한다. 뒷문에 드리운 발로 간간이
바람이 스며들어 놋촛대의 육촛불이 너울너울 흔들린다. 잘 닦은 장롱과 반
닫이가 그 백통장식들이 불빛을 받아 으리으리 윤이 난다. 진주가 밤을 벗
기고 있는 은장도(銀粧刀)도 손가락의 굵은 은가락지도 또한 빛난다.
  “안 먹우?”
  “난 먹구 싶잖어요!”
 준호가 밤을 또 한 알 찍어올리면서 권하고 진주는 웃으면서 대답이다. 밤
참에 입맛을 다시는 적이 없는 줄 알면서도 준호는 언제나 몇 번이고 권하
기를 마지 아니한다. 그는 진주가 정말로 먹고 싶지 않아서 먹지 않는 것이
아닌 줄을 모르지 않는다.
 마침 쪽밤이 나왔다. 준호는 그 한쪽을 찍어 들고
  “쪽밤 혼자 먹으믄 덧니 난대?”
  “한쪽만 잡숫지?”
  “한쪽만 먹으믄 응…… 쪽니가 나구!”
  “그럼 어떡허나아?”
  “그러니깐 둘이 노나먹어예지!”
 그러면서 찍은 밤쪽을 진주의 입 바투 가져다 대어준다. 진주는 까르르 웃
어지려는 것을 손등으로 입을 가린다.
  “자아!”
  “이따가 먹으께요!”
  “시방! ……”
  “………”
 진주는 할 수 없이 밤쪽을 뽑아다 입에 넣는다. 그리고는 둘이 서로 보면
서 새로이 웃는다.
 정신적으로 큰 압박이 있는데다, 겸하여 휴식과 수면을 충분히 하지 못하
기 때문에 소년 준호는 한창 자라기 시작할 나이면서도 발육이 정지된 듯
살도 오르지 아니하고 더 크지도 아니하고 빼빼 야위어 가지고는 밤낮 고만
하고 있다. 가냘픈 몸집, 가느다란 목, 그 위에 가 올라앉은 커다란 머리
통, 어웅한 눈…… 보기에조차 위태위태하다. 체질이 본판 약한 것이라고
인삼과 녹용으로 보약을 장복시키나 살을 깎아내고 피를 졸여주는 과로와
정신적 압박이 있는 이상 아무런 소용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소년에
게 일맥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이 지나간 봄 혼인을 한 이후부터 시작
된 진주의 다정스런 마음성과 알뜰살뜰한 거천이었다.
 잠은 소년의 무엇과도 바꾸기 어려운 욕망이요 낙이었다. 글방으로부터 돌
아오는 그는 눈을 뜨지 못한다. 그러던 그가 새댁이 마루로 마주 나서주게
되면 단박 눈이 초롱초롱하여진다. 그러고는 저희들의 비둘기 둥우리로 들
어와서는 밤참도 먹고 하면서 잠시 동안 이야기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잠을
잔다. 또 그래야만 잠이 오는 것이다. 이것이 소년의 집에 들어 세쨋번의
즐거움이요 최고의 즐거움이었다. 지금에 만일 소년에게서 진주를 빼앗아버
린다고 하면, 그의 실망과 타격은 말할 수 없이 심각할 것이었다.
  “바느질 또 허우?”
 이부자리를 펴고 있는 진주더러 준호가 묻는다.
  “행전허구 쾌자허굴 못다 마쳐서……”
  “그럼 왜 일러루 안 가지구 오우?”
  “안방으루 가서 해예죠! 어머님이 혹시 오시드래두……”
  “안 오신다믄서?”
  “오신다구두 아니 오신다구두 아녀셌은깐 막상 몰라 기대려 드려예죠!”
  “그럼 난?”
  “얘기허다 잠드신 거 보구서 가께요!”
 처음부터 진주는 아까 인 풍파는 씻어 덮어두고 말을 비추지 아니하기로
하였다. 눈이 부으면 눈치를 채일까 보아서 그런 생각을 하고 울음도 이내
거두었었다. 내일이건 언제건 종차 아는 때 알고야 말값에 구태여 미리서
알게 하여 일껏 편안한 마음을 흐트려주고 싶지가 아니하였던 것이다.
 준호는 초립과 망건을 벗다가 그 끝에 문득 생각이 나서
  “난 언제나 머릴 깎우!”
  “그래두 아무때구 어머님이 깎아라 헤세예죠!”
  “꼭 죽겠는걸!”
  “애야 어머님 허락 없인 깎지 말아요 응?”
  “서울루 유학 갈댐 깎으라실까?”
  “서울루 공부 가라시나요?”
  “지끔은 한문 공분 만날 소용 없대! 서울 가서 신학문 학교공부 많이 해
예지 허지……”
  “그랬으믄야 좋지만서두 어머님이……”
  “안 보내주시믄 난 머 몰래 도망해 갈꺼!”
  “에구우! ……”
  “일없어! 난……”
  “그럼 못써요!”
  “지끔은 신학문 못헌 사람은 아무것두 못헌대! 병신이래!”
  “건 그렇지만서두 어머님 몰래 그랬다 어떻자구요? 학비랑은 누가 대주
구……”
  “밥값이 십 원이구. 십 원만 더 있으믄 된대!”
  “다달이?”
  “응!”
  “어머님이 안 대주시믄 다달이 이십 원이 어디서 나우?”
  “외삼춘더러…… 후제 도루 다아 갚아 드리마구……”
  “외삼춘이 그리 넉넉하세야죠?”
  “………”
  “지금 삼학년인깐 내년 내후년 아녜요? 그러니깐 안직 여기 학교공부나
부지런히 허지 벌써버틈 그렇게 맘 떠가지구 그럼 되려 못써요! 응?”
  “응!”
 고집이 노상 없는 바가 아니나 이른 말도 잘 듣는 소년이었다. 진주의 말
이면 더구나 잘 들었다.
 어느덧 숨결 소리가 고르게 들렸다. 진주는 베개며 처네 같은 것을 다독다
독 잘 고쳐 주고 다스려 주고 한 후에 살며시 그 옆을 일어선다. 기다렸던
듯 닭이 홰를 치고 운다. 이어서 멀고 가까이 닭 우는 소리가 요란하다. 안
방에서 괘종이 땡땡 두 번을 친다.
  ‘벌써! ……’
 오래지 않아 날이 밝을 생각을 하고 비로소 밝는 아침의 걱정이 일시에 눌
렸던 머리를 쳐들면서 가슴에 탁 맞힌다.
 별수 없었다. 내일 조반 후에 삼월이나 앞세우고 시외삼촌댁으로 쫓아가는
것이었다. 시집 온 지 겨우 다섯 달, 아직껏 대문 밖에도 나서 보지 아니한
새각시로 쓰개치마 뒤쓰고 행길을 나간다는 것이 심히 온당치 못함이 아님
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니 가는 수는 없었다. 가서 시외삼촌 내외
분의 만류와 권념도 있고 하는 자리에서 그저 죽여 주십시오 손이 발이 되
게 비는 것이었다. 그렇게 가서 빌어서 들으시면 만행이요, 아니 들으신다
치더라도 그러는 것이 나 할 도리를 하는 것이었다.
 너무 선선할 것 같아서 진주는 발을 걷고 뒷문을 닫는다. 그러고는 촛불을
끄고 나오기 전에 방안을 미진한 것이나 없나 하고 한 바퀴 둘러보다가 눈
이 새서방의 무심히 잠든 얼굴에 멎은 채 오래도록 옮기지 못한다. 그러다
훨씬만에 가벼운 한숨과 더불어 이슬이 눈가를 적신다. 사랑스럽고 애처로
운 그 두 정이 그새보다 유난히 더 샘물 솟듯 곡진하게 솟아오르던 것이었
었다.

3. 마지막 犒饋[호궤]

 준호는 뒷짐을 넌지시 지고 가만가만 걸어나온 것이 대문 밖 연자방앗간까
지 나왔다.
 한낮이 훨씬 많이 겨웠고……
 멀찍이 두레마당에서 치는 풍장 소리가 단조로이 들려온다. 동네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있는 대로 끌어나 절반은 두레마당으로 쏠리고 절반은 읍
내 난장으로 쏠리어 텅 빈 동네같이 길이고 고샅이 헤성헤성하다.
 한낮 겨운 해는 아직도 칠팔월 노양이라서 제법 싱싱하게 불볕을 내리쪼이
고 있다. 이삭이 무긋무긋 숙은 텃논에서는 좋은 햇볕에 벼가 마지막 익느
라고 솨아 소리가 금시로 이는 듯하다. 쓰러지게 벼가 잘 되었다. 그리고
늦더위에 잘 익어가고 있다. 텃논뿐 아니라 들녘도 고래실도 도처가 농사가
잘 되었다. 밭곡식도 잘 되었다. 금년은 풍년이다. 대풍이다.
 풍년이 드니 추석이 우선 푸짐하다. 햇벼 장만하여 섬쌀로 술을 빚고 떡을
치고 통소 잡고 도야지 잡고 오색 과일 따다 놓고 배불리 먹으며 취토록 마
시며 노래 부르고 춤추면서 저마다 새옷으로 호사요 동네마다 즐겁게 노는
빛이다. 위청(양반축)에서는 재인 불러 풍악 잡히면서 놀고 아래청(농민축)
에서는 고깔 쓰고 풍장 치면서 논다. 어른들은 골패를 하고 투전을 뽑고 윷
을 논다. 아이들은 돈을 친다. 읍내는 난장이 터져 씨름이야 노름판이야 걸
궁패야 협률사(協律社 : 移動舊派劇團[이동구파극단]) 같은 여러 가지 놀이
와 굿으로 더욱 흥청벙청한다. 낮에는 동네서 놀고 밤이면 읍내로 난장 구
경을 간다. 아침에 읍내로 들어가 온종일 난장 구경을 하고 돌아와서 밤이
면 동네서 놀기도 한다. 추석은 이렇게 얼마든지 푸지고 즐거웠다. 놀기 좋
기로는 그리하여 추석이 설보다 더 치는 명절이었다.
 그런 푸지고, 남들은 다들 즐거운 추석이었으나 오직 소년 준호에게만은
명절이 도리어 심심하였다. 장가를 가서 상투 짜고 갓(草笠[초립]) 쓰고 한
명색은 어른이었다. 그러나 열두살박이 초립동이로 짜장 어른들 청에 감히
어찌 참예는 하며, 붙연들 줄 이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럼 그렇다고 장가
간 새서방이요 상투 짜고 갓 쓰고 한 명색이 어른 쳇것이 또래의 동자패 선
머슴들 축에 끼여 콩조각으로 윷이나 놀고 돈이나 치고, 돈치던 흙 묻은 손
으로 주머니 속에서 밤 ․ 대추나 꺼내 먹고 하면서 함부로 놀 수는 없었다.
그야 한 낫세의 학교도 같이 다니고 글방에도 같이 다니고 하는 동무가 없
는 것이 아니었다. 머리채 늘어뜨린 놈도 있고, 사포 쓴 중대가리도 있고,
또 두엇이나는 같은 초립동이도 있고 하였다. 그렇지만 그애들은 단순히 글
동무로서의 동무였지 섭쓸려 장난하고 놀 바의 동무는 아니었다. 그애들은
학교에서랑 학교와 글방엘 가고 오고 하는 길초에서랑 곧잘   ‘지구쌈’ 도
하고  ‘기와쌈’  도 하고  ‘팔방’  도 하고  ‘비석치기’  도 하고 한다. 읍내
이께다네 가게 앞을 지나면서는 으례 모지떡을 사먹는다. 엿장수를 만나면
사서 먹기도 하고  ‘엿치기’  도 한다. 밤 이슥토록 글방에서 글을 읽고 나
서는 일쑤  ‘서리’  들을 한다. 남의 콩 뽑아다 삶아먹는  ‘콩서리’  , 남의
참외 따다 먹는  ‘원두서리’  , 남의 닭 잡아다 먹는   ‘닭서리’ , 때로는 남
의 집 뒤 울안에 쪄다 논 고사떡을 시루째 들어다 먹는   ‘떡서리’ 까지 한
다.   ‘서리’  는 풍속이요 글방 도령들에게 눈감아 주는 장난으로 선생이나
부형들이나 항용들 보고도 모른 체하고 심히 말리지 아니하거니와 피해를
당한 편에서도 대개는
  “허! 그놈들 참!”
하고 입맛이나 다시고 말지 깊이 미워를 한다든지 말썽을 일으키는 법은 별
로 없다. 자기의 어려서 일을 여겨서 혹은 자기네 자제 역시 그런 글방 도
령의 하나임을 여겨서 그러기도 하고, 철없는 아이들의 한때 장난을 허물치
아니하는 너그러움과 순박함으로 그러기도 하였다. 하기야 현장에서 들키어
가지고 무섭게 쫓기는 수도 있고, 그러다 오줌독에 빠지는 아이도 있고, 또
사람 따라 뒤를 밝혔다 글방으로 쫓아와서 기어코 말썽을 일으키어 선생을
책망한다, 선생으로 하여금 이면상 아이들을 달초하지 아니치 못하게 한다,
서리 맞은 것을 도로 빼앗아 간다, 값을 물린다 하는 경우가 노상 없는 바
가 아로니되 극히 드물었다.
 하옇든   ‘서리’ 란 짓궂은 장난이요 악동(惡童) 짓임엔 갈데없으나 그런
만큼 글도령들은  ‘서리’  가 큰 매력이었다. 가서  ‘서리’  를 하는 그 아슬
아슬한 맛이나  ‘서리’  하여 온 것을 먹는 맛이라니, 천하에 거기 덮을 재
미는 돈을 주고 사자 하여도 없었다.
 이다지도 재미있는  ‘서리’  하며 그 밖에 동무아이들이 하고 노는 장난이
소년 준호에게는 그러나 모두가 그림 속의 떡과 같은 것이었다. 그런 장난
을 엄히 금하는 단속을 늘 받으면서 만약 범하였다 탄로가 나든지 하면 무
서운 형벌을 당하면서 골샌님 본으로만 치어난 그는 영영 아주 주눅이 들어
가지고 좀처럼 장난판에 낄 생심부터 하지를 못한다. 또 혹시 어찌하다 한
몫 끼더라도 줄창 하여 보지 않는 노릇인데, 일변 겁을 먹기 때문에 손이
잘 맞지 아니하여 매양 숙맥짓이나 하고는 핀잔이나 듣고 하였다. 그것이
금년 봄 장가를 든 뒤로부터는 더우기 그놈 상투가 야속히 남의 눈에 뜨이
는 물건이 되어서 모친이 두렵기 이전에 스스로 상투가 꺼리어 차마 못하는
적이 가뜩이나 많았다. 이께다네 가게의 그 달고 설설 녹는 모찌떡을 한 개
나 사먹자 하여도 머리 딴 도령 적에는 단지
  ‘어머니가 보시지나 아니하시나!’
  ‘누가 보고 가서 어머니께 일러바치지나 아니하나?’
이런 걱정뿐이요 사먹는 그 자리는 비교적 거리낌이 덜하고 하던 것이 장가
를 들어 상투 짜고 갓 쓰고 다니면서부터는 보는 사람마다
  ‘하하, 저 초립동이가 모찌떡 사서 우물우물 먹는 꼴 좀 보아!’
  ‘끌끌 어른허군 알뜰하지! 행길에서 군것질하고 섰고!’
하고 조롱을 하는 것 같아서.
 더구나
  ‘저게 죽은 아무개 자식이지? 온 저 무슨 장난이람? 어린애도 아니요 창
립한 자식이!’
하고 욕하는 아는 사람한테 띄면 어찌하나 하는 저어운 마음이 앞을 서서
사먹고 싶은 생각이 나다가도 곧 움츠러지고 하였다. 그리하여 상투는 결국
박씨부인 대신으로 소년의 머리 위에 올라앉아 그의 일동일정을 감시 제약
하는 눈초리와도 다름이 없었다. 그러노라니 자연 본시부터 그닥 길지 못한
소년의 생활 행동은 반경이 더욱더 졸아들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아침부터 여지껏 준호는 안마루에 가 걸터앉았다. 집 후원으로 들어가 감
나무의 감 열린 것을 세어보다 사랑마당으로 나와 오락가락 거닐다 수없이
이 짓을 되풀이하였다. 하다가 문득 나온 것이 지금 겨우 대문 밖 연자방앗
간이었다. 그도 마침 모친 박씨부인이 나들이를 가고 집에 있지 아니함에서
오는 제풀안심에서였다.
 글방은 그믐까지 파접을 하였으니 물론 말할 것이 없고, 학교도 추석이라
서 보름날부터 오늘까지 사흘 동안 임시로 방학이었다. 준호는 그 사흘을
밤과 낮으로 꼬바기 잘 놀 수가 있었다. 그러나 준호에게는 차라리 그것이
심심한 사흘이었다. 보름날 하루는 성묘를 갔다 오느라고 그럭저럭 넘겼으
니 치지 않는다고 하고. 어제와 오늘은 고스란히 심심하였다. 놀러 갈 곳이
있나, 놀러 갈 수는 있나, 놀러 오는 사람은 있나. 끈 떨어진 말처럼 혼자
비잉빙 집 안팎을 감돌면서 몸이 비비 꼬이도록 지리한 시간을 지웠을 따름
이었다.
 아무리 박씨부인으로도 이 사흘 동안만은 첫새벽 여섯시 땅 치는 소리에
맞추어
  “준호야아!”
하고 불러 일으키거나 글을 외어바치라고는 하지 아니하였다. 덕분에 아침
늦잠을 조금은 잘 수가 있었다. 그 졸려 죽겠으면서 고단하여 쓰러지겠으면
서 억지로 억지로 가던 저녁 글방을 아니 가는 것이며, 또 평소에는 세철
방학때는 물론이요 일요일이나 축제일 같은 학교를 노는 날이면 그 날은 낮
글까지 가서 읽어야 하던 것을 역시 면한 것이며, 생각하면 그만하여도 명
절 보람이 크지 아니한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다만 그뿐이었다. 하고 적극
적으로 나아가 마음대로 놀지를 못하니, 일껏 노는 날이 막상 고통스럴 지
경이었다. 따라서 늘 그
  ‘좀 놀았으면! 하루고 이틀이고 실컷 마음 턱 놓고 놀아보았으면!’
하던 것이 아무 생색이 없었다.
 연자방앗간 기둥을 한팔로 안듯하고 우두커니 지여 서서 먼산바라기에 세
월이 없던 준호는 그러다 얼마만인지 문득 무료히 떨어뜨린 한손이 허리에
찬 빨강 염낭을 만진다. 한푼의 반원(半圓 : 五十錢[오십전])짜리 커다란
은전이 손가락 끝에 만힌다. 미소가 떠오른다. 추석날 아침 새옷 갈아 입을
때 새댁이 가만히 넣어서 채워 준 것이다. 생전 처음 가져보는 큰돈이었다.
무시로 그것을 겉으로 만져도 보고 꺼내서 손에 쥐고 보기도 하고 하면서
만족하여 하는 노리개거리였다. 그 돈 한푼이 염낭 속에 들어있음으로 하여
심심하다가도 얼마나 마음이 무긋한 그 돈 무게처럼 마음 느긋하고 재미가
나는지 모른다.
 떼새가 시꺼멓게 내려앉아 벼를 먹는다. 새막은 죄다 비고 아무 논에서도
새 보는 소리가 없다. 추석은 새들도 명절이다. 쉴새없이 지저귀고 푸덕이
고 하면서 허리띠 풀어논 셈으로 막 먹고 막 노는 판이다. 준호는 새들까지
가 명절이 즐거운 양이 부러웠다.
 읍내로 난 신작로다. 논을 가르고 퍼언히 깨어나가다 산 모롱이로 휘어졌
다. 그 휘어진 모롱이로 좇아 한떼의 사람이 나타난다. 흰옷 입은 어른들과
무색옷 곱게 입은 아이들이다. 읍내로 난장 구경을 갔다 오는 패들이다.
  ‘참! 나도 읍내나 갈걸!’
 준호는 깜박 생각이 나고 반가왔다.
  ‘그래 참!’
 진작 그 생각을 못한 것이 이상하였다. 가도 상관없었다. 어제는 모친이나
집에 있었다지만 오늘은 아까 벌써 이른점심 마치고 나들이를 가고 없는
걸……
 박씨부인은 재작년부터 시작하여 절골 약수터로 추석물을 마시러 다녔다.
삼년 동안 눌러 추석마다 그 물을 먹고 그 물로 아픈 자리를 씻고 하면 체
증도 가슴아피도 냉도 사족 쑤시는 것도 부스럼도 피풍도 그 밖에 온갖 병
이 다 낫는다는 흡사 장거리의 약장수 약 같은 약수였다. 박씨부인은 냉과
피풍이었다.
 그 절골이 마침 친정 사촌 즉 용길네가 사는 동네가 되어서 박씨부인은 계
제가 썩 좋았다. 미리서 낮때쯤 떠나 우선 용길네 집엘 들러 저녁도 먹고
밤을 묵으면서 첫닭 울기를 기다렸다 부리나케 약수터로 달려가는 것이었
다. 되도록 남이 물을 더럽히기 전에 정히 맞아야 효험이 더하다는 진주가
붙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들이를 간 길이라, 오늘로 당일에 모친이 돌아오지 아니할 것은 번
연하였다. 일러야 내일 낮이요 그렇지 않으면 내일도 저물녘에나 돌아올 것
이었다. 그러니 오늘 아직도 많이 남은 해와 그리고 오늘 밤 온밤은 어디
가서 무슨 짓을 하고 놀아도 마냥 걱정 없을 참이었다.
  “부질없이 나가 돌아다니지 말구 집에서 놀아!”
 모친은 떠나려면서 이렇게 단속까지 하였으나 누가 고자질이라도 하여 바
친다면이거니와 달리는 좀처럼 발설이 될 염려가 없었다.
 그러나……
 두루 그만큼 안전하고 그래서 가 놀다가 와도 아무 탈이 없기는 없을 터인
데 웬일인지 처음 그렇게 와락 반갑고 당기던 것이 정작은 선뜻 나설 강단
은 나지를 않고 슬며시 한편으로 뒤가 나기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긴치 못
한 노릇 같았다. 혹시 들려나면…… 하는 사후(事後)의 두려움보다도 우선
먼저 사람 의젓스럽지 못하게 난장판엔 가서 구경을 하고 놀고 다니고 한다
는 사실 그 자체가 스스로 불가하고 위험스럽던 것이었다. 마치 그것은 무
슨 무서운 것을 ─ 화약덩어리나 호랑이꼬리를 만지기처럼 지레 겁이 나서
팔이 내뻗쳐지지를 않고 연방 뒤로 움츠러들기 같은 것이었다.
  ‘어떡할까?’
  ‘가?’
  ‘글쎄……’
  ‘가지 말아?’
  ‘글쎄……’
 무수히 이렇게 망설이면서 넋을 놓고 섰다. 바짝 등뒤에서
  “준호 무어허니?”
하고 갑자기 부르는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윤석이라고 한 반에 다니
는 학교 동무였다. 나이는 준호와 한동갑 열두 살이라도 걸대가 크고 기운
이 부룩송아지 같고 천하 장난괴수요 또래 중에서 왕 노릇을 하는 악동대장
이었다. 사철 동저고리 바람에 다 낡은 사포 하나만 들얹고 못가는 데 없이
싸다니는 놈이 그래도 추석이랍시고 검정물 들인 삼베 두루마기에다 새 미
투리 신고 새 모자까지 떨쳐 썼다.
  “무어 해?”
 재차 그러면서 싱글벙글 일변 풋밤을 꺼내어 이빨로 페페 번데기를 벗겨
뱉으면서 껑충 개울을 뛰어넘어 연자방앗간으로 들어서더니
  “읍내 안 갈늬?”
 정 마음이 내키거나 아쉰 소리를 할 때 외에는 놈이 남의 집 새서방더러
깍듯이 해라한다.
 준호는 간다든 싫다든 대답이 없고 애매한 얼굴이면서 빙긋이 웃을 뿐이
다. 준호는 노상 이 윤석이 부러워 못한다. 그 늠름한 체격이 부럽고 활달
한 기상이 부러웠다. 아이가 퍽도 험히 굴건만 저희 부모는 통히 간섭을 아
니하고 놓아먹여 기를 꺾어주지 않는 것이 부러웠다. 집이 몹시 간구하였
다. 의복은 항상 남루하고 어쩌다 사게 되는 학용품도 여일히 사쓰지 못한
다. 점심을 가지고 오는 날이 별반 드물다. 그렇것만 그런 것이 하나도 흉
이 아니요, 아무한테도 기를 앗기거나 눌려 지내는 법이 없다. 배고픈 줄을
모르고 더럽거나 해어진 옷 입고 다니지 않고, 그러면서도 늘 마음이 편안
할 적이 없이 찌뿌듬하니 걱정스럽고 아무 재미도 즐거움도 없고 한 저보다
도 준호는 누더기를 걸치고 끼니를 굶을망정 활달하고 세상이 거침새가 없
으며 언제나 즐거운 윤석이 영웅이었다. 지금도 그런 흠망의 빛이 가득한
눈으로 곰곰이 윤석을 보아 마지않는다.
 남이 대꾸야 하거나 말거나 윤석은 저 할 소리만 부옇게 떠들어놓는다.
  “너 읍내 구경 참 좋다아! 난장이 터지구 협률사가 들오구, 그리고 초라
니패두 들왔어. 너 협률사 굿 못 봤지 어때? 홍동지 박첨지 허는 초라니패
랑?”
  “………”
  “난 어저끼두 갔다 왔어…… 너 참 나 어저끼 씨름 몇 허리 이긴 줄 알
아?”
  “………”
  “스물세 허리 이겼어. 스물세 허리! …… 스물세 허린깐 상이 모두 넷이
냐? 이 대님이랑 그리구 이 염낭이랑 또 그리구 울어머니 드린 왜포 수건이
랑 모두 어저끼 탄 거야.”
  “………”
  “너 그리구 참 오늘이 마지막이다! 난장두 마지막이구 협률사랑 초라니패
랑 오늘꺼정만 놀구 나간대. 난장은 그리구 오늘이 소씨름야 소씨름……
하, 소씨름 참 무섭구 재밌다아. 소 따가는 소씨름……”
  “………”
  “느머니가 못가게 허니?”
  “………”
 준호는 고개만 잘래잘래 젓고 윤석이 고쳐
  “그럼?”
  “………”
  “그럼 초립동이 싸개 맞을까바서?”
  “………”
  “나허구 가믄 일없어. 깐놈들 내가 다아 혼내줘.”
  “갔다 언제 오구?”
 비로소 준호가 한마디 묻는다.
  “밤에 오지 머. 소 나가는 소씨름 구경허구 와예지 아니해? 그리구 협률
사 굿이랑 초라니패 굿이랑 낮엔 놀지 않아요 밤에 놀지……”
  “………”
  “일없어. 나허구 오믄 무섭지 않아. 그리구 우리 동네서 간 사람들허구랑
함께 오구 헐 텐깐……”
  “그리음……”.
 준호는 깜작깜작 생각하다가
  “나 옷 입구 나오께?”
하고 돌아선다.
  “응. 얼른 입구 나와예지 헌다?”
  “응!”
  “그리구우 준호야?”
  “응?”
  “돈 가지구 가예지 헌다?”
  “돈?”
 그러면서 준호는 도로 돌아선다.
  “그래. 돈 있어예지 협률사랑 초라니패랑 구경 헐 끼 아냐?”
  “을마나?”
  “협률산 아이들은 십 전야. 초라니팬 오 전이구…… 넌 그렇지만 초립동
이깐 으런표 사라구 헐 끼다? 으런푠 아이들 곱장이 내예지 해!”
  “………”
  “그리구 또 배고플 텐깐 무어 사먹어예지 헐 거 아냐?”
  “………”
 준호는 그런 것도 걱정이었다. 염낭 속에 그 돈 오십전짜리 한푼이 있으니
돈이 없는 바는 아니었다. 물론 돈이라기보다도 보배스런 노리갯감인 걸 써
버리기가 아깝기야 할 터이지만 반드시 써야 할 경우라면 못 쓸 것도 또한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여사당패(협률사) 구경을 하고 장거리의 주막집에
들어 음식을 사먹고 하는 것이라면 졸연한 일이 아니었다. 일찌기 해본 적
이 없는 짓이었었다.
 윤석으로 인하여 처음엔 갈 편으로 마음이 기울었던 것이 뒤미처 돈이니
협률사 구경이니 음식 사먹기니 하는 소리가 나는 바람에 그만 꺼리는 생각
도 더럭 더하여 결국은 피장파장이 된 셈이었다. 그리하여 또다시 그
  ‘어떡할꼬?’
  ‘가?’
  ‘가지 말아?’
하고 망설이기를 되풀이하고 섰는데, 그런 속도 모르고 악동은 제딴엔 한참
돈 나올 구멍을 훈수한다는 수작이
  “너 돈 가진 거 없건 느이 각시더러 달래. 새각신 시집오믄서 으례껀 함
에다 좀씩 돈 넣어가지구 오는 거래. 어여 가 달래!”
 준호는 부끄럼을 타 얼굴이 빨개진다. 그러나 그 얼굴은 빛났다.
  ‘새댁! 옳아 참! ……’
 새댁이 있다는 것을 그는 윤석의 그 말에서 깜박 깨우쳤던 것이다.
 새댁더러 물으면 될 것이었다. 새댁은 이 답답한 산술을 속 후련하게 풀어
줄 것이었다. 보나마나 선뜻 가라고 할 것이었다. 새댁이 가라고만 하는 날
이면 거뜬한 마음으로 갈 수가 있는 것이었다. 혹시 가지 말라고 하여도 하
릴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어떻게든 가도록 하여 주었지 가지 말라고는 아니
할 것이었다.
  “댕겨 나오께? 기댈려? 응?”
 그러고는 총총히 대문 안으로 들어간다.
 새댁은 마악 건넌방에서 마루로 나오고 있었다. 새각시요 추석이라 곱게곱
게 호사를 하였다. 금자박이 자주호장 낀 노랑 저고리에 연분홍 치마를 받
쳐 입고 치마끈에단 한 묶음의 은패물을 찼다. 세면하고 분바르고 윤나는
머리쪽에는 크고 작은 은비녀가 골고루 꽂혔다. 준호는 새댁이 이렇게 노랑
저고리에 연분홍 치마로 차렸을 때가 그중에도 제일 이쁘고 더 좋았다.
준호는 싱그레 웃으면서 연방 새댁을 위아래로 씻어보면서 꽃당혜를 신고
있는 옆으로 다가선다. 우선 쥔마나님이 나들이를 가고 없는 바람에 실컷
동네집으로 마을을 싸다니는지, 삼월이년도 보이지 않고 하여 둘이는 마음
놓고 이야기를 할 수가 있었다.
  “밤엿 좀 꺼내다 드리우?”
 새댁이 그러는 것을 준호는 고개를 젓고 나서
  “저어 나아……”
하고 더듬다가
  “읍내 죄끔만 가 놀다 오우?”
  “읍낼요?”
 되묻는 진주의 음성은 무심결에 황급하였다.
 준호는 가만히
  “응! 죄끔만……”
  “글쎄에……”
 진주는 난처하였다. 나들이를 가고 안 계시는 시어머니를 대신하여 새서방
의 어른 노릇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감독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이었다.
 변덕이 잦은 시어머니였다. 물맞이를 가시다 말고 별안간 중로에서 돌아오
지 않으신다고는 누가 장담을 하며, 또 이 다음이라도 누설이 되지 말란 법
도 없는 것이었다. 일이 만약 뒤집혀지는 마당이면 어른 노릇 ── 감독 잘
못한 죄로 중한 책을 당하는 판이었다. 무서운 벼락불이 떨어지고라야 말
것이었다. 요 전번의 풍파보다 더하면 더하지 결코 못하지는 아니할 터이었
다. 써 부질없이 일을 저질르려 드느니 짐짓 보내지 마는 편이 매양 옳았
다.
 뒷일이 그와 같이 염려스럽기도 하려니와 난장이란 온갖 잡인이며 불량한
모산지배와 더불어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함부로 노는 곳이라고 들었다. 오
죽해 난장이리. 그런 잡스럽고 험한 곳엘 이 방안길림의 파겁 못한 애기로
하여금 지망지망히 놀러가게 한다는 것은 자못 조심스럽지 못한 처사가 아
닐 수 없었다. 거듭 보내지 마는 편이 옳았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차마
  ‘못 가오!’
란 말은 입이 떨어지지 아니하는 사정이니 딱하였다.
 일 년에 한두 번밖에 없는 명절이었다. 모처럼 모처럼 노는 때를 당하였으
면서도 남처럼 기를 펴고 나가 돌아다니면서 마음대로 놀기를 하나…… 진
종일 집안에 들갇혀 예가 섰다 제가 앉았다…… 조옴 갑갑은 하며 심심할
리가 없는 것이었다. 말리는 어른이 마침 안 계시고 하니 웬만하면 선뜻 그
대로 가기라도 벌써 하였을 것이지만, 그래도 생심을 못해 마음을 놓지 못
해 와서 묻는 것이 아닌가. 미덥고 임의로운 마음에 반가운 대답을 바라고
서 말이었다. 한 것을 일껏
 ‘못 가오!’
하여버린다면 오죽이나 낙담실망을 할 것인고.
  “가믄 못쓰우?”
 오래도록 새댁이 침음을 하면서 대답이 없는 것을 말긋말긋 눈치만 보다
어렵사리 그렇게 묻는다. 어깨를 처뜨리고 풀기 하나도 없이…… 그러는 양
이 어떻게나 애처로운지 진주는 곧 눈물이 나려고 하였다. 무엄한 비유로
데리고 온 자식 같았다. 더 주저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이따가 죽을망정이라도! ……’
 비장하게 마음을 도사려 먹었다. 그것이 입술이 보살로, 그러나 얼토당토
않게 불측스런 액을 또 한톨 씨앗 뿌림이었을 줄이야 인간 된 지혜로는 감
히 꿈엔들 짐작이나 하였을 바 없는 것이었었다.
  “그렇지만…… 혼자 어떻게? …… 길은 늘 댕기는 길이지만서두……”
  “윤석이하구 겉이 가. 지금 밖에서 기댈려!”
  “윤석이? 아따 저 쌈 잘허구 헌다는 도령? ……”
 동무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또 어떻고 하단 이야기를 노상 듣기 때문에 아
무개 하면 어떤 누구라는 것을 대강 알아듣는다.
  “그런 사난 도령허구 같이 갔다 괜히……”
  “아냐 나헌텐 잘 그리지 않아. 난 역성해주구 그래!”
  “그렇다면 몰라두……”
 마음 같아서는 나가서 부디 잘 좀 데리고 갔다 오라고 부탁이라도 하고 싶
었다.
  “저물기 전에 인해 와예지 해요오 응?”
  “밤이 구경이 더 좋대는걸?”
  “저녁은 어떡허구요? …… 그리구 저……”
  “안 먹어두 배 안 고파!”
  “에구 참! …… 그리구 혹시 동무나 잃어버리든지 허믄 밤중에 혼자 무서
어떻게 나와요?”
  “우리 동네 사람 따란 못 나오나 머! …… 혼잔 또 못 나오나 머!”
  “그래두우! ……”
  “그럼 용길이형허구 겉이 갈까? 두레 노는 데 간다구 갔은깐 삼월이 보내
데려올까?”
  “글쎄에……”
 용길이는 아까 점심나절에 박씨부인과 엇갈리어 당도하였다. 일가는 일가
라도 머슴은 머슴인데 추석을 쇠로 간 머슴이 겨우 사흘 만에 도로 올 이치
는 없고 아마 동무 찾아 놀기도 할 겸 잘 차린 명절 음식도 먹을 겸 잠깐
하루 다니러 온 길이거니 하고 진주는 심상히 여겼었다. 그야 하옇든 이왕
온 길이니 심부름삼아 놀기삼아 같이 갔다 같이 나오도록 안동해 보낸다면
한결 마음이 놓이고 그런 십상일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만일 그랬다 말이
그 입에서 혹시 시어머니의 귀로 들어가든지 하게 된다면 사서 후환을 장만
하기요, 차라리 혼자 보냈더니만 못한 노릇이었다.
 진주는 준호를 여름살이 고의적삼을 다듬이한 모시 겹것으로 갈아 입혀 주
었다. 요새 날씨가 낮에는 더워도 해만 지고 나면 제법 산산하기 때문에 행
여 밤에 추워할세라 그런 것이요 살뜰한 정성이었다. 한 것인데 이것 역시
불측스런 액을 거듭 씨앗 뿌린 바 되었으니 한갓 기구하다 이를밖에 없었
다.
 준호는 다듬이 윤이 치르르 흐르는 모시 겹것 위에다 진분홍 두루마기에
남갑사 쾌자 받쳐 입고 술띠를 띠고 초립 쓰고 깜장 가죽신 신고 이렇게 이
쁘장스런 초립동이로 차리고는 입이 연방 벙긋벙긋 벌어지면서 마침내 마당
으로 내려선다. 조끼 호주머니에는 한편치엔 십전박이 은전이 다섯 닢, 한
편치엔 동전 엽전 섞어 얼마의 잔돈이 각각 들어 있었다. 새댁이 갈아 입을
옷과 함께 짜장 시집 올 때 가지고 온 것인 듯함은 아니라도 농 속의 귀주
머니에서 꺼내서 넣어준 것이다. 말도 아니하였건만 어쩌면 그렇게 ─ 비단
돈뿐이 아니라 무어든지 죄다 ─ 알아채고서 입 안의 혀처럼 손 안 닿는 데
긁어주듯 알뜰히 뜻을 맞추어 추는지를 몰랐다. 소년은 오늘의 이 시간처럼
행복되어 본 적이 일찌기 없었다. 지나간 기억은 너댓살 그 무렵부터 시작
이 되나 기억이 미치는껏 한번도 이렇게 흠씬 즐거웠던 일이라곤 없었다.
 대문 밖에서는  ‘학도야 학도야’  를 창가 부르는 휘파람 소리가 들려온다.
  “자 이거 가지구 가시다……”
 진주가 그러면서 조그맣게 준호의 책보로 싼 것을 들고 대청마루로부터 뒤
따라 내려온다. 준호가 학교 점심 싸가지고 다니는 싸리삽짝에다 송편이니
강정이니 다식이니 약과니 등속을 골고루 담아서 꾸린 것이었다.
 준호는 내켜하지 않는 얼굴로
  “밥 아니우? 오곡밥……”
  “아뇨!”
  “그럼?”
  “송편이랑……”
  “나 안 가지구 갈래 아무것두……”
  “왜애?”
  “안 먹어두 갠찮아!”
  “괜히! …… 이따가 시장해 어떡허실 양으루?”
  “사람들 많은데 어떻게 먹우?”
  “학교나 그런 사람 없는 데루 가 잡숫지? 겉이 가는 그 도령허구 함
끼…… 그 요량허구 나우 담구 했은깐……”
  “그래두우!”
  “그래두 가지구 가세예지 해요! 학교 우물 있죠오?”
  “저어 그럼 내……”
 그러고는 휭하게 달려나갔다 이내 도로 들어오더니 두말 않고 받아든다.
윤석더러야 그야말로 귀신 듣는 데 떡 이야기하기지 반대할 리 만무하였던
것이다.
 제 솜씨로 아무렇게나 맨 쾌자띠를 진주는 고쳐 잘 매어주면서 신신당부를
한다.
  “부디 밤 너무 늦잖어서 나오시구요 네?”
  “응!”
  “남허구 시비허지 말구요. 남이 좀 언짢은 말을 해두 거저 못 들은 체 허
문 그만일 거 아녜요?”
  “응!”
  “애야, 끌어낸다구 씨름허지 말구요…… 모양두 숭업구 그러다 어딜 다치
기나 하면 큰일 아녜요?”
  “난 씨름헐 줄 몰라!”
  “그런깐 더구나 말이죠…… 그리구 이거 부디 우물 있는 데루 가서 목 메
지 않게 물 마시믄서 잡숫구.”
  “응!”
  “그리구, 참 저어 어머님이 혹시 아시드래두 네?”
  “………”
  “나헌테 다아 밀어요 네? …… 제 가속이 가라구 해 갔읍니다구 네?”
  “………”
 준호는 시무룩하고 고개만 젓다가 한참 후에야
  “난 머 아무두 몰래 갔다구 헐걸 머!”
  “에구우! 그럼 매 더 맞잖아요?”
  “아냐 머! …… 나 맞아두 좋아!”
  “에구 참! 매맞으믄 아프지 무어가 좋우?”
  “일없어!”
  “아, 나헌테 밀문 매 죄금만 맞을 텐깐 그거가 좋지 매 많이 맞는 거가
좋아요?”
  “매만 죄끔 맞으면 고만인가 머!”
  “그럼요!”
  “………”
  “나 꾸지람 들을까바?”
  “………”
  “난 꾸지람은 암만 들어두 맨 안 맞은깐, 내가 꾸지람 많이 듣구 그대신
매 덜 맞으시믄 좋잖아요?”
  “난 맨 암만 맞어두 쫓견 안 가니깐 말이지 머!”
  “오오! ……”
 비로소 그런 깊은 속이 있어 하는 말인 것을 알아들었다. 순간 진주는 기
쁨인지 슬픔인지 모를 것이 가슴 뿌듯이 차올랐다.
 요 전번의 풍파는 진주가 이튿날 하루를 두고 아침에 가서 빌어 낮에 가서
빌어 그러다 세번째 석양에 가서 빌어서야 겨우 용서가 내려 시늉이나마 수
습이 되었었다. 그 석양에 빌러 가면서는 쓰개치마를 쓰고 마악 대문간으로
나서다 마침 학교로부터 돌아오는 준호와 딱 마주쳐 할 수 없이 전후 곡절
을 토파하였고, 해서 준호도 비로소 사연을 다 알았으며 저도 가겠노라고
하여 같이 가기까지 하였었다. 그때 박씨부인은 아들과 나란히 앉혀놓고 며
느리더러 다지기를
  “오냐. 너의 외숙네 내외분이서 굳이 말리는 낯을 보아 이번 한번 참는다
마는 이 다음 다시 무슨 일이 있는 날이면 하늘이 두 조각에 나드래두 나는
네 꼴 아니 볼 테니 그리 알렷다? 그 당장에 친가로 쫓겨가구라야 말 줄 알
렷다?”
라고 크게 부릅뜬 눈과 큰 호통소리로써 하였었다. 준호에게는 그것이 비수
를 겨누기같이 가슴 서늘한 위협이었다.
  ‘음식 싫은 건 개나 주지! 사람 보기 싫은 것 억지로 보다 생병 나라
구?’
 입버릇처럼 늘 그러면서 눈에 벗거나 보기 싫은 사람이 있으면 잠시 한 때
도 꼴을 못 보아하는 모친이었다. 하인이고 종년이고 머슴이고 하다못해 잠
깐잠깐 며칠씩 사 부리는 놉(日傭勞動者[일용노동자])까지도 한번 보기 싫
은 날이면 기어이 쫓아내고 마는 성미였다. 작인(小作人[소작인])이면 논을
떼어버린다. 허드렛일을 다니며 해주는 동네 여편네 누가 한번만 눈에 벗
어? 발걸음도 다시는 붙여주지 아니한다. 그러느라니 하인이며 머슴이며 그
밖에 드나드는 사람의 갈림이 남달리 잦다. 이러는 그 모친의 솔성과 처사
를 항상 보고 잘 아는 소년은, 그러므로 그것이 단순한 엄포나 한때의 지날
말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머슴이, 하인이 꼼짝 못하고 쫓겨나고 쫓
겨나고 하듯이 새댁도 아차 그  ‘무슨 일……’ 이 즉 쫓겨날 일이 있는 마
당이면 결단코 친정집으로 쫓겨가지 않게 될 이치가 없으며, 쫓겨 보내지
아니하고 말 까닭이 없는 모친이었다. 그날에 당신이 집을 나갈 지경이었으
면서 길래 쫓아보내지를 아니하고 용서한 것이 차라리 뜻밖일 지경이었었
다.
  ‘……하늘이 두 조각에 나드래두……’
 무어 영락없을 판이었다. 영락없이 이번은 쫓겨가게 될 것이었다. 옴낫달
싹 못하고 쫓겨가고 말 것이었다.
 새댁이 쫓겨가다니, 소년은 생각만 하여도 앞이 캄캄하였다. 이 상냥하고
알뜰스런 새댁이, 그리고 이 이뿐 새댁이, 그래서 세상에 어떤 무엇과도 바
꿀 수 없이 좋은 이 새댁이 만약 쫓겨가고 없는다면 그날로 곧 죽었지 단
한시를 살 것 같지가 않았다. 한 것을 어떡하자고 새댁한테다 죄다 밀어?
번연히 쫓겨가게 해? 참 큰일날 소리였다. 탄로가 나거들랑 그저 아무도 몰
래 갔던 줄로 죽여라고 내뻗는 것이었다. 매 같은 것이야 암만 맞아도 좋았
다. 새댁을 쫓겨보내지 말아야 하였다. 새댁을 쫓겨보내지 마는 노릇이라면
매는 암만 맞아도 달지 아프지 아니한 것이었다.
 진주는 일껏 좋아하면서 가는 것을 부질없이 그런 말을 하여 가 안심하고
놀지 못하게 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차면 앞까지 따라나가면서 아니라
고…… 막상 몰라 그런 것이지 어머님이 실상 아시기는 어떻게 아실까 보냐
고…… 혹시 참 아시고서 네 집으로 가라고 꾸지람을 하신다더라도 꾸지람
으로 그러시는 것이지 정말 어디 쫓아보내자고야 그러시느냐고…… 나한테
도 꼭같은 어머님이신데, 부모가 자식을 어떻게 쫓아내시겠느냐고…… 그러
니 하옇든 뒷일 걱정일랑 할라 말고서 마음 턱 놓고 실컷 놀다나 오라
고…… 이렇게 여러 말로 흔연히 타일러쌓기를 마지않는다.

4. 風物誌[풍물지]

 협률사패가 광고돌이를 하면서 웃장거리로 올라오고 있다.
 패의 목애비(頭目[두목])리라. 키 후렷하니 허리는 구부정 썩 건드러지게
생긴 젊은 하나가 끈 단 호각끈을 손가락에 걸고 대롱대롱 흔들면서 맨 앞
을 섰다. 인모 망건에 쥐꼬리 당줄에 대모 풍잠에 음양립에 하는 붙은 말
그대로의 늘어진 호사다. 그러나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신수를 가리기 어
려워 다듬은 한산세모시 두루마기는 고운때가 묻고 구김살이 갔다. 운두 얕
은 흑닥개(감장 가죽신) 위로 비어진 옥양목 버선등도 봉놋방 때가 묻었다.
이 옷이 벗을 때가 약간 지난 것과 그보다도 그 갓을 너무 과히 왼편으로
빼딱하게 쓴 것만 아니라면 어따 내놓아도 한다한 활량이요 멋장이 서방님
이다.
일반으로 재인(才人)들은 호사라는 것이 스스로의 취미요 도락이기도 하지
만, 겸하여 호사 곧 생활이기도 한 것이다. 도한(屠漢)은 부모상을 당하면
삼 년 동안 도끼자루를 놓아도 재인은 피리며 징·장고 채를 놓지 않는대서
계급상 도한보다 아래에 위하나 재인은 활량과 서방님네의 노리개이기 때문
에 활량과 서방님네가 화려히 차리고 노는 자리에 나아가자 하니 같이 화려
히 차리지 아니치 못하는 것이었다.
(作者註[작자주] : 재인은 노래랄지 그 밖에 다른 음악에 능하거나 혹은
줄타기, 땅재주넘기 따위의 독특한 재능을 지녀 그것으로써 생업을 삼으며,
안해는 무당이요 한 특수 계급을 통틀어 이름이다. 경인(京人)들은 흔히 재
인이면 바로 광대거니 여겨 재인과 광대를 혼동하나 사실은 광대는 재인 가
운데 따로이 노래가 명창에 이른 사람만을 가리켜 하는 말이요, 재인이라서
저마다 다 광대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노래가 명창이요 광대 행세를 한다
고 하여 반드시 재인 출신인 법은 아니다. 가령 ×××(×××) 같은 사람
도 재인 출신 아닌 명창의 한 사람인 것처럼.)
목애비 뒤에는 기생이 꽹과리를 치면서 따랐다. 노랑 구슬에 홍끈 꿴 흑전
립 쓰고 연분홍 치마에 남쾌자 받쳐 입고 한 스물두엇이나 되었을까 이쁘장
스런 기집이다. 유독 하나를 광고돌이에까지 내세운 것을 보면 인물이 ―
가무는 아직 어떤지 모르되 우선 인물이 ― 일행 중 으뜸가는 기생이던 모
양이다.
징잡이, 장고잡이, 북잡이 세 명의 소고잡이들은 다듬두루마기 대신 대림
두루마기나 항라두루마기를 입기도 하고, 혹은 흑닥개 대신 백닥개나 미투
리를 신기도 하고 하였으나, 대체로 목애비와 차림새나 주제가 어슷비슷하
다.
이 고을 출신의 재인 유동이는 호적을 불었다. 그 유동이가 그런데 한바탕
인목을 크게 끌었다. 하되 그것은 이 고을 출신의 재인이 협률사에 끼여가
지고 본고을에 들어왔다는 것도 아니요, 또는 호적을 불 줄 아는 외엔 장단
한가락 변변히 치지 못하는 천하의 무재인(無才人) 유동이도 저렇듯 씌어먹
는 날이 있던가보다 하는 것도 아니요, 실로 그의 목에 두른 한 장의 칼라
때문이었다. 상투 짜고 망건에 갓 쓰고 주항라 두루마기로 빼떼린 그의 목
에다 양복깃에 대는 칼라를 둘렸던 것이다.
하이칼라 머리로 머리를 깎고 활량삿갓 들고 고의적삼 바람에 풀대님한 서
방님 건달 하나가 난장판에서 투전이라도 뽑다 오는 길인지 광고돌이 행렬
과 엇갈리어 내려가고 있다. 유동이와 바투서 눈이 서로 맞았다.
유동이는 호적 불던 것을 내리고 얼른 행렬로부터 한 걸음 비어져 나오면
서 왼손이 뒤통수를 만짐과 동시에 허리를 너풋
“서방님 유동이올습니다……”
그리고는 허리를 펴면서 다시
“소일삼아 따라다닙니다, 헤!”
“선성은 들었다!”
삿갓활량은 별양 멈추어 서려고도 않고 빙긋 웃으면서 그대로 지나친다.
지나치면서 주고받는 수작이다.
“그 동동이(투전)두 좋으시지만 굿두 좀 보시러 옵사요.”
“네 꼴 보기 싫여 안 간단다!”
“제 꼴이 어때서요?”
“네 그 모가지다 두른 것 말이다!”
“히히!”
“그런 걸 무슨 멋이라구 허는 줄이나 아느냐?”
“개멋인가요?”
“알긴 아는구나?”
이 삿갓활량과 한가지로 유동이가 목에다 양복칼라를 두른 것을 개멋이라
고 웃는 사람도 더러 없는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호
기심과 경이의 눈으로 볼지언정 결코 개멋이라고 코웃음할 줄은 몰랐다.
숱한 아이들 떼를 웅기중기 좌우와 꼬리 달아가지고 광고돌이 행렬은 웃장
거리의 쇠전머리까지 일렀다. 쇠전마당은 씨름과 노름판이 벌어진 난장이었
다. 난장으로부터 사람이 와 행렬로 쏠려온다.
목애비가 먼저 멈추어서면서 호르륵 호각을 분다. 행렬은 즉시 치기를 그
치고 그 자리에 가 멈추어선다. 구경꾼들이 삽시간에 행렬을 빙 둘러 에운
다.
엔간히 군중이 둘러서기를 기다려 천천히 목애비는 공수잡이하고 한번 허
리를 굽혔다 펴더니 잔뜩 코먹은 소리로 외우듯
“당상 당하 여러 어른네께 광고말쌈 한 말쌈 이쭈어 올립니다……”
하고는 밭은 기침을 험험 목을 가다듬어 가지고 다시
“광고말쌈은 다른 말쌈이 아니오라, 본 남원협률회사로 말쌈을 하오면 만
고 열녀에 천하 절색 춘향의 고장 남원읍에서 맨 처음으로 꾸민 협률회사요
팔도 협률회사의 조종 되는 협률회사온바……”
하면서 잇대어 주욱 내리 꿰는 것이었다. 가로되, 패장(座長) ×××은 천
하가 다 아는 명창이요, 여광대 아무개를 비롯하여 꽃 같은 기생이 십여 명
이요, 재인 광대는 이십여 명이요 해서 하고많은 협률사 중에도 가장 보암
즉한 협률사며, 그리고 오늘 밤은 어사 이도령이 중로에서 방자 장쇠를 만
나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남원부사 생일잔치 자리에다 암행어사 출도를 붙이
는 대목으로 더욱 재미가 진진할 터이요, 그 밖에 선소리(立唱[입창]), 앉
은소리(坐唱[좌창]), 줄타기, 땅재주 등을 가지고
“여러 으른네를 뫼시어 하룻밤 위로를 드리고자 하오니, 본 남원협률사를
애호하시는 마음으로 부디 다수 왕림하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하고 말을 맺는다.
준호는 윤석을 따라 섰느라고 선 것이 꽹과리잡이의 기생 옆에 가 섰었다.
서서는 목애비의 ‘광고말쌈’보다도 차림새와 생김새가 한가지로 묘한 그
기생을 무심코 말긋이 바라다보고 있었다.
협률사패의 광고돌이를 줄레줄레 따라다니고 행렬과 함께 멈추어서서는 구
경이나 하고 하잘 숫기가 있는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윤석과 동행이 된 이
상 절에 간 색시요, 거동에 망아지 노릇이었다. 모든 것을 윤석이 하는 대
로 하라는 대로 할 따름이었다. 지금도 마악 읍내에 당도하여 아랫장거리에
이르르자, 마침 협률사패가 광고돌이를 하고 있었고, 윤석은 준호의 의사를
물을 여부도 없이 어서 오라고 재촉까지 하여가며 같이 행렬을 따라 웃장거
리로 올라왔던 것이다.
저에게로 오는 눈이 비단 하나나 둘일까마는 기집은 바투 옆에서 하도 말
끔히 저를 바라다만 보고 섰는 한 앙징스런 초립동이가 귀엽기도 하고 좀
장난하고 싶은 생각도 났던 모양 발씸발씸 보조개 있는 볼대기로 연방 웃으
면서 ― 그 하얀 이 속에서는 노오란 금니가 반짝거렸다.― 그러면서 앞으
로 가까이 다가 나오더니
“초립동이, 내가 그렇게 이뿌?”
하고 갸웃 얼굴을 들여다본다.
준호는 그만 무렴하여 어쩔 줄을 몰라하면서 귀밑이 빨개진다.
그것이 더 재미가 있어라고 계집은 까르르 자지러져 웃는다. 그러고는
“몇살이우?”
“………”
“한 열 살? 열한 살? …… 우리 아들 냈으면 꼬옥 좋겠다.”
혼잣말로 그러면서 꽹과리채 쥔 손길을 뻗혀 다독다독 등을 두드린다. 준
호는 부끄럼에 겸하여 모욕을 느끼고 얼굴이 온통 홍당무가 되어 고개를 들
지 못하고……
눈살이 팽팽하여 가지고 있던 윤석이 한 걸음 썩 나서면서 제법 우락부락

“왜 이래? 건방지게.”
하고 계집의 어깨를 떠다밀친다.
계집은 그 당돌함과 거세임에 문득 기색이 당황하였으나 곧 눙쳐 깔깔거리
고 또 웃으면서
“역성이 대단하시구랴?”
“그럼?”
“아마 학도(學徒) 동생인감?”
“그래서?”
“얼굴 생김새가 아우 형젠 아닌가 본데 그래?”
“어따 대구 반말야?”
“하하하! 나두 이래뵈두 우리 할아버진 진살 다 허섰다우!”
“진사 손녀딸이 요 모양야?”
“그리게 말이죠! 하하하!”
어느 겨를에 사람이 꽤 여럿이 모여 에움 가운데 적은 에움을 이루고 소년
과 계집의 상지하는 양을 미소러이 구경하고 있었다.
계집의 마지막 웃음소리와 동시에 목애비의 호각이 울었다.
“이따가 구경 와요오 응? 새서방님이랑 학도 양반이랑. 놀려먹었다구 노
여 말구 응? …… 와서 매화라구 찾아요오 내 공짜루 들여 주께 응?”
계집은 행렬로 물러가면서 일변 해끗해끗 돌려다보면서 장난인지 진정인지
아뭏든 당부가 신신하다. 장난인 체 진정인지도 모른다.
광고돌이 행렬은 다시 불고 치고 하면서 더 많은 아이들과 구경꾼을 달아
가지고 홍예문(紅霓門)으로 좇아 성안동네로 향하고 있다. 난장마당에서 일
시 쏠려나왔던 군중은 대부분이 도로 난장마당으로 흩어져 들어간다. 준호
와 윤석도 그 뒤를 따랐다.
준호는 어깨가 힘없이 처지고 걸음도 떴다. 그는 마음이 슬펐다. 들어 단
짝 그런 봉변을 당한 것이 슬펐다. 저의 사람 다부지지 못한 것도 슬펐다.
차라리 이것이 가장 슬펐다.
“대리 아프냐?”
부지런히 혼자 앞을 가던 윤석이 돌려다보면서 묻는다.
준호는 고개만 젓는다.
“그럼?”
“………”
“배고프냐?”
“아니!”
“………”
윤석은 서서 이윽고 보다가 도로 오더니 상냥히 팔을 잡아 끈다.
“괜찮아. 내가 그년 욕해 줬은깐 일없어!”
“………”
준호는 세상 심술망나니요 우악한 윤석이 이렇게 다정하고 알심 있기도 한
줄은 몰랐다. 슬플 때 막막할 때 받는 남의 친절은 한결 마음에 울리는
것…… 곧 울음이 터지려고 하는 것을 겨우 참는다. 다문 입술이 구지에 실
룩거린다.
철그럭지그럭 환도 소리와 구두 소리가 함께 등 뒤로부터 들리어 두 소년
은 얼른 돌아섰다. 금테 두른 모자와 양복에 금마구리한 환도 차고 그 긴
다리로 겅중거리면서 원선생이 학교가 있는 성안동네로부터 내려오고 있었
다. 원선생은 준호들의 반인 삼년급의 담임선생이었다.
준호와 윤석은 기착자세로 경례를 한다. 원선생은 올려간 손끝에다 모자챙
을 깝신 숙여대면서 웃는 얼굴과 그의 느리고 바라진 물건너(錦江對岸[금강
대안] : 忠南[충남]) 사투리로
“오오 준호! 윤석이! …… 구경 오났구마안?”
“내애!”
윤석이 방글거리면서 대답한다.
원선생은 반의 여러 아이들 가운데 준호와 윤석을 유난히 사랑하였다. 성
격과 행동이 정반대인 두 소년이건만 이상히 그는 그 둘을 꼭같이 사랑하였
다. 두 소년도 자연 그를 잘 따랐다. 윤석은 아이가 워낙이 그런 아이라 노
상 버르장머리없이 굴기를 좋아하고 이른 말도 안 듣고 하기는 하지만……
원선생은 발걸음을 멈추고 서면서 짐짓 눈을 홉뜨고
“협률사 구경?”
“아뇨!”
윤석은 천연덕스럽게 그러면서 준호와 어깨가 맞닿은 손가락으로 볼기짝을
꾹 찌른다.
준호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선생은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덱끄덱
“아암! …… 학생은 협률사나 그런 건 구경허믄 안돼애 응?”
“내애!”
“준호두…… 알았지이?”
“내애!”
준호는 얼굴이 화끈하면서도 윤석이 한 대로 대답치 아니치 못한다. 둘이
는 읍내로 들어오면서 벌써 예정이 아주 세워졌었다. 가서 우선 씨름 구경
을 하고 밤에는 협률사 구경을 하고 협률사가 파하거든 다시 씨름판으로 와
서 소씨름을 구경하고 하기로…… 물론 윤석의 계획과 주장이요 준호는 그
런 대로 동의를 하고 하였을 따름이었다.
“선생님, 씨름은 구경해두 일없죠?”
윤석이 번연히 그렇게 묻는다.
선생은 고개를 꾸벅
“응! 씨름은……”
“나가서 씨름두 허구요?”
“아암! …… 윤석이 참 씨름 잘 허겠다아? 몇 허리나 이겼니?”
“오늘은 안직 안 했어요! 어저낀 스물세 허리 이겼어요.”
“에꾸 스물세 허리나…… 그리구 준호 너는?”
“………”
“이앤 오늘 첨예요! …… 이앤 그리구 씨름헐 줄 몰라요.”
“준호는 참 언제나 좀 자라니이? 으응? …… 아마 저 상투에 눌려갖구 못
자라지 않니이?”
준호는 오나가나 말썽이 상투였다.
선생이 멀찍이 가기를 기다려 윤석은 그 등 뒤에다 대고 한손으로 두루마
기 자락을 무릎 위까지 치켜올려 잡고 또 한손으로는 볼때기를 쓱쓱 문대면

“애, 애, 이 사람은 애, 원중남이라구 허는 사람인대 애, 충청도서 오났
는대 애, 애, 아무것두 모르는 사람인대……”
하다가 제야 깔깔 웃는다. 묵은 원선생의 흉내를 내던 것이다. 준호도 빙긋
이 웃지 않지 못한다.
원선생은 일찌기 지금의 이곳 보통학교가 아직 영명의숙(永明義塾)이라는
사립학교로 있을 때 온 이를테면 대용 교원이었었다. 그때 그가 처음 부임
을 하여 전교 생도(팔십여 명) 앞에서 부임인사를 하던 모양이 시방 윤석이
흉내내던 이와 같았었다. 스물한 살이라는 나이보다 훨씬 겉늙었고 키는 멀
쑥하게 긴데 누르스름한 모직 두루마기는 가까스로 무르팍을 덮었을 뿐이었
었다. 이 돔방두루마기는 이럭저럭 십 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겨울과 봄가
을로 평복을 할 때면 심심하면 한번씩 떨쳐 입고 나다니는 수가 있어 ‘원
선생 두루마기’라는 붙은문자까지 생기도록 유명한 것이었었다.
큰 키에다 두루마기가 가량없이 짧아놔서 첫눈에 벌서 사람이 근천스러 보
였다. 그런데다 잔뜩 오갈이 들어가지고 손바닥으로 볼을 만져싸면서 그
“애, 애, 이 사람은……”
하고 부임인사 겸한 자기 소개를 하고 있는 거동은 맨 뒷줄에서 한 대가리
굵은 생도놈이 커다란 소리로 두런거려
“허, 망지불사 선생이로곤!”
한 바와 같이 선생이기엔 너무 데데하고 한심스러웠다. 써 첫선에 생도들한
테 달칵 얕보이고 말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인데…… 한 말은 겸사였지만 일변 사실이기도 하였
다. 삼년제의 사립(초등)학교와 이년제의 간이농업학교를 마쳤을 따름이었
으니 가히 짐작할 학력이었다. 그런 중에도 산술이 말이 안되게 서툴러 구
학산(龜鶴算)의 좀 까다로운 것 같은 것은 번번이 풀지를 못하고 쩔매곤 하
였다. 한문도 밑천이 대단히 짧았다. 그의 두루마기처럼 짧았다. 인끈조자
(組)를 조합조 맏맹자(孟)를 맹자맹으로 가르쳤다.
대가리 굵은 생도는 나이 원선생보다 두세 살 심하면 오륙 세나 솟는 놈도
없지 아니하였다. 그런 놈들은 대개 사서삼경을 좍좍 외어대는 놈들이었다.
그 앞에서 조합조, 맹자맹 하고 가르치니 시쁘지 아니할 턱이 없었다.
선생이 그렇게 단문한 줄을 알기 때문에 생도들은 단지 그를 시들히 여기
고 말을 타지 않으며, 그의 가르침을 시뻐하며 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나아
가 그를 시험하기와 곯려주기를 일삼아 하였다. 어려운 산술 문제를 알아가
지고 와서 풀어달라 하기, 궁벽한 한문 문구나 글자를 찾아가지고 와서 뜻
을 가르쳐 달라 하기…… 그럴 적마다 열에 아홉 번은 원선생은 놈들에게
홍안을 당하였고, 놈들은 쾌재를 외치고 하였다.
그러한 원선생에게도 노상 취할 점이 없는 바는 아니었다. 우선 그는 고정
하고 성실하였다. 가령 생도 누가 어려운 산술 문제를 내놓아 그 자리에서
풀어주지를 못하면 놈들한데 갖은 조소 다 들으면서도 매양 어물어물 씻어
넘겨 버리는 법이 없이
“내 그럼 이따 저녁에 자알 생각해 갖구 내일 풀어주께에?”
하고 반드시 약속을 하여 둔다. 그랬다 그날 밤 밤을 새워가면서라도(이 밤
샘을 하면서 그는 소리 없은 눈물을 흘리기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또 자기
의 힘으로 정히 감당치 못할 것이면 교장이나 동료의 다른 선생더러 묻기라
도 하여서 기어코 이를 풀어가지고 이튿날 생도들 앞에서 언약한 바를 어기
지 않고 시행하였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한문 시간인데 독본의 새로운 한 대문 “身體髮
膚[신체발부] 受之父母[수지부모] 不敢毁傷[불감훼상] 孝之始也[효지시
야]”를 가르치던 날이었다. 평일과 다름없이 어려운 글자를 가르쳐 주고
토를 달아 주고 새겨 주고 그러고는 뜻 설명을 하여 주었다. 하고 나서 마
지막 그 대의를 요약하여
“그러므로 우리는 허다못해 머리카락 하나일지라도 함부로 하거나 상해서
는 부모에게 불효가 되는 것이니라.”
고 하였다.
그러자 한 생도가 시비조로
“아, 선생님? ……”
하고 일어서더니 밑도 끝도 없이
“효돌 해야 허나요? 불효해야 허나요?”
하는 것이었었다.
원선생은 질문답지도 아니한 질문에 잠시 뻐언하고 섰다가
“어대 그것두 몰랐던감?”
“저두 효돌 해야 허는 줄은 알지만 선생님 등쌀에 불횰 해야 허니 말씀이
죠!”
“무어? 워째서?”
“아, 머리카락 하나래두 함부루 허거나 상해선 불효니라구 옛 성현두 그
리시구 선생님두 금새 그렇게 가르쳐 주시잖었어요?”
“………”
“그런데 선생님은 육장 즈이더러 머릴 깎으라구 허시구, 붙잡아단 억지루
깎아주시구 허시잖어요? 그게 즈일 불횰 가르치시구 불횰 시키시구 허는 거
아녜요?”
“………”
원선생은 대답이 꼭 막혔다.
원선생은 지지리 생도들더러 머리깎기를 권하고 주장하였다. 눈치 보아 그
부형이 과히 반대를 않는 생도면 교원실로 데리고 들어가 상투랄지 머리채
를 썩둑썩둑 가위로 잘라주기도 하였다. 그때의 현재로 머리를 깎은 생도가
절반 가량 되었는데 그중의 절반은 원선생의 권으로 혹은 그의 가위로 깎인
머리였었다.
원선생은 언제나 대답이 막히면 하는 버릇으로 바른손이 귀 뒤로 올라갔다
도로 내려오면서 고개를 바른편으로 갸웃
“참……”
그 다음 왼손이 왼편 귀 뒤로 올라갔다 도로 내려오면서 고개를 왼편으로
갸웃
“글쎄에……”
또, 그 다음엔 바른손이 바른편 귀 뒤로 올라갔다 도로 내려오면서 고개를
바른편으로 갸웃
“가마안짜아! ……”
이 짓을 무수히 되풀이하였다. 얼굴이 벌겋게 홍안 되었음은 물론이었다.
“내 그럼 이따 저녁에 자알 생각해 갖고 내일 대답허께이?”
전례에 좇아 원선생은 마침내 이렇게 말미를 빌었다. 생도놈들은 우선 승
리를 만세부르는 뜻으로 와아 소리를 지르면서 손뼉을 치는 놈도 여럿이 있
었다.
이튿날 첫시간이었다. 밤잠을 자지 못한 표적으로 충혈된 눈을 하여가지고
원선생은 교실로 들어왔다. 그러나 의기는 자못 양양하였다.
생도들이 기립 경례를 하고 착석키가 바쁘게 출석 부르기도 잊어버리고
“자아 제군! 어제 그거 말야! 머리 깎는 거 불효된다는 거 말야! ……”
하더니 한손을 쳐들어 다른 한손으로 그 손톱을 만져보이면서
“요거 요거 이 손톱! …… 손톱은 워째 깎나? 그라구 발톱이랑…… 응?
손톱 발톱은 워째 깎나? 응?”
생도들은 선뜻 뭐라고 대꾸를 하지 못하고 있다.
원선생은 더욱 자신 있이
“제군두 손톱, 발톱은 깎지이? 누가 깎아라 말아라 아니해두 깎지들 깎지
이?”
하고 조지듯 묻는 데 대하여 문제를 꼬집어낸 어제 그 생도가 비로소
“손톱 발톱야 다아들 깎죠!”
“워째 깎나?”
“손톱이 자라서 길믄 거리적거리구 때꼽이 껴 더럽구 허니깐 깎죠!”
“그래 깎을라치면 거리적거리지 않구 이렇게 편치이? 때꼽두 끼지 않지?
…… 짧은 손톱이 긴 손톱보담 좋구 유익허지?”
“그럴 테죠?”
“그럼 머린?”
“머린……”
“머리채 늘어뜨리구 또오 상투 틀구 망건 쓰구 헌 머리가 편허구 존가아?
깎은 머리가 편허구 존가?”
“깎은 머리가 좋기야 허죠!”
“정갈허구?”
“정갈허구요!”
“거보라구!”
“그렇지만 손톱은 옛날버틈 깎기루 마련이구 머린 안 깎구서 긴 채루 둬
두기루 마련이 아녜요? 그래서 공자님두 긴 머리시구, 맹자님두 긴 머리시
구, 우리 할아버지랑 아버지랑 다아 상툴 트시구 헌 거 아녜요? 그리구 손
톱은 깎기루 마련이니깐 공자님두 깎으시구, 맹자님두 깎으시구, 우리 할아
버지랑 아버지랑 다아들 깎으신 거구요!”
“그건 옛날 문명허지 못했을 때 말이지 지금은 문명시대가 아닌가베? 제
군은 문명시대의 청년이 아닌가베? 문명시대의 청년이 문명 못헌 옛날 사람
처럼 상투 타안탄 틀구 머리꼬랑지 늘어트리구 쇠때가 꼈구 헌 머릴 해갖구
다니면 그런 수치가 있남? 상투 틀구 망건 쓰구 너펄너펄 중추막입구, 그라
구설랑 워떻게 활발하게 체조랑 경주랑 허나? 워떻게 문명사회에 나가 활동
을 허나? 제군 가운데서는 머리 깎은 사람은 알테지만 거뜬허구 정갈해 조
옴 좋아? 체조헐 때랑 경주헐 때랑 조옴 편해?”
“………”
“문명시대에 난 청년이면 맘두 문명헌 맘을 지녀야 허구, 공부두 문명헌
공부를 해야 허는 것처럼 외양두 문명헌 외양을 차려야 헐 거 아냐? 그래야
문명시대의 청년이요 훌륭헌 사람일 거 아냐? 그런 훌륭헌 사람이 되자구
머릴 깎는데 워째 불횬감? 그게 어디 머릴 깎는 거지 함부루 허거나 상허는
건감? 손톱을 깎는 거지 상허는 건 아닌 것처럼 말야!”
“………”
말썽꾼 그 생도나 다른 생도들이나 다시는 원선생을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럼 문명사회에서는 여자들도 머리를 깎소?”
“그럼 활동 ― 일 ― 하는데 편하고 정갈하고 하자고 우리네 어머니도 누
이도 다아 중대가리가 되어야 옳소?”
이런 질문이 나오지 아니한 것은 다행 중에도 더욱 다행이었다.
원선생은 그 자리의 임시방편으로 문명이라는 것을 내세운 것이 아니었다.
평소부터 그는 열렬히 개화를 도창하여 오던 이를테면 시대의 선각자의 한
사람이었다. 원선생의 신문명, 신풍조에 대한 지식이란 물론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생도들로 하여금 하루바삐 낡은 것을 버리고 신풍조를 받
아들여 소위 문명시대의 청년이 되도록 일깨우며 지도하고 싶어하는 열의는
가히 봄직한 것이 있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생도들에게 개화사상을 고취하였다. 낡은 사상·학문·
습관·전통·제도 이런 것 중에서 시대의 진운을 막는 것을 헤어 통렬히 이
를 비판하며 배격하였다. 일본의 명치유신과 및 그 오십 년 미만에 진보 발
달한 형태를 극구 예찬하였다. 세계 각국의 문명한 모양을 말하였다. 졸업
반 생도들더러는 경성의 상급학교로 진학하기를 절절히 권하였다. 지금은
구학문은 썩은 학문이요 아무 소용이 없고 반드시 신학문이라야 하며, 신학
문 없는 사람은 사람값에도 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열만 있고 지식이 모자라는 행동이 항상 맹목적이요 극단에 기울기는 쉽듯
이 원선생도 자연 그런 폐단을 면치 못하였다. 그는 선영을 제사하는 것을
순전한 미신이라고 나무랐다. 입춘이니 하지니 백로니 하는 절기와 그 절기
에 좇아 농민이 농시를 헤아리는 것을 풍수(風水)와 마찬가지로 허황한 것
이라고 나무랐다. 그 밖에도 별별 요절할 망발이 허다하였다. 또 그는 구학
문을 썩은 학문 아무 소용없는 학문이라고 배척하면서도 어엿이 “身體髮膚
[신체발부] 受之父母[수지부모] 不敢毁傷[불감훼상] 孝之始也[효지시야]”
따위를 긍정적인 태도로써 가르치는 자기 자신의 딜레머함을 별반 괴로와할
줄을 몰랐다. 그런 딜레머를 인식치 못하기 때문이었다.
선영을 제사하는 것을(미신이라 하여) 비방하는 원선생을 유림측에서는 일
종 광인으로 돌려놓았다. 자제를 퇴학시키는 사람도 있었다. 학교로 질문을
온 사람도 있었다. 그에 대하여 원선생의 답변은 이러하였다.
“죽어서 살은 썩어 없어지고 뼈만 남는 것이 사람의 사후가 아니요? 영혼
이니 귀신이니 하는 것은 절대로 없는 것이 아니요! 무덤 속의 백골더러 운
감을 하라고 음식을 차려놓고 축을 읽고 하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미신이
아니면 무어란 말이요?”
이 답변이 한번 전하여지자 사람들은 원선생을 광인도 광인이려니와 선영
위하기를 거절하는 천하 오랑캐 같은 쌍놈이라고 욕하였다.
누가 무슨 소리를 하건 원선생은 여일히 낡은 것을 깡그리 배척하며 신문
명의 예찬과 그를 급속히 받아들이기를 주장하는 ‘개화꾼’임을 변치 아니
하였다. 그는 말뿐이 아니라 ‘문명’을 실지로 보여주기에도 노력을 하였
다. 권연상자로 토수만하게 만든 통(筒) 머리를 얇은 종이로 발라 긴 실 양
끝에 꿰어가지고 하는 전화도 가르쳐 주었다. 지구의(地球儀)를 사다 지구
의 둥근 것이며 공전(公轉)·자전(自轉)과 그로써 이는 주야와 사계의 변화
를 설명하여 주었다. 자기의 모교(간이농업학교)에 가서 환등을 빌어다 보
여주기도 여러 차례 하였다. 교장을 누누이 졸라 조그마한 걸로 풍금을 한
채 사들여 창가도 가르쳤다. 그러나 이 풍금은 사온지 두 달이 못하여 어떤
성벽 있는 생원님네의 내기거리로서 참혹히 폐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즉
박동지와 김진사가 읍내 학교당에 ‘노래하는 귀신 잡아 넣은 것’을 사다
놓았다는 소문을 듣고 수고로이 삼십 리 밖에서 그 실물을 구경하러 왔었
다. 온 뜻을 말하자 원선생이 흔연히 나서 기계요 절대로 귀신을 잡아넣은
것이 아님을 우선 설명하였다.
두 생원님은 하여간 한번 놀려보라면서 학교당꾼들이 많이 부르는 「학도
야 학도야」를 요구하였다. 원선생은 즉시 그 곡을 짚었다. 두 생원님은 귀
를 기울여 들었다. 과연
“하악도야 하악도야 청년학도야! ……”
하고 부르는 것이 여승하였다.
그럼 어디 그 시조를 한 장 불러보게 하시오 하였다. 원선생은 시조는 못
부릅니다 하였다.
“그럴 테지! 양국(洋國 : 西洋[서양]) 귀신이 제아모리 귀신이기로 죄선
시조야 알 탁이 있나!”
이렇게 박동지는 당연히 여기는 말로서 하였다.
마침 시간이 되어 교장까지 세 선생이 각기 교실로 들어가고 교원실에는
두 생원님만 처졌다.
박동지가 용기를 떨쳐 원선생이 하던 대로 발판을 디디면서 건반을 눌러보
았다. 삐잉 소리가 났다.
“정녕 귀신이지요?”
김진사를 돌려다보면서 동의를 물었다. 김진사도 고개를 꺄웃
“또 해보시요?”
하더니 주역을 외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주역을 무시하고 풍금은 삐잉 뿌
웅 소리가 역력하였다. 옥추경을 외었다. 역시 효험이 없었다.
“거 귀신이 아닌가보이다?”
김진사가 말하였다. 김진사는 처음부터 귀신설(說)에 의혹을 품던 터이었
었다. 박동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양국 귀신이 주역이나 옥추경을 알 까닭이 있나요?”
“양국 귀신이나 죄선 귀신이나 귀신은 일반이지 그럴 리 없지요!”
“진사는 그럼 귀신이 아니면 무어란 말씀이요?”
“아마 사람이 들앉었나보이다?”
“천만에!”
“아냐! 사람이야!”
“아냐! 귀신이야!”
“귀신은 아냐!”
“귀신이래두 우기시는구려?”
“사람이래두 우기시는구려?”
“아, 이 좁은 속에 사람이 어떻게 들앉는단 말씀요?”
“아 주역을 모르구 옥추경을 모르는 귀신이 어딨단 말씀요?”
“귀신이라면 귀신인 줄 아시요!”
“사람이라면 사람인 줄 아시요!”
“글쎄 귀신이야 귀신!”
“천만에!”
“그럼 우리 이걸 뜯어봅시다?”
“뜯어봅시다!”
“내기허실료?”
“내기합시다!”
“뜯어보아서 만약 사람이 없으면 진사 어떡허실료?”
“이번에 새끼 난 우리 암소를 새끼 얼러 드리지!”
“두말 없읍넨다?”
“여부가 있나요! …… 그 대신 사람이 있으면 동지는 날 무얼 주실료?”
“내 선친 면례헐 양으루 무봉산다 땅(墓地[묘지]) 잡아논 걸 진사 늘 맘
있어 허셨지? 그걸 드리지!”
“동지두 두말 없읍넨다?”
“여부가 있나요!”
두 생원님은 장삼 소매를 부르걷고 달려들어 풍금을 건반을 모조리 뽑아젖
혔다. 결과는 박동지가 승리를 하였음은 물론이었다. 그러나 이긴 박동지나
진 김진사나 다같이 원선생에게 어째서 대낮에 도깨비들이 이 행패를 하고
다니느냐고 불측한 폭담을 들었으니 적지않이 망신이었다.
원선생은 일변 약삭빨리 자기를 향상시키기 위하여 공부를 쉬지 아니하였
다.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아 마침내 그는 갑종 훈도의 자격을 얻었으며 판임
관이라는 관직이 생겼다. 나이도 인제는 삼십이요 갑종 훈도에 판임관으로
금테 두른 정복 정도에다 환도를 차고 다님즉한 관록과 실력도 엔간하였다.
생도들을 다루는 솜씨하며 모든 언동 범절이 당초의 그 데데하고 치기 있고
맹목적이요 하던 것이 훨씬 다 가시고서 제법 능란하고 침착한 선생님이 되
었다. 아마 이대로 다른 사고만 없이 한 십 년 더 지난다면 이상은 모르되
촌 보통학교의 교장심득 혹은 교장 사무취급 자리쯤은 받아논 밥상일 것이
었다.
사람은 열 번 고쳐 되는 것이라고 칭찬하는 사람도 있었다. 당구 삼년이니
우리 고을 물이 좋기는 좋느니 하고 같은 칭찬을 험구로써 하는 사람도 있
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광인으로 부르는 사람은 지금 와서는 없었다. 그
만큼 그의 숱한 흉이 죄다 씻기고 잊혀지고 한 것이었다. 그러고서 오직 남
은 것이 ‘원선생 두루마기’라는 비유와 부임인사를 하던 모양의 두 가지
였다. 두루마기는 그가 종시 그 두루마기를 가끔가다 떨쳐 입고 다니어 사
람들로 하여금 기억을 새롭게 하기 때문이었다. 부임인사의 흉내는 생도들
에게 의하여 대대로 전하여 내려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실지로 그 광경을
보지 못한 지금 아이들도 그를 흉내낼 줄은 알았다.
“그래두 협률사 구경허니이?”
나란히 난장마당으로 향하고 걸으면서 준호가 묻는다.
윤석은 서슴지도 않고
“그럼!”
“선생님헌티 들키믄 어떡허니?”
“일없어 안 들켜!”
“그래두우!”
“들켜두 일없어. 원선생님은 너랑 나랑은 이뻐허신깐 벌 안써!”
“………”
준호는 실상 들키고 안 들키고가 앞서는 문제인 것이 아니었다. 모친에게
와 마찬가지로 선생에게도 역시 들키어(사후에) 벌을 당할 위협보다도 먼저
협률사 같은 잡스런 놀이를 구경한다는 사실이 저 스스로가 두려운 것이었
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일변 협률사 구경을 하고 싶은 생각은 자못 골똘
한 바 있었다. 어른 몰래 책으로만 읽은 『춘향전』을 직접 눈으로 본다는
것이 소년 준호에게는 커다란 흥미거리요 유혹인 것이었다. 거기다 아까 그
꽹과리 치던 기생이었다. 여러 총중에서 그렇듯 무안을 주고 조롱하고 하였
건만 이상히 반감은 나지 않고 도리어 춘향이로 나와(정녕 춘향이로 나와)
이도령과 놀고 할 그를 부디 좀 보았으면 하는 호기심이 은근히 강렬하였
다. 해서 그는 윤석더러 말은 그렇게 하던 것이나 진심인즉 윤석의 대답이
그처럼 시원시원하기를 짐짓 바라던 노릇이었다.
난장마당은 이름 그대로 난장(亂場)이었다.
본시 두섬지기라더냐 두섬반지기라더냐 하는 밭을 통 잡아 연전에 새로이
쇠전터를 만든, 그러니 사오천 평이 실한 바닥인데, 총총들이 콩나물 솟듯
들어찼느니 사람이었다. 섰는 자, 앉았는 자, 어깨를 비비며 왕래하는 자,
달리는 자, 혹은 비틀거리는 자 하여가지고 제각기 지껄이고 히히대고 불러
외치고 고함지르고 하면서 노름하고 술마시고 싸움 싸우고, 물론 씨름도 하
고 하느라고 정신이 아득하도록 와글벅적 끓고 있었다.
어지러운 가운데서도 그러나 판은 판연히 갈리어 한복판이 씨름판. 씨름판
을 싸고 돌아가면서가 노름판. 그리고 맨 외곽으로 방금 협률사패의 행렬이
머물러 섰던 웃장거리 행길 쪽 한쪽만 트이고는 말굽처럼 빙 둘러 음식가게
의 노점들이 일렬로 연이어 진을 치고 늘어서고 하였다.
노름판…… 그 너른 바닥이 좁다 하고 빈틈없이 빡빡하게 뭉텅이 뭉텅이
무수한 뭉텅이의 노름판이 벌어져 있다. 큰 판은 이삼십 명씩 작은 판은 오
륙 명으로 십여 명씩이 더러는 멍석을 피고 더러는 맨바닥에서 본패는 앞으
로 둘러앉고 방퉁이꾼과 개평꾼과 구경꾼은 그 뒤로 둘러서고 하여 혹은 윷
도 놀고 간혹 화투도 치고 하나 대부분은 투전을 뽑는다.
꾼들은 주장 젊은 사람들이로되 머리터럭 센 늙은이도 오다가다 보인다.
이십 안팎의 새파란 소년도 종종 섞여 있다.
제일 많은 것이 상투짜리요 깎은머리와 떠꺼머리 총각도 드문 편은 아니
다. 패랭이 쓴 축은 예사라 하겠지만 방립 벗어 깔고 삼베 두건(麻布頭巾
[마포두건]) 젖혀쓰고 앉아서 투전목 쥔 상제님만은 부득불 기물로 유난히
인목을 끌지 아니치 못한다.
소위 반상(班常)의 구별 같은 것은 전혀 가림이 없다. 제로라는 집안의 서
방님이, 활량패가, 생원님이, 붉은 다리의 상일꾼이나 머슴 따위는 보통이
요, 남의 집 하인배(下人輩)니 전일의 사령배(使令輩)니, 심지어 재인 도한
이와 어엿이 한판에 어우러져 가지고
“삼남이 너 손속 났구나?”
“생원님 패 좀 봅시다?”
“남은 어떡허라구 제 욕심만 채우려 드슈? 노름판 경오나 좀 알구 다녀요
제발.”
하여가면서 사이 좋게 혹은 핀잔 먹어가며 승부를 겨룬다.
읍내 사람, 외촌 사람 그리고 큰 판이면 간혹 타관 사람이 낀다. 이런 타
관 사람들은 항용 난장으로 한몫 톡톡이 보러 각처에서 모여드는 패찬 노름
꾼들이다. 직업적인 노름꾼인 것이다. 거개가 탈망이나 맨머리에다 왜포수
건 아니면 대님짝으로 테머리 질끈질끈 동이고 앉아서 앞에는 지전을 비롯
하여 로전이야 동전이야 엽전쾌가 수북수북이 쌓여 있다. 온 정신이 투전장
과 돈 셈에 가 쏠려가지고 충혈된 두 눈만 날카롭게 빛날 뿐 달리는 옆에서
방금 살인이 난대도 모를 지경으로 열중이 되어 있다.
그러나 열중 곧 평온은 아니다. 부절히 흥분을 하여 우기고 다투고 하기에
전체적으로 동요와 훤화와 주먹다짐이 끊일 사이가 없다. 죄던 투전장 얼러
땅바닥을 치면서
“낙지공지 기리미기 도옹 자가사리로고나!”
하고 고함지르는 꾼이 있는가 하면 보기 좋게 모를 쳐놓고는
“지화자 지화자!”
부르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멋장이도 있다. 하는가 하면, 군데군데서는
싸움이 벌어진다. 핏대를 세워가지고 게거품 뿜으면서 돈목을 끗수를 다툰
다. 잡아먹을 듯 서로 으르렁거린다. 말로 끝장이 안나면 상투 꺼들기 멱살
잡이가 인다. 치고 받고 물어떼고 한다. 필경 피가 흐른다. 기절하여 동그
라지기도 한다. 완연 아수라장이다. 하건만 이를 금하는 손은 없다. 말리는
손은 혹시 있어도 금하는 손은 없다. 자래로 난장마당은 초상마당이나 제사
(大小祥[대소상])마당과 일반으로 노름꾼의 모나코왕국이요 치외 법권이 있
는 지대인 것이다. 그리하여 아무 거리낌없이 탁 터놓고 제멋대로들 노름하
고, 노름하다 싸우고 나서 도로 노름하고…… 하는 동안에 누구는 천 냥을
잃고 누구는 논 열 마지기를 팔아 없애고 누구는 빚을 오백 원이나 지고 한
다. 그러나 누가 천 냥을 따고 누가 논 열 마지기를 사게 되었고 했노란 당
자는 한 명도 나서지 않는다. 소문이야 아무는 몇 천 냥을 땄느니 아무는
허리띠 푸르게 되었느니 하지만, 정작 그 아무아무는 도리어 잃었노라고 우
는 소리를 한다. 따고도 잃었노라고 하여야 하는 것이 워낙 노름판의 풍속
인 것이다.
윤석이 연방 노름판을 들여다보곤 하면서 앞참을 서고 준호가 그 뒤를 따
라 씨름판으로 가고 있는 준호의 손목을 별안간 소댕만한 북두갈고리 같은
손이 덥석 와서 움킨다. 맨상투 바람에 테머리하고 날광목 고의적삼인데 고
의는 정강이를 걷어올리고 버선목을 대님으로 묶고 미투리 신고 한 차림새
가 벌써 누구네 집 머슴일시 분명하였다. 햇볕에 타 시꺼먼 바탕이 다시 술
로 붉은 기운을 곁들여 소위 무른 대추빛인 것도 그의 신분을 증명하는 한
가지 조건이리라. 십리만큼씩 난 노랑수염은 막걸리가 말라붙어 절반은 노
랑수염 절반은 흰수염이다. 성긴 노랑수염에 무른 대추빛 같은 얼굴이요 겸
하여 육척의 장신이니, 눈만 고리눈이었다면 장비 임직한 풍모였으나 유감
히도 애꾸눈이어서 무섭기보다도 우습기 먼저 한 인물이었다. 준호는 그러
나 우스울 경황은 없고 우선 무서웠다.
“놔!”
겁먹은 소리로 짧게 지르면서 붙잡힌 손목을 뿌리치려고 하나 억센 손아귀
가 간대로 펴질 리 없었다.
“히히히!”
애꾸는 누런 이빨로 웃으면서 허리를 꾸부리고 바싹 들여다본다. 감내가
푸욱 질러 가뜩이나 소년을 숨막히게 한다.
“몇살 먹었어?”
“놔!”
“히히히! 떡 사줘?”
“………”
준호는 발버둥을 치면서 한손으로는 구린내나는 입을 떠다밀친다.
“그러지 말구 나허구 놀러가. 내 떡이랑 사탕이랑 사주께. 돈두 주께
응?”
“놔! 놔!”
웬만큼 처져 앉으면서 으악 울 노릇이었으나 오히려 색색거리고 발란질을
해댄다. 무섭기는 처음 순간이요 울 생각은 조금도 없고, 천민의 무엄함이
괘씸코 분하였던 것이다. 약하고 영악치 못한 소년임에 틀림은 없으나 앙똥
스럽고 교만한 본성이 노상 없는 바도 아니었다.
동무요 차림새가 비슷한 것이 같은 신분인 듯한 한 자가 마침 지나다보고
건네는 말이
“잡것이 장가 들 생각은 않구섬!”
하는 것을 애꾸가 돌려다보면서
“히히히! 초립동이 상투…… 오래 산대문서?”
“무우대가리처럼 아무것두 없는 녀석이 오랜 정치게 살구푼감?”
“히히히…… 이걸 어디루 둘쳐업구 가야 한다?”
정히 둘쳐업고 으슥한 곳으로 달리지 아니치 아니할 기세였다. 무례와 잡
스럼을 심히 탄 아니하는 것이 또한 난장이어서 누구 한 사람 나서서 말려
주는 이 없었다. 사세는 절박하여 십상 당해둔 욕이었다.
그러나……
“네끼 사람!”
천만다행이었다. 준절히 꾸짖는 노인이 있었다. 촌영감으로 풍채며 기상이
별양 장할 것은 없으나 반편스런 머슴꾼 하나쯤 나무라고 견제하기엔 넉넉
하였다.
“어린아일 데리구 무슨 그런 실없은 장난을! ……”
“히히!”
“놔줘!”
“괜히 그러심다! 영감님……”
“어서 놔주래두!”
“영감님일랑 어서 저 씨름이나 가 구경헙사요!”
“썩 놔주들랑 아녀구서! ……”
좀더 거센 나무람 소리와 함께 짚고 있던 지팽이가 애꾸의 정수리를 딱 갈
긴다. 구경꾼으로부터 와 웃음이 터지고 애꾸는 엄살스럽게 아파하면서 맞
은 자리를 우딘다. 그러면서 손목 움킨 것을 놓치는 체 놓는다.
준호는 냉큼 몸을 피하는 대신 눈살을 꼿꼿이 하여가지고 무례하던 자를
아긋이 노려본다. 그러자 윤석이 두리번거리면서 달려들었다. 앞참을 서서
얼마를 가다야 잃어버린 줄을 알고 찾으며 되돌아왔던 것이다.
“왜 그랬니?”
무슨 사단이 있었음을 직각하고 급히 그렇게 묻는다. 준호는 그러나 입을
다문 채 군중 틈으로 어슬렁어슬렁 사라지는 그자의 등 뒤만 종시 눈 흘겨
볼 뿐 아무 대답도 없다.
“응? 왜 그랬어?”
“………”
“………”
흔한 일이라 윤석은 문득 그제야 눈치를 채고 벌컥
“어떤 놈야, 그놈이? …… 응? 어디루 갔니 그놈? 그놈을 막……”
하고 으르대면서 휘휘 사방으로 눈방울을 부라린다.
그런 불결한 희롱을 당할 뻔하였다는 것만도 준호는 동무한테조차 부끄럼
을 타도록 계집아이처럼 숫기 없는 소년이었다.
“아냐, 괜히 저 거시키 저어……”
도리어 이렇게 씻어 덮으면서 윤석의 옷소매를 잡아끈다.
물론 창피하였고 망신인 것이야 이를 나위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바야
흐로 그늘에서 자란 순에게 대한 강한 일광이요 비바람이었다. 되약는 시련
인 것이었다. 소년은 이때 속으로 이를 갈아붙였다.― 죽더라도 모친에게
매를 맞아 죽더라도 이 야속스런 상투를 잘라버리리라고.
아이들과 키 작은 사람은 앞으로 나앉고 키 큰 사람은 뒤로 서고 하여 몇
겹인지 모르게 겹겹이 담쌓듯 사람으로 에운 그 안에서 씨름은 판이 벌어져
가지고 있다.
에움 안편짝 한옆으로 내세운 두레의 굵고 높은 깃대(農旗竿[농기간])에
드리운 줄에는 주머니, 쌈지, 허리띠, 대님, 미투리, 왜포수건, 난목끗 따
위의 상(賞品[상품])이 아직도 많이 생선꿰미처럼 주렁주렁 매어달렸다.
소는 암소는 암소라도 대각이 제가 오늘 밤 소씨름의 상소인 것도 모르는
듯 난장판의 훤화도 아무 흥미 없다는 듯 넌지시 저편짝 밭두렁에서 풀을
뜯으면서 홀로 한가롭다.
준호와 윤석은 가까스로 사람의 에움을 비벼 뚫고 맨 앞줄로 나가 앉았다.
씨름은 계제 좋게 윤석 또래의 애기상씨름이 한물이었다.
열서너살박이의 머리 딴 꼬마동이가 두 놈이 고의춤을 마주 잡고 얼러붙어
서 밀치락달치락 가랭이도 떴다 딴죽도 감았다 하면서 흡사 부룩송아지 싸
우듯 서로 뭉그댄다.
막 깎은 머리에 질끈 테머리 동이고 굵다란 참대 몽둥이를 쥔 판장이 연방
“어 ― 우 ― 어 ― 우 ―”
“넘어간 ― 다 ― 어우 ―”
하고 울력 소리를 지르면서 요리조리 승부를 살피며 재빠르게 씨름 곁을 따
라다닌다.
“안쪽 감아라! 안쪽 안쪽!”
“배 붙여주지 마라라!”
이런 응원의 아우성이 관중으로부터 제각기 편역을 드느라고 요란히 일어
쌓는다. 하는가 하면
“우리 덕쇠 참 먹어싸게 한다!”
“소씨름감이다 소씨름감!”
하고 치켜세우는 패도 있다.
씨름은 그러나 잘하는 씨름도 봄직한 씨름도 아니었다. 기운만 부리고 아
무 재주와 농간이 없어 결국 부룩송아지의 대갈싸움에서 벗을 게 없었다.
“저런 빙신들! ……”
윤석의 조롱과 비판이었다.
“저걸 씨름이라구 허궀어? …… 씨름은 기운두 세예지. 허지만 꾀가 젤인
데 둘이 다 꾄 하나두 없잖아? 응? 준호야?”
“………”
준호는 어떻게 하는 것이 잘하는 씨름인지 또는 못하는 씨름인지 같은 것
은 알 줄을 몰랐다. 오직 난장과 난장씨름이 처음이라 그 긴장한 진짜 승부
가 다만 재미있을 따름이었다.
서투른 씨름이라도 승부는 나는 것, 이윽고 한 놈이 다른 한 놈에게 털썩
넘어박힌다. 관중이 와 함성을 지르고, 판장은 날쌔게 벌써 이긴 편의 손목
을 번쩍 치켜들었다. 심판의 선언인 것이다.
진 놈은 점직하다고 히죽이 웃으면서 먼지를 털면서 판으로부터 물러나간
다. 이긴 놈은 이건 또 이기고 여러 사람의 주목을 받기가 점직하대서 역시
히죽이 웃으면서 그 자리에 가 주저앉아 다음을 기다린다.
판장이 햇씨름을 고르러 관중을 물색하면서 분주히 돌아간다. 윤석은 좀이
쑤시어 안절부절한다. 자청을 하고 나서려는 참인데 판장은 오다가 문득 그
앞이 너무 나온 것을 보고 손의 참대 몽둥이를 들어 한바탕 판을 친다. 발
끝을 갈길 듯이 땅바닥을 때리면서 달리면 관중은 뒤로 물씬물씬 물리어 나
가고 판이 넓어지는 것이요, 참대 몽둥이는 그 소용으로 지니는 것이다.
웬만큼 판을 치고 나서 판장은 하나를 손목 잡아 끌어내었고, 그래서 윤석
은 그만 도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나 기회는 이내 다시 올 것이라 단념도
실망도 할 필요는 물론 없었다.
햇씨름은 공단댕기 들여 머리 땋고, 모시두루마기에 가죽반저름 신고한 얼
른 보아도 누구네 집 글방도령이었다. 나이는 열서너 살 한 또래였으나 해
사한 얼굴이며 가냘픈 몸집이며가 판판 약질로 생긴 것이 도저히 부룩송아
지 같은 묵은씨름의 적수가 아니었다.
과연 씨름손을 잡고 두어 발 빗기가 무섭게 묵은씨름은 햇씨름을 불끈 안
아서 태질치듯 쓰러뜨려 버린다.
그것으로 다섯 허리째의 연승(連勝)이던 모양 판장은 상대로부터 율모기허
리띠 하나를 내려다 그의 목에 걸고 이끌면서 일변 거주 성명을 물어
“해동 조선 ×××도 ××군 ××면 ××리 ×통 ×호 고덕쇠 열세 살 판
나갑네에!”
하고 외치면서 짬을 반쯤 돌고는 절을 받은 후 비로소 놓아준다.
드디어 윤석이 등장하였다.
묵은씨름을 그가 방금 글방도령을 이기기보다도 더 하잘것없이 배붙이기로
넘어뜨렸다.
계속하여 둘 셋 넷 다섯…… 여섯 허리를 이기고 대님을 상탔다. 다시 또
다섯 허리를 이기고 허리띠를 상탔다.
향교골 패들과 학교 동무 아이들은 신이 나서 씨름판이 떠나가도록 응원
소리가 요란하다.
누구는
“이따 나갈 때 업고 가마아?”
또 누구는
“떡 사주께 오늘은 서른 허리만 이겨라아?”
또 누구는
“그대루 눌러 소씨름꺼지 해라!”
하고 고함을 친다.
준호는 신이 나고 기뻤다. 윤석이 타서는 던져 주고 타서는 던져 주고 하
는 상이 늘어갈수록 준호의 기쁨도 함께 더하여 갔다.
열일곱 허리째에서였다. 윤석은 안쪽을 감고 밀다 햇씨름이 되게 버팅기는
바람에 그를 깔고 엎드러졌다. 하마터면 햇씨름의 머리 뒤꼭지보다 윤석의
팔이 먼저 짚일 뻔하였다.
판장이 윤석의 팔목을 치켜드는데 관중으로부터
“판장 눈 삐었다!”
하고 외치는 소리가 일었다. 심판에 대한 항의였다.
판장은 더럭 얼굴을 사납게 하여
“그 판장 눈이 뼜단 눈구멍 좀 이리 뽑아오느라! 어느놈이냐?”
하고 호통을 지르면서 눈방울을 굴린다.
하도 그 서슬의 험함에 질렸음인지 다시는 꿀꺽 소리가 없다. 대신 향교골
패에서 판장이 옳다고 입입이 떠든다.
씨름판의 판장이란 삼군의 장수보다도 어려운 소임이다. 백 명이면 백 명
천 명이면 천 명 죄다가 제각각이요, 제 주장 제 소견을 세우러 드는 무질
서하며 통제성 없는 군중들이다. 그러면 군중을 단 한 사람으로써 능히 휘
어잡고 어거하되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항의 같은 것은 꿈쩍도 소리를 못
하게 하여야만 판장질을 감당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자니 그는 감대 사
나와야 하며, 일변 위압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가사 심판이 한 번 실수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그대로 내뻗을 억지와 강단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애초에 그렇듯 자격 구비의 인물이 아니고는 판장으로 추천이 되어
지지를 않는 것이다.
이런 감대 사납고 아귓심이 세어 군중을 위압 통제하는 자격을(실상은 요
령을) 갖추었고, 그러나 심덕은 썩 무던하고, 그리고 일 좋아하는 호사객이
요, 하며 혼인집과 초상마당은 빼놓잖고 쫓아다니면서 남의 일 제일같이 거
두잡아 해주고, 단오에 편사(便射)차리기, 설명절에 아래청 데리고 걸궁패
꾸미기, 추석에 난장 설도하고 판장 노릇 맡아하기…… 해서 이른바 ‘골안
살림꾼’ 혹은 ‘동네머슴’이 어느 고장이고 으례 하나씩은 있는 법이어서
이 판장 갑술이도 정히 그러한 사람이었다.
항의가 있던 방향으로부터 그 끝에 햇씨름이 척 자원하고 나섰다. 말로써
더 항의를 못하는 대신 실력 ― 씨름을 통하여 싸움을 거는 것이었다.
자원하고 나선 햇씨름은 나이도 열오륙 세는 되어 보이거니와 등 짤막하고
어깨통 떡 벌어진 체격이 벼 한 섬쯤 져다 먹으라면 선뜻 지고 감직한 애총
각이었다.
판장은 위아래로 한번 훑어보면서 거듭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무가 보아도
너무 솟는 씨름이 아닐 수 없었다. 판장은 그러나 고쳐 생각하고 말없이 씨
름을 붙인다.
이번엔 향교골 패에서 가만히 있으려고 않는다.
“너무 크다!”
“들어갔다 소씨름이나 해라!”
“판장 썩었다! 꼼짝 못하는구나!”
이렇게들 떠들고 불뚝거려도 판장은 들은 숭 만 숭한다. 관중의 불평과 항
의를 못들은 체하는 것도 그를 봉쇄하는 요령의 하나였다. 사실 걸핏하면
저마다 떠들어대고 구석구석이 불뚝거리는 소리요 하는 것을 그를 일일이
다 거들고 어쩌고 하자면 판장은 입이 백이라도 한정이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 이 사람 갑술이!”
참다 못해 향교골패의 한 사람이 시퍼렇게 성구면서 열로부터 한 걸음 판
안으로 뛰쳐 나선다. 말씨가 그렇고 연갑끼리요 한 것이 익숙한 친구간인
모양이었다.
판장은 돌려다보지도 않고 저 할 일만 하면서 냉연히
“갑술인 집으루 찾아오게나!”
“씨름을 이렇게 돋구는 법이 어딨다든가!”
“×××소리 작작 해둬!”
“판장 명색이 이렇게 살(私[사]) 쓰긴가!”
“열여덟 허리째야! 안 돋구구 밤낮 애기씨름만 시켜?”
“돋구는 것두 분수가 있지?”
“………”
판장은 더는 대꾸도 아니하고 씨름만 붙여준 후에 뒤로 물러선다.
윤석은 햇씨름보다 워낙 힘이 달렸다. 동동 매달려 다니면서도 갖은 재주
부릴 대로 부리었으나 필경 패하고 말았다.
이로부터 씨름은 급속도로 돋구어 올라가 삽시간에 총각 삼씨름으로 커버
렸다.
소 같은 장정의 떠꺼머리 총각들이 연방 달려들어 한바탕씩 우지끈우지끈
살이 찢어지는 듯 뼈가 퉁겨지는 듯 무시무시하게 겯고 틀고 뛰고 하다간
꿍꿍 나가떨어지곤 한다.
총각 상씨름이 고비가 차면 그 다음 어른 씨름으로 넘어가야 한다. 판장은
적당히 때를 헤아려 마침 다섯 허리의 연승이 난 기회에 준례대로 상을 베
풀고는 뚝 떨어져서 조막만한 초립동이를 햇씨름으로 손목 잡아 끌어낸다.
관중으로부터 와그르 웃음이 터진다. 준호보다도 차라리 작은 초립동이였
다.
덜썩 큰 장정 총각 묵은씨름과 그의 다리 하나 푼수도 못되는 초립동이가
격식 찾아 고의춤 마주 잡고 착 어우러져 돌면서 유유히 씨름을 빌는다. 씨
름하고 있는 총각과 초립동이도 어우 넘어간다 하고 울력 소리 한결 드높여
지르면서 그 옆을 감도는 판장도 그리고 관주들 죄다가 빙그레 혹은 싱글싱
글 웃지 않는 얼굴이 없다.
천천히 한 바퀴를 돌고 나서 총각은 어여차 소리와 함께 불끈 허리를 펴
배를 붙이면서 안쪽을 감더니 제야
“넘어간 ― 다!”
하면서 벌떡 뒤로 나가 동그라진다. 그풀에 초립동이는 총각의 배에 가말
타듯 타고 앉았고 유쾌한 웃음과 함성이 관중으로부터 혼들리듯 일고 판장
은 달려들어 초립동이의 팔목을 치켜올리고 한다.
준호는 무심코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러나 이내 윤석을 꾹 찌르면서 일어
섰다.
초립동이가 수두룩하다고 하지만 아주 어린(준호와 시방 판에 나간 또래
의) 열두어살박이란 그리 흔한 것이 아니었다. 자연 앉았느라면 물색하는
판장의 눈에 뜨일 것이요, 뜨이면 억지로라도 끌려나가는 것이요, 나가서는
씨름을 하고 메어다꽂히고 할 것이요 하니 두루 망신일밖에 없는 것이었다.
윤석은 그런 눈치를 알아채고 말없이 얼른 따라나서 주었다.
그동안 벌써 해가 저물어 어슬어슬 땅거미가 내리고 있었다.
준호는 길 잃은 어린애처럼 황혼이 걱정스러우면서 집 돌아갈 생각이 불현
듯 하였다. 일변 모친이 혹시 그새 돌아오지나 않았나 하여 그 불안 또한
새삼스럽게 가슴 더럭했다. 곧 집으로 달려갔으면 싶었다. 우선 집이 반가
울 것이고, 거기에 가령 환(患)이 기다리고 있다 치더라도 하옇든 마음이
놓이고 할 것 같았다. 그러나 한편 그러면서도 뜻은 역시 정작 재미있을 협
률사니 소씨름이니의 밤의 구경에 가 더 있어 선뜻 이를 단념하고 돌아설
결단은 나지가 않았다. 항차 이 푸짐한 굿판으로부터 혼자만 미리서 겸하여
동무와도 떨어져 저문 길을 홀로 가다니, 생각만 하여도 섭섭코 외로와 못
할 노릇이었다.
구수한 고깃국 냄새가 코로 푸욱신 스며든다. 잊었던 시장기가 일시에 돌
고 어금니로 신침이 그득히 괸다.
준호는 아침 새때에 군음식을 조금 먹고는 점심은 뜨는 둥 마는 둥 하여
지금은 탈탈 빈 속이었다. 아낙 진주가 꾸려준 것은 진즉 동구 밖에서부터
연방 윤석의 뱃속으로 옮아 들어가 읍까지 당도하기 전에 말끔 빈 그릇만
남았었다. 다식 한쪽도 준호는 입에 넣은 것이 없었다.
싯누런 기름이 흥건히 뜬 국물이 큰 가마솥에서 용솟음을 치고 펄펄 끓는
다. 목침만씩한 고깃덩이 순대가닥, 간 따위가 쉴새없이 번차례로 솟아올랐
다 갈앉았다 한다. 음식가게의 노천(露天) 아래 국솥이요, 이가 준호로 하
여금 회 동하게 하는 냄새를 풍기던 것이다.
“네에 국말이진지(장국밥)에 막걸리요오!”
주모(酒母)가 손의 주문을 그렇게 되외우면서 밥자배기로부터 밥을 한 덩
이 뚝 떠 대접에 담아 들고 자루 긴 놋국자로 솥에서 그 끓는 국물을 퍼부
어 대강 덩이를 끈 후 주르륵 국물을 도로 따르고는 다시 퍼붓고 퍼부었단
도로 따르고 한다. 서너 번 그러고 나서 따로이 창칼 끝으로 고깃덩이를 푹
꿰어올려 도마에 놓고 한귀퉁이를 썩둑 자른다. 순대도 한 도막 간도 한 쪽
그렇게 떼어낸다. 그것들을 숭숭 잘게 썰어 밥 만 대접에다 담는다. 마지막
더운 국물을 넘싯넘싯 퍼부어 호초랑 몇 가지 양념을 쳐가지고 부우연 한
사발의 막걸리와 함게 손 앞에 내놓는다.
노점과 노점 사이로 좇아 난장마당을 빠져나가다 준호는 하도 먹음직스런
그 한 그릇의 국밥에 그만 침이 꼴깍 넘어가는 것을 겨우 참았다. 일찌기
입도 대어본 적이 없는 저자의 천한 음식이었다. 그러나 일찌기 이렇듯이도
맛이 있어 보이고 구미가 당기는 음식은 구경해 본 적이 없었다.
“너 배 안 고프니?”
뒤따르던 윤석이 그렇게 묻는다.
“아니! ……”
준호는 얼른 그러면서 고개까지 젓다가 몇 걸음 더 걷더니
“너 참 무어 사먹어라!”
하고 윤석을 돌려다본다.
“나두 배 안 고파!”
“돈 주께 사먹어라. 나 여기서 기댈리구 있으께……”
“나두 돈 있단다. 그래두……”
“네 돈은 애껴두구 말야!”
“너랑 겉이 가 사먹으문?”
“난 먹구푸잖아!”
“………”
윤석은 이 조그마한 귀골(貴骨)이 도무지 딱해 못했다.
두갈랫길에 이르렀다. 객사(客舍)로 가는 길과 성을 넘어서 학교로 갈 수
있는 갈림길이었다. 협률사는 객사마당에서 놀았다. 협률사에서는 벌써 취
군 부는 호적소리가 마음 달뜨게 울려온다.
“넌 그럼……”
윤석이 잠깐 망설이다
“협률산 아직두 있어예지 시작헌깐 말야, 천천히 가두 헌깐 말야…… 학
교루 가서 기댈리구 있어 응?”
“무어 사먹으러 가니?”
“응 아니!”
“사먹구 오느라?”
“그래. 내 얼른 댕겨가께 먼첨 가 있어!”
“곧 오니?”
“응 곧 가께.”
윤석은 돌아서서 도로 난장마당을 향해 반달음질을 친다.
준호는 그 등 뒤에다 대고
“얼른 댕겨오너라?”
“그래애! …… 가 우물 옆에서 기댈리구 있어?”
“돈 정말 가졌니?”
“걱정 마라!”
“모자라믄 더 가지고 가거라?”
“안 모자라!”
준호는 메때리고 저도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야 꿀안 같았다.
가뜩이나 황혼이라 우거진 고목 그림자들만 칙칙하고 인기척 없는 학교 경
내는 발을 들여놓기가 무싯하였다. 숙직실로 소사실로 한바탕 돌아보았다.
당직 교원도 소사도 추석명절이야 난장이야에 달떠서 학교를 비워던지고 아
무도 없었다.
아무도 사람이 없음을 알자 준호는 무선 기가 더럭 더하여 도망하듯 문간
으로 도로 나와서 기다렸다. 그제야 문득 생각하니, 하필 이런 학교에까지
와서 기다리게 하는 것이 이상하였다.
요기를 하자면 한동안 지체가 되려니 한 것이 뜻밖에 윤석은 이내 곧 달려
왔다. 씨근거리면서 뛰어왔다. 무엇인지 기쁘고 만족한 얼굴이었다.
윤석은 준호를 데리고 학교 뒤꼍의 우물 옆 잔디밭으로 가서 마주 앉더니
군음식 담아가지고 온 싸리바구니를 부스럭부스럭 펼쳐놓는다. 처음부터 송
두리째 제가 맡아 차지하고는 마지막 한톨의 밤엿까지 털어먹었고 여지껏
빈 그릇을 들고 다니고 했었다. 한 그 빈 바구니를 펼쳐놓는데 그 속에는
요술같이도 인절미가 들어 있지를 않는가.
순간 준호는 눈물이 핑 돌았다.
“너 이거래두 먹어예지 허지, 그러다 괜히 허기지믄 어떡허니?”
윤석은 마치 어른이 어린애를 달래듯 한다.
주먹만씩한 콩고명 인절미가 다섯 개…… 조청까지 조끔씩 적시었다.
시장한 판에 인절미 다섯 개쯤 준호 혼자서 먹어도 나쁠 것이었다. 그러나
윤석은 시재가 도통 그뿐이었다. 일전박이 한푼, 엽전 다섯푼이 도합 그의
시재요, 그런 시재를 죄다 털어서 샀었다. 준호가 돈을 더 주마는 것도 마
다하고 이 전이면 인절미 다섯 개가 시세인 줄 번연히 알면서도 인절미 다
섯 개로는 모자랄 줄을 또한 번연히 알면서도 말이었다. 주머니돈이 쌈지돈
이더라도 나중 가서야 구경도 얻어 하고, 요기도 시켜주면 얻어 먹고, 필요
하면 돈으로 취해 쓰기도 하고 할망정이라도 말이었다. 이 경우의 이것 한
가지만은 부디 저의 힘으로써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있는 것이나 힘을 다하
여 그는 이 가엾은 동무를 구원하는 것이 도리요 아울러 기쁨이었던 것이
다.
오늘 하루는 소년 준호에게 여러 가지로 ‘운명의 날……’이었다. 이 윤
석과 새로운 우정이 생긴 것도 그중 한가지에 들 수가 있었다.
진주는 명절답게 한가로움직한 일거리로 베갯모의 수를 놓고 앉았으나 마
음은 조금도 한가하지가 못하였다. 새서방 준호의 돌아옴이 너무 더디기 때
문이었다.
열한시를 친 지도 벌써 오랬다. 해전에는 몰라도 밤이 과히 깊지 않아서
돌아오려니 하였지, 설마 이렇게 늦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한 노릇이었다.
집 앞 행길로부터 사람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진주는 부리나케 마
루로 나서서 귀를 기울인다. 읍으로 난장 구경을 갔던 일행들은 일행들인
모양이나 새서방이 그 축에 끼여 돌아오는 기척은 역시 없고 그대로 지나쳐
버린다. 교교하고 달만 낮같이 밝았다.
마침내 열두시를 친다.
진주는 가슴이 더럭 내려앉았다.
열두시면 정말로 너무 늦었다. 암만 무엇하더라도 열두시가 되도록 안 돌
아올 이치는 없었다. 그렇다면 정녕 무슨 변고가 난 것일시 분명하였다.
‘싸웠는지?’
‘싸움을 했기로서니 몸을 쓰지 못하도록 다치지 아니한 다음에야!’
‘가지고 간 것을 물도 없이 함부로 급히 먹고 혹시 관격이라도? …… 그
생각하고 팍팍한 것은 별로 넣지 말았건만…… 사향소합환을 어쩌다 깜박
잊었던고!’
‘난장에는 일쑤 편싸움이 난다는데! …… 애먼 사람도 많이 다친다는 편
싸움. 심하면 살인까지 난다는 무서운 편싸움!’
요행 아무 탈이 없고 다만 구경에 잠착하여 이렇게 늦은 것이라면이거니와
아닌말로 그런 어떤 사단이 난 것일진대 이런 낭팰 데가 없었다. 자결을 하
여도 오히려 메꾸어놓지 못할 큰일이었다.
쫓아가 볼 생각이 불 같았다. 그러나 뜻뿐이지 못하는 노릇, 몸이 여자로
된 것이 답답할 다름이었다.
뒷일이야 어찌 되었던 머슴 용길이 도령을 보내봄직 하나 낮에 잠깐 들러
점심을 먹고 나간 뒤로는 이내 비치지도 아니했다. 절골 자기 본집으로 도
로 간 것이라면 말할 나위도 없지만, 막상 동네 어디서 투전이나 윷에 팔려
있기론들 누구를 시켜 찾아서 데려오고 하는 수가 없었다. 인간 명색으로
삼월이년이 웃목 구석에서 자고는 있으나 이 밤중 나서서 그런 심부름을 해
오고 할 만한 재치 빠른 구석이 있는 계집아이가 되질 못하였다.
시간을 거진 같이하여 절골 용길의 집에서는 박씨부인이……
초저녁부터 기괴한 망상을 얽기에 잠을 잊고 누워 몸만 두루 뒤척이던 끝
이었다.
지금 불시에 집으로 들이닥치는 날이면 영락없이 무엇이 퉁겨질 것이었다.
삼월이년은 잠만 들면 송장, 준호는 살살 달래서 놀러 내보냈을 것. 멀찍이
아주 난장 구경을 보냈기 십상이요 그러고는 기집과 사내가……
박씨부인은 환상이 눈에 역력히 밟히면서 푸르르 사족이 떨렸다.
벌떡 그대로 뛰쳐 일어나 단숨에 집으로 달려가겠는데, 꼭 그 덜미를 짚어
야만 하겠는데, 그러나 별안간 그렇게 뛰쳐 일어나 집으로 달릴 핑계가 만
만히 없었다. 일껏 약수맞이를 하러 먼 길을 와서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첫
닭이 울고, 울면 곧 약수터로 갈 참이어 한데 잠자다 경풍난 사람처럼 뛰쳐
일어나 집으로 달려가다니…… 이 깊은 밤에.
그야 뿌리치고 가기로 들면 누가 하는 노릇이라고 하릴없이 바라다나 줄지
언정 부득부득 붙잡아 앉히지는 못하겠지만 좌우간 졸지에 그토록 황급히
서둘지 아니치 못하는 구실이 있어야 할 말이었다.
5. 오기로만 마련인 것
주인편의 용길어머니는 박씨부인이 칙사 같은 손님이었다. 아들 용길이 그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고 있어 드러내놓고 언약한 것은 없었다지만, 나이 스
물이 넘고 하였으니 쉬이 장가도 들이고 박토 마지기라도 떼어주기를 은근
히 바라 마지않는 참 일변, 그새 십여 년을 두고 그 집 땅을 도지 한톨 무
는 적 없이 공으로 부쳐먹어 와 아쉰 때면 돈냥씩 돈관씩 손쉽게 얻어다 쓰
곤 해 이렇게 두루두루 그 집 끈에 살아가다시피 하며 그 집에다 가볍지 아
니한 소망을 걸고 있으며 하는 터라 단순히 친정 사촌이라기보다도 차라리
상전 셈이었고, 따라서 큰손님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보조원(憲兵補助
員[헌병보조원])이 와서 야단을 쳐도 청결을 잘 아니하려 드는 집안을 새벽
같이 안팎 다 말끔히 소쇄하고 엊그제 추석날도 차려먹지 못한 귀한 음식을
오는 이의 식성을 헤아려 이것저것 여러 가지 장만을 하여 놓고 장난꾸러기
둘째와 세째놈은 조반 일찌감치 먹여 외가(外家)로 쫓아버리고 하고서 이
어려운 손님을 그는 맞이하였었다. 사립문 밖에서 마주 서서 우선 이런 인
사 저런 인사가 한 둘레 끝났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집으로 들어가면서였다.
“참 오다 중로서 그애 못 만났어 ? ”
용길어머니가 지날말삼아 물었다. 그애란 물론 용길이었다.
박씨부인은 심상히
“아아니 ! ”
“그앤 그럼 샛길루 해 갔구면 ?…… 동생은 신작로루 해 왔지 ? ”
“응 ! …… 난장 구경일 테지 ? ”
“사람 된 소릴 허겠지 ? 딴 남의 집두 아니구 이모네 댁인데, 명절이랍시
구서 집이 와서 열흘 보름씩 펀펀 자빠져 놀다 한 다 채우구섬 어실렁 어실
렁 겨들어와서야 어디 도리냐구…… 쯧 명절은 쇘은깐 가 허다못해 조석으
루 마당 귀탱일 쓸더래두 가 있어예지 않느냐구…… 그러믄서 즘슴 때 좀
못 돼 떠났지 아마 ? ”
“………”
박씨부인은 더럭 의증이 났다. 용길은 평소에 별반 게으름을 부린다던가
남의집살이의 행티를 낸다던가 하는 바는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와락 근경
속 있고 지나치게 착실한 머슴인 것 또한 아니었다. 그저 예사 머슴이었다.
지나간 정월만 하여도 항용 남의 집 머슴이 하듯이 섣달 그믐날 세찬과 설
빔 주는 것 한 짐 꽁꽁 짊어지고 저의 집으로 나가 설 세고 초이튿날 세배
겸 설음식 먹으러 들어왔었고, 보름날 두레 따라 기맞이(旗會[기회]) 구경
왔다 들렀고, 그리고는 기한 스무 날을 다 채우고서야 아주 들어와 일을 거
들었고 하였다. 그러던 아이가 그새 별안간 철이 나 그토록 알뜰한 머슴에
살뜰한 조카로 변한 것이라고는 막상 미덥지 못한 소리였다.
‘근사를 두느라고…… 어서어서 인제는 장가나 들여 땅이나 몇 마지기 떼
어주어서 제노릇하고 살 마련하여 주기 바라느라고…… 그러자니 내 눈에
잘 보이고 싶어서……’
이렇게 하는 생각이 가장 온당코 근리한 해석일 것이었다. 그러나 박씨부
인은 선뜻 요 전날 밤의 그 우물두덩엣 광경이 눈앞에 서언하면서
‘딴 속이 있지이 ?’
하였다. 심정이 무럭무럭 나면서 일 들어맞는 것이 고소하여 짜릿하니 쾌감
이 아울러 솟았다. 하되 그것은 며느리를 두고서지 조카요 머슴 용길에 대
하여는 아무렇지도 아니하였다. 어떤 꼬마동이리라, 때마침 집 뒤꼍으로 지
나가면서
“도라지 캐러 간다고 이 핑계 저 핑계 하더니 총각 낭군 무덤에……”
하고 제법 멋들어지게 부르는 노래가 들렸다.
‘흥 누가 아니래 !’
박씨부인은 속으로 그러면서 입을 비쭉하였다.
저녁을 입맛 없이 마치고 내내 울울코 꺼림한 심사인 채 이윽고 자리에 누
웠다.
그런 속을 알 턱이 없는 용길어머니라 베개를 나란히 하고 누워서는 불붙
는 데 부채질이었다.
“그애 용길이 땜에 난 요새 실없이 걱정야 !……”
“왜 ? ”
박씨부인은 용길의 이야기이고 보니 얼른 귀가 반짝할밖에.
“글쎄 혼인말을 내지두 못허게 허는구먼 ! ”
“혼인말을 ?…… 무어라구 ? ”
“지끔 내 형편으로 무슨 수로 장갈 가구 어쩌구 허느냐구……”
“언젠 성세 모아 부자장자 된 댐에 장가갈랬든감 ? ”
“누가 아니래 !…… 올 정월만 해두 그땐 혼인말을 낸다 치면 되려 좋아
허는 낯색이드니 이번 나와선 글쎄……”
“아마 어디 반헌 데가 있는감 ? ”
“제 주제에 무슨 그럴 리야 있으꼬만서두……”
“누가 알우 ? 사내자식 나이 이십이 적어서 ? ”
“제 말은 다른 게 아냐 ! 당장 쇠천 한푼 모아둔 것 없이 맨손 쥐구 혼인
을 어떻게 허며…… 남 데려다 배곯리구 헐벳기구 허잘 며리가 있느냐
구…… 전 거저 이모헌테 맨 놈인깐 이모가 넌 인전 고마안 가속이나 얻어
늙은 어머니 뫼시구 가 살라시믄 그럭허는 것이구 몇해 더 내 일 보살펴다
구 허시믄 보살펴 드리는 것이구 허는 게 옳지. 무얼 괜히 마땅한 자리가
있느니 어쩌느니 해가지군 어머니가 나서서 그래쌓느냐구……”
용길은 실상 모친이
‘이러저러한 혼처가 있어 두루 가합할 듯싶으니 서둘러서 이 가을이라도
혼인을 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고 하는 말에 간단히
‘이모더러 상의하시오. 오륙 년 부려먹었으니 자기도 생각이 있을 터이지
요.’
했을 뿐이었었다. 한 것을 용길어머니는 없는 말 있는 말에 우는 소리 보
태서 늘어놓았던 것이요 속인즉은
‘그러니 어서 장가도 들여 주고 먹고 살 것도 조금 떼어 주고 하여 달
라.’는 은근한 재촉이었던 것이다.
듣는 박씨부인은 그러나 때가 때인지라 적실코 용길이 장가갈 마음이 없어
서(그 소위 반한 데가 있어서) 역시 핑계를 댄 것으로만 해석이 되었다.
박씨부인의 기괴한 환상은 실로 이렇듯 단순하고도 정상한 재료에서 출발
한 결론이었다. 무섭게 삐뚤어진 곳으로 대고 천착을 한 결론이었다.
추악한 패륜(悖倫), 죽여 마땅한 죄상, 가문의 치욕, 생각을 돌이켜 한다
면 모골이 송연할 노릇이었다. 참으로 그와 같이 결론치 아니치 못하는 마
음부터 송구할 일이었다. 부디 사실이지 말았으면 싶을 만큼 너무도 중대한
사건이었다. 최후적인 확증을 잡기가 오히려 겁이 났어야 할 것이었다. 그
렇지만 박씨부인은 그러한 희생이나 타격 다 불고하고 사실이 아니지 말았
으면 싶었다. 아무리 크고도 메꾸기 어려운 희생과 타격이더라도 그는 며느
리가‘죄 있는 며느리’인 것이 통쾌한 것이었다. 가까스로 첫닭을 울렸다.
마지못해 약수터로 가서 물맞이를 하는 시늉 하였다. 그리고는 그 길로 집
으로 향해 길을 떠났다. 용길어머니가 질색을 하며 만류하였으나 긴한 일이
깜박 생각이 났노라고 날이 새기 전에 돌아가야만 큰 낭패를 보지 않게 될
일이라면서 잡는 손목 뿌리친 후 두 주먹 불끈 쥐고 집으로 집으로 반달음
질을 쳤다.
새로 두시를 치고도 한참이나 있다야 준호는 겨우 돌아왔다. 진주는 애를
쓰면서 기다리던 것은 하옇든, 아무 탈이 없고 무사하여 돌아와 주는 것이
생색처럼 고맙고 반가왔다.
준호는 허리가 꼬부라지도록 시장하여 가지고 들어단짝 인절미를 찾고 곰
국을 찾았다.
앉은 자리에서 그 큰 인절미를 여남은 개나 먹었다. 친 지 나흘이나 되어
약간 쉬치근할뿐더러 딱딱해지기까지 한 것을 새댁이 구워주마는 것도 쪄주
마는 것도 급해서 마다하고 그대로 조청에 찍어 밀어넣듯 연방 먹어대었다.
그 위에다 다시 뜨끈뜨끈히 데운 곰국에 밥을 말아 한 그릇을 달게 먹었다.
진주는 낮도 아니요 잘 자리에 너무 과식하는 것이 마음에 좀 걸리지 않는
바는 아니었으나 시장 끝에 입맛이 당기어 잘 먹는 것을 양 나삐 물러나랄
수는 차마 없었다. 준호는 수저를 놓던 길로 나가 쓰러졌다. 쓰러져서는 새
댁한테 오늘 난중에 갔던 이야기를 하려니 하려니는 생각하면서도 쏟아지는
졸음에 이내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 어느만때나 되었는지 이상한 소리에
진주는 어렴풋이 잠이 깨었다.
“아이구 배야 ! ”
새서방의 신음소리였다.
‘아뿔싸 !’
그러면서 벌떡 일어나 불을 켰다. 핼쓱한 얼굴에 이마엔 방울방울 비지땀
이 솟아가지고 부대끼고 있는 모양이 환하여지는 촛불빛에 드러났다.
이마를 짚어보았다. 펄펄 끊었다. 손을 만져보았다. 차디찼다.
“몹시 아파요 ? ”
“응 ! 아니 ! ”
살살 배를 쓸어주었다. 차차로 더 부대꼈다.
나가서 강집을 내어 데워다 사향소합환을 개어 떠넣어 주었다.
잠시 기다려 보았으나 갈앉는 동정이 없고 여전히 더 부대껴만 가더니 구
토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시원히 게우지도 못하고 되디된 것을 조금씩 넘길
뿐이었다. 등을 쳐주고 바르개에서 닭깃을 뽑아 목구멍에 넣어주고 하여도
별양 소용이 없었다.
한 시간 가까이 되었음직하여선데 안방에서 다섯시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때는 준호는 몸을 뒤틀고 입을 딱딱 벌리면서 곧 죽는 거동을 하였다.
진주는 안방으로 건너가 쌈싸우듯이 삼월이를 두드려 깨워서 의원을 청하
러 보냈다.
약방은 그리 멀지 않아서 이윽고 의원이 왔다. 오감찰이라는 신선처럼 허
연 노인이었다.
암만 노인이라도 내외는 하는 체해야 하는 법이라 진주는 마루로 나와 문
치에 가 넌지시 비켜섰다. 의원은 삼월이가 인도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의원은 맥을 보더니 먹은 것이 꽉 체했다면서 침대롱을 꺼내서 사관을 놓
았다. 양 엄지손가락 사이와 두 팔목과 도합 네 대를 놓았다.
가느다란 침 끝으로 따끔 찌르고는 톡톡 퉁기고 찌르고는 톡톡 퉁기고 하
던 것인데 그 간단한 사관이 거짓말같이 영검스레 마지막번의 침을 뽑기가
무섭게 우선 후련히 한바탕 토를 하는 것이었었다.
의원은 얼마 동아 앉아 동정을 보면서 배도 쓸어주고 하다가 마지막 한번
더 맥을 짚어본 후에 혼잣말로
“그만하면 급한 증세는 돌렸다 ! ”
하고 천천히 일어섰다. 병자는 그새 벌써 복통이 많이 개이고 앓는 소리도
덜했다. 진주는 비로소 가슴 두근거리던 것이 엔간히 진정됨을 깨달았다.
여섯시를 치고 날은 활짝 다 밝았고 한새벽이었다.
의원은 삼월이더러 약을 몇 첩 지어 줄 테니 따라오는 말을 이르고는 한걸
음 앞서 차면 밖으로 나갔고. 우물에서 걸레를 빨아다 건넌방에 들여놓느라
고 잠깐 충그렸다 의원의 뒤를 좇아 삼월이가 마악 마당을 중간쯤 건너고
있는데 느닷없는 박씨부인이 우당퉁탕 뛰어들었다.
“이년 ! 새서방님 죽였지 ? ”
삼월이를 가로막듯 우뚝 그 자리에 가 멈추고 서면서 단박 을러메는 말이
이 말이었다.
절골로부터 달려오고 있던 박씨부인은 부전부전 날이 밝아감을 따라 현장
을 증거잡기엔 십상 때가 늦은 것이라고 저으기 실망을 하였었다. 그러면서
도 걸음은 늦추지 않고 오히려 더 빨리 하기를 마지 아니하였다.
마침내 동구 안으로 들어섰다. 동네 앞을 가로로 건너간 신작로요, 집은
동네 맨앞으로 신작로 외의 사이에 몇 이랑의 논을 격하고 있기 때문에 동
구 안만 들어서면 우선 집이 보이게 마련이었다.
비밀을 머금은 듯 침침한 새벽빛에 잠기어 집이 희미한 윤곽을 드러내었
다.
대문을 열게 하여서는 안되고 뒤꼍으로 해서 울타리를 뜯고라도 기척없이
들어가야 하느니라고 생각하면서, 어느덧 신작로에서 집으로 난 고무래정자
샛길 머리에 당도하였다. 집이 정면으로 보이는 곳이었다.
‘ ? ……’
샛길로 꺾이어들려던 박씨부인은 움칫하고 놀란다. 대문이 환히 열리어가
지고 있던 것이다.
‘그럼 딴 놈이었단가 ? 용길이가 아니고……’
‘워너니, 그럴 리가……’
다행중 더욱 다행이었다 기운이 갑절이나 솟았다.
샛길로 내려서서 두어 걸음 걷다 말고 또다시 놀라야만 하였다. 그 열린
대문으로부터 웬 사람인지가 처억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
무릎을 탁 칠 뻔하였다.
‘저놈이 누구인지를 보아두어야……’
그러면서 급히 쫓아오는데 연자방앗간 앞으로 해 저편을 향하고 천천히 걸
어가고 있는 그 인물은 뜻밖에도 동네 활량도 어떤 총각놈도 아니요, 허연
늙은이였으며 의원 오감찰이었다.
‘ ?……’
‘의원 ?……’
‘의원이 어째?’
‘오오 !……’
가슴이 철썩하고 새 정신이 번쩍 났다.
‘약을…… 죽일 약을 멕여놓고 !’갈데없었다.
이가 뿌드득 저절로 갈렸다.
자가사리 낚시에 잉어가 물린 셈이어서 생각이 않이 소득이 큰 것은 통쾌
한 일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자식의 생명이 제웅되었다는 두려운 사실이
숨어 있음을 생각할 때 통쾌를 통쾌하여 할 경황보다는 역시 치가 떨리지
아니할 수 없었다. 때아닌 때에 의원이 다녀가니 아무라도 첩경
‘집안에서 누가 곽란이 났던지 혹은 낙상을 하였나보다 !’
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상식일 것이었다. 한 것을 박씨부인은 집안 식
구 다 젖혀놓고 하필 준호를…… 그리고 독살(毒殺)인 것으로 선뜻 단정을
── 실로 단정을 ── 하여버렸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와 같이 부자연스럽
고도 특수한 예외의 단정을 함직한 근거가 있었더냐 하면 매양 아니었다.
억측의 선입관으로 인한 단지 독단이었다. 며느리로 하여금 ‘죄 있는 며느
리’이기를 골똘히 욕망하는 박씨부인이었다. 이 골똘한 욕망이 현실의 자
격을 갖추기 위하여는 그 중간에 억지 즉 독단이 불가불참예를 하여야만 하
는 것이었다. 가령 그 독단이 나중 가서 흐너지는 동시에 결론한 바가 아무
런 가치가 없는 것이 되어버릴망정이라도…… 다못 두루 그런 욕망하고 억
측 독단하고 하는 것이 모두가 소위 잠재의식의 시킴이지 알고서 하는 노릇
은 막상 아니었다.
‘죽였지’와‘죽었지’는 뜻인즉은 대단히 다르나 발음으로는 획 하나 상
관이라 매우 근사한 말이어서 박씨부인의 그
‘이년 새서방님 죽였지 ?’
하는 호통을 ‘죽었지’로 진주는 들었을 뿐이었다. 경우가 경우인만큼
‘죽었지’로 들린 것이 차라리 당연한 노릇이었다. 만일‘죽였지’로 들었
다면 그는 짜장 기절을 하였을는지도 모른다.
집 문전에서 마침 의원이 다녀가는 것을 만나 물어서든 짐작으로든 새서방
이 밤 사이 곽란이 나서 아닐말로 죽을 뻔을 한 줄을 알았나보다 하면 별반
이상할 것이 없으나 도대체 이 첫새벽에 들이닥칠 줄이야 정히 마른 하늘에
벼락이었다.
의원과 갈려들어 새서방의 이마를 짚어 주고 앉았다가였다.
‘어머님이 ! 벌써 !’
밑도 끝도 없이 그 지는 호통소리에 그렇게 놀라면서 정신이 아찔하였고,
잠시는 어떻게 할 바를 몰라 했다. 앓는 준호도 순간 아픔을 잊고 한가지로
놀라면서 몸을 떨었다.
삼월이는 박씨부인의 돌아옴이 이른 것이 뜻밖이고 무엇하고여서보다도 무
심코 걸어나가다 별안간 누가 펄쩍 뛰어드는 바람에 그만 제풀 소스라치게
놀랐고 주츰 그 자리에 가 마주 멈추어섰다.
“으응 이년 ? 새서방님 죽였지 ? ”
박씨부인은 발을 쾅 구르면서 재차 호통을 지르고 그제서야 삼월이는
“안직 안 돌아가싰이유우 ! ”
하고 잔뜩 겁먹은 소리로 대답이었다. 삼월이 또한 거듭하는 ‘죽였지’를
‘죽었지’로 알아들었고 그 대답이었던 것이다.
“안지익 ? 안지익 ?……”
황소 영각하듯 으르렁거려 다지면서 한 발씩 한 발씩 대든다. 죽였지야고
물은 대답이
‘아직 안 죽었어요.’
니 죽이려고 한 사실이 있었음을 제풀로 증언함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년, 내년이 증거인 줄 알아 ! ”
“쇤넨 아무 죄두……”
“이년, 누가 네년더러 죄지랄까봐 지레 방색야 ? ”
그러면서 박씨부인은 비로소 꼿꼿이 머리를 돌려 종종걸음으로 마중을 내
려오고 있는 며느리를 무섭게 부릅떠 본다. 집어삼킬 듯이라더니, 며느리를
부럽떠 보는 박씨부인의 눈과 얼굴을 참으로 무섭고 험하였다.
가까이 서 있어서 그를 똑바로 보고 있는 삼월이는 너무도 무섭고 험한 그
눈과 얼굴에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늘 주인마님의 노한 눈과 얼굴을 대
하여 왔지만 이런 무서운 노함은 처음이었다.
새서방을 독살을 도모한 며느리를 노하지 아니할 시어머니가 박씨부인 아
니기로 없을 바 만무한 것, 그의 노함은 진성의 노함이었다. 여느때처럼 무
단히 속이 상하여 내떠는 성이 아니었다. 성을 내기 위한 성, 억지로 내는
성이 아니었다. 정말로 나서 난 성이었다.
사건이 예사 사소한 일이 아니라 지극 중대한만큼, 또 성도 옳게 난만큼
박씨부인은 평소와 같이 덮어놓고 고함이나 쳐 기승을 부리고 함으로써 허
턱 화풀이나 하고 하기로만 일을 삼으러 들지 아니하였다. 며느리의 죄상이
그쯤 분명하여진 이상 써 그 생살여탈을 임의로 할 수가 있다는 승리감·만
족감으로 하여 훨씬 침착히 일 조처를 할 여유가 저절로 우러났다. 이를테
면 살진 암사슴을 물어다 논 범처럼 마음이 느긋하여지던 것이었다.
죄가 없더라도 노염난 시어머니 앞이 어렵지 아니치 못할 터이거든, 항차
금령의 난장 구경을 보낸 과실이 있어 결국 그 빌미로 저렇듯 병이 난 것이
요 하니 진주야 좀 마음 송구스럴 리가 없었다.
“어머님, 어떻게 이렇게 일찍……”
삼가롬을 다하여 인사를 드린다.
박씨부인은 사나운 중에도 다시 차가운 눈매로 쏘아볼 뿐 아직 아무렇단
말이 없다.
“지가 간밤에 먹은 것이 체해서……”
“흥 ! 체해서어 ? ”
그렇게 박씨부인은 빈정거리듯 말허리를 잘라 것질러버리고는 삼월이를 고
쳐 족친다. 문초인 것이다.
“이년, 네 이실직고를 해야망정이지 털끝만치라두 기였단 네년 목버틈 썰
어놓는 줄 알아 ? 응 ? ”
“마님, 살려주시유 ! 쇤년 아무 죄두, 마님……”
“어제 낮에 나 길 떠나구 없는 새 너 이년 나가 싸아댕기믄서 놀았지 ?

“………”
“응 ? ”
“내애 ! ”
“밤엔 ? ”
“잤이유 ! ”
“초저녁버틈 ? ”
“내애 ! ”
“새성방님 즘심진지 잡수섰지 ? ”
“진진 안 잡숫구……”
“그럼 ? ”
“다식허구 엿 그런 것만……”
“잡숫구 나서 배아푸다구 토허구 허섰지 ? ”
“아니유 ! ”
“이년 ! ”
“낮엔 겐찮으섰이유 ! ”
“그럼 저녁진지 잡숫구 나서 ? ”
“저녁진지 잡수러 안 들오섰이유 ! ”
“안 들어와 ? 어디 나갔다 ? ”
“………”
“응 ? ”
“………”
“이년이 ! ”
“저어 난장……”
“난장 ? 난장 구경을 가섰단 말이지 ? ”
“내애 ? ”
삼월이는 하릴없어 대답을 아니하지 못하면서도 항상 저한테 살뜰히 하여
주고 제가 잘 따르고 하는 새아씨가 민망하여 연방 곁눈해 보고 보고 하기
를 마지않는다.
“가시는 것 보았을 테지 ? ”
“아니유 ! ”
“그럼 ? ”
“널뛰구 놀다 들와 본깐 새서방이님이 안 기시길래…… 안 기시실래……
새아씨께 이쭈어 보았더니 난장……”
“구경을 가섰다구 ? ”
“내애 ! ”
“으응 !……”
박씨부인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면서 끄덕이던 고개를 며느리에게도 돌린
다.
“나 없는 새 제사날로 난장 구경을 감히 가지는 못했을 터…… 매양낭자
(娘子)께서 가라구 보냈을 테지 ? ”
“………”
“어째 대답이 없는고 ? ”
“으응 ? ”
“하두우 심심해허믄서 가구퍼허길래 미련한 소견에 고만……”
“흥 ! 핑계가 좋아, 우선 난장 구경 내보내놓구서 말이 없다아 ?……”
그만큼 하고는 또다시 삼월이더러
“그래 난장 구경을 가셨다 오시긴 ? 어느만때쯤 오섰다 ? ”
“오시는 것두 못 뵈었이유 ! ”
“초저녁버틈 쿠울쿨 자빠져 자느라구우 ? ”
“………”
“그러구 ? ”
“아까 새아씨가 깨시길래 건너가 뵈었더니 새서방님이……”
“그래서 ? ”
“배가 아프다시믄서……”
“으응 !……”
박씨부인은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면서 잠깐 생각하다가 이윽고 음성과 표
정을 새로이 사납게 하여가지고
“너 이년, 이제버틈이 정인 줄 알아 ? ”
“………”
“너 어제 새아씨 심부럼으로 저자에 가서 무엇 사온 것 있지 ? 응 ? ”
“어저끼유 ? ”
“그래 ! ”
“아무것도 안 사다 드렸이유 ! ”
“이년 ! 바른 대루 불지 못헐까 ? ”
“………”
“양잿물 사왔지 ? ”
“아니유 ! ”
“이년이 지금 죽질 못해 이러지 ! ”
“저업때 빨라허든 날은 양잿물 사왔어두 어저낀…… 어저낀 가게두 닫치
구 어데 열어놓지두……”
“접때 사온 양잿물 쓰구 남았으렷다 ? ”
“내애 ! ”
“많이 ? ”
“내애 반 사발이나……”
“………”
박씨부인은 아까처럼 또 입술을 지그시 깨물면서 곰곰 생각을 하더니 ──
생각한다느니보다도 무엇인지를 거듭 망설이더니 마침내
“용길이 도령은 ? …… 왔었지 ? ”
“내애 ! ”
“와서 ? ”
“와서 바루 즘심 잡숫구 나가시구 안 들오섰어유 어태……”
“저녁두 안 먹으려 둘오구 ? ”
“내애 ! ”
“둘와 자지두 않구 ? ”
“내애 ! ”
“초저녁버틈 자빠져 잔 년이 머슴 둘와 자구 안 잘 걸 어떻게 알아 ? ”
“아까 의원 뫼시러 가믄서 겉이 가시자구 머슴 사랑으로 나가 봤이유 !
아무두 없이유 ! ”
“용길이도령두 없구, 다른 집 머슴두 아무두 ? ”
“내애 ! ”
그럴 때 마침 당자 용길이가 밭은기침을 하면서 차면 안으로 끼웃하고 들
어섰다. 신발에 이슬이 흠뻑 채이고 옷이랑 후줄근한 것이 새벽길을 걸어온
표적이 역력하였다.
박씨부인은 밭은기침 소리와 함께 홱 등 뒤로 돌아서면서 용길의 낯꽃과
행색에서 무엇을 찾으려는 듯 날쌔게 위아래를 훑어본다.
용길은 아닌새벽에 대문 밖까지 큰소리가 들리어 들어와서 보니 식구들이
심상치 아니한 기색으로 웅기중기 마당 가운에 나와 섰어 하여 정녕 또 무
슨 풍파가 인 것이라 직각하고 제풀에 목이 움칫하였다. 그러나 모르는 체
흔연히
“언제 오셨어요 ? ”
“넌 그래 어딜 갔다 지금야 이러구 오는 심이냐 ? ”
나무람조로 버럭 그러는 것을 용길은 손이 뒷덜미를 만지면서 히죽이
“난장 구경을 갔다……”
“난장이 새벽꺼지 선대드냐 ?
“술을 한잔 먹은 것이 고만 취해 떨어져 잔 것이 히 ! ……”
“어디서 잤단 말야 ? ”
“깨서 본깐 새벽인데 텅 빈 난장마당으 가 우리 일행 몇만 히히 ! ……”
“어제 즘심때 집인 댕겨 갔드라믄서 ? ”
“내애!……”
“그러군 지끔 들오는 길이지 ? 그 안엔 토옹 와 얼찐두 아니했지 ? ”
“내애 ! ”
“바른 대루 대야 헌다 ? ”
“바른 대루나마나 그뿐인걸요 머 ! ”
“겉이 난장 구경 가서 끝끝내 겉이 다니구, 술 먹구 난장마당으서 자구
그러구 겉이 나오구 헌 일행들이 다아 있으렷다 ? ”
“그럼요 ! 한둘인가요 ! 모두 해 다섯이 얼려가지구섬 ……”
“하루 저녁 한뎃잠 자길 신수 좋았지, 차라리 ! ”
박씨부인은 혼잣말로 그러고는
“아무데두 가지 말구 사랑으 나가 있거라 ! ”
하고 이른 후 비로소 건넌방을 향해 분주히 올라가는 것이었었다.
진주는 가슴이 들이 떨리고 오금에 맥이 빠져 곧 쓰러지려고 쓰러지려고
하는 것을 가까스로 몸을 지탱하느라 연해 휘뚝거리면서 시어머니의 뒤를
따른다.
이미 저지른 과실이니 당하는껏 종용히 일을 당하는 것이라 하여 처음엔
매우 침착할 수가 있었다. 그러자 시어머니가 차차로 그 말끝마다 딴 무엇
이 있어 잡도리고 서둘면서 어딘지 평일 적과는 다르게 판을 차리는 품이
단순히 새서방의 병난 것을 노한 것이라거나 그리고 난장 구경을 가게 한
죄를 캐고 다스리고 하기 위한 거조와는 아무리 박씨부인이기론 지나치게
허겁스럼과 아울러 부전스런 구석이 보이곤 하여 내심에 퍽 이상타 싶은 생
각이 노상 없지가 못했었다. 그러나 설마 새서방의 음식에 사약을 탄 세상
에도 무섭고 끔찍한 혐의인 줄은 까맣게 눈치나 채었을 턱이 없었고…… 하
다가 나중 양잿물 소리가 나와서야 화닥닥 정신이 들었었다. 그러면서 시어
머니의 자초로 수상히 서둘던 태도가 주욱 되생각히면서 죄다 와 들어맞고
의심할 여지조차 없었다.
꿈이 아닌가 하였다. 그러나 꿈결 같으면서도 버젓한 생시였다.
‘새서방을 ! …… 죽이려고 ! …… 양잿물을 !’
생각만 하여도 무서운 소리였다.
황당무계하다거나 그래서 애매하다거나 또는 하옇든 혐의를 받은 이상 장
차로 치를 단련이 걱정스럽다거나 이런 것은 미처 경황도 나기 전이요, 겸
하여 나중 문제였다. 우선 그리고 오직
‘새서방을 죽이려고 양잿물을 먹이었다.’
는 말 그것 스스로가 소름이 쪽 끼치고 무서웠던 것이다.
모친이 방으로 들어와 서는 줄을 알면서도 준호는 눈을 감은 채 뜨려고 하
지 않는다. 얼굴에는 하룻밤 사이에 가뜩이나 핼쓱하여진 병색에다 겸치어
슬픔이 가득히 드리워 있다.
박씨부인은 한참 동안 아들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섰더니 천천히 베개 옆으
로 가 앉으면서 지천하듯
“이놈 입 벌려보라 ? ”
한다.
준호는 못 들은 체 눈썹 하나 까딱하는 반응도 없다. 준호가 모친의 말이
면 말, 영이면 영 앞에서 이렇긋 제법 앙똥하기도 별반 드문 일이었다.
박씨부인은 그것만으로써 크게 한바탕 꾸짖었을 터이로되 병중일뿐더러 판
국이 워낙 판국인지라 짐짓 씻어넘기고 만다.
“보나마나 입술이 저렇게 성헐 젠 양잿물을 앵긴 게 아니구먼 !……”
박씨부인은 혼잣말로 그러다가
“그래 먹으믄서 바루 입안이 불이 나구 허드냐 ? 그렇잖구……”
하고 얼마쯤 음성을 부드럽혀 묻는다.
그 말에는 준호는 얼른 고개를 젓는다. 독약을 먹었음을 부정함으로써 새
댁을 싸고 돌자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반대의 효과를 낳는 것이 되었
다.
“그러면 그렇지 ! 양잿물이 아냐 ! 다른 약을 썼어 ! 매양 비상(亞砒酸
[아비산])테지 ! ”
“어머니 ! ……”
따라 들어와서 한옆으로 비껴 섰던 진주는 더 참지 못하고 한마디 울음 섞
어 그렇게 부르면서 접질리듯 방바닥에 가 엎드린다.
“어느 입으로 날 시에미라구 부르는고 ? 흉악헌 요물이 ! ”
“하늘이 내려다보실까 무서요 어머님 ! ”
그때였다. 준호가 잠시 신간하였던 복통이 다시 나
“아이구 배야 ! ”
하고 신음 소리를 가늘게 지르면서 허리를 틀었다.
박씨부인도 그리고 경황중에도 반사적으로 몸을 들어 진주도 한가지로 눈
이 병자에게로 모였다.
박씨부인은 남의 어머니는 역시 어머니였다. 눈을 아들의 얼굴로 그리고
손은 저절로 아파하는 배를 쓸어주려 가지 아니치 못하던 것이었었다.
손에 뒤미처 눈도 자연 배로 옮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으응 ? ……”
가던 손을 그대로 멈추면서 박씨부인은 더럭 더 험하여지는 눈을 아랫도리
만 걸친 처네 위로 비어진 준호의 골마리로부터 며느리의 얼굴로 대고 부릅
뜬다.
“이러구두 ? ”천둥소리처럼 우렁찬 호통이었다.
진주는 영문을 몰라 아직도 뻐언하고 있고
“배꼽으다 바눌을 꽂아놓구두 ? ”
박씨부인은 기운찬 손가락질과 함께 더욱 호기롭게 호통이다.
진주는 시어머니가 손가락질하는 곳 새서방의 골마리에 가서 배꼽 어림으
로 짤막히 실을 꿴 채 꼿꼿이 반 넘겨 꽂혀가지고 있는 한 개의 바늘을 발
견하기 전에 시어머니의
‘배꼽에다 바늘을 꽂아놓고도……’
하는 소리로써
‘아 ! 그 바늘이 !’
하고 놀라기에 넉넉함이 있었다.
얌전스런 여인이라도 바느질을 하다 골몰중에 바늘을 잃는 수가 더러 있
다. 잃은 바늘이 바로 그 바느질 속에 가 묻히든지 꽂히든지 하는 수가 또
한 없지 아니하다. 진주도 올 추석 바느질을 하면서 바늘을 잃었었다. 다른
곳에 떨어졌던지 바느질밥에 쓸려나갔던지 하였다면이거니와 혹시 바느질
속에라도 묻혀 들어간 것이라면 큰일이라고 애를 쓰면서 무한 찾아보았으나
마침내 찾지 못하고 말았다. 그 바느질이 곧 어제 새서방을 난장 구경을 보
내면서 날이 저물게 되면 혹여 추워할세라 갈아 입혀 준 모시 겹것이었었
다. 하필……
그렇더라도 또 하필 그 바늘이 배꼽 어림에 가서 묻힐 것은 무엇이며 진종
일과 밤새도록 가만히 있다가 새벽에야 꼿꼿이 일어섰을 것은 무엇이며, 가
사 그렇게 일어선 지가 오랬기로니 그동안 진주든지 하다못해 의원이나 삼
월이가 그것을 못 보았을 것은 무엇이며, 그러다 필경 지금이야 사람의 눈
에 뜨이되 유독 박씨부인의 눈에 뜨일 것은 무엇이며……공교롭기 짝이 없
는 노릇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우연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우연으로 돌리고 말기엔
너무도 귀신의 장난에 가까왔다.
진주에게는 그것이 우연이 아니면 부득불 귀신의 장난이었으나 박씨부인은
조금도 우연일 며리도 귀신의 장난일 필요도 없었다.
어엿이 사람의 한 짓이었다. 음식에 독약을 타 먹인 솜씨나 마찬가지로 사
람 ── 며느리의 한 짓이었다.
이 배꼽의 바늘은 독립한 살의(殺意)를 머금고 있는 자일 뿐만 아니라 나
아가서는 새서방을 없이할 목적으로 음식에 독약을 타 먹였다는 것이 드디
어 역력한 사실임을 박씨부인으로 하여금 우선 박씨부인 자신에게 강조를
시키는 것이어서 매우 깔보지 못할 가치를 부차적으로 가지는 것이었었다.
그러한만큼 그는 반대로 진주를 위하여서는 대단히 불리한 재료가 되지 아
니할 수가 없었다.
‘이러고도 ? 배꼽에다 바늘을 꽂아놓고도 ?’
하늘이 내려다보실까 무섭다고 한 소리가 무색하고 당장 말문이 칵 막혀버
리고 말았다.
박씨부인뿐만 아니라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가지고 우물 두덩과 고샅길에
모여 서서 동네 아낙네들이 찧고 까부는 소리를 듯더라도 가령
‘양잿물을 몰래 타서 앵겼다구 ?’
‘아냐 ! 비상이래 !’
‘종작없는 ! …… 괜히 무함을 잡느라구 그랬지 무슨 그럴 !’
‘오감찰두 그러는데 곽란이란대 !’
‘아냐 ! 배꼽으다 작대기만한 바늘을 꽂았대 !’
‘오온 절 ! ……’‘누군 바누질하다 바눌 안 잃어버리나 ?’
‘그래두 ! …… 아 열 길 물속은 알아두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구, 고
얌전한 것이 혹시……’
이렇듯 열에 하나나 둘쯤은 남들도 진주를 의심하는 축들이 없지가 못하였
다. 침소봉대(針小棒大)란 말이 있거니와 과연 바늘이 작대기질을 하는 판
이었다.
“에이 끔찍헌지고 ! 에이 흉헌지고 ! 에이 무선지고 ! ”
박씨부인은 커다랗게 몸서리를 쳐싸면서 연방 그러다가 벌떡 떨치고 일어
서더니 호기 있게
“삼월아 ! ”
“내애 ! ”
얼른 앞 툇마루에서 대답이다.
“에이 끔찍헌지고 ! …… 너 이년 힝나케 말우물댁에 가서……”
말우물댁이란 친정집 ── 준호의 외가였다.
“에이 흉헌지고 ! 에이 무선지고 ! …… 힝나케 가서 생원님허구 아씨허
구 지끔 곧 좀 건너옵사구 응 ? ”
“내애 ! ”
“냉큼 가 선 자리에서 겉이 모시구 와 ! 응 ? ”
“내애 ! ”
“물으시드래두 주둥이 까지 말구 거저 모시구만 와 ! ”
“내애 ! ”
“에이 끔찍헌지고 ! ”
“………”
“삼월아 ? ”
“내애 ? ”
“나가다 용길이도령 들여보내구 ! ”
“내애 ! ”
“에이 흉헌지고 ! 에이 무선지고 ! …… 내 집이 어떻게 망허면 못 망해
서 천하에 이런 ! …… 에이 끔찍헌지고 ! ”
무수히 그렇게 박씨부인은 그 끔찍한지고와 흉한지고 무선지고를 되풀이하
면서 몸서리를 치고 하던 것이나 이상힌 조금치도 끔찍하거나 흉헙고 무선
실감은 나지를 않고 몸서리도 일부러지 저절로 쳐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
고서 오직 자각하겠는 것은 박하물을 들이켠 듯 가슴 후련한 통쾌감이었다.
가슴 후련한 품이라니, 십여 년 고생하는 체증이 일시에 쑤욱 내리는 것 같
았다. 평생에 이처럼 통쾌한 꼴은 보아본 적이 없었다.
뜨락에서 용길의 기척이 들렸다.
“에이 끔찍헌지고 ! …… 용길이냐 ? ”
“내애 ! ”
“너, 이 길루 곧 가서 두팔이 …… 두팔이 알지 ? 교군 미는……”
“내애 ! ”
“가서 발 맞는 놈 아무나 하나 데리구, 담배 한대전 안에 대령허라구
……”
“담배 한대전 안에유 ? ”
“담배 한대전 안에 대령허면 오늘 교군삯 외에 따루 후헌 상급을 주만다
구……”
“내애 ! …… 그렇지만 댐배 한대전 안에야 어디……”
“잔소리 말구 가 시키는 대루 허기나 해 ! ”
“내애 ! ”
“그리고 용길아 ? ”
“내애 ? ”
“두팔이더러 단단히 그렇게 일르구서, 널랑은 말야 ? ”
“내애 ! ”
“구월쇠네루 가서……”
“저 방물장수허는 구월쇠네유 ? ”
“그래 ! 가서 선 자리서 덜밀 짚어 앞장세워 가지구 와 ! ”
방물장수 구월쇠네란 혼인을 중매한 동네 매파였다.
성화같이 분부를 마친 후 박씨부인은 인하여 준호를 누운 채 그대로 떠안
고 불끈 일어선다. 안방으로 옮겨가던 것이다. 바늘은 손도 대지 않고 꽂혀
있는 채 고스란히…… 그러나 본시 옷 속에 묻혔던 것이 옷이 이리저리 밀
리다 어쩌다 그렇게 꼿꼿이 일어섰던 것이라 심히 불안하였음은 물론이요,
따라서 몸을 한번 건드리자 옷이 약간 밀리기가 무섭게 바늘은 비스듬히 누
워버리고 말았다.
준호는 새댁을 위하여 어떻게 하든 발명을 해주고 싶은, 아니해서는 안되
겠다 싶은 퍽 절박한 마음이었으나 생각뿐이지 와락 좋은 묘책이 없었다.
무턱대고
‘나 아프지 않소 !’
한다는지 또는
‘양잿물도 비상도 먹은 일 없소 !’
‘제가 꽂은 바늘이 아니라 내가 바늘을 가지고 장난을 하다 잃어버린 것
이 그렇게 되었소 !’
한다든지 하였자 번연한 소리여서 속이나 보였지 간대로
‘오오 그렇더냐 ?’
하고 얼른 곧이들으려 할 리 만무한 노릇이었다.
가사 또 그럴듯한 무슨 발명될 말이면 말, 핑계이면 핑계가 있다손치더라
도 평상시에도 주눅이 들어 그 앞에서 고개 한번 똑바로 쳐들지 못하며 말
한마디 제대로 다하지 못하는 터이거든, 항차 이 하늘을 찌를듯 기승을 떨
면서 무섭게 서두는 판이리요. 좀처럼 의사를 행동으로 옮기고 할 강단 같
은 것을 내는 수가 없었다.
답답하고 슬펐다.
그런데다 새댁이 옆에 있어 병간을 하며 살뜰히 시중들어 주는 손 앞에서
마저 떨어져 안방으로 안기어 가자 하니 또한 슬프기 한량없었다. 죽은 듯
감은 눈으로 눈물이 솟아 이슬방울처럼 맺어졌다.
진주는 혼자 있게 되자 더 참지를 못해 그 자리에 엎드러져 소리를 삼키면
서 울었다.
맨처음 당도한 이가 밤골아씨라는 준호의 외숙모였다. 준호의 외숙은 손님
들과 사랑에서 밤새도록 술을 먹다 밝을녘에야 자리에 들어 세상 모르고 잔
다는 것이었다. 가족회의는 그래서 자못 단출하였다.
“온 세상에 이런 변괴가 있겠소 ? 참 남이 알까 무선 노릇이지 ! …… 에
이 끔찍헌지고 ! 에이 흉헌지고 ! ……”
박씨부인은 친정오라범댁이 들어서는 참 한바탕 이렇게 띄어놓고 요란을
떨고 나서
“글쎄 다른게 아니라……”
하고 주욱 며느리의 죄상을 일장 주어 꿰는 것이었다. 간밤의 사단을 물론
중심으로 하되 중간중간 평상시의 온갖 흠결을 연방 가미하여 가면서 그 좋
은 언변으로 썩 그럴듯하고 들음직하게.
준호의 외숙모는 소위 그 끔찍하고도 무서운 변괴를 이야기 들으면서도 조
금치도 놀라 하는 기색이 없었다. 족히 종작할 것이 못되는 소리기때문이었
다. 한 동네요 해서 종종 다니면서 보는 바 다시없이 얌전하고 상냥스럴 뿐
만 아니라 땅에 기는 버러지 하나 밟죽이지 못하도록 마음자리 약한 소부였
었다. 그 생질며느리가 새서방을 죽여 없애려고 무얼 어쩌고저쩌고 하다니
「장화홍련전」이나 「숙영낭자전」보다도 더 야속한 무함이었다. 보나마나
미운 며느리요 못 볶아 체증이 성해하는 시어머니라 공연히 또 생트집을 잡
는 속인 것이 빠안하였다. 막상 그렇다고 즉석에서 맞대놓고 사리를 따지어
그의 밝지 못함을 밝힌다든지, 결과 며느리를 두둔하는 태도를 보이게 된다
든지 하여서는 가뜩이나 성깔을 덧들여 섣불리 일만 점점 더 시끄러워질 모
양이어서 밤골아씨는 끝까지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만 앉았다 잠자코 건넌방
으로 건너왔다.
“가 빌어라 ! 죽여 주시라고 빌어라 ! 시어머니 앞에선 거저 비는 게 제
일이니라 ! 그게 시집살이란다 ! ”
건너와서도 여러 말 않고 이렇게 달래는 것이었었다.
심히 무모한 권임즉도 하였다.
가령 밭은기침 소리가 너무 요망스럽다고 하여 책망이 내렸다든지, 혹은
밥상에 수저 놓임새가 단정치 못하였다고 하여 꾸지람을 들었다든지 이런
어디까지고 소위 시집살이 법도의 범위 안의 일이라고 한다면, 그야 암만
과실이 없었더라고 고즈너기 잘못했읍니다고 비는 것이 며느리의 도리요 현
명한 며느리일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는 죄하고도 극흉한 죄, 새서방을
없애버리려고 음식에 사약을 타먹였다는 둥 배꼽에다 바늘을 꽂았다는 둥
무서운 누명을 쓰고 있는 사람더러
‘잘못했소 !’
하고 용서를 빌라니 결국 없는 사실을 자백하여 애매히 죄를 쓰고 들어 가
란 말과 다를 것이 없었다.
‘새서방을 죽여 없애려고 하기는 하였소. 음식에 정녕 사약도 타먹였고
배꼽에다 바늘도 이 손으로 분명히 꽂고 하였소. 하였으니 그 죄를 용서하
여 주시오.’
영락없이 이런 뜻이었다.
밤골아씨는 그러나 사건이라는 것을 전혀 미더워하지 아니할뿐더러, 잘 아
는 바, 시뉘아씨도 지금 공연히 성정을 부리던 것이지 설마 그 허황한 사실
을 정말 그렇게 믿고서 시방 이러는 것은 아닌 줄만 여기는 터이었었다. 따
라서 덮어놓고 빌기만 하면 역정은 갈앉는 것이요, 역정이 갈앉고 나면 혐
의는 제풀에 풀리어 뒷일은 씻은 듯이 곧 무사하고 말려니 하는 썩 낙관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였기 때문에 태연히 그는 가 빌기를 권하던 것이었
다.
시어머니가 무단한 역정이지, 말하는 것처럼은 적실한 혐의를 두는 것은
아닐 줄로 진주 역시 얼마쯤은 밤골아씨와 마찬가지로 낙관을 하는 생각이
없지가 못하였다. 해서 그는 별반 주저함이 없이 안방으로 밤골아씨를 뒤따
라 건너갔다. 얼른얼른 치맛자락으로 눈물도 닦고 헝클어진 머리도 쓰다듬
고 하면서.
박씨부인은 진주가 대청마루의 샛문으로부터 한걸음 들어서자 들이 호령호
령, 어딜 내 눈앞에 얼찐거린단 말이냐면서 말도 못 붙이게 하였다.
진주는 겨우 문턱 안으로 팔 짚고 꿇어앉았으나 죽여달라고 한마디 비는
소리는 모기소리만큼 가늘기도 하였거니와 박씨부인의 우렁찬 목청에 막히
어 들렸는지 말았는지 하였다.
“형님이 진정을 허시요 ! 진정허셔가지구 제 말두 좀 들어보시구 !……”
밤골아씨가 비로소 무마를 시키고자 하던 것인데 박씨부인은 그 진정이니
제 말 즉 변명을 들어보라느니 하는 소리가 비위에 거슬렸다.
“그럼 내가 발광이 됐단 말요 ? ”
“오온 형님두 ! …… 조용조용히 어떻게 된 사맥인지 제가 허는 말두 들
어보아야 헐 일이 아녜요 ? ”
“들어보나마나하지요.”
“예사 사소한 일두 아니구 형님 말슴따나, 참……”
“그럼 내가 괜히 절 무함을 잡았단 말요 ? 없는 죌 뒤씌우느라구 그랬단
말씀요 ? ”
“그럼 날 무엇하러 불러오섰소 ? ”
밤골아씨의 얼굴과 음성은 마침내 평온치 못하여졌다.
“좀 오시란 게 잘못이요? ”
“우두커니 병신처럼 말 한마디 거들지두 못하구 앉아서 이 잘난 구경이나
허라구 불러셌읍디까 ? ”
“아따, 그렇다면 오시라기가 잘못했나 보우 ! 어서 가시우 ! ”
“있으래도 아니 있어요 ! ……”
밤골아씨는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그는 이 집 며느리는 아니었다. 매어서
눌려 지낼 며리가 없었다.
“이왕 집안간이라구서 불러왔거들랑 의논껏 뒷일 갈무릴 허두룩 하는것이
지, 사뭇 이건 반찬 먹은 무엇 잡두리허듯…… 내가 잘못한 게 무어람 ? 죽
이던 살리던 가부간에 제 말두 들어보구 헐 일이지, 그러랬단다구 되려
날……”
밤골아씨의 마지막 말은 벌써 차면 밖에서 들렸다.
퀄퀄한 것은 좋았을는지 모르나 되도록 무마를 하여 무사히 진정을 시켜놓
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티격태격을 하다 퍼르르해 돌아가버리니, 그 역시
필경엔 속 좁은 여인이었지 별수 없었다.
밤골아씨와 엇갈리어 중매 노파 구월쇠네가 용길을 따라 대령하였다. 박씨
부인은 구월쇠네의 인사는 받는 둥 마는 둥
“두팔이랑은 아니 오느냐 ? ”
하고 용길이더러 묻는다.
“곧 온대요 ! ”
“곧이라니 담배 한대전이 지난 지가 언제길래 ? ”
“………”
“또 쫓아가 봐 ! ”
“내애 ! ”
두팔이 등 교군꾼들이 와서 가마를 꾸며서 마룻전에다 가마 채장을 들이대
기까지는 짧지 아니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구월쇠네는 심히 졸연치 아니
한 공기를 눈치채고 왜 불렀느냐고, 무슨 일이냐고 누누이 물었으나 박씨부
인은 잠자코 있으랄 뿐 일체 말을 아니하였다.
패랭이 쓰고 먹등삼 걸치고 감발하고 짚신 걸매고 양어깨에 가마 걸빵메고
이렇게 날아갈 듯 차린 두팔이가 토방 아래서 굽신하면서
“가마 어디루 대오리까요 ? ”
한다.
“해정을 든든히 했느냐 ? ”
“네 ─ 이 ─”
“저 윗문 바루 대라 ! ”
“네 ─ 이 ─ ! ”
두팔이가 앞을 메고 또 한 자가 뒤를 메고 가마는 안방 윗문 바로 마룻전
에다 걸쳐놓는다. 두팔이는 그러고는 일단 마당으로 내려선다.
“이게 다아 혼인 중신 잘못한 허물이니 그런 줄이나 알구서……”
박씨부인이 비로소 구월쇠네더러 준절히 말을 이르던 것이다.
“지금 이 길루 교군 뒤따라가서 그댁 마나님께 내 전갈 이쭈되……”
“글쎄 어둔밤으 홍두깨지 웬일이세요 ? 마나님 ! ”
“자네더러 일 참견허라구 불른 게 아냐 ! 자네가 중매 선 혼인을 물르는
마당이니 자넬랑은 내가 시키는 대루 그 댁에 가 내 전갈이나 허구 와 ! ”
“………”
구월쇠네는 혼인을 무르다니 알고도 모를 소리어서 눈만 홉뜰 뿐이다.
“똑똑히 듣구 가, 꼬옥 그대루 이쭈어 ! …… 나는, 그리고 이 김진사댁
은, 사람이나 가품이 두루 너그럽지가 못해 신랑을 음식에 사약을 타 멕이
구 그래두 부족해서 배꼽에다 바눌을 꽂구 허는 며느리는 두구 볼수가 없어
도루 보내니 그리 아십사구…… 응 ? ”
“………”
구월쇠네는 하마 뒤로 벌떡 나가 자빠질 뻔하게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박씨부인과 앓아 누웠는 준호와 진주를 연방 번갈아 보기에 눈동자
만 한참 바쁘다. 그러다 이윽고
“에구 하누님 맙시사! 말씀두 끔찍허지, 아무려면 저 새아씨가……”
“무엇이 어째 ? ……”
박씨부인은 버럭 호통을 지르면서
“그럼 내가 없는 죄를 무함을 잡았단 말야 ? ……”
“글쎄 온 하두 온……”
“속시원히 보겠거든 자아 보게 그려나 ! 와 보아 ! ”
박씨부인은 준호의 골마리를 손가락질하여 가리킨다.
구월쇠네는 시쁘듬히, 원시 된 노안으로 박씨부인이 손가락질하는 자리를
더듬다가
“어쩌나아 ! 아마 바누질을 허시다 옷 속으로 묻혀 들어갔든감 ! 그렇죠
? 새아씨 ? ”
진주를 건너다보면서 묻던 것이나 아까부터 어깨만 한결같이 떨고 있을 뿐
아무 반응이 없다.
구월쇠네의 그 바느질을 하다가 옷 속으로……라는 말에 박씨부인은 퍼뜩
‘혹시 참 !’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녕 그런 듯싶어 못하겠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강경
히 그 생각을 밀어 물리치면서
“흥 ! 바누지일 ? 핑계야 좋지 ! ”
“에구 마님두 ! 마님두 젊어 시집살이허시믄서 바누질허시다 바눌 더러
잃어버리구 하섰을 텐데……”
“듣기 싫여 ! 그런 사살 듣자구 자넬 부른 줄 알아 ? 대관절 나 시키는
대루 가마 뒤 따라갈 텐가아 ? 아니 갈 텐가 ? ”
“시상으 이 늙은 것이 마른벼락을 맞자구 그런 심부름을 허구 갑니까 제
에발……”
“그래, 아니 갈 테란 말야 ? ”
“못 갑니다 ! ”
“그런 흉악한 자리다 혼인 중신을 허구두 ? 좀 들이껴서만 같아두 매파
자네버틈 성문이 부러질 줄 모르구 ? ”
“성문 아냐 시방 당장 허리가 부러져두 못헙니다. ! …… 가엾어라 ! 저
런 요조숙녀 같은 새아씨가 어쩌다 이 횡액을 ! 가엾어라 ! 쯔쯔 ! ”
“낼버틈 이 고장서 못 살구 말 줄 알렷다 ? 하늘이 두 조각이 나두 쫓겨
나구야 말 줄 알렷다 ? ”
“쫓겨나긴 말구 제주도루 귀양을 가기루…… 옛날 어진이들은 도적이 마
신 우물두 아니 먹었대는걸요 ! ”
결국 불붙는 데 키질이었다.
“오냐, 두구 보자꾸나 ! ”
박씨부인은 이를 부드득 갈면서 삼월이를 불러 건넌방의 준호가 쓰는 필연
과 종이를 가져오게 하여 한 장의 간찰을 적는다. 사부인 ── 진주의 친정
조모에게 방금 구월쇠네더러 전갈하라고 이르던 말을 고대로 적던 것이다.
간찰을 봉하여 두팔이를 불러서 잘 가지고 가 그 댁 노마님께 드리라고 내
주고 나서 처음으로 진주를 향하고 똑바로 앉는다.
“여러 말 허기두 싫다마는 내 승깔대루 허자면 벌써 작두를 들이댔을것이
로되 열 번 참는 것이니 그리 알구…… 어서 나가 타거라 ! ”
“………”
“냉큼 ! ”
“………”
“아 냉큼 타지 못허느냐 ? ”
“어머님 ! ……”
진주는 가까스로 눈물 젖은 얼굴을 들어 애원하듯 박씨부인을 한번 보고는
이내 도로 숙이면서
“죽여 주세요 ! 죄가 있거들랑 차라리 죽여 주세요 ! ”
“이렇게 이퉁을 쓰구만 앉었을 테냐 ? ”
“………”
“응 ? ”
“참으세요 마님 ! 잠깐 그저 승정 참으시면 허실걸 가지구.”
구월쇠네가 옆에서 이런 만류의 말을 하던 것이나 박씨부인은 들은 성도
않고 다시 삼월이를 시켜 이번에는 보시기에다 냉수와 숟가락을 가져 오게
한다.
냉수와 숟가락이 들어왔다.
박씨부인은 웃목으로 가 반닫이를 열고 서랍에 간직한 조그만한 약봉지를
하나를 꺼내가지고 오더니
“너 고개 들구 이걸 보아라 ! ”
한다.
세 번 재촉을 하여서야 진주는 조금 고개를 쳐든다.
박씨부인은 물을 한 모금은 되게 지워 놓고 봉지를 풀어 하얀 그 가루 약
을 팥알만큼 숟가락총으로 떠서 물에다 탄다 그러면서 잘 보여주지도 않았
으면서
“이게 무슨 약인지 너두 알 만허리라 ? ”
“………”
“비상인 줄 너두 알 테란 말야 ! …… 일러루 와 앉어라 ! ”
박씨부인은 왼손에 약보시기를, 바른손에 숟가락을 갈라 들고 준호의 누웠
는 베개 옆으로 다가앉으면서 일변 진주더러 그 맞은편 턱으로 가리킨다.
진주는 조금도 저어함이 없이 종용히 일어나 가리키는 곳 준호의 저편 짝
베개 옆으로 가 앉는다. 저더러 사약을 먹으라는 줄만 알았던 것이다.
삼월이는 마루에서 벌벌 떨고. 구월쇠네는 잔뜩 겁에 질린 얼굴이면서 대
들어 약그릇을 빼앗을 듯 엉거주춤 밑을 들고는 그대로 잠깐 하회를 여살핀
다.
그러나……
박씨부인의 입에서는 뜻밖으로 다른 말이 떨어졌다. 약을 한 숟갈 떠 준호
의 입 바로 가져다 대면서
“네 손에 죽이느니 내가 내 손으루 차라리 죽이구 말겠다 ! ”
“어머님 ! ……”
쥐어짜듯 그러면서 진주는 한 손으로 준호의 입을 덤쑥 가린다. 하면서 동
시에 또 한손을 내밀어 숟가락을 움키면서
“지가 먹으께요 ! 지가요 ! ”
“흥 ! 왜 내가 너를 죽이느냐 ? 너 같은 걸 죽이구서 내가 살인헌 죄를
써 ? 흥 ! ”
유유히 숟가락을 끌어들이면서 거듭 냉소를 한다. 준호는 먼저에 박씨부인
이 비상이란 소리를 하면서 진주를 불러앉혔을때에는 백지장처럼 얼굴이 핼
쓱하였었다. 그러다 그 역시 의외로
‘내가 내 손으로 차라리 죽이고 말겠다 !’
하는 말을 듣자 얼굴은 정반대로 새빨갛게 피가 솟쳐 올랐다. 눈은 처음부
터 내내 따악 감고 누워서……
다같이 심장에 격동을 받던 표적이었었다.
“어떡헐 테냐 ? 이래두 못 갈 테냐 ? ”
“지가 먹으께요 어머님 ! ”
“아니 네가 시방 네 눈으로 이 김씨네 문중의 삼대 독자가 죽어 없어지는
꼴을 보구라야 속이 후련해 물러설 테란 말이지 ? ”
“절 죽여주세요 어머님…… 다아 그랬어요 ! ……”
진주는 두 손으로 얼굴을 싸고 울음 섞어 끊겼다 이었다 하면서
“간밤에 인절미다랑 곰국으다랑 비상두 타 멕이구, 그리고 배꼽으다 바눌
두 꽂구 그랬어요 ! 백번 죽어 마땅허니 절 죽여주세요 ! ”
“거 보려무나 ? 누가 아니래 ? ”
박씨부인은 기가 나서 그러면서 보란 듯이 구월쇠네더러
“들었지 ? 지금 허는 말 죄다 들었지 ? ”
“제발덕분 승정 고마안 갈앉히시래두 ! …… 어떡허시자구 질래 이러세요
? 이러시길……”
“제 입으루 활활 저렇게 불어두 날 무함잡았다구 헐까아 ? ”
“홍두깨루 쳐, 담 아니 넘는 장사 없답니다 !여북허니 글쎄.”
“저 늙은 것이 시방 죽질 못해 저러지이 ! ”
“살 날이 며칠이라구, 바른소리 허다 죽기가 그대지 무섭겠읍니까 ! ……
세상일이 참아서 해룬 법 없으니 부디 참으세요 ! ”
박씨부인은 분통이 터지는 깐으로 하면 얄밉살스럽게 앉아서 이기죽이기죽
옳은 말과 적절한 말만 일일이 하고 있는 늙은 것을 잡아 태질을 쳐버리고
싶은 생각이 울컥울컥 치달으나 그도 못할 노릇, 그야말로 참고 탄을 아니
하기만 못하였다.
‘홍두깨로 쳐 담 아니 넘는 장사 없다 !’
미상불 그런 성불렀다. 마지못해 아닌 죄를 쓰고 들어가는 것이 분명 한
것 같았다. 바늘이 살해를 목적으로 배꼽에다 몰래 가만히 꽂아놓았다느니
보다 바느질을 하다 잃은 바늘이라고 하기에 옳게 여겨지던 것처럼……
그러나 사실이 있고 없는 것이나 도리에 맞고 어그러지는 것이나, 또는 경
우가 옳고 그른 것이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억지 하나면 고만이었다. 자기
자신에게 대고서나 남에게 대하여서나 쑤지 아니할값에 팥으로 메주를 쑤느
니라고 우선 우겨대면 고만이요, 뜨지 아니할값에 해가 서쪽에서 뜨느니라
고 우선 우겨대면 고만이었다. 항차 이 일에 들어서야 본인의 버젓한 자백
이 있음이리요. 그것이 무근한 거짓 자백이라는 것은 알은체도 고려도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었다.
‘나이 어린 새서방을 죽여 없애려고 음식에다 독약을 타 먹이고, 배꼽에
다 바늘을 꽂고 한 며느리다. 제 입으로 자백까지 하였다. 그런 야차를 며
느리라고 그대로 두어둘 시집이 있을까보냐. 옛법에 따라 작도에 걸고 목은
쓸지 아니하나마 제 친가로 쫓기조차 아니하고 말소냐.’
이렇게 사개가 꼭꼭 들어맞을 수가 있었다. 거두절미하여 버리고 말이었
다.
박씨부인은 구월쇠네를 젖혀놓고 다시 진주를 다긏는다.
“네 좁은 소견에두 생각을 해보렴 ? 명색이 가장이란 걸 죽여 없애려든
너를 내가 이 집안에다 붙여두구 볼 듯싶우더냐 ? 용서헐 일이 따루 있구
참는 것두 분수가 있지 ! ”
“………”
“네가 있구 보면 이놈은 언제 죽어두 네 손에 죽구 마는 놈야 ! 그럴 일
이 있어 ! 말은 아니헌다만……”
“………”
“그러나 네 손에 죽게 허느니 진직 내 손으로 죽여 ! 차라리 이 에미 손
으루……”
“………”
“너 한 반년 겪어보았으니 내 승미 알겠구나 ? 한번 이런다 허면 하늘이
무너져두 그여히 허는 승민 줄 알지 ? ”
“………”
“지켜 앉어 못허게 방해할 테거든 허려므나 ? 이따라두 낼이라두 요거 한
숟갈 입에다 떠널 새가 없을까봐서 ? ”
“………”
“더 여러 소리 헐 것 없구 자량해 해라 ! 선뜻 일어나 가던지 웬 변덕인
지는 모른겠다만 아니 가구 있다 이놈이 내 손에 죽는 꼴을 보던지…… 자
량해 해라 ? ”
“………”
한순간 방안이고 바깥이고 깜박 괴괴하다. 숨결조차 멎은 듯 괴괴하였다.
다음 순간 진주가 고요히 몸을 일으키는 옷 스친 소리로 침정은 흔들리었
다.
몸을 일으킨 진주는 몇 걸음 물러나 박씨부인한테 나풋이 절을 한다. 그러
고는 도로 일어서면서
“어머님 갔다 곧 오겠어요 ! ”
“온단 말은 가당치두 않다 ! …… 혹 이 동네 달리 만날 사람이라두 있어
왔다 지날길에 들른다는 건 모르되, 도루 이 집으로 올 생각일랑 애야 말구
가거라 ! 이 날 이 시각으로 너는 이 집 사람이 아냐 ! 남이 이 집을 어째
오는고 ? ”
박씨부인의 그 혹 이 동네에 달리 만날 사람이라도 있어…… 하던 말은 뜻
이 자못 깊었으나 속을 모르는 진주는 심상히 들었을 따름이었다.
진주의 눈은 잠시 준호의 얼굴에 가 멎은 채 차마 떠나지 못한다. 눈을 감
고 뜨지 아니하니 눈으로나마 작별과 다시 올 뜻을 일러주지 못함이 한스러
웠다.
진주는 드디어 천천히 윗문치로 해 걸어나가 가마에 들고 만다. 거처하던
건넌방에 들러 버선 한짝 갈아 신을 생각도 아니하고 입은 채 차린 채 그대
로……
구월쇠네가 보고 있다 참다 못해 입을 실룩실룩 눈물이 뚝뚝 떨어지면서
“에구 가엾은지구 ! 가엾은지구 ! 따라가 보아 드려예지 ! 아암, 내가 따
라가 보아 드려예지 ! ”
하면서 일어나 나간다.
진주가 갈 결심을 한 것은 박씨부인의
‘……아니 가고 있다 이놈이 내 손에 죽는 꼴을 보던지 자량해 해라’
이 말을 듣고서였다 그전까지는 일왈 정신이 현혹하여 무얼 조리있이 생각
해 보고 어쩌고 할 경황이 없었다. 그러다 그 말 끝에 문득 어둔 밤길에서
등불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처럼 머릿속에 화안히 떠오르는 것이
‘좌우간 가는 것이 옳겠다. 어떻게든지 해서 쫓고라야 말자는 노릇이니
갔다 성정이 갈앉기를 기다려 도로 오기로 하고 좌우간 가는 것이 옳겠
다.’
는 이 생각이었었다. 마음이 진정된 표적이요, 아마도 어려운 일을 당하여
당황치 말고 침착하라던 친정할머니의 가르침의 덕택이었으리라. 만일 그
고패를 잘못 넘겼다면 그는 가마에 올라 친가로 가는 대신 미구하여 우물에
몸을 던지거나 광의 대들보에 목을 매어 황천길을 가고 말았기가 십상이었
을 것이다.
마당으로 내려서는 가마 뒤에다 대고 박씨부인이 마지막 말을 이른다.
“세간은, 옷이랑 네가 가지구 온 걸 따루 다아 참겨서 실려 보낼 테니 그
리 알구…… 그리구 행여 참 도루 온다고 올세라 ? 그런 생의는 허지두 말
아야지 ! 이 집 문전에 다시 들여세울 바이면 애당초에 이렇게 보내구 헐
내드냐 ? ”
어느 겨를에 빠져나왔는지 삼월이가 대문 밖에서 기다리다 교군 채장을 부
여잡고 늘어져
“새아씨이 어떡허세유우 ! ”
하고 울면서 발을 동동 구른다.
진주는 그 또한 창연한 심사를 돕는 것이었으나 강잉하여 흔연히
“울지 마아 ! 내가 어디 영영 가드냐 ? ”
“그래두유우 ! 새아씨이 ! ”
“걱정 말구, 나 없는 새 마나님 뫼시구 새서방님 시중 잘 들어 드리구 해
! 병환두 나시구 허섰으니 응 ? ”
“내애 ! ”
“그리구, 저녁이구 낼 아침이구 조용헌 틈 타서 이 말씀 이쭤라. 갔다수
이 도루 오겠읍니다구. 아무 걱정 허실라 마시구 몸조섭 훨씬 허시다 기운
차리시거든 학교랑 글방이랑 부지런히 댕기시라구……”
“내애 ! ”
“네가 촉량해서 밤참 잡수실 것 장만해 뒀다 글 읽구 돌아오시거든 찾으
시기 전에 가져다 드리게 허구 ? ”
“내애 ! ”
“오오 참 ! ……약 ! ……”
그럴 때 마침 약방의 하인이 약을 가지고 와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아마 너 오길 기대리시다, 댁 하인 시켜 보내섰나보다. 얼른 가 한첩 먼
점 댈여 드려 ? ”
“내애 ! …… 새아씨 정말 오시지유 ? ”
“그래 ! ”
“언제유 ? ”
“한 며칠 있다……”
그다지 큰부자는 아니었을망정 팔패 교군에 호피 덮어 타고 견마성 소리
높이 울리면서 시집 온 진주였었다. 그런지 겨우 여섯 달 만에 그는 이 낡
아빠진 두패 교군에 실린 바 되어 친정으로 쫓기어 가고 있었다. 친청에로
의 초졸한 길은 곧 운명 미지의 길로 통하는 길인 것도 알 바가 없이……
며느리를 쫓고 나서 박씨부인은……
교군이 차면 밖으로 건듯 돌아나가고 보이지 않자 난데없이
‘아뿔싸 ! ’
하는 후회가 나면서 무단히 마음이 섭섭하였다.
‘이토록은 너무 과했지 ! ’
‘도로 불러들여 ? ’
‘부질없은 일을 저질렀어 ! ’
차차로 무엇인지 모를 불안한 생각이 일기 시작하였다. 통쾌하다거나 속시
원하다거나 한 줄은 도무지 모르겠고, 음식 얹힌 식후처럼 가슴이 꺼림답답
하였다. 넋을 놓고 앉았다 약방 하인이
“약 가지구 왔어워요 ! ”
하여서야 정신이 들었다.
“세 첩을 연거퍼 댈여 잡숫두룩 헙시사구요 ! ”
“오냐 ! ”
“이 약 쓰시면 첸 내리실 텐깐 쓰시구 나서 동정 보아 기별허시면 다른
약 또 지어 드리겠읍니다구요 ! ”
“오냐 ! 애썼다 ! ”
박씨부인은 준호의 병이 체했다는 사실에 대하여 마음 가운데나마 아무런
미심이 이는 줄을 모르겠었다.
등 뒤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서 박씨부인은 무심코 돌려다보았다. 준
호가 비상을 탔다던 소위 사약보시기를 집어다 마셔버리고는 마악 엎드리던
참이었었다.
박씨부인은 놀라지도 당황하여 하지도 않고 도리어 눈을 흘기면서 끌끌 혀
를 찬다.
“어머니 ! ……”
처량히 한번 부르고 준호는 설움이 복받쳐 흑흑 느껴 운다.
따르는 情[정]
반공일이자 마침 무슨 제일이어서 학교는 이틀을 연거푸 놀았다. 그러나
놀기는 고사요 이틀을 거푸 아침부터 밤중까지 노박이로 글방엘 가 그 싫은
한문글을 읽어야 하던 것이니, 준호에게는 도리어 불행한 휴일의 연속이라
할 것이었다. 그것이 우환 중에 새댁 진주가 쫓기어가고 없어 통히 마음 푸
접할 바를 몰라 백사에 뜻이 없고 모든 것이 다 성가신 생각만 드는 요 며
침이고 보매 연거푸 그 이틀이나 글방 고역를 치르기란 가뜩이 우울한 노릇
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날 새댁 진주가 쫓기어가던 자리에서 준호는
‘좀 죽어버리구 말걸.’
하고 비상을 탔다는 약보시기를 얼른 집어다 주욱 마셔는 버렸던 것이나 그
러고는
‘인제는 죽어 없어지느니라.’
하니 그만 설움이 저절로 복받쳐 그렇게 섧게 울기까지 하였던 것이나, 그
러면서 이제나저제나 하고 있어보아도 조금도 죽는 줄을 모르겠었다. 속도
간밤의 곽란 빌미로 간간이 아프고 뉘엿거리고 하는 것 외에는 달리 더는
아프거나 뉘엿거리지도 낳고 정신도 말짱하고. 그러고서 입맛만 지독하게
쓰고.
모친 박씨부인은 옆에서 어쩌는고 하면, 눈도 깜짝 아니하고 앉아서 한참
이나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혀를 끌끌 차더니
“지지리 못난 것 같으니로고! 못났거든 국으루 못나지 이마빡에 피두 안
마른 것이 벌써버틈 기집 역성 드느라구 에미 폭폭허라구 그래. 시방 사약
사발 들이킨 꼬락사니루구면 ? 아기뚱헌 심술은 있어서…… 자알 헌다. 어
서 죽어라, 어서 죽어. 그렇게 못날려거든 진작 어서 죽어.”
이래싸면서 담뱃대 꼭지로 쿡쿡 옆구리를 직신거리기까지 하는 것이었었
다.
그럴수록이 준호는 보아란 듯이 딸꼭 죽어져 버렸으면 정말 고소하고 쌔원
하겠는데 답답이 하나도 죽는 것 같은 기미는 없고 하여 사뭇 딩굴고 싶게
보풀증이 났다.
먹으면 으례껏 죽는 법인 비상을 먹었는데 도무지 죽어지지를 않는 것이
당자 준호에게는 안타까운 중에도 큰 수수께끼였으나 비밀을 아는 박씨부인
에게는 조금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약이 비상이 아니라 멀쩡한 금계탑이
요, 분량도 아주 적어 학질도 떨어지지 아니할 정도의 것이었었다.
비상도 미상불 같이 있기는 하였고, 또 비상으로 할 생각도 없지 아니 하
였으나 박씨부인은 안전을 위해 짐짓 금계랍을 조그만큼 그렇게 탄 것이었
었다.
이 비밀은 박씨부인이 필생토록 발설을 아니하고 무덤으로 간직해 가지고
갈 것으로 아무려나 영원한 비밀이 될 터이었다.
준호는 사흘 동안 누워 조리를 하다 나흘 만에는 벌써 학교엘 다녔다. 그
러고서 다시 두 주일이 지난 구월 초생의 오늘이었다.
글방꾼들이 마당으로 흩어져 참을 쉬고 있다. 아직 오전…… 이번을 쉬고
나서 한 차례 더 읽어야 비로소 점심참이었다.
대가리 굵은 놈 조무래기 합하여 열댓 명이나 된다. 글방만 전문으로 다니
는 놈과 학교와 글방을 얼러 다니는 놈이 절반씩이다.
상투 튼 놈, 머리 땋은 놈, 까까중이, 그런 놈들이 여드름 더덕더덕 난
놈, 콧물 흘리는 놈, 행전 단정히 친 놈, 손과 옷에 굉장하게 먹을 쥐어 바
른 놈, 눈다래끼 난 놈, 수염 고스러진 놈 해서 너절하게 모두 제각각이다.
계절은 어느덧 햇볕이 싫지 아니하여 더러는 마당을 서성거리며 더러는 토
방으로 혹은 마당 귀퉁이에 무은 가난한 화단 가로 쪼글트리고 앉아서 짧은
휴식과 풍부한 일광을 더불어 즐기면서 지껄이고 이야기하고 장난치고 하기
에 여념들이 없다.
준호는 여럿과 떨어져 마룻전에 걸터앉아서 우두커니 먼산바라기를 하고
있다. 글읽기는 물론 말할 것도 없거니와 쉬는 것 노는 것까지도 다 귀치가
않을 지경이었다. 움직거리며 호흡하며 하여야 하는 저의 몸뚱이조차가 내
다버렸으면 싶게 성가시었다.
경황이 이러하니 우두커니 그러고 앉았는 얼굴이 남이 보기에 조금 마음
시장스러울 리가 없었다.
“조게 저래뵈두 응? 색시 재밀 제법 아나보지?”
준호와 빗밋이 마주 행하여 화단 가로 나란히 쪼글트리고 앉았던 두 녀석
중에서 코보라는 여드름장이가 옆의 상투장이를 무르팍을 꾹 찌르면서 턱짓
으로 준호를 가리키던 것이다.
상투장이는 싱그레 웃으면서 곰곰이 준호를 건너다보다가 고개를 끄덕끄덕
하더니…… 그러나
“알긴 무얼 알아 ?”
“알았길래 즈이 색시가 쫓겨간 댐버틈 저렇게 더 풀기가 없어져 가지구
댕기지.”
“젖 일찍 덜어진 강아지새끼가 킹킹거리구 보채는 심일 테지.”
“흐하하하……”
코보는 한바탕 너털웃음을 치고 나더니 별안간
“애 준호야 ?”
하고 꽥 소리를 질러 부른다.
준호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다 도로 외면을 한다.
코보가 앉았는 바로 옆으로 한 포기의 화양목이 있었다. 본시도 잎과 가지
가 푸짐하지를 못하고 다닥다닥 땅에 가 늘어붙은 나무가 겸하여 가을을 타
그 용잔하고 까친 형용이 어설프고 초라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런 화양목을 코보는 손으로 쓸어 만져 보이면서
“준호 넌 정녕 아마 이 화양목 태생인가 보드라?”
“………”
준호는 들은 성도 않고 여럿만 와악하고 웃는다.
“저앤 글쎄 화양목으루 생길래다 잘못 고만 사람으루 생겼나봐 으응? 준
호야?”
“………”
“그러니 명년엔 또 윤달이 드는데 절 어떡허면 좋니?”
“왜? 윤달이 준호더러 무얼 달래나?”
대가리 굵은 한 녀석이 빈들거리면서 말 참섭을 하고 와 앉는다.
“아, 이 화양목이란 잡것은 말야, 하두우 안 자라다아 안 자라다 못해 윤
달이 드는 핸 한매디가 되려 졸아진대잖아? 보나마나 재두 명년 가선 한 친
키가 줄 거야. 거 딱헌 노릇 아닌가배? 그나그뿐인가. 윤달 든 핼 여남은
번만 치루구 난다치면 잰 머리통만 저 아래 발목에 가 붙었을 거 아니겠다
구?”
여럿의 웃음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준호의 가죽신 한짝이 날아오다 코보의
앞 저기만치 가 떨어진다. 준호는 색색하면서 코보를 노려보고 섰고.
코보는 성큼 일어서서 가죽신짝을 집어 들고 넉장으로 팔을 내뻗혀 보이면

“이왕 한짝마저 줄렴. 우리 아들놈 발엔 좀 낙낙허겠다만서두, 쯧 아순대
루 신기긴 신길까보다.”
코보는 나이 열아홉살이요 세살박이 아들이 있었다.
또다시 여럿의 요란히 웃는 소리에 섞이어 방으로부터
“글 읽어라.”
하는 선생의 녹슨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선생이 입으로 상학종을 치는 셈이
었다.
그때였다. 방으로 들어갈 참으로 무심코 고개를 돌리던 준호는 문득 저의
집 앞 신작로에서 꺾이는 고무래정자 소로를 두 짐의 짐꾼을 거느린 한 채
의 네패 교군이 닥쳐들어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글방 통방에 서서 보면 활
서너 바탕 상거의 퍼어한 벌판을 건너 준호의 집 문전이 그 앞 신작로랑 고
무래정자로 꺾이는 소로랑 손에 만질 듯 빠안히 바라다보이게 마련이었다.
준호는 저의 새댁의 돌아옴임을 직각하였고 그 순간 가슴이 휘저은 것처럼
설레면서 피가 한꺼번에 죄다 얼굴로 솟구쳐 오르는 것 같았다. 확 붉는 얼
굴이 반짝이는 눈과 함께 생기가 가득히 넘쳤다.
졸지에 달라진 얼굴을 동무들에게 들킬까 저어하여 찬찬히 더 보고 섰을
염의도 못하고 얼른 고개를 숙인 채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반갑고 급한 마음 하여서는 곧장 집으로 달려가고 싶은 생각이야 꿀안 같
으나 글방을 중판 메고 그랬다는 뒷일이 어려워 못하는 노릇이었다.
가슴 설레는 것이 좀처럼 갈앉지를 않고 글 읽는 소리가 자꾸만 떨렸다.
정신을 차리자 하면서도 책 위로 연방 방긋이 웃으면서 마루로 마주나서는
새댁의 얼굴이 얼찐거려 글이 헛읽어지곤 하였다.
“고만들 읽어라.”
선생님의 이 소리가 평소에도 지리하기야 하였지만, 이다지도 기다리기 지
리한 적은 없었다.
시간으로 한 시간과 반 남짓한 동안에 정신을 판다고 선생에게 회초리로
얻어갈기우기 세 번이요, 지청구는 수없이 먹었다. 그랬어도 여느때와 달라
아픈 줄도 고까운 줄도 모르겠었다.
가까스로 글읽기가 끝났다. 책도 덮어 치우는 둥 마는 둥 집으로 반달음질
을 쳤다. 발이 땅에 닿지를 않고 둥둥 몸이 떠가는 것 같았다.
대문 밖에 당도하였다. 가슴이 꺼질 듯 두근거렸다. 잠깐 발길을 멈추고
서서 가슴 두근거리는 것을 갈앉히면서 일변 귀를 기울였다. 조용하고 아무
소리도 들려나오지 아니하였다.
‘웬일일까?’
이상하였다.
다른 날이라면 예사라 하겠지만 갔던 사람이 방금 돌아왔고 겸하여 교군꾼
이랑 이바지짐꾼이랑 여럿이 와 있고 하니, 안에서는 안마당이든 머슴사랑
에서든 다소간 웅성거리며 시끄런한 무엇이 없지가 못할 것이었었다. 원은
모친 박씨부인의 들레는 소리가 한바탕 요란스러웠어야 할 것이었다.
고쳐 귀를 더 기울여 보아야 매양 일반이었다. 일반이 아니라 그럴수록 더
조용만 하였다. 오랜 빈집 문전에서처럼 서늘하게 조용하였다.
가슴은 어느덧 제가 먼저 불길한 예감을 예감하고서 새로이 두근거리고 있
었다.
‘잘못 보았나?’
‘도로 쫓겨갔나?’
정녕 두 가지 중에 하나였다.
장부는 사랑에서든지 출입을 하였다 돌아오면서든지 내정엘 들어오려면 반
드시 기침소리를 내어야 하는 법이라 하여 박씨부인은 일찍부터 준호에게
그 버릇을 들여노았었다.
“헤엠!”
한결 더 높아진 가슴의 동계를 어찌하지 못하는 채 준호는 그런 중에도 초
조하여진 낯꽃을 천연히 가지려 애를 쓰면서 발걸음도 짐짓 느릿느릿이 어
른스런 밭은기침과 더불어 마침내 차면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면서 날쌔게
사면을 둘러보았다. 씻은 듯하였다. 아무도 눈에 뜨이지도 않고 나간 집처
럼 쓸쓸하였다.
높이 뛰던 가슴이 일순간 철썩하고 내려앉았다. 그다지도 가볍던 발걸음이
수종을 앓는 다리처럼 무거워졌다.
펄썩 주저앉겠는 것을 강잉하여 마당을 지나 토방으로 올라섰다.
그제서야 삼월이가 뒤 울안으로부터 부엌으로 해서 내닫는다. 눈이 충혈이
되고 눈퉁이 통통 부었다.
“새서방님! ……”
그러다 말고 입을 비죽비죽하면서 눈물이 주르르 쏟아진다.
인제는 물으나마나한 것이었다.
준호는 슬플 때 안따까울 때 마음대로 울기라도 할 수 있는 삼월이가 차라
리 부러웠다.
“마님 어디 출입허섰니?”
준호는 겉으로는 이만큼 침착하고 어른스러워야 하였다.
“지금 마악 숲 아래 논으루 산(算)잡으러 가셌이유.”
울면서 하는 삼월이의 대답이었다.
병작(並作)에는 벤 벼를 단(束)지어 묶는 자리에서 지주가 입회하여 벼 한
뭇에 벼 이삭 하나씩을 뽑고 뽑고 하는 것으로써 도합 몇 뭇이 났는지를 센
다. 그것을 산잡는다고 한다.
삼월이가 점심상을 가져다 놓으면서 새 채비로 울먹울먹
“새아씨가 오셌는데, 마님이……”
“………”
준호는 수저를 들 생각도 없었다.
“가마서 내리지두 못허게 허시구, 떠다미시구, 물을 퍼다 막 끼얹으시
구…… 그러구……”
“………”
“교군꾼이랑 이바지 짐꾼이랑 작대기루다 두들겨 패시구……”
“………”
“솔가질 한 뭇 방으루 안아다 노시군 불을 그어대서 하마트문 불꺼정 날
뻔허구……”
“누가 이년아 널더러 그런 소리 허랬어?”
준호는 마침내 버럭 쏘아붙이면서 밥상을 밀어젖히고 일어선다.
집에서 글방으로 가는 길녘에는 군데군데 새막이 있고, 그중에 윤석이네
새막도 있었다. 여느날은 윤석의 어머니가 나와서 새를 보지만 학교를 쉬는
날은 윤석이 대신 보고 한다.
윤석은 논둑에다 불을 일어 콩을 구워 놓고는 쪼글트리고 앉아 까먹고 주
워먹고 하느라고 새까매진 입과 손이 한참 바쁘다. 그 옆으로 새막기둥에
지여 서서 준호는 한만없이 생각에 팔려 있다.
논은 간혹 벼를 벤 곳도 있고 마악 베는 곳도 있나니, 아직도 무긋무긋 이
삭이 가득히 숙은 채 그대로 있는 곳이 태반이다. 그런 누런 벼이삭 일면의
들판으로 가다 오다 조그만씩한 밭뙈기가 있어 빠알간 고추와 파아란 김장
이 알쏭달쏭 채색을 곁들인다.
“지끔 가믄 육십 리 가니이?”
높아진 하늘 푸른 바탕을 흰구름이 떠가고 있는 양을 언제까지고 한눈 팔
고 섰던 준호가, 그러다 밑도 끝도 없이 묻는다.
윤석은 콩 한 알을 집어올리다 말고 고개를 쳐들면서 말끗이 한참이나 준
호의 얼굴을 보고 있더니
“느이 처갓집?”
“………”
준호는 대답 대신 얼굴만 붉힌다. 지나간 추석 난장 구경을 갔던 이후로
퍽 아주 친하여진 이 윤석에게나 하니 그런 말이나마 물어라도 보던 것이었
었다.
윤석은 도로 고개를 숙이고 부지런히 콩을 먹으면서
“가구푸니?”
“………”
“빨리 가믄 헌다.”
“………”
“길 모르니?”
“응. 아니.”
“잘 알아?”
“잘은 몰라.”
혼인 때 한번, 그 뒤에 재행(再行) 한 번, 해서 두 번 내왕은 하였으나 교
군과 말을 타고 다녔을 뿐이어서 기억이 아리송하였다. 그것도 신작로 삼십
리는 어렵지 아니할 것 같으나 그 나머지 산협길 이십 리와 또 십 리가 막
상 자신이 나지 아니하였다.
“데려다 줄랸?”
“………”
준호는 차마 말은 내지 못하나 윤석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기를 얼마나 바
랐는지 모른다.
“너 길두 잘 모르구 갔다 괜히 큰일난다. 날두 저물구 헐 텐데.”
“………”
“내 데려다 주께.”
“닌 길 잘 아니이?”
“난 잘 몰라두 일없어.”
“어떻게?”
“가믄서 주막이랑 사람들더러랑 물어서 가믄 돼.”
준호는, 윤석이, 저에게 있는 것을 무엇이고 있는 대로 죄다 주어도 아깝
지 않고 싶게 좋고도 고마왔다. 그는 이 세상에서 제일 좋기가 저의 새댁이
요 그 다음이 어떤 누구보다도 이 윤석인 것을 다시 한번 절절히 느끼지 아
니치 못하였다.
한편 쫓겨온 진주의 친정집에서는……
황혼이 마당으로 자욱이 내리덮이면서 날은 시각으로 저물어가고 있다.
가을의 황혼은 수심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뜩이 마음 하염없이 하는
것……그런 황혼처럼 우수스런 얼굴이면서 진주는 아랫방 툇마루 끝에 가
넋을 놓고 걸치어 섰는 채 물 밀듯 저문 빛이 짙어드는 뜨락을 언제까지고
내려다만 보고 있다.
박농(傳農)하는 집안이요 많은 식솔을 치르는 터라 끼니때면 장속같이 시
끄럽고 바빴다. 추수도 오백 석이나 받거니와 한편으로는 머슴을 세넷씩 두
고 소를 두 바리씩 부리면서 칠팔십 두락의 땅을 가작(家作)도 하였다. 그
러느라니 원 가권은 노마나님과 젊은 주인 내외에 어린아이 둘을 합해서 모
두 해 다섯밖에 아니 되었지만 머슴이 셋이요 꼬마동이가 있고 계집하인이
둘, 거기다 적어서 너댓 명씩은 날삯 일꾼이 으례 날마다 있고 하여 소와
개, 도야지 말고도 드나들며 일 서두리하여 주는 동네 여인까지 하면 항용
이십 명이 넘는 식구가 먹는 끼니였다. 그것을 안살림을 도맡은 오랍의 댁
이 지나간 봄 진주가 시집을 간 뒤로는 계집 하인 둘을 데리고 혼자서 해
치러야 하였고, 하자니 자연 쩔맬 지경으로 바빠야 하였다.
끼니가 저물면, 그래서 어른들이 분주하면 덩달아 성화를 부리고 보채고
하는 것이 내남없이 아이들이었다. 다섯살박이 큰놈은 미처 잦히지도 않은
밥을 내라고 울고 떼를 쓰다 한 볼기짝 얻어맞고는 더 울고 야단이다. 젖먹
이는 젖먹이대로 젖 배불리 먹고 하였으면서도 칭얼거리면서 보채어쌓는다.
집안은 그래서 어른들의 부엌을 드나들며 웅성거리는 소리와 아이들의 울
음소리, 성화대는 소리가 뒤범벅이 되어 정신이 아득하도록 시끄런하였다.
진주는 가마에서 내리던 길로 이내 아랫방에서 혼자 누워 있었다.
갔다 선 자리에서 도로 쫓겨온 경위도 교군꾼과 짐꾼들이 이야기를 하였
지, 진주는 아무더러도 입을 떼지 아니하였다. 혼자서 실컷 울기만 하였다.
그러다 이래서는 할머니한테 도리가 아니라고 강잉해 마음을 진정 한 후 마
악 시방 기동을 하여 나오던 참이었다.
할머니는 진주에게 이 세상에서 단 한분의 혈육의 어버이였다. 오라비 창
수는 서울 광주땅에서 양손자를 해 데려온 십 촌도 넘는 먼 일가였다.
할머니는 진주의 할머니이면서 일변 어머니도 아버지이기도 하였다. 진주
는 아버지는 상면도 하지 못한 유복녀로 태어나 첫돌이 잡히자 어머니를 여
읜 이른바 천애의 고아였다. 오로지 할머니 한 분의 손에 길리어 열여덟살
토록 자랐고, 지나간 봄에는 하여커나 출가도 하고 하였다.
상심 많고 외로운 할머니는 노래에 있어 진주가 정히 생활의 전부였다. 오
직 진주를 사랑하며 살뜰히 기르고 잘 가르치며 어진 배필에 좋은 가품 골
라 성혼시켜서 말치 없이 고생 아니하고 시집살이를 하는 양을 보며 하자는
것이 유일한 일이요, 겸하여 낙이며 희망이었다. 따라서 진주의 행복은 할
머니에게는 즐거움이 갑절이나 더하는 행복이었다. 반대로 진주의 불행은
할머니에게는 슬픔이 갑절이나 더하는 불행이었다. 진주가 한번 웃을 일이
면 할머니는 두 번 세 번 웃었고, 진주가 한 번 울 일이면 할머니는 두 번
세 번 울지 아니치 못하였다.
그런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보기엔 진주는 아직도 어린아이였다. 두루 얌전하고 속도 찰대로
차고 하여 얻다 내놓아도 책잡힐 곳 없는 자랑스런 손녀는 손녀였으나 그래
도 아직은 어린아이로밖엔 보이지 않는 것이 할머니의 눈이었다. 그런데다
겸하여 신랑이 겨우 열두살박이의 콧물 흘리는 애기였다. 해서 가사 아무
말썽없이 잘 시집을 산다고 하여도 좀처럼 마음이 놓여할 할머니가 아니었
다.
할머니는 십 년만 더 살고 싶었다. 앞으로 십 년이면 진주는 서른을 바라
보고 새서방 준호도 이십이 넘으니, 그때 가서는 엔간히 마음 걸려 하지 아
니하고 죽어도 눈이 감기어지려니 하였었다.
그러던 할머니였다.
너무 부자집으로 시집을 보내어도 일이 많아서 고생이요, 가난한 시집은
가난하여 고생이요 한대서 한 이삼백 추수나 하여 양식 걱정이나 않고 지내
는 자리를 희망하였었다.
시동기간이 여럿이면 그 수발을 하기에 가외의 고생을 한대서, 그런중에도
손아랫 시뉘가 있으면 없는 험도 드러난대서, 되도록 형제 단출하되 손아랫
시뉘 없는 자리를 희망하였다.
그러느라고 고르고 고르다 그 여러 가지 희망조건에 비교적 맞는 자리라
하여서 믿고 한 혼인이었다.
했던 것이 천만 꿈 밖에 이 파탈이었다.
시어머니라는 여인이 성질이 약간 까다롭다고는 들었지만 그대도록 사납고
그악스런 줄은 전혀 몰랐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그렇게 하고 쫓기어 올 줄이야…… 천하에 귀에도 담기
조차 끔찍한 그런 누명을 쓰고서……
할머니는 그날 하마 자결을 할 뻔하였다. 만일 성미가 급한 노인이었다면
칼을 물로 엎드러지려고 하였을는지 몰랐다.
진주는 제가 근심되고 슬프고 한 것보다도 할머니를 걱정되게 하고 슬프게
하고 하는 것이 더 걱정되고 슬프고 하였다. 내가 천연하고 있어도 할머니
는 걱정하고 슬퍼하고 하실 테거든 하물며 내가 이렇게 식음을 폐하고 누워
울기나 한다면 할머니는 오죽이나 더 걱정을 하시며 슬퍼는 하시랴 할 때
민망한 생각이 들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참고 나가서 기동을 해야지. 종차로는 있는 날까지는 할머니 앞에서 맹
세코 울지도 말고 슬퍼하는 기색도 드러내지 말아야지. 아무 걱정할 일도
없는 것처럼 흔연하고 있어야지.’
‘올케가 혼자서 저다지 바빠하니 손을 좀 덜어주어야지. 하다못해 아이들
이라도 보아주어야지.’
‘그러느라면 자연 어우렁더우렁 잊어버리고 한동안씩 지날 수가 있을 것
이요, 하면 할머니도 저으기……’
이러면서 진주는 일어나 밖으로 나오느라고 나왔었다.
그렇게 곧잘 마음을 돌려먹고 나오기는 나왔으나 거기에는 생각잖이 수심
을 돕는 황혼이 기다리고 있었다.
슬픔과 근심을 형용에 나타내어 슬퍼하며 근심하며 하지 않기도 노상 수련
을 쌓지 아니하고는 섬뻑 어려운 법이어서, 진주도 일껏 마음을 가다듬은
보람도 없이 무심중 추레한 황혼에 섭쓸려 그처럼 얼굴에 가득히 수심을 드
리우고 방심해 있었던 것이었었다.
진주는 생각이 시방 새서방 준호에게 가 멎어 있었다.
마악 지금쯤 글방으로부터 돌아올 무렵이었다.
방금 저기 차면 밖에서 풀기 없이 걸어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삼월이가, 내가 왔더란 이야기를 했을 텐데!’
듣고 그만 낙담실망하여 할 얼굴이 눈에 서언히 밟히면서 눈물이 핑 돌았
다.
‘차라리 조금 더 있다 가볼걸.’
이런 후회가 절로 났다.
할머니랑 오라비 내외랑은 그새 보름 남짓한 동안에 시어머니의 그 요란하
던 기승이 웬걸 삭았을까 보냐고, 이왕 그리 된 바이니 훨씬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잠자코 있느라면 그 부인도 속이 갈앉아지면서 너의 무실한 것도 저
절로 깨치고 하게 될 터이니, 그때를 기다려 가는 것이 마땅하겠다고 누누
이 만류를 하였었다.
그러나 진주는 제일 무엇보다도 새서방 준호가 밤과 낮으로 까맣게 기다리
면서 애가 말라할 일을 생각하여 한시가 급하였고, 한 달이니 두 달이니 하
며 청처짐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한 며칠 있다 가마는 말을 삼월이를 시켜
일러둔 것이 ── 언약이 있기까지 하였으니.
겸하여 시어머니한테만 하더라도 이내 도로 가서 없는 죄나마 청죄를 하여
야망정이지 너무 오랫동안 민두룸하고 있어서는 이퉁을 쓰는 것 같아 십상
괘씸한 생각이 들기가 쉬울 것이며, 역시 일찌감치 가보느니만 못한 노릇이
었다.
가서 한 닦달 치를 것은 번연하였으나 아무때 치러도 한번은 치르고라야
말 형편. 치르고 나면 그로써 일은 하여튼 무사히 끝장이 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루바삐 일이 끝장이 나니 우선 좋고, 덕분에 하루바삐 할머니의
근심을 덜어 드리니 좋고, 그리고 누구보다도 하루바삐 새서방을 기쁘게 하
여 주니 좋고.
결과는 그러나 동네 개라도 내어쫓듯 하는 창피까지 당하고서 낭패를 보았
고, 새서방과 할머니로 하여금은 오히려 아니 갔더니만 못하게 근심을 더
사도록 한 것이었었다.
중절모자 쓰고 두루마기는 걷어서 띠로 허리에다 매고 깜장 단화 신고 한
이 집 젊는 대주 창수가 번쩍거리는 자행거를 끌고 차면 안으로 들어서다
아랫방 툇마루에서 누이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진주는 얼른 마당으로 내려서면서 오라비를 맞이하고.
창수는 갸름하니 신경질로 생긴 얼굴이 놀라던 다음 순간 더럭 분노로 바
뀌면서 자행거를 차면에다 함부로 기대 세우고 분주히 안방 앞마룻전에 가
포갬다리를 하고 걸터앉는다.
“어서 세수랑 허시구 진지 잡숫게 허시우, 시장허실 텐데.”
진주가 가까이 와 기색과 음성을 천연히 하여가지고 권을 한다.
창수는 꼿꼿한 눈살로 이윽고 앞만 보고 있다가
“대관절 무어래믄서 또 쫓드냐?”
“무어래긴 무어라우?……”
그럴 때에 올케가 부엌으로부터 물 묻은 손을 씻으면서 나와
“에구 말씀두 마시우! 온 그런 시상으.”
“그래서?”
“글쎄 가마서 나오는 사람을 사뭇 앙가슴을 쥐어지르믄서 못 나오게 주잕
히구. 그래두 기어나가려구 허니깐 바가지루다 물을 퍼다 끼얹구…… 방으
단 불을 싸놓구…… 그런 난리가 없었다우.”
“무엇이 어째?”
창수는 두 주먹과 입술을 푸르르 떨면서
“걸 가만둬 둬?”
“가만 아니 두믄 명색이 부몬걸 으떡하우?”
“부모라니? 그따위가 부모야?”
“교군꾼이랑 이바지짐 지구 갔던 우리 머슴 둘이랑 깡그리 작대기찜을 맞
군, 제마다 절름절름, 조조군사가 돼가지고 왔다우. 애기씨가 몸 아니 다치
느라구 그런 중으두, 다행이지.”
“그놈들두 천하 병신놈들이지, 그래 그 봉변을 당허는 걸 멀뚜웅멀뚱 보
구 있으며, 때린다고 문문히 얻어맞구만 있어?”
“즈이들이니 으떡허우?”
“아 작대를 도루 뺏어가지구 허리토막을 부질러놓지 못해?”
“내 온 그 으런이!”
“박돌아!”
떠나가게 꼬마동이를 부른다.
대가리가 부룩송아지 같은 놈이 송아지처럼 대답을 하면서 들어온다.
“네 두레청에 가서 징 쳐서, 동네 장정들 있는 대루 모아라.”
“예.”
“장정을 백 명만 몰구 가, 그놈의 집을 도륙을 아니 놓나 보아라.”
“이 으런이 으떡하자구 이리셔어!”
아낙이 발을 동동 구르면서 박돌이의 나가는 등 뒤에다 대고 고만두라고
소리를 지른다.
창수는 아낙을 눈 부릅뜨면서
“왜 나서서 참섭야 ?”
“당신 그 욱허시는 승정 제발 좀 곤치세요.”
“그럼 우린 다아 죽었다고 번번이 그 일을 당허구두 꿈쩍 소리 말란 말요
?”
“우리가 참아여지 으떡허우?”
“참을 일이 제금 있구, 참아두 한이 있지, 그래……”
“애기씰 위해 참아야 해요. 화나신다구 함부루 덧들였다, 영 등갈이 나는
날이면 애기씬 으떡허우?”
“………”
창수는 거친 숨을 내쉬면서 잠자코 한참이나 무엇을 생각하더니 문득 음성
을 부드럽게 하며
“진주야 ?”
하고 부른다.
신경질인 사람이 잔정이 있는 법이었다.
그런 성격에서 오는 것 말고도 창수는 진주에게 오라비로서의 정이 범연치
가 아니하였다.
지금으로부터 열다섯 해 전 열두 살 먹은 창수는 때에 이미 아무도 없는
진주의 양친의 양자로 이 집에를 와 할머니의 손자에, 세살 난 진주의 오라
비가 되었다.
창수의 생가는 열일곱 살을 맏이로 한 삼형제를 데린 홀어머니가 굶기를
먹듯 하면서 살아가는 간구한 집안이었다. 그런 간구한 사람들에게 오백 석
추수의 양자짜리란, 하늘서 떨어진 복처럼 뜻밖이요 달가운 것이었었다. 그
렇지나 않고서야 십 촌이 넘는 수백리 타관 일가가 양자를 청한다고 선뜻
응할 리가 없는 노릇이었다. 더우기 겨우 열두살박이의 막내동이를 내놓기
에는.
부자집으로 양자를 와 호강을 하고 장차에는 오백 석 추수의 전장까지 물
려받고 하여 신세를 고치고 한다는 것은 아직 열두살박이의 물욕 없는 소년
에게는 아무 관심도 흥미거리도 아니었다. 그는 당장 어머니와 형들과 집과
그리고 낯익은 마을이랑 동무들이랑을 떠나, 아무도 아는 사람도 없는 집에
와서 살게 된 것이 우선 절박한 슬픔일 따름이었다.
이 갓 젖 떼인 송아지가 어미를 찾아 보채는 근경과 다름이 없을 소년의
마음을 이윽고 정붙게 하는 것이 할머니의 살뜰한 거천과 어울러 진주의 재
롱이었다.
할머니는 소년의, 일종 팔려오다시피한 가련한 정상을 무한 측은히 여기
며, 있는껏 정성을 다하여 잘 거천하였다.
소년은 주리던 창자를 맛있는 음식으로 배불리 먹으면서 해어진 남루대신
고운 비단옷을 입었다. 나뭇지게 지고 나무를 하는 대신, 사랑에다 독서당
앉히고 글을 배웠다. 이 녀석 저 자식 하며 하시를 받는 대신 도련님 도련
님 하고 떠받침을 받았다.
이런 말하자면 좋아진 모든 범절이 단지 형식으로가 아니라 그 고비고비에
할머니의 세심한 주의와 따뜻한 정성이 서리어 있던 것이요, 그것이 인하여
소년으로 하여금 할머니에게 정이 맺히어지게 하였다.
진주는 마악 두 돌이 잡히어 종알종알 말을 배우고 한참 이쁜 짓을 할 무
렵이었다. 일찌기 본 적이 없는 이 재롱스런 애기를 ── 누이를 끔찍 이뻐
하였다. 그는 할머니한테보다도 진주한테 먼저 정이 들었었다.
이렇게 내력은 핏줄이 먼 남매였으나 어지빨리 의없는 남매보다 훨씬 정이
도타운 그들이었다.
“워너니 도루 가서 산댔자……”
창수는 차근히 담배를 붙여물고 진주더러 타이르듯 하는 말이었다.
“……지지리 학대만 더 받다가 필경 가서는 영영 도루 쫓겨오구 말기가
십상일 것이다. 그따위루 생긴 시어미치구 며느리 둘셋은 아니 쫓는 시어미
가 자고로 없는 법야. 그러니, 그러니 말이다, 진주야?”
“내?”
“너 맘 고쳐 먹어라.”
“? ……”
“일찌감치 상부(喪夫)헌 심만 잡어라. 그랬다 시집 다시 가렴.”
“! ……”
“이런 말이 너버틈두 해괴허게 들릴는지 모르겠다만서두 지끔은 옛날 세
상과는 다르잖니? 남자가 상처를 했다든지, 온 갈렸다든지 해서, 두번이구
세 번이구 장가를 갈 수 있는 것처럼, 여자두 시방 세상은 두 번이구 세 번
이구 시집을 가두 상관 없게 마련야. 여자도 같은 사람이란 그 뜻으루.”
“………”
“개화가 별다른 것인가? 그런 게 다아 개화지. 개화허는 사람이 다 제금
따루 있나? 아무구 하면 개화지. 너두 그러니깐 개활 좀 허란 말야. 개화
생각이 없으니깐, 가령 시집을 다시 가야 헐 경우에두 감히 생심을 못허구
허는 것이지, 한번 개화속으루 생각이 뚫리는 날이면 배고플 때 밥 먹구,
졸리면 잠자구 허기처럼 두루 수나롭구 떳떳헌 일이란다.”
창수는 개화꾼이었다. 그는 늦게나마나 고을에서 학교도 다녔거니와 다시
서울로 가서 삼 년 동안 ××학당을 다녀 졸업하고 돌아왔었다.
닦은 바 신학문과 쏘인 바 새로운 견문이 때의 젋은이로는 그것으로써도
족하다 할 것이었으나 그는 눌러서 미국이든 일본이든 유학을 갈 마음이 간
절한 것이 있었다. 그러나 이미 늙어, 큰 살림을 감당키 어렵노라는 할머니
의 부름을 응종치 아니치 못해 우선 붕지를 누르고 일단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었었다.
이러한 오라비를 오라비로 둔만큼 진주도 개화와 세상의 신풍조에 대한 이
야기에 매양 귀가 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막상 그것이 저 자신에 관계된
── 더우기 시집이라는 것을 두 번 가느니 마느니 하는 한 개의 사건이고
보매, 정신상 졸지의 당황을 느끼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무어라고
대답 같은 것이 나올 계제가 아니었고, 귀밑 붉은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있을
따름이었다.
창수는 담배를 갈아 피워 물고 말을 계속한다.
“첫째 신랑 된 당자가 사람이 변변해야 허구, 그러구 시집 인심이 그악질
아니해야 허구 허는 법인데, 네 시집이란 명색은 그중 하나나 된 것이 있드
냐? 신랑이라는 아이는 어리기두 어리거니와 보아허니 몹시 용절스럽구 헌
것이 사람질허기는 글러 뵈드라. 그런데다 시어머니란 인간은 그런 천하 말
못허게 그악스럽지. 허니 도대체 무슨 내장을 바라구 그 시집을 살며, 또
구태여 살아야 할 며리는 무엇 있느냐?”
“………”
“다시는 가볼 생각을 허지 말구 집에 있거라. 집에 있다가 좋은 자리 골
라 멀찍헌 타관으루 다시 시집 가게 해라. 내가 장담허구, 서울 가서 개명
헌 신랑으루다 버젓헌 새서방 하나 골라주마. 가난헌 자리거들랑 이 전장
(財産) 다아라두 가지구 가렴. 털어놓구 말이지, 이게 뉘 전장이냐? 네 것
아니냐? 내게는 실상 상관 없는 전장 아니냐? 네가 죄에 다아 가지구 간대
두 털끝만치두 아까워헐 내드냐? 너만 가 잘사는 노릇이라면……”
창수라는 사람의 사람 됨됨이의 일면을 엿보기에 족한 말이요 태도였다.
불같이 급하고 서리같이 매서운 성질이면서 아울러 의리가 굳고 심히 호협
한 기개가 있었다. 거상에 그는 재물을 의리보다 가볍게 다루었다.
이 호협한 기개는 작은 것이나 구차한 것에 만족치 아니하고 크고 떳떳한
것을 부단히 경륜하는 야심과 서로‘방패의 반면’같은 관계성을 가지는 것
이었었다.
조선이 일본에게 합방이 되던 한국 말년 바로 전부터 조선에는 세 가지의
큰 사회적 움직임이 머리를 들기 시작하였다. 국민의 정치에의 관심이 그
하나요, 산업 즉 경제에의 관심이 그 하나요, 새로운 학문 즉 문화에의 관
심이 그 하나요 하였다.
이 세 가지 관심 가운데 정치적인 것은 정복자의‘게다’짝에 짓밟혀 버렸
고.
경제에의 관심과 문화에의 관심은 그것 역시 정복자의 핍박이 노상 없었던
바는 아니나, 그래서 부득불 기형적이기는 하였으나 아뭏든 현실에로 발전
을 하여 나아갔다.
창수는 처음 그 새로운 학문에의 뜨거운 지향이 그와 같이 가정적인 사정
으로 인하여 일단 꺽이게 되자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그러면 당분간 아
직……’이라는 생각으로 경제 방면으로 행동 방향을 바꾸었다. 작년부터
시작한 매갈이가 그것이었다. 매갈잇간(玄米工場[현미공장])을 설시하여 놓
고 자가(自家) 추수는 물론이요 농민에게서랑 지주에게서 벼를 사 모으면서
일변 현미로 갈아서 실어내다 파는 것이 매갈이라는 것이었다.
선비의 솜씨요 또 첫시험이라 작년에는 적지 아니한 손을 보았으나 금년에
도 계속하여 이른벼부터 매일 수십 석씩 더러는 백여 석씩 자꾸자꾸 사서
주야로 현미를 뽑아 연방 ××항(××港)으로 실어내고 하는 참이었다. 그
러느라고 자행거까지 사놓고 하루 걸러큼씩 ××항엘 나다니곤 하였다.
창수는 이 매갈이를 하느라고 작년에 만 원, 금년에 새로 이만 원의 빚을
졌으나 그런 자본의 출처에 대하여 집안에서는 아무도 괘념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또 ××항이 미두(米豆) 고장이요, 매갈이는 미두의 바로 이웃으로
통하는 길인 것을 염려하는 사람도 없었다. 겸하여 빈번한 대처(××항) 출
입에는 소위 교제라는 외화(外華)가 따르는 것을 근심하는 사람도 없었다.
다만 진주 하나가 오라비가 궐련을 피우는 것에서 막연하나마 약간의 의구
를 느낄 따름이었다.
오라비는 지나간 봄 출가를 할 때까지도 집에서는 으례 담뱃대로 담배를
피웠다. 궐련은 출입을 가서만 피우되 제일 값 헐한 것으로 사 피웠다. 그
러던 오라비가 그동안이 겨우 반 년인데 이번에 와서 보니 육장 궐련으로만
피우고 있고, 그러나마 값비싼 산호표니 칼표니 금물림을 한 이름도 못 듣
던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이었었다.
오늘도 창수는 칼표를 피우고 있었다.
‘매갈이를 해서 밑지기만 한다면서 용은 저렇게……’
진주는 당장 제 신상에 관한 경황을 문득 잊고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무심코 고개를 갸웃한다.
그 가느다란 한 줄기의 담배연기가 장차에는 진주에게도 등한치 아니한 운
명을 간섭하리라고는 물론 짐작이나 할 바가 없었던 것이고.
“그야 할머니가 기시구 허신데 번접스러이 내가 나서서 네 일을 이래라저
래라 간섭헐 순 없는 노릇이지만서두……”
창수가 음성을 고쳐 하며 마악 다시 이야기를 계속할 즈음에 생각지 아니
한 준호가 거기에 당도하였다.
할머니가 굽은 허리에 젖먹이 증손주를 업고 한 팔로 준호의 손목을 이끌
듯하면서 연해 얼굴을 들여다보고 하면서 차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시상으, 왔거들랑 바루 들어오는 게 아니라, 시상으 문앞으서 비잉빙 돌
구 있어? 사람두 온. 남의 집인감. 처가에 왔으믄서.”
계면스레 발걸음이 쭈뼛거리는 준호를 달래듯 등을 다독다독, 일변 그래싸
면서 데리고 들어오고 있던 할머니는 그러다간 또 혼잣말로
“쯔쯧, 신통두 허지, 오느라구. 아암 오구말구. 와야 허구말구.”
진주는 눈물이 핑 돌았다.
진정 반가왔고, 할머니의 말씀따나 참으로 신통하였다. 저 어린 나이에 가
직치도 아니한 길을 제 발로 걸어 이렇게 찾아오리라고는 전혀 생각 밖이었
다. 보는 이만 없다면 곧 업어라도 주고 싶었다.
반가움은 그러나 순간이요 인하여 걱정이 더럭 솟았다.
시어머니가 보내서 ── 하다못해 허락이라도 받고서 ── 왔을 리는 만무
한 것, 몰래 달아나온 것이 번연하였다. 무서운 형벌을 손수 장만하였음이
나 다름이 없었다. 내일이라도 돌아가 한 발자죽 집안으로 들어서는 그 자
리에 사정 없는 매질은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광경이 여언히 눈에 보이는 것 같으면서 사뭇 가슴이 떨렸다.
임의로 할 수 있는 노릇일진댄 영영 머물러 있게 하고 돌려보내지 말았으
면 두루 좋기야 하겠지만 그것은 법이 아니요 사리에도 어그러지는 일이었
다. 또 붙잡아 두고 돌려보내지 않는다고, 작히나 잠자코 있을 시어머니 박
씨부인도 아니었다.
“어서 저녁 좀 분별허게 해라. 나그네두 하나 있구 허니…… 겉이 와준
동문가 보드라. 사랑에서 기대리고 있으니, 어서. 시장허긴들 조음들허겠느
냐.”
진주와 함께 반색을 하면서 마당으로 내려서는 창수의 아낙더러 할머니가
그렇게 이르던 것인데, 그러자 창수가 걸터앉았던 마룻전에서 불끈 일어서
면서 버럭 지르는 소리가
“자네 무엇허러 오는가? 바가리루 물 좀 퍼다 끼얹어 달래나?”
할머니, 진주, 창수의 아낙 모두들 황급하였다. 준호 당자야 무색하여 몸
주체할 바를 몰라했음은 물론이고.
창수는 성난 숨을 잠깐 들이쉰 후에 다시
“교군 타구 왔거들랑, 작대기루 다리뼉다구를 부질러놔 달래나? 방에다
불 좀 싸놓아 보여 달래나?”
그러고는 신발을 차벗고 마루로 올라가 쿵쿵거리면서 건넌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떨어질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섰던 준호는, 그러다 다음 순간 창수의 말이
다 그치기 전에 벌써 몸을 홱 돌이키면서 차면 밖으로 반달음질을 쳐 나간
다.
革命家[혁명가]의 後裔[후예]
아랫방…… 일찌기 처녀 적부터 진주가 거처하던 방이었고, 혼인 때에는
신방을 차리고 한 그 방이었다. 그 방에서 다시 진주와 준호는 기약치 아니
한 밤을 또 한번 맞이하였다.
촛불이 환히 밝은 가운데 초저녁은 건듯 겨웠고.
준호는 눈을 내리깔고, 만들어 앉힌 것처럼 고대로 앉아 옆에서 누가 무슨
소리를 하거나 눈썹 하나 까닥도 않는다. 앞에는 저녁 밥상이 손도 대지 아
니한 채 고스란히 놓여 있다. 할머니가 식은 국과 찌개를 손수 내다 손수
데워 들여온 것이 도로 다 식는다.
진주는 달래다 달래다 팡져, 우두커니 밥상머리에 가 앉았을 뿐이다.
준호는 좀처럼 속이 풀어질 수가 없었다. 생전 처음 당한 일이었다.
집안에서고 나가서고 남한테 그런 박절스런 면박을 당해본 일이 없었다.
어떻게도 무렴하고 부끄럽든지 곧 죽고 싶었다.
몸이 당장 그대로 없어져버리지 않아지는 것이 야속하면서 그는 한사코 달
리었다.
안으로부터 심상치 아니한 높은 음성과 노인의 성화하면서 쫓아나오는 기
척을 듣고 의아하여 사랑에 있던 윤석이 대문 밖으로 나오다 마침 그를 막
지 아니하였더라면 준호는 이 밤에 어디 지경을 갔을는지 몰랐다.
윤석은 이유는 어떠하였던, 달려나가는 사람을 아뭏든 붙잡고 보아야 할
것으로(만류해야 할 것으로) 알았고, 뒤미처 쫓아나온 할머니가 다른 한편
팔을 부여잡고 하여 준호는 더는 달아나지를 못하였다.
준호는 붙잡힌 팔을 빼치려고 몸부림을 치고 발버둥을 치고 하였다.
아무 소리도 않고 싸움에 지친 수탉처럼 새근새근하면서 함부로 근두박질을
했다. 얼마를 그러다 그만 시진하여 펄썩 땅바닥에 가 주저앉아 버렸다.
“온 이런 망신이 있나, 점잖은 사람이. 저 하인들이랑 보는데……”
할머니가 안아 일으키면서 하는 이 말은 효과가 대단하였다. 준호는 단박
에 저항을 버리고 할머니가 안아 일으키는 대로, 손목 잡아 이끄는 대로 안
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준호는 제 집에서도 그러지 못할 테거늘 항차 흉허물 많다고 하는 처가에
까지 와서 하인배들이 보고 하는 앞에서 그런 볼성없는 거동을 하다니 망신
도 이만저만찮은 망신이었다. 가사 죽을 고통을 참을값이라도 체모를 지키
지 아니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 이미 준호의 어린 머릿속에 위협적으로
쩔어 있는 바 모친 박씨부인의 훈도였던 것이다.
어려움 있는 손님이었다. 그가 대문 밖에 주저앉아 이짐을 부린다고 여럿
이 달려들어 네 손발 갈라잡고 동동 들어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 머슴 시
켜 불끈 안아들여 갈 수도 없는 처지. 그러니 무심코 할머니는 한말이었으
나 그 말 한마디가 아니었다면 옆에서 벼락불이 떨어진다더라도 선뜻 준호
로 하여금 이끌리어서나마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지는 못하였을 것이었었다.
“난 그만 죽어버리든지, 머리 깎구 절루 가서 승(女僧)이 되든지 허구 말
아예지, 오나가나 이렇게 애만 태우구 어떻게 사람이 사는구 !”
진주가 밥상머리에 앉았다 퍼뜩 혼잣말로 하는 것이었다. 철없는 아기 새
서방 앞에서 소견머리없이 진심으로 무슨 팔자 자탄 같은 것을 뇌사리고 할
진주는 아니었다. 하도 그렇게 토라져 가지고 앉아서 예사 달래고 하는 말
로는 밤이 새어도 무가내할 것 같고 해서 슬며서 속을 한번 질러주어 보자
는 생각이었다.
미상불 반응은 있어, 이윽고 준호는 여지껏 내리깔고만 있던 눈을 가만히
들면서 가만히 기색을 살핀다.
그러고는 얼마를 있더니 붙은 입술이 조금만 떨어져
“그럼, 나 밥먹구 허믄 낼 나하구 겉이 집이 가우?”
하고 겨우 묻는다.
준호는 새댁이 오늘 일껏 왔다가 그런 못 당할 일을 당하고 또다시 쫓겨오
고 말았으매, 인제는 영영 올 생각을 아니하려니 하였다. 그리고 준호에게
는 그것이 걱정이요 위협이었다.
“낼? 겉이요?”
진주가 웃으면서 묻고, 준호는 눈으로 그렇다고 대답을 한다.
“겉이 갔단 정말 또 큰일나라구요?”
“………”
“이놈, 누가 널더러 가 데리구 오래드냐시믄서, 어머님이 훌훌 뛰실게 아
녜요?”
“………”
“저야 괜찮다지만, 어머님헌테 그 무선 맬 또 맞구 하실 테니, 걸……”
“난 매 맞아두 일없어, 머.”
“나 인제 새달에 가께요.”
“………”
“새달 ——— 시월 스무날이 어머님 생신 아녜요? 그러니깐 열아흐랫날 가께
요.”
“그럼 한 달두 더 남았게?”
“오늘이 초열흘이니깐 한 달하구 아흐레죠 머. 그렇지만 한 달 아흐레 잠
깐 아녜요?”
“꼭 오우?”
“그럼요.”
준호는 진주의 얼굴을 말끗 건너다본다. 그러고는 돌르느라고 하는 말이
아닌 줄을 알고서야 배깃이 웃는다. 안심을 하여도 좋았던 것이다.
사랑에서 윤석이 혼자 저녁 먹는 것을 나가 보고 들어오던 할머니가 도란
도란 나는 이야기 소리를 듣고 반겨하면서 방문을 연다.
준호는 마악 수저를 들고 첫술을 뜨는 참이었다.
“국서껀 또 식었을 텐데……”
할머니는 혼잣말로 그러면서 방으로 들어온다.
“얘야 온, 좀 데워 들여오들랑 아니허구서……”
“안직 그리 식지 않었어요.”
그러다 진주는 국그릇에 손을 대어보면서
“얼른 데워오까요?”
하고 준호더러 묻는다.
준호는 고개만 젓고.
할머니는 밥상 한편머리로 가 앉아 하도 귀여 못하겠는 듯이 준호의 밥 먹
고 있는 양을 들여다본다.
“별안간 반찬이 없어서…… 이렇게 소밥(素食)을 대접해 어떡허나? 다신
처가에 아니 올까보군!”
찬이 없다는 건 겸사였다. 찬은 떡 벌어졌었다. 할머니는 준호가 그런 무
안을 당하였으니 좀처럼 처가 걸음을 하려 아니할 것이 실상은 걱정이었다.
미상불 준호는 이 처가엘 다시 와 그 처남을 대하고 할 염의가 시방 같아
서는 날 것 같지가 아니하였다.
“온 글쎄 그럴 도리가 있드람 ? 썩 마당으루 내려서서, 어서 오라구, 반
갑게 맞아들이들랑 아니허구서. 처남이란 건 매부를 다아 참 칙사처럼 위해
야 하는 법인데…… 그러나마 그 매부가 어떤 매부길래.”
준호는 다뿍 거북스러 고개를 숙이고 밥만 파고 있고.
“그 무슨 성미가 그렇게두 괄괄허담. 그 사람은 워낙 그것이 큰 험이어
든. 꼭 그거 한가지가……”
“………”
“저두 맘으루야 매부를 무어 참 여간 귀여허구 소중히 생각허나. 친동생
진배없이 여기는걸. 늘 허는 말을 듣거나 눈치를 보거나…… 그러면서두 그
욱허는 승깔을 오늘은 못 참구서 고만.”
“………”
“그래 벌써 혼자서 뉘우치구 있을 거야. 그래 사죄를 와 허구퍼두 시방
부끄러 못오구 있지. 그 속 번연히 아는 배……”
“………”
“내, 내일 아침일랑 새벽같이 붙들어 가지구 와서 두 무릎 단정히 꿇려앉
히구섬, 매부 어저껜 내가 잘못했스니 죽여 주오, 허구 빌게시니 해야
지…… 아니 빌구 배기나. 아니 빌었단 나한테 곤장을 단단히 맞구라야 말
텐데.”
옆에서 듣고 앉았던 진주는 곧 웃음이 터지려고 하는 것을 겨우 참는다.
할머니는 준호가 외톨 손자사위로서 다시 없이 사랑스럽고 소중도 하려니
와 한편으로는 자별한 기대가 한가지 있는 것이 있었다.
할머니의 눈에는 준호가 그 유순하고 숫기 많은 천품이, 장차 자라서 집안
(家庭)이라는 것을 등한히 할 사람이 아닐 것으로 보였다. 그는 매양 집안
에 있어서 집안을 위하여 집안일이나 하면서 세상을 살아나갈 한 착실한 지
아비 재목이었지, 엉뚱히 집안을 떠나 집안을 불고하고 천하일에 참여를 하
여 서둘며 납뛰고 할 패기(覇氣) 같은 것은 타고난 것이 없었다.
천하일에 참여하고 서둘고 남뛰고 하느라고 집안을 떠나 집안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마침내는 신명(身命)을 그르친 지아비를 섬기었으며 아들을 두었
던 할머니는, 손자사위의 그러한 성품이, 사랑하고 소중한 단 한 점의 혈육
인 진주의 안온한 장래를 위하여 작히 다행스런 일이었다.
할머니는 성을 강씨라고 하고, 소공주골(小公主洞) 남진사의 부인이었다.
할머니 강씨부인이 아직 정정히 젊던 서른한 살 적, 고종(高宗) 이십일년
(西紀[서기] 1884년) 갑신(甲申) 시월 열아흐렛날…… 이 날은 말할 것도
없이 수구파(守舊派)의 사대당(事大黨)이 김옥균(金玉均) 일파의 새 정부를
도로 없이하려고 창덕궁으로 원세개(袁世凱)의 청병(淸兵)을 이끌어들여 쿠
데타를 일으킨 결과 개화당(開化黨)이 삼일천하로써 패를 당하고 정권은 다
시금 민씨(閔氏)네 일파의 수중으로 돌아가던 그날이었다.
이 날도 남진사는 집을 나가려면서
“기대리지 마시오.”
하고 나갔다.
태연한 얼굴로 태연히 하는 말이었고, 배웅하는 강씨부인도 역시 태연히
“상심해 다녀오세요.”
하기는 하였다.
그러나 강씨부인은 가슴은 결코 평온할 수가 없었다.
죽으면 돌아오지 못할 테니 기다리지 말란 그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남진사는 평일에는 늦으면 늦겠다든지, 혹은 오늘은 돌아오지 못하겠다든
지 하는 말로써 하여, 집안 사람의 기다리는 걱정을 덜게 하였었다. 그러던
그가 그저께 ——— 열이렛날 아침부터 그 기다리지 마시요란 말을 하였다.
농통스런 여자라면이거니와 강씨부인쯤으로는, 험난한 시절에 천하사에 참
여하는 남편을 섬기는 몸인지라, 늘 거기에 대한 주의와 관심을 등한히 하
지를 아니하였고, 그래서 은근히 어떤 큰일을 꾸미며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나마 기수 채고 있던 끝이라 남편이 전에 없이 이르기를
“기대리지 마시요.”
하는 말에서 그러면 오늘 드디어 거사를 하는구나 하는 짐작을 선뜻 할 수
가 있었던 것이다.
과연 석양 때 경우궁(景祐宮)에서 남진사도 그 당의 한 사람인 개화당이,
민씨네 사대당의 낡은 주권을 엎어뜨리고 새 정부를 꾸미는 변이 일어났었
다. 이것이 후세에 갑신시월의변(甲申十月義變)이라 이르는 우정국(郵征局)
쿠데타였다.
온종일과 밤새도록을 가슴 졸이면서 기다리던 강씨부인은 거진 새벽녘에야
무사히 돌아온 남편을 맞이하였다.
남진사는 흥분이 가시지 아니한 얼굴에 일변 흡족하여 하는 웃음을 지우지
못하였다. 그는 부인으로 하여금 술을 내오게 하여 서너 잔 거듭 마시었다.
그러나 문득 곤히 자고 있는 열한살박이 외아들 병수를 깨워 옆에 바투 앉
히고
“어서어서 자라서 나라일 하렷다?”
“네에.”
소년은 목 잠긴 소리로 대답이었다.
“집안일이나 제 한몸만 생각하느라고 나라일을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
“가장 천하고 보잘것없는 자올시다.”
“큰일 앞에 주검을 두려워하는 자는?”
“천하에 졸장부올시다.”
“장부는?”
“모름지기 의(義)를 목숨보다 중히 여기고 천하를 위하여 내 한몸을 저바
립니다.”
여기까지는 평일과 다름이 없었다.
남진사는 인하여 머리를 쓸어주면서
“병수야?”
하고 곡진히 부른다.
병수는 뜻밖이라 대답 대신 고개를 들고 부친의 얼굴을 본다.
“아버지 없어도 낙심 말구, 외로워 말구, 어머니 뫼시구 자라지이?”
“………”
“아버지의 신칙이 없다구 자라 졸장부가 되어서는 아니되렷다?”
“네.”
소년은 겨우 대답을 한다. 이 끝엣 두 가지 문답은 처음 일이었다.
또 남진사가 아들을, 적어도 교육하는 자리에서 그쯤 음성을 곡진히 한다
던가 더우기 머리를 어루만진다던가 하면서 노골히 애정을 드러내며 애무를
한 적은 일찌기 없었다.
강씨부인은 옆에서 시중을 들면서 남편이 조모(朝暮)의 생사를 예측 할 수
없을 만큼 위험 절박한 용솟음 가운데 뛰어들었다는 것이 마침내 사실이라
는 것과 그리고 기다리지 말라는 말이, 죽지 아니하면 돌아오게 될 테니라
는 뜻인 것이 과연이었음을 확실히 깨닫지 아니치 못하였다.
남진사는 잠깐 눈을 붙이는 시늉하다, 이른 새벽에 총총히 집을 나가면서
역시 기다리지 말라는 말을 이르고 나갔다. 그리고 사흘째인 이날 ——— 열아
흐렛날도 그렇게
“기대리지 마시요.”
하고 나가던 것이었었다.
남진사가 집을 나간 지 얼마 아니하여, 동북간방(東北間方) 창덕궁 대궐
쪽으로부터 총소리가 일었다.
총소리는 한참 동안 콩을 볶다 끊기고 끊겼다는 또 콩을 볶고 하기를 온종
일 계속하였다.
밤이 들어서야 총소리는 아주 끊이고 말았다. 좌우간의 결말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그 침정이 가장을 사지에 보낸 집안 사람으로 하여금 한결 초조로
운 불안을 느끼게 하였다. 참다 못해 강씨부인은 하인을 놓아 동정을 수소
문하게 하였다.
“창덕궁서 일병이 대국병헌테 함몰을 당하고, 개화당은 쫓기어 북묘(北
廟)로 상감을 뫼섰다워요.”
이것이 염탐 나갔던 하인의 첫 보고였다.
조금 있다 또 한번 내보내 보았다.
“대국병이 북묘를 엄습하고 상감을 빼앗어 저의 영문으로 뫼시고 개화당
은 왜관(日本公使館[일본공사관])으로 쫓겼다워요.”
두 번째의 보고였다.
강씨부인은 이 두 차례의 보고로 이날 변의 윤곽은 짐작을 할 수가 있었
다. 그러나 차라리 모르고 있더니만 못한 노릇이었다. 남진사의 편이 패한
것이 번연한데 그의 안위는 알 길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때 남진사는 부상한 몸에 이중 삼중으로 실망과 비통한 가슴을 안고 일
본공사관에 남은 동지들과 헤어져 홀로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날 창덕궁에서 남진사는 용맹스럽게 잘 싸웠다. 일병 이백 명과 몇 십
명에 불과한 개화당편의 역사가 이천 명의 청병을 맞아 싸운다는 것은 결코
수월한 싸움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라를 건지려는 정열에 불타는 개화당편
의 젊은 역사들은 적을 두려워 아니하고 용감히 싸웠다. 그중에서도 남진사
는 목숨을 아주 탁 내던지고 대담스럽게 싸웠다. 물론 결국엔 패하고 말기
는 하였으나 적어도 싸우는 동안만이라도 남진사의 그렇듯 용감함이 얼마나
이편의 사기(士氣)에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남진사는 처음에는 왼편팔에 총탄을 맞았다. 그러나 굴함이 없이 그대로
싸웠다. 그리고 석양 무렵에 왼편 다리에 또다시 총탄을 맞고 쓰러져 몸을
지탱코 설 힘이 없을 때까지 그는 부라퀴로 싸워대었다.
정신없이 싸울 때는 몰랐으나 부상하고 쓰러져서야 그는 문득 일병의 싸우
는 것에 주의가 끌렸다.
남진사는 전자부터 일병이 싸움에 다부지고 용맹하다는 말을 듣기는 하였
으나 실지로 보자니 미상불 빈말이 아니었다.
대단히 용맹하였다. 특별히 단병접전에서는 일병 하나가 능히 청병 너댓씩
은 대적해내었다. 원체 청병이 수효가 많기 때문에 일병은 하릴없이 하나둘
연방 쓰러지기는 하던 것이나 그래도 조금치도 겁하지 않고, 악악 덤비면서
싸웠다. 청병은 떼로 와 덤비다가도 하나가 픽 쓰러지면 죄다가 물씬물씬
뒤로 물러나가는데 일병은 도무지 뒤로 물러설 줄을 몰랐다. 둘이고 셋이고
함께 덤비다가 그중 하나든지 둘이든지가 쓰러지면 죽는 놈은 죽는 놈이고
산 놈은 그냥 그래도 앞으로만 나가곤 하는 것이었다.
“희한스러! 용맹해!”
남진사는 처음엔 이렇게 탄복하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같은 전열(戰列)에
서 같이 용맹히 싸우고 있는 개화당, 즉 조선 사람 역사들과도 함께 바라다
볼 때에 심중에 퍼뜩 한가지 의문이 솟는 것이 있었다.
‘우리는 저렇게 우리 나라를 ——— 조선을 위해서 싸운다지만 저네들 일병
은? 대관절 무엇 때문에 저다지도 목숨 아까운 줄, 주검 두려운 줄 모르고
저다지도 투철히 싸우는 것일까?’
적지 아니한 충격이었다. 남진사는 급박한 싸움판인 것도 상처의 아픔도
다 잊고서 함빡 그 생각에 남져버렸다.
고개를 커다랗게 끄덕이기도 하다, 갸웃하고는 언제까지고 꼼짝 않고 생각
만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단 갑자기 고개를 설레설레 젓기도 하다, 이 짓
을 무수히 되풀이하였다.
그러다 마지막 부상한 몸을 상체를 별안간 벌떡 일으키면서
“옳거니! 선생님 말씀이 옳았어. 청국이 늙은 범이요 아라사가 북방의 주
린 곰이라면 일본은 어린 표범이니라고. 절절히 옳은 말씀이여. 일본인들
우리에게 야망이 없을까보냐고. 우선 그 힘을 빌려 쓰기는 하되 크게 경계
는 해야 하느니라고.”
워낙 상처의 출혈이 많았던 탓으로 남진사는 미구에 혼절이 되었었다.
남진사는 개화당의 모모한 여러 동지들과 마찬가지로 때의 큰 선각자이며
혁신운동의 숨은 지도자 유대치(劉大致)의 문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
러나 그는 다른 동지들에 비하여 대치의 문하인으로는 매우 연천한 편이었
다. 이를테면 후진인 셈이었다. 또 개화당에 가담하기도 그다지 오랜 것이
아니어서 이렇다 할 공로도 없으며 존재도 자못 미미한 것이 있었다. 그러
나 몇몇 두목엣 사람들은 남진사가 하여커나 녹록치는 아니한 인물인 것과
그래서 장차 한몫 쓰일 모가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진작부터 인정하고 있었
다. 계제에 그러자 먼젓날의 우정국 거사에서와 오늘의 덕수궁 접전에서며
떨친 바 용맹으로 인하여 그가 실행적인 방면에 있어서도 대단히 요긴하고
미더운 동지임을 알게 되었었다. 그러하였기 때문에 우선 임시나마 흩어지
게 하는 다른 아랫길 동지들 축에 넣지 않고 짐스런 부상자를 착실히 보호
하여 창덕궁에서 북묘로, 북묘에서 다시 일본공사관으로 데리고 오기까지
한 것이었었다.
의원은 팔과 다리가 다 탄환이 뚫고 나가고 박혀 있지 아니하였다는 것과,
팔은 무사하겠으나 다리는 십상 병신이 될까 보다면서, 제독한 약을 뿌리고
고약을 붙이고 하였다.
치료를 받으면서 남진사는 두 번째 혼절을 하였고, 다시 정신이 들기는 김
옥균(金玉均)을 비롯하여 상하 동지들이
1. 우선 일본공사를 따라 일본으로 피하여 갈 것.
2. 일본서 일본 정부와 교섭하여 유력한 병력을 보내도록 하여가지고 쉬이
다시 거사를 할 것.
이 두 가지 결정을 마악 짓고 난 참이었었다.
“그러니 남진사도 같이 가시겠지?…… 몸이 저대지 상했으니 좀 조심 되
기야 하겠지만, 의원이나 하나 데리고…… 일본만 가면 양의(洋醫)도 많고
하니깐 상처는 염려 없으리다.”
김옥균이 일동이 일본으로 가기로 작정한 바를 설명한 후에 이렇게 남진사
더러 청이랄까 권이랄까, 말을 하던 것이었었다.
핏기 없는 얼굴에 눈을 스르르 감으면서 잠깐 침음하는 듯하다가 남진사의
입에서는 의외엣 대답이 나왔다.
“나는 일본으로 갈 생각도 없으려니와 여러분이 다만 한때 피신을 가신다
는 것은 모르되 끝끝내 일본의 힘을 끌어들여서 일 도모를 하시려 하시는
데는 찬성을 할 수가 없읍니다.”
별반 공로도 없고 아랫길 동지에 지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일조에 그가
두목 축에 참예를 하게 된 것이나 진배없는 기회를 주는 것이거늘 일언에
감히 물리치다니, 그도 그려니와 오래도록 부동의 방침으로 지켜오는 개화
당의 행동방략을 감히 불가한 것이라 하는 데는 방자스럽기 짝이 없는 노릇
이었다. 좌중의 박영효·서광범·서재필 이하 다들 낯꽃이 일제히 달라졌
다.
김옥균은, 그 역시 심중의 동요가 없지 못하였을 것이나 태연히 묻는다.
“무슨 연유로 ?”
“아까 대궐(昌德宮[창덕궁])서 일병이 접전하는 양을 보고 고옴곰 생각했
읍니다. 대체 저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저렇게 목숨을 애껴 아니하고 용맹
히 납듸면서 싸움을 하는고? 퍽퍽 죽어 넘어지면서도 기승으로 덤비면서 싸
우지 아니했읍니까? 일병도 사람이어든 제마다 귀한 목숨이요 소중한 피가
아니겠읍니까? 왜 어째서 귀한 목숨을 버리고 소중한 피를 흘리면서 그대지
꿋꿋이 싸웁니까? 반드시 무슨 목적이 있을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우
리네 조선 사람은 나라를 건지겠다는 목적이 있으니까 목숨 아냐 더한 것을
버리고라도 싸우는 것이 아닙니까? 밖으로는 우리 나라를 저의 속국으로 삼
으려는 청국을 쫓고, 안으로는 썩은 민가네의 악정을 뿌리뽑고, 그래서 나
라를 건져내자는 크나큰 목적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목적보다 가벼운 목
숨을 아깝다 아니하면서 싸운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일병은? 일병이야 일
본 사람이 아닙니까? 조선 사람이 조선을 위해 싸우는 판에 뛰어들어 일본
사람이 무슨 목적으로 같이 싸워 주고, 늘비하니 죽어 넘어지고 합니까? 설
마 장난이야 아니겠지요?”
“어째 장난이람? 번연히 우리 조선 도와주자는 노릇 아니요?”
한 동지가 핀잔하듯 하는 말이었다.
남진사는 그를 돌아다보면서
“왜 도와주나요 ?”
“왜는 무슨 왜? 이웃 나라 정리로 도와주는 거지.”
“허어! 여니 사람과 사람끼리는 친구간의 정리라든지 혹은 의협심이라든
지 그런 걸로 이해 상관 아니하고, 가사 목숨이 위태한 일이라도 나서서 도
와주고 싸움도 가로맡아 주고 하는 수가 있지요마는,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어떤 나라가 병력을 들여서 다른 어떤 나라를 도와주는
데는 반드시 제 나라에 그만한 이해상관이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임진왜란
때에 명나라가 국력에 뒷줄이 당기는 판이면서도 무엇 때문에 그 많은 출병
을 해주었읍니까? 조선이 왜국한테 망하고 보면 순망치한으로 장차 환이 명
나라에 크게 미칠 테니까 그래 상국(上國)의 의리를 내세우는 체하고 출병
을 한 것이 아닙니까? 조선이 백번 망하드래도 왜국의 환이 명나라에 미칠
염려가 없었다면 단 백 명의 군사도 보내려 들지 아니했읍니다.”
좌중은 아무도 대꾸를 하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청국이 늙은 범이요, 아라사가 북방의 주린 곰이라면 일본은 어린 표범
이니라. 일본인들 우리에게 야망이 없을까보냐. 이런 말씀을 선생님께 하신
적이 있는데 들 들으섰는지요?”
다른 사람들은 고개를 기울이고 혹은 서로 얼굴을 보고 할 뿐, 김옥균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러니 힘을 빌려 쓰되 크게 경계해야 하느니라고 말씀은 하섰지.”
“일본은 자고로 조선에다 맹랑한 야망을 품어 내려온 나랍니다. 조선땅을
여간 탐을 낸 것이 아닙니다. 또 조선땅이 탐이 날 뿐만 아니라, 섬 중에서
만 군색히 살기보다는 한바탕 중원 천지에 나가서 큰소리를 쳐보기가 소원
입니다. 임진란의 괴수 풍신수길(豊臣秀吉)이가‘동양천지에서 잘났다는 놈
은 제마다 중원 복판에다 한번씩 도읍을 해보지 아니했느냐. 이 수길이 이
연(李淵)이나 철목진(鐵木眞)이나 주원장(朱元璋)이만 못하란 법이 어데 있
느냐’이런 소리를 했답니다. 이만치 일본이란 앙뚱스런 종족입니다. 조선
을 먹고, 먹은 조선을 드디고 건너가, 중원을 무찌르고 하자는 것이 일본
종족의 면면한 야망입니다. 임진왜란이 별 것입니까?”
“풍신수길이놈이 조선 사기찻종이 탐이 나서 그랬대지 않소?”
맨처음 남진사를 핀잔주던 백아무(白某)라는 동지가 입을 삐죽하면서 옆엣
동지더러 하는 말이었다.
남진사는 들은성도 않고 김옥균 말을 대하여 말을 잇는다.
“나는 오늘 대궐서 일병들이 접전하는 것을 보고, 놈들이 한 놈 한 놈이
제마다 풍신수길이 같다고 생각을 했읍니다. 종차로 여러분이 일병을 천 명
을 청해 온다면 천 명의 풍신수길을 데려오는 것이요, 만 명의 일병을 청해
온다면 만 명의 풍신수길을 데려오는 줄로 아서야 합니다. 그래도 그여히
데려오시겠읍니까?”
백아무라는 동지가 얼른 나서면서 시비조로
“곤달걀 지고 성 밑엔 못 가기지그려. 조선은 그럼 영영 망하고 말란 말
이요 ? 원세개도 민가들도 그대로 우두커니 두고 보잔 말이요?”
“청국은 당정코 물리쳐야 하지요. 민가네 패 물론 다 쓸어내야 하지요.
그러나 그것을 일병을 데려다 하는 날이면 앞문의 늙은 범을 쫓자고 뒷문으
로 어린 표범을 불러들인 거조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라사를 시
켰다가는 그건 주린 곰을 불러들여 이 강산을 싹싹 핥게 하는 짓이나 다를
거시 없고요.”
“아니 그러면……”
백모라는 동지가 마침내 얼굴에 핏대를 세우고 앞으로 나선다.
하는 것을 김옥균이 손을 들어 제지한 후에 천천히 남진사더러 묻는다.
“남진사의 말은 도대체 외국의 힘을 빌어가지고 독립을 도모하고 내정을
혁신하고 하는 것이 잘못이다 후환이 온다 그런 뜻인데, 그러면 당장 눈썹
이 타는 이 국난을 뉘 힘으로?”
“우리 힘으로 하지요.”
“우리 힘?”
“백성이 있지 않습니까?”
“백성?”
“우리 나라 일은 우리 나라 백성을 데리고 하는 수밖에 없읍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 일은 우리 나라 백성을 데리고 해야만 합니다.”
“흥. 백성은 농사하라는 백성이지 정치(政治)에 참여하라는 백성인가?”
백모라는 그 동지가 빈정거린다.
남진사는 못 들은 체, 자기 할 말만.
“백성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개화당은 개화당 사람 몇몇이서 남의 나라
군대 ——— 일본의 병력을 빌어 청국 세력과 민가네를 쫓고서 상감을 뺏어 뫼
셔다 새로 정부를 꾸미고…… 그러는가 하면 민가패는 청병을 끌고 와서 상
감을 뺏어 뫼셔다 저이네 정부를 꾸미고…… 만날 이 짓들만 하고 있으니,
그것을 심하게 말하면 장난이요 좋게 말을 해야 고작 개화당이면 개화당 몇
몇 사람끼리 개화당 일을 하는 것이요, 민가패는 저이들 일족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요 하지, 나라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뜻은 나라일이거니 하겠
지요. 핑계는 나라일을 하노라 하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무슨 나라일이 됩
니까?”
“백성을 데리고 하자니 백성이 응하고 나서 주어야 아니하오? 나라가 망
해야 오불관언으로 구경만 하고……”
“백성이 죽어가야 오불관언으로 당쟁이나 일삼던 나라(政府)와, 백성을
노략질해서 호강으로 살던 벼슬아치들이 백성으로 하여곰 나라(國家)를 저
바리게 한 것이 아닙니까? 우리 나라 백성은 백성이 나라를 돌아보려다가는
살 수가 없었읍니다. 나라를 의지하려 하나 나라는 빼앗어 가는 것은 있어
도 주는 것은 없었읍니다. 자연 나라를 생각지 않고 나라를 떠나 제 홀로
살도록 궁리가 뚫리고 길이 들고 한 것이 아닙니까? 있어도 없으나 다름없
는 나라, 무섭기나 하고 빼앗어 가기나 하는 나라, 그런 나라인데야 망하는
것이 그대지 애석할 것이 있겠읍니까?”
“그러니 남진사 말대로 시방 백성들이 그렇게 나라일에 등한한 것을 그
힘으로 일을 해보자는 말이 공연한 말이 아니요?”
“그렇지만 지금부터라도 백성은 우리들 선도자(先導者:指導者[지도자])가
잘할 나름입니다. 가르치면서 모아서 합심을 시키면 됩니다. 암만 본조 오
백변 정사가 나뻐서 백성의 마음이 나라로부터 떨어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조선 백성이라는 혼백은 없어지지 아니하고 백혀 있읍니다.”
“해가에!”
“더디어도 허릴없지요.”
“그 짓을 누가 하고 있드람!”
백아무라는 동지의 자포적으로 쏘아붙이는 말이었다.
그 말을 받아 남진사는 단정적으로
“못하면 우리는 선도자 될 자격이 없겠지요.”
하여버린다.
좌중 여럿의 표정에 굵은 파문이 일었다. 이윽고 김옥균이 무겁게
“남진사의 주장도 일변 이치가 있기야 하지만, 내 생각 같아서는 지나친
천착이 아닌가 싶소이다. 일본이 반드시 조선을 먹자는 흑심만 있다고는 볼
수도 없지 아니하오? 더구나 지금은 병자수호조약(丙子 : 江華修好條件[강
화수호조건])이 있고 한 터인데.”
“그렇지만 바로 얼마 전에 조선을 치자는 정한론(征韓論)으로 일본 조야
가 시끄란했던 일도 생각해야지요. 남의 나라를 꼭 먹어야 할 판이고, 먹을
계제만 당했다면야 조약 같은 것을 거리껴 아니 먹고 말 것인가요?”
“글쎄 그런 억지가 없을 것은 아니겠지만,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신의(信
義)라는 것이 노상 없으란 법도 또한 없는 것이니까.”
김옥균은 일본 정부의 요로 사람들과 민간 사람들이 여러 친지가 있었다.
또 일본공사 화방의질(花房義質)과도 깊은 교분이 있었다.
그런 인물들의 심히 호의적이요 별로 음험한 사심이 없어 보이는 언동으로
미루어 일본이 과연 조선을 저희의 속국으로 정복하여 버리려는 야망이 있
는 것으로는 단정하기가 어려웠다. 역시 조선이 종래의 청국의 간섭과 중압
으로부터 벗어나 한 실력 있는 독립국가로서 발전을 하여 나가야만 비로소
동양에 있어서의 각국간의 외교적 세력이 균형이 잡히는 동시에 서로간에
알력과 충돌 대신 평화와 우호관계와 그리고 골고루의 번영이 보전이 될 것
이매, 그래서 일본은 발을 벗고 뛰어들어 열심히 일을 서두는 것이라고 보
는 것이 가장 옳은 생각인 것 같았다.
마침 유대치를 찾으러 나갔던 사람이 또다시 허행을 하고 돌아왔다. 집은
아주 빈집이고, 아무리 수소문을 하여도 알 길이 없다는 것이었다. 대치는
이날 낮때부터 온데간데없이 종적이 사라졌었다.
다른 여러 사람도 여러 사람이려니와 이 길로 가서 대치를 만나 오늘의 느
낀 바를 다 설파한 후에 더불어 앞일을 의논하렸던 남진사의 실망은 대단히
컸었다.
남진사는 집 문 밖에서 강씨부인을 불러내어, 밝는 날 하루에 살림을 대강
청장하고서 아들 병수를 데리고 뒤쫓아오라는 말을 총총히 이르고는 그대로
교군을 몰아 고향으로 내려갔다.
고향이라고 하지만 선산과 토지가 있을 뿐, 여러 대 전에 떠났었고, 원근
간 일가친척도 없어 타관이나 진배없는 생소한 곳이었다. 그러나 고을의 원
이 남진사와는 동문수학을 하였고, 시방도 절친한 사이여서 그의 두둔으로
몸을 피하여 있기엔 십상 안전한 것이 있었다.
갑신으로부터 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십 년 동안에 한국 말년의 국운
은 알아보게 더 기울었다.
노서아 공사 웨베르는 당대에 수완이 뛰어난 외교관이었다.
북경 있는 노서아 공사관 서기관 웨베르는 갑신 유월 임시로 조선에 파견
되어 오자 손쉽게 한아통상조약(韓俄通商條約)이라는 것을 체결하는 데 성
공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을유(乙酉)년에는 정식으로 공사에 임명 되어 서
울로 와 주재하면서 함경도의 부령(富寧)을 노서아에게만 개방한다는 조약
을 맺었다.
웨베르는 그 안해가 또한 영리한 여자이어서 내외가 한가지로 궁중을 드나
들고 정부의 요인들과 사귀고 하면서 교묘한 수완을 부리어 고종을 비롯하
여 상하의 도타운 신임을 얻게 되었다.
이로부터 제정노서아의 동진정책은 한국 조정에다 녹록치 아니한 세력의
토대가 쌓여진 것이었다.
이리하여 청국과 일본 외에 다시 노서아까지 참여를 하여가지고 세 나라가
제마다 제 홀로 조선을 제 손아귀에 움켜쥐려 겯고트는 암약에 한국 궁정과
조정은 불길이 번쩍번쩍 이는 외교 싸움에 국제무대가 되고 말았다.
선잠이 덜 깨어 어리숙하기 짝이 없는 조선이었다. 주권이 있되 없으나 다
름없는 조선이었다. 백성은 유순하고 조정은 무력한 조선이었다. 이런 만만
한 것이 있을 데가 없었다.
극동에 있어서 조선을 얻는 자는 앞으로 동양 천지를 억누르고 어른 노릇
을 할 수 있는 자였다. 조선을 잃는 자는 동양에서 쫓기고 마는 자였다.
한 덩이의 고기를 사이에 놓고 늙은 범과 어린 표범과 주린 곰이 저마다
저 혼자서 집어삼키려고 으르렁대는 이 싸움은 결국 동양 정복의 선수권을
결정짓는 싸움이었다. 써 맹렬할밖에 없는 것이었다.
세 마리의 맹수 사이에 충돌은 조만간 일고라야 말 것이요, 그러나 승리하
는 자가 그중에 어느 자이거나 이씨조선의 한양조(漢陽朝)는 그 이전에 이
미 운명이 결정되어진 코스를 밟을 따름일 것이었다.
내정은 내정대로 어지러웠다.
개화당을 무찌른 수구파에서는 민비를 중심으로 또다시 민씨네 일파가 세
도를 부리었다. 조정과 궁중은 탐욕과 포학과 살상과 그리고 미신의 소굴로
다시 돌아갔다.
개화당의 갑신정변이 직접적으로는 실패를 하였다지만 간접적이나마 노상
아무것도 끼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조정이 영(令)으로써 민간의 의복제
도를 간편하고 활동적인 것으로 개선시킨 것이며, 양식 병원 제중원(濟衆
院)이 생긴 것이며, 지방으로부터 오는 세미(稅米)를 나르는 기선이 등장한
것이며, 더우기 육영공원(育英公院)이라는 이름으로 학교를 세워 신학문을
교수케 한 것이며, 이런 것이 주장 갑신정변의 은연한 여파였음엔 갈데없었
다.
그러나 그런 것쯤의 개혁과 시책으로는 기울어진, 그리고 수구파의 등쌀에
더욱더 기울어가는 국운을 바로잡을 수는 없었다.
외직(外職)으로 나아가는 자 그 관직을 돈으로 사가지고 가지 아니하는 자
가 드물었다. 간혹 아니 사가지고 가는 자가 있다면, 그는 권문의 자질이나
뒷줄 좋은 양반치들이었다.
외직으로 나간 자들은 저네에게 주어진 바 권한 안에서 벼슬을 분매(分賣
: 小賣[소매])하였다. 턱없는 세납을 받았다. 백성에게 무실한 죄를 씌워
놓고 속죄의 값을 받았다.
연달아 흉년이 들었다. 그중에도 병술년의 흉년과 무자(戊子)·기축(己丑)
년의 가뭄은 유심하였다.
백성들은 최후의 길선에까지 쫓기었다. 그들의 앞에는 주검의 검은 구렁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어서 무슨 도리가 생겨야지!’
백성들은 절망 가운데서 문득 무엇인가를 막연히 기다렸다. 이 막다른 급
박한 사태에 어떤 혁변이 오기를 기다리는 한 농민적인 본능의 발현이었다.
그것은 누구든 한번 손짓을 하거나 부르기가 무섭게 와하고 따라 일어설 마
음의 노함이 무의식중에 익어서 있음을 의미하는 상태였다.
갑오년 정월, 전라도의 조그마한 고을 고부(古阜) 땅에서 동학 접주 전봉
준(全琫準)을 두목으로, 동학꾼과 농민이 합치어 일어난 민란(民亂:反亂[반
란])은 정히 농민들의 그 노함의 현실적 폭발인 것이었다.
그 이전에도 처처에 소규모하고 분산적으로 농민봉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
나 이 고부의 갑오동학이란이 가장 규모가 컸고 겸하여 비교적 조직적인 것
이었었다.
동학의 거사한 소식을 듣자 남진사는 당일 밤으로 백여 명 동지를 불러모
아 가지고 아들 병수와 함께 고부로 달려갔다. 병수는 그 사이 벌써 이십
세의 헌다한 장부로 성장이 되었었다.
갑신정변에 일단 실패를 보고 다리 병신까지 된 남진사였으나 뜻마저 꺾인
바는 아니었다.
십 년 동안 그는 청년들에게 신사상과 신학문을 가르침과 더불어 백성들을
일깨우기에 정성과 노력을 기울였다. 이천 석 추수의 재산을 절반이나 그
사업에 대었다.
백성들은 완고하였다. 몽매하였다. 그들은 좀처럼 남진사의 개화운동에 따
르려 아니하였다. 경계하고 피하였다. 비방과 조소도 하였다.
남진사는 때마침 동학이 득세하여 많은 백성이 그리로 돌아감을 보고 자기
도 즉시 동학에 들었다.
실상 남진사는 동학이 마음에 그다지 내키지가 아니하였다. 야릇한 주문을
외우고 괴상한 의식을 지내고 하는 것이 사위스런 미신 행위 같아서 자못
불쾌하였다. 그러나 백성을 얻기 위하여서는 나 한몸의 결벽쯤은 희생을 하
여도 무방하였다.
남진사는 미구에 고을의 접주가 되었고, 삼사백 명의 남녀 동학꾼을 거느
리는 데 이르렀다.
동학이, 싸우면 이기고 치면 빼앗고 하면서 고부를 비롯하여 부안(扶安)
을, 전주를. 그러고는 일단 물러났다 다시 충청도로 해서 공주(公州)로 짓
쳐 들어갈 때에는 그 세가 삼만에 이르렀다.
남진사는 이렇게 늘어가고 강하여 가는 세력을 보고, 백성이 힘이 있음이
역시 사실임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 힘으로써 서울을 무찌르고 우리 힘으
로 우리 나라를 바로잡을 것을 확신하였다. 공주의 싸움에서 관군을 돕는
일병의 탄환을 맞고 말에 떨어져 운명을 하는 순간에도 그는 그 신념을 버
리지 아니하였으며, 조용히 웃는 얼굴로 눈을 감았다.
조선의 농민봉기(農民蜂起)의 역사에 가장 빛나고도 큰 기록을 남긴 갑오
동학은 공주 접전의 패전으로 끝을 우선 막았다.
부친의 시체를 공주성 밖의 산중에 가장하고, 살아남은 동지들과 함께 고
향으로 돌아온 남병수는 인하여 관가에 잡혀 옥에 갇힌 바 되었다.
동학의 잔당은 잡히는마다 총살이었다. 병수도 총살을 면치 못할 사세였
다. 남진사의 벗이던 원은 이미 갈려간 지 여러 해였었다.
강씨부인은 남은 재산의 절반을 헐어 원 이하로 육방의 이속(吏屬)이며 옥
사정은 물론 심지어 통인과 급창이에게까지 듬뿍듬뿍 뇌물을 썼다. 일변 서
울로는 연줄을 놓아 아들의 구명운동에 있는껏 힘을 썼다.
효과 있어, 병수는 놓여나와서 서울로 피신을 하였다. 관가의 문서에는 파
옥(破獄 : 獄脫[탈옥])으로 적혔었다.
조선이라는 한 덩이의 고기를 탐내어 늙은 범 청국과 어린 표범 일본은 갑
오년 유월 스무이튿날 새벽 아산(牙山) 앞바다의 충돌로써 마침내 싸움이
붙고 말았다.
어린 표범은 사나왔다. 늙은 범은 성환(成歡)에서 패하고 평양에서 패하고
정여창(丁汝昌)의 거느린 북양함대(北洋艦隊)도 패하였다.
싸움판은 만주로 옮아가, 구련성(九連城)과 여순이 함락되었다. 그리고 이
듬해 정월에는 위해위(威海衛)가 빠졌다.
일군은 승세를 몰아 북경을 무찌를 기세를 보였다.
청국은 하릴없이 항복을 하였다.
일청전쟁이 터지기 바로 전, 원세개가 서울로부터 도망하던 그날부터 한국
조정은 일본의 독천장이 되었다.
개화당은 좋을씨고나 하고 대원군을 떠받고 나서서 일병의 총검의 위세를
빌어 신정부라는 것을 조직하였다. 김홍집(金弘集)이니 박정양(朴定陽)이니
김윤식(金允植)이니가 모두 대신의 자리에 나아갔다.
신정부에서는 대소 이백여 가지의 이른바 혁신적인 시책을 차례로 반포하
였다.
1. 공사의 문서에 개국기원을 쓸 일
1. 청국과의 조약을 파기할 것 파기하고, 개정할 것 개정할 일
1. 세계 열국에 특명대사를 파견할 일
1. 죄인은 범죄자 본인 이외에 그 가족을 연좌시키지 아니할 일
1. 문벌과 반상의 구별을 폐할 일
1. 평민에서 인재를 등용할 일
1. 과거제도를 폐할 일
1. 조혼을 금지할 일
1. 과부의 재혼을 금치 말 일
1. 공사간 노예제도를 폐할 일
1. 문존무비(文尊武卑)의 폐풍을 없앨 일
1. 백정·재인 등의 천대를 폐할 일
1. 과거 십 년 이내에 양반이나 관원이 백성에게서 빼앗은 토지며 가옥 같
은 것 가운데 적확한 증거가 있는 것을 수사하여 원 소유자에게 돌려줄

1. 궁중으로부터 권신과 무당 판수를 몰아낼 일
1. 타성양자(他姓養子)를 인정할 일
1. 각 아문마다 외국인 고문을 둘 일
중요한 것을 추리면 대강 이러하였다. 또 그러한 혁신정책과 시설을 내세
워 시행하기에 힘쓴 당로자들의 열의도 가상한 것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방안에서 부는 피리였다. 노래가 백성의 귀에는 들리
지를 아니하였다. 혹간 들은 자가 있다 하여도 그들은 이해할 줄을 아직은
몰랐다. 따라서 백성들은 노래에 화하여 춤추지를 아니하였다. 결국 갑오경
장(甲午更張)이란 개혁은 정치가들만이 홀로 여섯 달 동안 불다 만 피리이
고 말았다.
네 사람만 모이면 둘씩 둘씩 패가 갈리어 싸움을 하는 것이 조선 사람……
개화당 안에도 그새 벌써 김홍집·어윤중은 대원군파, 박영효·서광범은 민
비파, 이렇게 두 파로 분열이 생겨가지고 연방 갈등이 생기고 하였다. 일본
의 세력을 업고 들어와 제 힘이라고는 없이 생겨진 일종의 허수아비 정부였
다. 그런 것이 우환 중에 내부 분열까지 생기니 하는 일이 일답게 되어질
리가 없었다.
조그마한 일본이 노대제국 청국을 이겨 넘어뜨린 것은 노서아를 비롯하여
구미열강에게 큰 놀람이었다.
조선을 손아귀에 넣고 만주의 요동반도를 차지한 일본은 노서아의 극동정
책에 대하여 마침내 현실적으로 목에 비수를 겨눈 격이었다.
노서아는 불란서와 독일을 추겨가지고 소위 삼국간섭이라는 것을 하여 일
본이 청국에게서 배상으로 빼앗은 요동반도를 도로 빼앗아 청국에 돌려주었
다. 일본은 원통하나 설마 한 마리의 어린 표범으로 북방의 곰 외에 두 마
리씩 덤비는 맹수와 싸울 용기는 없었다. 의기양양하였던 일본은 어깨가 축
늘어졌다.
이 국제관계의 소장(消長)은 재빨리 한국 조정에 미치었다. 개화당의 친일
파는 밀려나고 친로파(親露派)가 득세를 하였다. 박영효 일파는 역신에 몰
려 일본으로 망명을 하였다. 개화당과 일본 세력에 눌렸던 민비와 그 일파
는 기회를 타 웨베르와 손을 잡았다. 이완용·이범진 따위도 이때는 친로파
였었다.
그렇지 않아도 악이 잔뜩 받친 일본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일본 공
사 삼포(三浦)는 수비대와 검객을 몰로 궁중으로 들어가 고종을 협박하여
친로파를 쫓고 친일파의 정부를 고쳐 세우게 하였다. 이번에 민비는 몸을
피해 달아나다가 일인 검객에게 해를 입은 바 되었다. 물론 계획적으로 한
흉행이었다. 이것이 을미(乙未 : 高宗[고종] 32년, 西紀[서기] 1895년) 팔
월 이십일의 변이었다.
민비…… 그의 국가에 저지른 죄상을 컸다. 그러나 국민은 외적에게, 이름
이나마도 국모(國母)의 학살을 당할 이유를 가지지 아니하였다. 나라가 변
변치 못하다는 비애는 있을지언정.
아무려나 신정부에서는 양력을 채용하고, 종두(種痘) 규칙을 반포하고, 서
울에다 네 곳에 소학교를 세우고, 지방의 요지에 우편국을 설시하고, 군제
를 고쳐 서울에는 친위대, 지방에는 진위대(鎭衞隊)를 두고, 연호를 건양
(建陽)이라 정하여 이듬해 병신(丙申)년부터 시행하고, 그리고 머리 깎는
단발령(斷髮令)을 내리고 하는 등 비교적 실제적인 개혁을 하게 되었다. 그
러나……
“이 목을 베어 바쳐도, 이 상투는 베지 못합니다.”
이러면서 경향의 완고한 유생의 무리와 백성들은 크게 단발을 분개하고 반
대하였다.
여러 천년을 상투 있이 살아 내려온 백성이었다. 그들이 유일한 진리로 믿
으며 생활의 유일한 지도이론으로 신봉하는 유교의 모든 경전 ——— 천자(千
字)로부터 사서삼경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대문에도 상투를 깎고 맨대가리
가 되어도 좋다고 가르친 대문은 없었다. 상투를 베는 자는‘중놈’이 있을
따름이었다. 지금에 상투를 베는 것은‘중놈’아닌‘중놈’이 되거나, 저
오랑캐 왜놈을 본뜨는 것이었다. 국모를 학살한 원수가 있는 왜놈이요, 국
토를 넘겨다보는 왜놈이 아니뇨. 임진왜란에 전 강토를 짓밟으며 무고한 살
육을 방자히 하고, 많은 재화와 백성을 노략하여 간 왜 놈이요, 그 전과 그
뒤에도 늘 변방을 침노하여 근심과 재앙을 끼쳐 준 왜놈이 아니뇨. 그런 왜
놈을 본뜨며 그에 화하다니. 백성들로서는 미상불 펄펄 뛸 노릇이었다.
조정이나 지도자들은 일찌기 한번도 백성에게 외쳐 단발이‘중놈’이 되는
것도, 오랑캐의 풍속이나 왜놈에 화하는 것도 아님을 깨우쳐 준 일이 없었
다. 백성들이 여러 천년 믿으며 지켜내려온 유교의 경전에 대신할 새 시대
의 새로운 생활이 이념을 가르쳐 일깨워 준 일도 없었다. 그러고서 졸지에
낡은 것을 버리라고만 시키니 거기에 파탈이 생기지 아니할 수가 없던 것이
었었다. 일반으로 백성들이란 소처럼 느리기는 하되, 확실히 걸을 줄은 알
되, 말처럼 조급히 달리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인 것이었다.
쌓이고 쌓인 사회적 불평이 민비의 학살과 단발령을 도화선삼아 드디어 터
져나고 말았다. 그들은 단발령도 친일파와 일본의 조종이라 하였다. 춘천을
맨 처음으로 중부와 남방 각지에서 국모의 원수를 갚아라, 상투를 베게 한
친일파의 목을 베어라 외치면서 폭동이 일었다. 의병이 일었다.
조정은 떨었다. 선유사(宣諭使)를 내려보내나 아무 효험이 없었다. 친위대
를 파견하여 무력으로 진압을 시키기 시작하였다.
친위대가 지방으로 나가자 노서아 공사 웨베르는 공사관을 호위한다는 핑
계로 인천에 있던 육전대(陸戰隊) 백 명을 서울로 데려왔다.
진작부터 기회를 엿보며 밀계를 꾸미고 있던 이완용·이범진(李範晋)들의
친로파의 무리는 일변 노병의 힘을 빌어 협박적으로, 일변 대원군이 그 손
자 이준용(李埈鎔)을 세워 찬역의 난을 일으킨다는 참소로 꾀어 고종을 노
서아 공사관으로 빼돌리는 데 성공하였다. 왕을 빼앗았으니 정권은 노서아
와 친로파의 손으로 돌아가고. 친일파는 우 일본으로 도망을 가고, 더러는
난민과 반대당에게 죽고. 이렇게 잔망스럽고도 용렬스런 전쟁 ——— 쿠데타도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사실(史實)일 것이다.
한국의 내정에 대하여 미국의 손이 뻗히어지기는 우선 간접적이기는 하나
이 소위 아관파천(俄館播遷)에서 비롯하였다. 친로파의 배후에 친미파의 조
력과 조종이 있었던 것이다.
건양(建陽) 원년(丙申[병신]) 가을, 일찌기 갑신정변에 미국으로 망명을
갔던 서재필이 특사(特赦)를 입고 돌아와 혁신운동을 시작함으로써 조선의
혁신운동은 한 새로운 에폭을 그었다.
서재필은 외교부 고문의 지위에 있으면서 관리들을 계몽시키는 한편, 조선
말과 영문으로 독립신문을 발간하였다. 그는 거리에 나가 민중과 청년을 모
아놓고 세계의 새로운 풍조를 설명하며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연설을 하였
다. 민중과 청년들은 이를 환영하였다.
청국의 속국임을 자인하는 표적이던 서대문 밖 모화관(慕華館)에다 그 반
대인 조선의 독립국임을 주장하는 독립문을 세우기로 하였다. 그리고 십일
월 십사일에 독립문 정초식(定礎式)이 있었는데, 이날 독립협회가 조직이
되었다.
개혁과 자주독립에 열기를 가진 많은 청년들과 학생이 독립협회의 깃발 아
래도 모여들었다. 학생은 주장 배재학당의 학생들이었고, 남병수도 거기에
빠지지 아니하였다.
배재학당 안에는 독립협회보다 조금 앞서 학생들로 조직된 협성회(協成會)
라는 것이 생기어 있었다. 이승만·주시경(周時經) 들이 지도를 하였고 무
시로 시국강연 연설회·토론회 같은 것을 열어 청년들의 신지식을 기르고
개혁정신을 고취하는 모임이었다.
병수의 혈관에는 그 부친 남진사의 혁명투사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또 어
려서부터 늘 배운 것이 역시 혁명정신이었다. 그런데다 갑오 동학에서 실지
로 투쟁을 얻은 귀중한 체험도 있었다.
길지는 못하나 협성회의 한동안은 병수의 진보적인 식견을 급속히 높이는
동시에 싸우려는 열기도 또한 비교적으로 높이었다.
독립협회의 외치는 소리는 젊은 패들로 하여금 진득이 학원 안에 머물러
‘연습’을 하는 것에 만족하도록 허락치 아니하였다. 병수는 주저없이 동
무들과 함께 독립협회로 달리었다.
독립협회도 초기에는 이완용 따위며 그 밖에 조정의 대관이라는 인물들의
회원이 섞여 있어 그다지 신통스런 것이 못 되었었다. 그것이 소장 회원들
이 실제 운동을 하면서 회의 영도권을 잡게 되자 노후 회원과 불순분자들은
차차로 떨어져나가고 건양(建陽) 이년 가을 이상재·윤치호들이 서재필을
대신하여 회를 지도하면서부터는 회는 완전히 청년들의 것인 동시에 활동도
훨씬 더 활발하고 적극적이어졌다.
그들은 거진 매일같이 종로에 나가 청년과 군중을 모아놓고 백성들의 각성
을 재촉하는 연설을 하였다. 토론도 하였다. 정부를 공격하였다. 나라가 목
전에 망하고 있는 사정을 들어 국민의 애국심을 선동하였다.
또 신문은 신문대로 언론으로써 그것을 하고.
이렇게 독립협회는 외국의 병력을 빌어 총칼을 겨누고 궁정으로 돌격하는
대신 삼촌의 혀를 가지고 거리로 ——— 민중에게로 나아갔다. 반대당을 쫓고
정권 잡기를 급히 하는 대신 민중을 일깨워 그 여론을 끓어오르게 하였다.
효과는 컸다. 이 한때의 청년들과 민중은 혁신과 자주독립을 마치 쌀이 귀
해진 때에 쌀을 걱정하고 나무가 귀해진 때에 나무를 걱정하듯이 걱정하였
다. 거리나 가정이나 혁신과 자주독립이 이야기가 되지 아니하는 때가 없었
다.
일찌기 정동에 정동구락부(貞洞俱樂部)라는 것이 있었다. 학교며 교회며
외교방면의 미국 사람과 친미적인 조선 사람과 그리고 조정의 현관들을 회
원으로 한 한 사교단체였었다. 독립협회는 이 정동구락부가 변신을 한 것이
었다. 그런만큼 초기에는 그와 같이 보수적 인물과 이완용 따위의 불순분자
가 포섭되어 있었던 것이요, 그러나 그러한 인적 요소는 미구에 숙청과 도
태가 되었다 하지만, 그 회 자체의 혈통(血統)만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미국공사 알렌(朝鮮名[조선명] 安連[안련])이 무대감독이 되어가지고 미국
편의 선교사며 학교 관계자들이며 제중원 관계자들과 함께 독립협회를 등
뒤에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힘써 원조하는 사이에 서울의 전기와 수도시
설 경영의 이권이 미국인 실업가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평안북도 운산금광
(雲山金鑛)이 역시 미국 사람의 것이 되었다. 미국공사관의 서기관 썬스는
궁내부 고문이 되었다. 운산금광에서는 거기에서 난 금으로 금화(金貨) 오
십만 원을 궁중에 바치어 고종으로 하여금 입이 벌어지지 않지 못하게 한
일도 있었다.
학교를 세워 교육을 시켜 주고, 병원을 세워 의료를 하여 주고 하는 건 물
론 고맙지 아니한 것은 아니었다. 경제적 원조도 물론 고맙다 할 것이었다.
그러나……
한 강국이 어떤 약한 땅을 무력으로써 정복하여 식민지로 삼는 것은 단지
무력적 정복 그것에 궁극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력적 정복 그 뒤
에 있을 경제적 착취에 진실로 식민지 획득의 주장 목적이 있는 것이었다.
군대가 총칼로 정복을 하여 놓으면 자본가가 그 뒤를 따라와 공장을 세우
고, 흔한 원료와 헐한 노동력으로써 상품을 만들어 이문을 남기는 것……
결국 이것이었다.
자본가라는 것은 그러나 반드시 총칼 가진 군대의 뒤만 따라오는 것은 아
니었다. 하느님의 사도의 꽁무니에도 따라오고, 학교 선생님이나 의사의 꽁
무니에도 따라오는 것이었다. 그들이 의식적으로 데리고 오지야 않는다더라
도.———
독립협회가 어떤 한 개의 끝장을 보지 못하고 중도에 흐지부지하고 만 것
이, 친로파·친일파·사대당 들처럼 매국노(賣國奴)의 더러운 이름을 쓰기
를 면하는 결과가 되었다면, 그의 몇몇 지도자들의 위태로울 뻔한 불명예를
위하여 작히 요행이었다고나 이를 것인지.
광무(光武) 이년(戊戌[무술]: 西紀[서기] 1898년) 시월 이십팔일, 독립협
회는 종로 네거리에다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라는 것을 열었다. 국민대회
(國民大會) 같은 것이라고 할 것이었다.
만민공동회는 행정의 개혁에 관한 일곱 가지 조항을 결의하여 가지고 그
자리로 의정부 참정(議政府參政) 박정양(朴定陽)을 비롯하여 각부의 대신들
을 불러다 놓고 그 개혁안을 실시하도록 정부에 육박하였다.
정부는 독립협회의 세력을 두려워하여 할 수 없이 만민공동회의 결의를 우
선 실행할 약속을 하였다. 그러고는 십일월 사일 밤, 독립협회가 반란을 음
모한다는 명목으로 경무청(警務廳)을 시켜 이상재 이하 간부들 열일곱 명을
체포하고 회의 문서를 압수하는 일방 독립협회를 해산하라는 칙령을 내렸
다.
격분한 청년들은 경무청 앞으로 모여 거기서 다시 만인공동회를 열고 정부
를 규탄하고 체포한 독립협회의 간부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체포된 이상재 이하를 재판소로 넘기었다. 재판소 앞으로 모여 여전히 그
석방을 요구하였다.
필경 민중은 승리하여 체포된 일행이 놓여나왔다.
민중은 그것으로 만족치 않고 계속하여 종로에서 시위의 집회를 열고 독립
협회를 무고(誣陷)한 조병식(趙秉式)을 처벌할 것, 먼저의 일곱 가지 건의
를 즉시 실행할 것, 독립협회 해산령을 취소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십
오일부터는 자리를 인화문(仁化門) 앞으로 옮기고 소장(疏章)으로 직소를
하면서 기세를 올리었다.
십일월 이십일일, 이날도 인화문 앞에는 만민공동회가 열리어 있었다. 이
열중하여 있는 민중을 별안간 수백 명의 폭도가 엄습을 하였다.
난목수건으로 테머리를 질끈질끈 동이고 날아갈 듯 감발짚신을 신고 손에
는 저마다 몽둥이, 대창, 장검을 들고, 그중 몇몇은 육혈포를 들고 한, 수
백 명의 폭도는 아우성을 치면서 만민공동회를 습격하였다.
독립협회의 세력이 나날이 커감을 본 정부에서는 며칠 전부터 이기동(李起
東)을 시켜 지방의 등짐장수패(褓負商패)를 불러올렸다. 구실인즉은 등짐장
수패의 관리부서였던 상리국(商理局)을 부활한다는 것이었었다.
천여 명이 모였고 그들을 소위 황국협회(皇國協會)라는 이름으로 갑작 조
직을 하여가지고 정부는 폭력으로써 독립협회의 기세를 꺾으려 한 것 이었
었다.
대창과 몽둥이라고는 하지만 아뭏든 무장을 하였고, 또 조직적인 습격에
대하여 독립협회편은 창졸간 맨주먹으로 어떻게 하는 수가 없었다.
일순간 수라장이 되었다. 독립협회편의 많은 사람이 상하였다. 그러나 독
립협회편은 용렬하지 않았다. 맨주먹으로 혹은 돌을 집어던지면서 대항을
하였다. 대담히 육박을 하여 적을 덮쳐누르고 그 가진 바 무기를 빼앗아 유
효하게 쓰는 사람도 있었다.
병수는 몽둥이 하나를 빼앗을 수가 있었다. 다른 무기를 빼앗은 사오명의
동지와 함께 병수는 전위가 되어 앞으로 짓쳐나가면서 적을 막 무찔렀다.
싸움은 밀치락달치락하면서 서대문 밖 감영 앞으로 벌어져 나갔다.
이 싸움은 날이 저물면 제물에 정전이 되고 밝으면 다시 어울리고 하여 여
러 날 동안 계속이 되었다. 고종이 친히 궐문 밖에 나와 대신들과 각국 사
신들이 배석한 자리에게 군민이 한몸이 되어 혁신을 도모하라는 유고와 더
불어 양편을 화해시킴으로써 겨우 싸움은 종말을 지은 형편이었다.
병수는 이 유고의 날에 참예를 못하고 제중원에 누워 상처를 치료받고 있
었다. 그는 둘쨋날 남대문 밖 싸움에서 몸을 상하였었다.
얼마 동안의 치료로 대창에 찔린 외상은 합창이 되었으나 몽둥이로 옆구리
를 맞은 것은 필경 내종이 되어 마침내 생명을 빼앗고 말았다.
병원으로부터 집으로 나와 누웠다 일었다 하면서 시름시름 앓기 일 년. 그
러다 기해(己亥: 光武[광무] 3년) 가을에는 병이 와락 기울면서 인하여 세
상을 떠났다. 겨우 이십오 세의 아까운 나이로.
그의 임종에 임신 칠 삭의 안해를 불러앉히고 모친 강씨부인더러랑 요행
사내자식이거들랑 나라에 바쳐달라는 유언을 하였었다. 한 것이 해산을 하
니 계집아이 ——— 지금의 진주였다.
그 전전해 정유년에 아들의 뒤를 좇아 도로 서울로 이사를 해왔던 강씨부
인은 이듬해 경자(庚子) 이월 며느리가 해산을 하고 몸 추기를 기다려 또다
시 고향으로 내려와 우금 오늘에 이르른 것이었었다.
나라일에 몸을 바치는 남편을 섬기고, 아들을 받들고 하는 안해였으며 어
머니였음으로 하여 이런 파란과 곡절을 치르면서 생애가 상심으로 일관한
강씨부인이었다. 작히 자신의 지난 바를 여겨 사랑하는 오직 한 점의 혈육
진주로 하여금은 그런 고난은 겪지 말기를 바람도 노상 무리는 아닐 것이었
다.
강씨부인은 물론 일찌기 남편 남진사면 남진사, 아들 병수면 병수의 하는
일에 대하여 간섭을 하거나 불평을 한 적은 없었다. 여장부답게 나서서 적
극적으로 조력은 하지를 못할망정 그것을 말리며 방해를 한 적은 없었다.
장부로 떳떳한 일이라고 생각하였었다. 그러므로 만일 손자사위 준호가 얌
전히 가정이나 지킬 인물이 아니어 보였더라도 섭섭해하거나 그런 자리를
택한 것을 불만히 생각할 리는 없었다. 다만 보아하니 숫기 많고 얌전스런
것이 집안을 지키며 살림에 착실한 재목인 것 같아서 아무려나 다행이로다
고 하는 것일 따름이었다.
진주가 새서방 준호더러 꼭 가마고 단단 언약을 한 시월 열아흐렛날.
오때가 훨씬 겨워서.
향교골 준호의 집에서는 마당에 차일을 드높이 치고 안팎으로 동네 남녀가
그득히 모여 들끓었다. 오직 한 포기 있는 일가인 준호의 외숙 내외와 아이
들도 새옷을 갈아 입고 와서 있었다.
부엌과 과방(菓房)에는 음식이 그득그득히 쌓이고, 일변 장만을 하느라고
벅적 바빴다.
몸집 커다란 박씨부인이 총지휘를 하느라고 모처럼 행주치마를 두르고 이
리 갔다 저리 갔다, 이 사람 붙잡고 단속, 저 사람더러 재촉하기에 사뭇 수
고로왔다.
정녕 큰 제사가 아니면 경사겠다.
그러나 이 집에 시월달에 이다지 떠벌릴 큰 제사는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환갑잔치나 혼인이겠는데, 내일이 박씨부인의 생일은 기라도 환
갑은 아니다.
혼인?
자녀라야 외톨로 준호밖에 없고, 그의 혼인은 지나간 봄에 치르지를 아니
하였던가 그러나……
집 앞 들판을 건너 남쪽으로 있는 범고개라는 야트막한 고개로부터 한 호
화로운 행렬이 넘어오고 있다. 큰 백마에 분홍 두루마기 남쾌자를 입은 조
그마한 초립동이가 올라앉아 앞을 서고, 그 뒤로 가마에 호피 덮은 팔패 교
군이 따르고, 그 뒤에 부담마의 수모가 지삿갓 쓰고 따르고, 그 뒤로 남바
위에 풍안(風眼 : 眼鏡[안경]) 잡순 샌님이 남여(籃輿) 위에 높이 앉았고,
그 뒤로 혼수함(婚需凾)을 비롯하여 농바리짐과 이바지짐이 열댓이나 따르
고…… 누가 보아도 신부집에서 신랑집으로 오는 신행길이요 갈데없었다.
거기다 고개를 넘어서면서는 전립전포(戰笠戰布)에 청사초롱 메고 신랑 신
부 양편으로 갈라선 나졸이 일제히
“어 ― 구부허 ―”
하고 견마성을 아뢰니 더구나 의심할 여지도 없는 것이었다.
견마성 소리가 들리자 집안에서는 신행길이 들어온다고 새로이 동요가 일
면서 바빠들 하고.
성급한 여인네들과 아이들이 한떼 우하고 대문 밖으로 몰려나간다.
등대하고 있던 무당이 대문 앞에다 짚으로 불을 놓고 동동동 징을 울리면
서 살막이를 한다.
집 문앞에서 구경을 하면서 여인네들이 주거니받거니 지껄이는 소리였다.
“참 혼란스럽기두 허이. 이바지짐 말구 농바리짐만 여덟 짐이지?”
“이번 색시넨 만석군이래.”
“건데 색시가 지랄장이래.”
“아냐. 서대린(庶足[서족] :庶族[서족])데 막 나믄서 본실댁이 안아다 길
렀대.”
“아뭏든 무슨 흠이 있던지 있은깐 속내 빤히 알믄서 이 혼인을 허지.”
“그런 게 아니구, 인물이 아주 천하 박색이래. 그래 과년이 차두룩 혼처
가 아니 나서서 삼백석거리 주기루 방을 돌렸드래. 그러자 이 집이서 청혼
을 하니깐 얼른……”
“그러나저러나 이번 며느린 또 며칠이나 부질 헐려누?”
“이번야 삼백석거리가 붙었는걸 만만히 그렇게 되나.”
“신랑이 도망을 뺐드라구?”
“읍내 학교랑 뒷산에서 붙잡어왔대는군.”
“장가 세 번만 가믄 정승 팔자보담 낫대는데 으째 마대!”
“어려두 먼첨 색시허구 금실이 여간만 아니 좋았더라는구면.”
“신정이 구정만 못허드라구, 호호호.”
“신행길은 들판길을 다 지나 마침내 동네 앞을 동서로 뻗친 신작로로 올
라섰다. 거기서 십여 보 서쪽으로 오면, 신작로가 집으로 꺾여 들어오는 고
무래정자의 소로와 닿는 곳이다.
구경하는 사람들이 호화로운 신행길에만 눈이 쏠려 미처 못 보았으나, 신
작로의 서편 동구 안으로는, 범고개에 신행길이 나타나던 거의 동시에 한
채의 네패 교군한 가마가 또한 나타났었다. 중년의 여인 하나가 가마 옆에
따르고 뒤에는 두어 짐의 이바지짐이 따르고 하였다.
신행길이 신작로에서 드디어 고무래정자의 소로로 내려섰을 때 가마의 일
행도 바로 고무래정자 길머리까지 당도하였다.
신행길은 선두는 이미 고무래정자 소로로 들어섰으나 꼬리는 저편짝 들판
길에 가 물려가지고 신작로를 횡단하고 있는 참이라 가마의 일행은 신행의
신작로 횡단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듯 그 자리에 가 멈추어 섰다.
이윽고 신행길의 맨 꼬리까지 신작로의 횡단은 끝이 났다. 길 트이기를 기
다리고 멈추어 섰던 것이라면 가마의 일행은 당연히 전진을 하여 그곳을 지
나서 동쪽으로 갔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가마의 일행은 가마 옆에 따랐던 중년의 여인이 가마의 휘장을 벗
기고 가마 안과 무슨 이야기를 잠깐 주고받는 듯하더니, 인하여 가마머리가
일백팔십도를 돌면서 오던 길을 되짚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만일 사람이, 그중에서도 젊은 여자가 아무 때 아무 곳에서나 마음대로 울
음을 울 수가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면, 시방 저 오던 길을 되짚어 돌아가고
있는 가마 안으로부터는 자못 애절한 울음소리가 울리어 나왔을는지도 모른
다. (第一部[제일부] 終[종])
〈朝鮮代表作家全集[조선대표작가전집] 第[제] 8 卷[권],
서울타임스社[사],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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